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다크엘프 녀석들 # 1
* * *
"일단 살릴 수 있으면 최대한 살려보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보자고. 바네사. 보니까 포로를 심문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군요. 이 일은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알겠다. 이건 내가 맡지. 하지만 다크엘프들이 죽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네. 그건 어쩔 수 없는거죠."
적극적으로 변한 모습이 보기 좋군.
그런 생각이 들어 만족스럽게 바라보니, 바네사가 내 시선을 피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차, 착각하지 마라! 어차피 상대는 다크엘프고... 거기에 우리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니 제대로 하는 것일 뿐이니까!"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무슨 착각을 했는데요?"
"크읏! 이상한 걸 묻지 마라!"
이상하긴.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포로 심문은 바네사가에게 위임을 하고, 우리는 계획을 수립해보도록 하자.
나는 모여 있는 던전의 간부들을 슥 둘러보고 말했다.
"일단 지금 얻은 정보로 판단을 해보자면, 우리가 세력을 확장하다가 다크엘프 영역 쪽에 닿아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알아보고자 저쪽에서 전사들을 보낸 거겠지."
물론 놈들에게서 좀 방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수상하다. 하지만 이건 넘어가고.
"부릴아. 압수해온 무기 좀 꺼내 봐라."
"케륵! 잠시만 가디리십쇼! 뫙님!"
바로 부릴이가 나가서 압수해온 무기를 치켜들었다.
"봐봐. 철로 만들어져 있어. 모양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지. 이건 제대로 된 설비가 있다는 증거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철 다루는 기술이 좋은 편이야. 우리 픽시들이 한 것보다 조금 더 좋은 것 같애."
"대장간에서 나온 것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레이카. 그렇죠?"
"뭐, 그렇긴 하네. 제법 잘 만들었어."
라미아한테 물어보자.
"쥬리아님. 다크엘프들 기술이 이 정도입니까?"
"공동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 질이라면... 아마도 제법."
큰 마을이나 도시. 왕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는 뜻이다. 덧붙여서 라미아 왕국에서도 이정도 물건은 만들 수 있다는 듯하다.
그렇다면 역시 다크엘프 왕국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 걸까?
"쥬리아님. 다크엘프들이 정령을 사용합니까?"
픽시들에게는 정령을 이용한 소형 제철로를 돌려, 저품질의 철을 얻어내는 기술이 있다. 저품질이라고는 해도 돌을 깎은 것보다는 좋다. 다크엘프도 비슷한 걸 사용할까?
"네. 사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라미아들은 다루지 못하지만요."
"좋아. 그럼 정리를 해보자고."
정리.
"제법 규모가 큰 다크엘프 도시나 뭐 그런게 우리의 존재를 알아챘을 확률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인간들보다 더 까다롭겠지."
이건 진짜로 전면전을 할 수밖에 없겠는데.
"케륵. 뫙님. 까다로운 놈들이라면..."
"어떻게든 배제를 해야지. 박살을 내야만 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정글을 나눌 수는 없다. 앞으로 인간이나 천사 같은 놈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는데 다른 종족과 정글을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려면 놈들을 정복해야 한다.
"지금부터 다크엘프를 적대적인 종족으로 설정하고. 놈들을 섬멸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자고. 그런 종족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섬멸해야 하니까. 알겠지?"
그 과정에서 여성 다크엘프들을 취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다.
"케륵! 알씀다! 뫙님!"
"오오... 역시. 마왕님의 그릇이 보이는군요."
부릴이가 크게 대답하고, 쥬리아가 양손을 모으면서 감동했다. 확장은 잠시 중단하고 전쟁할 준비를 해야겠어.
* * *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바네사가 보고를 올렸다.
"들었던 것만 말하겠다. 판단은 네놈이 직접 하도록."
"물론입니다."
"우선, 녀석들이 정찰을 온 목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가 있었다."
"오오!"
바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놈들은 이쪽에 있는 라미아들을 열등 개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열등 개체?
"어째서입니까?"
"고블린들과 함께 행동을 한다. 그 사실을 이렇게 판단했다는군. 고블린들과 붙어먹을 정도로 추락한 라미아 개체들이라고."
"아."
라미아는 암컷만 있는 종족이다. 유정란을 낳기 위해 강한 수컷을 취하길 원하지만, 일반적인 라미아들이라면 세력에 밀려 오크 정도가 한계다.
근데 그것마저도 못한다면?
고블린과 붙어먹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런 라미아들은 라미아들 중에서도 제일 열등하고 나약한 존재 취급을 받겠지.
"나약한 라미아들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방심을 했다는군. 그 정도 라미아라면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당하군요."
그런 착각을 했다면 이해가 간다. 멍청하기는. 라미아들의 머리를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갈 생각이나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니끼... 잠깐.
가만 있어 봐.
"어? 그렇다는 건."
"으음?"
"우리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소리로군요?"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죽기 일보 직전의 포로가 거기까지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습니다만."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부대원이라면 몰라, 정글에서 부족이나 왕국을 세워서 살아가고 있는 다크엘프가 그런 교란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왜,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도 포로로 잡히는 족족 정보를 불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머릿속에 심문이나 포로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어서 물어보면 물어보는 대로 다 알려줬다고.
게다가 고통으로 절박한 상황이다. 거짓말을 할 정신이 있다면 애초에 방심도 하지 않았겠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주의야 하겠습니다만. 녀석들이 우리에 대해서 모른다는 건 거의 확실한 것 같군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따를 뿐이지요. 아무튼 잘하셨습니다. 칭찬."
바로 손을 뻗어서 바네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머리칼이 참 부드럽단 말이지.
"..."
바네사는 잠깐 얼어붙었고.
"하악!"
곧 깜짝 놀라면서 몸을 뺐다.
"왜 그렇게 놀라시는?"
"마저 심문이나 하러 가겠다!"
"아직 살아있습니까?"
"오, 오늘을 버티진 못할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라미아들의 창이 몸통을 관통했는데. 여성 다크엘프였다면 급한 대로 내 하양이를 주입해주고 이런저런 술식을 걸면서 회복시켰을 수도 있겠지만, 남자에게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통할 것 같지가 않으니까.
아무튼.
"우리에 대해서 모른다라."
그럼 공격할 만하지. 그동안 쥬리아랑 놀면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라미아도 다크엘프도 내가 사용하는 전술 같은 것에는 무지했다. 나름 문명도가 있긴 해도 결국은 야만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로마군들이 야만족들을 정복한 것처럼.
"나 역시 그리하리라."
그럼 우선 정찰부터 해보자.
* * *
"쥬리아님. 정찰을 할 겁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다크엘프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걸 알아내면 되겠습니까?"
"흐흐흐, 역시 눈치가 빠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크엘프들을 섬멸해야 하니까요. 후후후."
"아, 그런데 섬멸이라고는 해도 여성들은 포로로 잡을 겁니다."
포로로 잡힌 다크엘프들은 과연 잘 생기긴 했다. 인큐버스인 나보단 못하지만 역시 엘프라는 종족 특성답게 잘 생겼단 말이지.
그렇다면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섹시하고 쭉쭉빵빵할 것이 분명.
"알겠습니다. 역시 여성을 밝히시는군요."
"여성을 취할수록 마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몬스터 죽이고 마력 뽑아서 성장하는 것보다, 여자를 범하면서 커지는 마력이 더 크다.
"흐흐흐."
전부 다 내 것이 될 다크엘프 여성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러고 있으니 내가 꼭 무슨 부패한 귀족 같군. 야만인 여성들을 취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나쁜 권력자 같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
부끄러워할 것 따위는 없다. 그걸로 성장을 하는데 뭐 어쩌라는 건가? 힘을 키우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알겠습니다. 암컷 다크엘프들이 보인다면, 전부 잡아 오도록 하지요."
"칭찬해드릴 테니 머리 좀."
"네."
바로 자세를 낮춘 쥬리아의 머리를 만져준다.
ㅡ살랑살랑.
꼬리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 정찰이면 우리도 갈래."
"세리뉴?"
"지상에서 보고 공중에서도 보면 더 정확할 테니까. 라미아들이랑 같이 갈게."
"이야! 이제 거기까지 생각할 수가 있게 되었구나!"
"네가 맨날 정찰정찰 노래를 부르잖아. 그렇게 강조하면 우리도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구. 그리고 정찰하면 유리해진다는 걸 알고 있는걸."
"역시!"
잡힌 다크엘프들처럼 단순히 보러 오는 게 아니다. 체계화된 작전과 정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그럼 부대편성이랑 작전 개요 설명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십시오."
* * *
그리 준비를 마친 뒤에 정찰을 보냈다. 라미아들과 픽시들로 이루어진 정예 정찰팀이다.
"나머지는 경계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다른 녀석들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졌으니까."
"케륵! 알씀다!"
이거 리자드맨들이 오면 조심하라고 말을 전해줘야겠군. 녀석들은 나와 약속한 대로 하루에 한 명씩 전령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그 호숫가에서 잘 지내고 있는 상태. 하지만 놈들이 다크엘프를 이길 것 같지는 않다. 준비를 시켜놔야 한다.
"샤아. 마앙님. 다크엘프들 다 이길 수 있어여?"
"물론이지. 정보만 있으면 다 이길 수 있어."
정예 보병대와 강력한 기병대가 내 손안에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내 상대는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라 '전사'다. 개개인 단위의 싸움에선 전사들이 압도하지만, 집단전에선 무조건 병사가 이긴다.
전쟁에서 전사는 병사를 이길 수 없어...!
"자, 그럼! 홉고블린들이랑 샤란이! 오늘부터는 생활용품 만드는 거 중지하고 전부 군수물자만 만든다! 알겠나!"
"샤아!"
"그락. 알겠다."
더 많은 무기와 방어구가 필요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