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테크 올리기 # 4
* * *
피가 끓어오르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사실 말이 던전이지 적이 쳐들어온 적은 많지 않으니까.
게다가 밤에 야습이라고?
정상이 아니다. 내가 주변 정찰을 거른 것도 아니고 밤에 습격이 올 정도라면 이쪽 위치를 잘 안다는 뜻이 아닌가!
"케르윽!"
"케랴아아악!"
그동안 전준태를 벤치마킹한 긴급 전투태세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온바, 던전의 병사들이 재빠르게 무장하고 정위치로 가서 정렬하기 시작한다.
나도 빠르게 갑옷을 두르고 칼을 잡아 쥔 상태.
"경계병! 상황 보고!"
"케륵! 적! 쳐들어왔습니다! 인간 같은 놈들! 숫자 다섯 봤습니다!"
"잘했다, 경계병! 다음에 포상하마! 부릴아! 준비 마쳤으면 바로 던전 입구 쪽으로 진격시켜! 세리뉴! 빨리 뒤로 따라붙고! 홉고블린들은 땅굴로 들어간다! 임프들은 픽시들 뒤에 따라붙어!"
재빠르게 지시를 내리면서 정보를 취합한다.
"라미아들은 출격을 준비하라!"
인간 같은 놈들? 설마 정보가 어디서 유출이 되었나? 아니면 뭐 백패킹 하러 온 캠핑매니아들일까? 그럴 리가 없지! 일단은 가서 전부 죽이거나 제압하는 게 먼저다!
ㅡ투두두!
ㅡ부웅!
방진을 짠 고블린들이 고속으로 전진하고, 그 뒤에 픽시들이 따라붙는다. 나 역시 방패를 잡아 든 채 고블린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코너를 돈 순간.
"...!"
저쪽에서 무언가 인간 같은 놈들이... 아니!
"다크엘프!"
갈색 피부에 긴 귀, 그리고 하얀색 머리칼을 지닌 존재들! 라미아들에게 들었던 대로 다크엘프들이다! 무장을 한 남성 다크엘프들이 칼을 겨눈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동시에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도망을 치지 않은 것이지? 분명 고블린 불침번 두 마리가 침입을 알리고 던전 안쪽으로 도망을 친 상태였다.
그걸 보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건... 이쪽의 전력을 잘 모른다는 뜻이로군. 그렇다면 과감한 공격이다!
"공격! 부릴아! 열 맞춰서 돌진해!"
"케르으으윽!"
ㅡ투두두!
바로 고블린들이 땅을 박찼다. 방패와 창을 앞세운 채, 줄을 맞춰서 행하는 돌격.
"아닛...!"
"저건!"
그리고 다크엘프들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히 당황한 눈치다. 고블린 군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을 못 한 것인가?
"픽시들 사격! 알아서 조준하고 사격해!"
"사격해!"
"사격!"
ㅡ쐐애애액!!
ㅡ쐐애액!
바로 픽시들이 사격을 실시한 순간, 다크엘프들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도망이라. 맞붙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라는 건가.
ㅡ파팟!
등에 윈드커터가 박히는 것에 보였지만, 천갑옷을 잘 입어서 그런지 쓰러지진 않았다.
"캬아아아아!"
뒤쪽에서 라미아들의 포효소리가 들려온다. 준비가 끝난 것이다.
"부릴아! 길 열어라!"
"케륵! 좌우! 벽으로 딱 붙는다! 실시!"
"픽시들도 좌우로 붙어!"
ㅡ파파팟!
명령이 떨어진 그 순간, 바로 내 부하들이 벽에 딱 붙었고.
"라미아 출격! 전부 꿰어버려라!"
"캬하아아악!"
"매복 조심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귀환해!"
ㅡ쿠구구구궁!
창과 방패를 잡아든 라미아들이 프리패스로 던전 복도를 지나갔다. 그야말로 쇄도해오는 말 같은 기세다. 그렇게 라미아들을 전부 보낸 뒤에, 바로 고블린들을 진격시켰다.
"부릴아! 바깥에 매복이 있을 수가 있어! 나가자마자 방패 쳐들고 좌우로 쭉 펴진다! 알겠지!"
"케륵! 알씀다!"
아주 급박한 상황이다. 밖에 부대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위험하지만, 여기선 속전속결로 포로를 잡아둘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던전 안에서 존버만 타는 건 하나도 좋지 않아!
그리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온 순간.
ㅡ으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라미아는 아니다. 딱 봐도 남성의 목소리. 다크엘프 사냥을 성공한 것이다.
"케륵! 뫙님! 방진형성 다 했습니다!"
"잘했어! 픽시들이랑 임프들은 고블린들 뒤에 붙는다! 여기서 라미아들을 기다려!"
그렇게 명령을 내린 뒤에 주변을 주시했다.
ㅡ아아아악!
ㅡ크하아아아아악!
고통 어린 비명소리들. 거기에 라미아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참 다행이로군. 일방적으로 사냥에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ㅡ사라락.
"돌아왔다."
라미아들이 어둠을 헤치고 돌아왔다.
"전리품을 챙겨왔군요, 사슈날!"
"손쉬운 상대였다. 이 다크엘프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잘했습니다!"
ㅡ쿵!
라미아들이 어깨에 메고 있던 다크엘프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끄으윽...!"
다들 하나같이 몸이 관통된 상태였다. 도망치다가 창에 한방 꿰뚫리고 제압이 된 것이겠지. 이런 야밤중에 기습을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상대는 훈련된 정예 라미아들.
"예정된 결과다. 사슈날. 매복이나 다른 적은?"
"없었다. 이들이 전부."
남성 다크엘프 전사 다섯이 전부라는 건가.
"사, 살려...!"
"크학! 크흐으윽...!"
"피가!"
널브러진 다섯 명의 다크엘프 전사들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신음했다. 더 다른 적이 없다면 정리를 해도 괜찮겠지.
"부릴아. 4인 1조로 경계팀 3개 편성하고, 던전 앞에 배치시켜 놔라. 나머지는 다크엘프들을 던전 안으로 옮긴다! 치료할 준비 해!"
"알았어!"
심문을 시작하자!
* * *
옮긴 다크엘프들을 감옥에 눕히고, 루미카의 물 마법으로 상처를 간단하게 씻은 다음 지혈을 실시했다. 그리고 바로 달려온 암흑수녀들이 상처부위에 힐을 시전한다.
그것으로 적당한 응급처치 완료.
"세상에! 이들은 다크엘프...!"
아이린이 적잖이 놀라워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카는 그냥 아니꼽다는 듯한 눈이었고.
"이 새끼들이 쳐들어왔다는 거지?"
"예. 그래도 치료 좀 해주십시오. 심문하려면 살아는 있어야 하니까."
"그래."
창이 신체를 관통한 상황이다. 지금 마왕성의 기술력으로 이들을 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숨통은 조금 붙여놓을 수 있겠지.
죽기 전에 알아낼 것만 빠르게 알아내도록 하자.
"기습을 하러 온 것이 분명합니다, 마왕님."
그때 쥬리아가 말했다.
"다크엘프들은 호전적이고 잔인한 종족입니다. 아마 우연히 발견한 우리의 뒤를 밟고, 야습을 할 생각으로 온 것이겠지요."
"그 말은 주변에 다크엘프 마을이 있다는 뜻입니까?"
"...죄송합니다.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침울해진 쥬리아가 내게 사과했다. 저번에 주변에 타 종족이 없다고 말했으니까. 근데 괜찮다. 지금 이사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이사 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예상으로는, 최근에 멀리까지 나가서 신병을 수급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그 방면에 자리 잡은 다크엘프들이 뒤를 밟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흠... 타당하군요."
그리 말을 하고 있으니.
"야. 이놈이 제일 괜찮아 보이는데? 이놈 심문하면 되겠다."
레이카가 한 놈을 지목했다.
"오."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지만, 다른 녀석들에 비해 맞은 곳이 그나마 좋았는지 출혈량이 적다.
"좋아. 이놈만 옆방으로 옮겨줘."
"네 마앙님."
바로 샤란이가 다크엘프를 부축하자.
"으윽!"
신음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출혈도 거세진다. 이거 심문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우리는 옆방으로 이동했고.
바로 심문을 시작했다.
"루미카. 얼굴에 물 좀 부어줘."
"응."
ㅡ촤학!
"끄윽...!"
"정신이 드나?"
"여, 여기는...!"
"이름을 말해라! 다크엘프!"
"크니브! 크니브다!"
라미아랑도 언어가 통하니 다크엘프랑도 통하게 되는군. 나는 계속 호통을 쳤다.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이냐!"
"그건...!"
"대답해! 대답 안 하면 라미아들 먹이로 만들어주마!"
"허억!"
겁에 질린 얼굴.
"정찰! 정찰을 왔습니다! 흐윽!"
"정찰이라고? 왜 정찰을 하지?"
"끄으윽...!"
"빨리 말해! 샤란아! 손톱으로 얘 종아리 좀 긁어줘라!"
"네 마앙님!"
바로 손톱을 뺀 샤란이가 놈의 종아리를 쓰윽 긁어주자.
"가하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나는 다크엘프에게 내 마력을 아주 조금씩 주입해, 체력회복을 도왔다.
"다시 묻겠다. 무슨 목적으로 정찰을 왔지?"
"고, 고블린 군대가 나타났다는 정보랑! 라, 라미아가 그 고블린들과 연합했다는 정보가 있어서! 그래서 추적을 해서...!"
"라미아가 있는 걸 아는데 그렇게 무방비하게 들어왔다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텐데?"
"크흑! 그런게 아니...!"
놈은 사색이 된 얼굴로 힘겹게 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웠다. 고블린 군대와 라미아가 연합을 했다. 그들을 추적해서 왔더니 바로 이 동굴이 나왔다.
그럼 보통은 주의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방심한 것처럼 던전에 들어왔다가, 고블린을 보고 나서야 도망을 친 거지?
"나였으면 섣불리 들어올 생각을 못 했을 것 같은데."
"끄르르륵."
그리 심문을 이어가려던 순간, 녀석이 게거품을 물면서 기절했다. 역시 상처가 너무 깊었다. 버티지 못하고 혼절해 버린 것이다.
"마력을 주입한다고 해도 이 정도 상처는 치유할 수가 없지."
안타깝지만 이건 식량이다.
* * *
결국 남은 다크엘프들을 심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그룹을 나눠서 다크엘프를 하나하나씩 심문했다.
다들 거의 고통과 출혈로 정신이 나간 상태라서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체적으로 정찰을 나왔다고 대답을 하긴 했단다.
"출신지. 사는 곳. 그런 거 들은 사람?"
바네사가 손을 들었다.
"대략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크엘프 마을이 하나 있다고 하는군."
"원래 있던 겁니까? 아니면 이사?"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흐음..."
다크엘프들이 주변에 있다라.
"대책을 세워야겠어."
이건 오크보다 위험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