〈 176화 〉 라미아 공주 # 1
* * *
ㅡ비상!
라미아 무리가 포착된 즉시 내린 명령이었다.
내 한마디에 던전의 모든 병사들이 전준태를 하는 것마냥 장비를 챙겨 들고 지정된 위치로 이동한다.
"고블린 소대부터 보고!"
"케륵! 열외 없슴다! 전원 배치 완료!"
"임숭이!"
"끄르륵! 다 있따! 확인 다 했씀다!"
"그래!"
비상사태인 만큼 분대장들에게 육성으로만 보고를 듣는다. 눈으로도 확인해 보니 열외된 인원은 없는 상태다.
고블린들이 방진을 만들고, 그 뒤에는 임프와 픽시들. 최후방에 나와 친위대. 그리고 코볼트들이 위치한다.
홉고블린들은 바로 무장시켜서 땅굴로 보냈다. 얘네들이 싸우는 건 별로 안 좋아해도 뒤통수 때리러 가는 건 좋아한단다.
"좋아!"
아무튼 이걸로 라미아들을 맞이할 준비는 전부 마쳤다. 설령 놈들이 내 상상처럼 거창돌격을 해온다고 해도 방진을 쉽게 뚫을 수는 없을 것이리라.
"마앙님? 라미아들 쳐들어 왔다에여? 저번에 동맹한다고 하지 않았어여?"
"어... 그래. 그런 거 아니었냐?"
갑작스러운 라미아의 침공이 의아한 것인지 샤란이와 레이카가 그리 물었다.
물론 쳐들어온 게 아닐 수도 있다. 조약을 맺으러 온 것일 수도 있지.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한다.
"무슨 목적으로 왔든지 간에 외부세력이 우리 공간에 왔으니까. 최악을 상정해야지. 아직 믿을 수 없으니 준비부터 하는 거야."
"샤아."
"...그렇군."
두 여자가 바로 납득 했다.
"좋아. 그럼 잠깐 대치하다가 사자를 보내도록 하자고. 대화를 하러 왔다면 저쪽에서 뭔가 싸인을 보낼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ㅡ사라락.
라미아들이 먼저 움직였다. 대표로 선출된 것인지 라미아 한 마리가 아주 천천히. 던전 입구 쪽을 향해 다가왔다.
"무기는 없군."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처럼 양손을 들고 있는 상태.
"무슨 일로 왔느냐!"
그래서 소리를 치니.
"대화를. 하러 왔다."
라미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화라."
역시 공격이 아니라 협상을 하러 온 건가? 저번에 말한대로 교미에 대한 협상을 하러 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알겠다! 대화에 응하겠다! 너희 측 병사들을 후퇴시키고 대표자를 불러와라! 회담은 이곳에서 하겠다!"
"위치는. 우리가 정한다."
엄한 곳으로 끌어들일 속셈인가?
그래도 일단 들어봐야지.
"어딜 원하나!"
"이 입구가. 좋다고 하신다."
"입구?"
내 던전 바로 앞?
그 정도라면 수용할 수 있다.
대화를 하러 온 게 맞군.
"알겠다! 병사를 물리고 대표자를 불러와라! 그럼 이쪽에서도 움직이겠다!"
"..."
고개를 숙인 라미아가 뒤로 빠졌고, 나는 즉시 이블아이를 소환했다. 능숙하게 조작을 해서 던전 바깥을 훑어보니 과연. 라미아 병사들이 후퇴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대표자는 저번에 봤던 그 사슈날이라는 뼈 투구를 쓴 라미아일까? 그것을 예상하면서 보고 있으니.
ㅡ사라락.
"음?"
다른 라미아가 나타났다.
"쟨 누구야?"
제법 멋드러지게 치장을 한 라미아였다. 화려한 깃털과 금속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서 착용하고 있는 상태. 저렇게 보니까 좀 간지가 난다.
그런데 뭐랄까 좀.
덩치도 작고 얌전해 보인다. 아니. 덩치가 좀 작긴 해도 가슴은 크다. 빵빵하다. 왕가슴이다. 허리라인이랑 골반라인도 예술이다. 그런 음탕한 몸매를 지니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많이 차분해 보이는 느낌이다.
차분한 여성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칼이 정돈되어 있어서 그런 건가? 긴 머리카락은 아주 깔끔하고 윤기가 넘쳐흐르는 중이다. 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부릴아. 진형을 열어라."
"케륵? 괜찮겠슴까?"
"내가 신호하면 그대로 진격해."
"케륵. 알씀다!"
바로 부릴이가 진형을 열었고.
대표자의 보좌역할을 하던 라미아가 말했다.
"우리의. 공주님이시다."
"뭐?"
공주님?!
라미아 공주!
그렇다는 건 어디에 라미아 왕국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거 좋지 않군. 아니. 기회인가? 지금으로선 판단 불가다.
ㅡ스윽.
고개를 숙인 보좌관이 뒤로 빠졌고, 나는 던전 입구 쪽으로 나아갔다. 라미아 공주는 양손으로 성기를 가린 채 차분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앞에 섰을 때.
"..."
나는 흑심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몸매가... 아주 좋다. 가슴이 아주 커서 마음에 든다. 내가 설마 뱀 여자한테 발정을 하게 될 줄이야. 근데 뭐 하반신이 거미나 말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아무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남성분. 첩의 이름은 쥬리아라고 합니다."
쥬라기랑 비슷한 이름이로군.
남매인가? 아니. 이게 아니지. 라미아 치고 말을 잘한다? 제대로 배워서 그런 건가? 다른 라미아들은 뚝뚝 끊어서 말했는데 쥬리아는 아주 스무스하게 말을 한다.
역시 공주라는 건가.
"저도 반갑습니다. 전 큘스라고 합니다."
"어머."
일단 나도 인사를 하니.
"역시. 제대로 말을 할 줄 아는 남성분이셨군요."
ㅡ싱긋.
쥬리아가 여우처럼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리 말했다. 이 여자... 뭔가 여우 같은 느낌이로군. 뱀인데 여우라니. 리리엘이 들었으면 열등종 믹스마스터라고 환장했을 듯.
"말을 할 줄 안다니요? 설마 그게 특이한 일입니까?"
"네. 많이 특이하지요."
하긴.
이 정글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종족이 거의 없긴 하니까. 아니. 애초에 말하는 남캐를 본 기억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첩은 저번의 그 동맹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동맹 제안이라."
역시 교미 제안.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다.
이 라미아 공주를 물고 빨고 박아주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자신이 내게는 있으니까. 당장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면 만사 OK다.
"물론 저도 저만한 부대를 이끌고 있는 공주님과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만, 그건 그냥 맺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서로 조건을 잘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나."
"예?"
"아니. 그런 말까지 하실 줄은... 역시. 운이 좋았군요."
살짝 놀란듯한 얼굴. 그런데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인다. 지금 아주 좋아하고 있다는 점이 내게 전해져 올 정도다.
그리고 봐라.
ㅡ파르르...!
쥬리아의 꼬리 끝이 마치 방울뱀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리는 안 나지만 저게 기분 좋다는 제스처란 건 알겠다.
"사실 이곳에서 강하거나, 이성이 있거나, 그리고 지능이 높은 남성 종족을 찾는 것은 어렵거든요."
"그건... 그렇겠군요. 동감합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쥬리아가 미소 지은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샤슐라스들은 적당한 수컷들을 납치하곤 합니다."
중간에 들어간 고유명사는 라미아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겠지. 앞으로는 라미아라고 번역하도록 하자.
"그 초록색 놈들처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원래는 그들을 납치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런 행운이 나타날 줄은...“
원래는 오크들을 따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나타나서 운이 좋다고 여기고 있는 중이다.
"흐흐흐, 즉 그런 거군요. 제가 마음에 들었다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저도 마음에 듭니다."
"어머.“
"그럼 동맹 조건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보죠."
저쪽이 호의적이니 대화가 문제없이 흘러간다.
"동맹의 조건은 간단합니다. 저기,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아무렇게나 불러주십시오."
"그럼 마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조건은 간단합니다."
조건.
"첩과 첩의 일족들을 임신시켜 주신다면, 군사적인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잠깐. 쥬리아 공주."
"네?"
"의문이 있습니다만."
나는 일단 모르는 척 말했다.
"무슨 의문이지요?"
"일단 저와 쥬리아 공주님은 종족이 다릅니다만. 임신을 할 수가 있는 겁니까?"
"아... 다른 종족들에겐 그런 게 있었지요. 물론입니다. 라미아들은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확인을 해야 하니까.
"저로선 놀랍기 그지없군요. 그런 게 가능할 줄은."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시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아무튼 뭐, 좋습니다. 그런 동맹 제안이라면 서로에게도 좋겠지요. 쥬리아 공주님께선 자식을 낳고 세력을 불릴 생각인 것 아닙니까?"
"네."
다시금 쥬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제 목표이기에."
"흐흐흐, 마침 제 목표도 비슷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일대를 평정해도 좋을 것 같군요."
"동맹이 성사된다면 얼마든지요."
점점 더 좋아하는군. 이 여자를 범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졌다.
"좋습니다. 아, 그런데 공주님.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확인해도 괜찮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솔직히 저는 다른 종족과 아이를 만든다는 게 잘 안 믿깁니다만... 제 태생이 그래서요. 이해하십니까?"
"우후후, 물론 이해합니다."
"그래서 만약의 일인데. 설령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그건."
잠깐 내려앉는 침묵.
ㅡ흠칫.
아주 잠깐이지만 쥬리아의 분위기가 변했다. 날카로운 맹수와도 같은 세로동공이 번뜩이면서, 뱀 같은 혀가 입안에서 쉬쉿거린다.
"그때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군요."
하지만 곧 차분한 미소를 되찾은 쥬리아 공주가 그리 답했다.
"흐흐흐, 그렇습니까?"
그래. 동맹을 할 수 없다면 적이다 이거지. 나도 너도 이 지역의 패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맹이 아니라면 적. 경쟁자.
배제해야 함이 옳지.
이 라미아 공주는 그것까지 다 그리고 있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ㅡ씨익.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근데 이걸 어쩌냐? 설령 어떤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내 손에 한 번 걸리면 내 성노예가 될 텐데.
이 당돌한 라미아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땅의 패자가 되고 싶겠지만, 나와 밤을 같이 보내는 순간부터 내 성노예가 될 것이다.
라미아들은 전부 처녀라고 했지. 성적인 자극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백색의 여성들을 마음껏 문질러대고 쑤셔대면서 조교하여 내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내 전문분야이다. 그것이 바로 인큐버스 마왕 김큘스. 그 어떤 여자라고 해도 내게 박히면 타락하여 쾌락을 갈구하게 된단 말이다.
"오늘부터 저와 쥬리아 공주님은 동맹입니다."
웃으며 손을 내밀자.
"우후후, 좋아요."
쥬리아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늘부터 잘 부탁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왕님. 아, 그리고."
"예?"
"최대한 빨리 마왕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
"언제쯤이 좋을까요?“
육식성 여성이로군.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좋다.
"지금 당장은 어떻습니까?“
ㅡ화악.
바로 손을 뻗어 귀와 뒤통수를 살살 만져주자.
"...마치 저희들 라미아처럼 빠르신 분."
쥬리아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이미 성욕이 충만한 상태다. 라미아들이 수컷사냥을 하고 있었으니까. 발정기인 만큼 참기 힘들겠지. 심지어 그런 상황인데 이 인큐버스 마왕 큘스를 앞에 둔 상태.
참을 수 있는 여자는 없다.
신앙심 깊은 수녀들도 다리를 벌린 채 앙앙거릴 정도인데 이 라미아 공주가 버틸 리가 있나.
"...그럼 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마왕님."
"예."
ㅡ스윽.
가슴골을 가리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한 쥬리아가 떠나갔다.
분위기 좋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