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다크엘프 녀석들 # 4
* * *
잠깐 재정비를 할 겸 병사들을 휴식시켰다. 어차피 심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부릴아. 경계서는 애들 뺑끼치지 말라고 해라."
"케륵. 알씀다, 뫙님."
남들 쉴 때 경계 서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법. 이런 애들은 다음에 챙겨주면 된다.
그렇게 주변을 좀 돌다가 자리에 앉으니.
"뫙님."
옆에 붙은 부릴이가 날 불렀다.
"어. 왜."
"이제 다크엘프들도 지배함까?"
"물론이지."
"비리비리해 보이던데 쓸만하겠슴까? 케륵. 걔들 못 싸울 것 같슴다."
"못 싸우긴 임마. 우리가 그냥 이긴 거는 훈련된 군대라서 그런 거다. 너 다크엘프 전사랑 일대일로 맞짱 뜨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애?"
다크엘프를 훈련시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케륵케륵. 그거야 기본 아님까."
부릴이가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주 그냥 박살을 내버릴 수도 있슴다. 허리를 반으로 접어서 의자로 만들어버림다. 케루룽."
"흐흐흐, 이 새끼. 자신감 넘치는 것 좀 봐라."
"제가 누굼까. 부릴이 아님니까, 부릴이. 케륵."
익살스럽긴.
"아무튼 뫙님. 다크엘프 다음은 누구임까?"
"다른 다크엘프들이랑 라미아들."
싹 다 제압해서 내 세력 키우고 나면 인간이든 천사든 대처할 수 있을 터다. 전력을 증강시키는 게 바로 대비라는 거지.
다크엘프들은 그 초석이 될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끝났다."
바네사가 와서 끝을 알렸다.
"오오. 정보는 좀 알아냈습니까?"
"쓸만한 것을 몇 개. 일단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았으니,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역시 바네사님! 음란 여기사라는 이명은 허상이 아니었군요!"
"누, 누가 음란 여기사라는 건가!"
장난치듯 말을 하자, 바네사가 얼굴을 붉히며 성을 냈다.
"아무튼 안심입니다. 그럼 보고 좀 해주십시오."
"음란 여기사라고 한 것, 취소해라!"
"어허. 자꾸 소란 피우시면 성고문 할 겁니다."
"크읏...! 자꾸만 성적인 협박을 하는군!"
"그러니까 보고 먼저입니다."
"...알겠다."
바로 바네사가 설명을 해줬다.
"그 마을은 일종의 개척마을이라는군. 다크엘프 왕국... 쉽게 말해서 중앙이라는 곳이 있고, 그 여왕에게서 확장 명령이 떨어져, 각지에 이러한 개척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모양이다."
개척마을이라. 대충 비슷한 걸 예측하긴 했다. 그런데 여왕이 직접 명령을 내리다니?
나처럼 야심이 있는 건가.
"확장 명령이라.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곳곳에 거점을 박아두고 그걸 바탕으로 영토를 먹을 생각일까?
"거기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여왕의 명령에 따라 보내졌을 뿐이라고. 어쨌든 이런 개척마을이 더 있는 상황이다.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야지요."
하나만 제압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로군.
"마을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고, 중앙에서 지원받은 물자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순찰 겸 사냥을 하며 식량을 확보하는 중이지."
뿐만이 아니라 규모. 마을의 형태 같은 이야기 역시 들었다. 저번에 정찰대가 가져온 정보가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면 아주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지.
결론적으로 봤을 때 전쟁을 준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면서, 바네사는 보고를 마쳤다.
"이상이다."
보고가 끝남과 동시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겼다.
그것도 압승이다.
이런 상태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이길 수 있다.
"아, 그런데 하나 더 묻고 싶은데."
"무엇이지?"
"전사 다섯이 실종된 상황 아닙니까? 그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은... 물어보지 않았군."
"그렇습니까? 그럼 같이 가서 물어보죠."
"알겠다."
바로 바네사와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과연. 라미아들이 다크엘프들을 둘러싼 채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다, 당신은...!"
나무에 묶인 다크엘프가 날 보며 경악했다. 얼굴은 퉁퉁 부은 상태. 심문당하면서 좀 맞았나보다.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마을 전사 다섯이 라미아를 잡으러 갔다고 하던데."
"어, 어떻게 그걸!"
이쪽에서 온 놈들이 확실하군.
"우리에게 쳐들어왔다가 전부 전사했다."
"허억!"
그거 확인했으면 됐다.
"쥬리아님. 이제 이 포로들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냥'해도 괜찮겠습니까?"
바로 쥬리아가 뱀처럼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라미아 역시 몬스터 종족이다. 원초적인 폭력의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하시길."
"캬하아아아아아!"
라미아들과 다크엘프들은 적대 관계다. 요정족들이 인간을 보면 살의를 느끼듯, 라미아 역시 마찬가지.
"아, 안돼애애애애애!"
포로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금 행군의 시작을 알렸다.
* * *
"마왕님. 곧 도착합니다."
"다 왔군요. 전군. 이곳에서 대기."
"바로 공격하지 않는 건가요? 이곳에서 대기한다면 곧 들킬 것입니다."
"일단 마을이 어떤 상황인지는 봐야지요. 세리뉴!"
"불렀어?"
뒤에 있던 세리뉴가 총총총 걸어왔다.
"몰래 가서 마을 상황 좀 확인해줘. 목책이 얼마나 세워졌는지, 건물은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그거 본 다음에 공격 루트 결정할 거다."
"알았어! 맡겨줘!"
바로 쌩 날아가는 세리뉴.
"전군. 적 방향을 보면서 방진을 형성한다. 2열 횡대 방진 형성 실시!"
"케륵! 2열 횡대로! 방패병이 앞으로 가고 창병이 뒤에 선다!"
"케륵케륵."
그리고 그 뒤에 나머지 부하들을 배치한다. 친위대를 포함하여 나머지 군대를 적절히 배치해 고블린 방진의 양옆과 후방을 보호했다.
이제 세리뉴만 오면 공격 개시다.
"여신이시여... 부디 가엾은 다크엘프들을 굽어살펴주시길."
"음? 아이린님? 기도하시는 겁니까?"
"네. 어쩔 수 없는 전쟁이라고는 해도 죽는 건 안타까우니까요. 일단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평소엔 음란수녀인데 이런 모습 보면 진짜 수녀 같단 말이지.
"무, 물론! 마족화가 된 제 기도를 들어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이린님. 그럴 수 있지요. 마음 편하게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안타까운 건 사실이니까.
물론 안타까워도 한다.
"다, 다크엘프 문화 같은 걸 조사해두면 좋을 거에요."
그때 루비가 내게 다가와 한 마디를 올렸다. 우리 보급관이 요청하면 다 해줘야지.
"그건 루비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다크엘프들과 계속 싸워야 할 테니 제대로 조사해주세요."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 대천당에서 갈고닦은 전투실력을 보여주도록 하마!"
"주시하겠습니다, 리리엘님."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왔어!"
세리뉴가 귀환했다.
"어땠어?"
"목책을 좀 세워두긴 했는데, 드문드문 세워뒀어! 사방에서 공격해도 문제없을 거야! 마을 안엔 건물 빼면 엄폐물도 없구!"
"좋네! 쥬리아!"
"네. 마왕님."
"보병대가 정면으로 들어갈 테니 라미아들은 좌우에서 적절할 때 공격해주십시오. 공격 타이밍은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부대를 둘로 나눠 좌우로 나가 매복을 하고 있을게요. 아, 그런데 가는 도중에 적과 마주치게 된다면 어쩌지요?"
그럼 뭐.
"처리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본대 쪽으로 후퇴하면서 소리를 질러 알리십시오. 명령은 그때 다시 내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이다!
"부릴아! 아니, 잠깐. 세리뉴. 마을 정면 진입로 크기는?"
"응... 그, 일단 기둥이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어서. 진입로라기보다는 활짝 열린 상태야."
"그럼 이대로 가도 되겠군. 부릴아!"
"케륵!"
"전진해! 복명복창 실시!"
"전진! 케륵! 전진하라!"
그 말에.
"케르으으윽!"
"케륵! 케륵!"
"케르으으윽!"
고블린 보병대가 다크엘프 마을을 향해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좌우를 살핀다. 라미아들 역시 조를 나눠 좌우로 찢어진다.
"픽시들. 방패 들고 날아오른다. 실시."
ㅡ부우웅.
동시에 픽시들이 날아오른다.
제공권 장악 완료.
"세리뉴. 픽시들 3인 1조로 나누고. 다크엘프들 보이면 그대로 조준 사격해."
"알겠어!"
그렇게 전진을 실시한다.
"끄르르륵!"
"규삿삿!"
무기를 치켜든 임프들과 코볼트들 역시 후방을 단단하게 경계한다. 그런 식으로 진군을 하고 있으니.
"...!"
저쪽에서 다크엘프 몇 놈들이 우리를 알아채고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보이는 건 일단 수컷들이로군.
"여유를 가져라. 지금 와서 준비해도 늦으니까. 이대로 계속 전진!"
"케르으으으윽!"
"다크엘프 놈들! 전부 죽여!"
"끄르륵!"
픽시들 마저 살의를 터트리는 가운데, 마침내 다크엘프 개척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오."
보고를 받은 대로 마을을 만들다 만 상태다. 목책은 대충만 세워져 있고, 안쪽에 있는 건물들은 제법 잘 만들어져 있지만 공사가 더 필요하다.
아무래도 집부터 만들고 목책을 지을 생각이었나보다.
그게 너희들의 패인이다.
"허둥지둥하는군."
이곳에서도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마을이 혼란에 빠진 것이 눈에 다 들어왔다.
ㅡ후다닥!
남녀할 것 없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들고 있던 것들을 집어 던진다. 무장을 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채 뭉칠 기회도 없이 모랄빵이 날 테니까.
여자들은... 아름답군. 역시 다크엘프들이다. 얼핏 보인 것 뿐이지만 장난이 아니다.
"전군! 화살에 주의한다! 방패들어!"
ㅡ처억.
아무튼 눈먼 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 전부 주의를 하면서.
"진군 속도를 높인다! 전군! 함성을 터트려라!!!"
ㅡ케랴아아아아아아아악!
고블린들이 내 명령에 따라 드높게 함성을 지르며, 진군 속도를 높였다. 다크엘프 마을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마을 안에 있는 다크엘프들은 몇 명끼리 모인 채 칼을 빼 들고 이쪽을 겨누었지만, 그 얼굴에는 당황과 공포가 역력했다. 보자, 남성들이 앞에 나와 있고. 여성들은 뒤쪽에 있군.
우선 남성 다크엘프 전사들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여자들을 생포할 궁리를 하면 될 터. 전리품에 대한 건 이긴 다음에 생각해야 한다.
ㅡ처억.
곧 고블린 보병대가 마을 입구에 닿았고.
"전쟁을 시작하라!!!"
나는 소리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