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재회! # 7
* * *
내게 몇시간 내내 당한 탓에 기절해버린 바네사의 뿔을 잡고, 천천히 마력을 뽑아낸다.
ㅡ툭.
조심스럽게 작업을 한 탓에 뿔이 굉장히 스무스하게 떨어졌다. 이 떨어진 뿔들은 어디에 모아두도록 하자. 그렇게 두 개의 뿔을 전부 제거했다.
"흐음."
역시 단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 이마 쪽에 이런게 있다니? 햄보이, 아니. 헬보이도 아니고 상당히 거슬린다. 헬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머리숱이 많은 바네사라면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 있겠지만... 이런 흉한게 감춰져 있어서야 본인도 싫겠지.
오히려 뿔이 달려 있는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다. 역시 여자한테는 뿔이 나 있어야지.
"그럼 바네사님. 내일부터 고생해주십시오."
뿔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곤히 잠든 채인 바네사의 이마를 쓸어주며, 단면을 치료해줬다. 마나가 더 흘러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잠깐만."
문득 생각이 나서 내 이마 쪽을 만져 보았다.
"흐음."
섹스를 해대면서 마력을 회복한 탓인가. 울퉁불퉁하던 단면이 조금 매끈해진 상태였다. 이대로면 금방 다시 뿔이 자라겠군. 마력이 회복됨에 따라 조금씩 자랄 터다.
* * *
"자, 그럼. 바네사에게 박수!"
ㅡ짝짝짝!
ㅡ짝짝짝!
ㅡ짝짝짝!
연병장에 모인 마왕성의 일원들이 내 옆에 선 바네사를 향해 박수를 쳤다. 방금 바네사가 첩보작전을 펼치고 오겠다고 선언한 참이었으니까.
인간계로 침투해서 정보를 뽑아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 그 일에 자원한 바네사는 그야말로 우리 식구를 위해 한몸 바칠 각오를 한 영웅이다.
"케륵! 바네사 대단하다!"
"끄르르륵!"
"규사삿! 조심함니다!"
그 정겨운 인사에.
"이거... 조금 부끄럽군."
얼굴이 살짝 붉어진 바네사가 볼을 긁으면서 부끄러워했다. 몬스터긴 해도 다들 같은 마왕성 식구다. 저렇게 웃는 얼굴로 배웅을 해주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케르륵! 근데 뿔 어디 갔지!"
"케륵케륵! 뿔 없다!"
"아, 그건 인간으로 위장을 하기 위해 잠시 없애둔 것이다! 다시 날 테니 안심하도록!"
"케륵!"
좋군.
뭐 그렇게 모아둔 병사들에게 연설도 좀 하고 바네사 좀 추켜세워주면서 리리엘에게 조국기도문 낭독을 시켰다.
"아, 음! 오늘도 좋은 날이 밝았다! 좋은 날에는 좋은 일과를... 해야 한다! 바네사를 좋게 응원해야 한다!이상!"
역시 조국기도문은 이런 즉흥적인 맛이 있어야지.
"그럼 바네사님. 첩보작전할 준비 좀 빡시게 합시다."
"알겠다. 이미 다 생각해뒀으니 준비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좋고요. 자, 그럼! 체조하고 군가 부르고 끝내자!"
아침 점호인 만큼 할 건 해야지. 그런 식으로 체조도 하고 군가도 부르고 하면서 점호를 마쳤다.
"세리뉴랑 네크리는 남고! 이상으로 아침점호를 종료한다! 각 소대장들 지시에 따라 식사 후에 정해진 일과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두들 내무반으로 해산!"
바로 부하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고, 세리뉴와 네크리가 이쪽으로 왔다.
"네크리님. 다크엘프들 전부 씻긴 다음에 검사실에 집합시키십시오. 오늘도 할 거니까."
"흐읏...!"
"필수 일과니까 거부하면 벌 줄 겁니다."
"알겠어요! 할 테니까!"
"그럼 들어가서 준비 시키시고."
오늘도 다크엘프들은 성적 수치심을 동반하는 성고문 루틴을 해야만 한다. 네크리가 시뻘게진 얼굴이 되어선 던전으로 들어갔고, 나는 세리뉴에게 말했다.
"세리뉴."
"응."
"이번에 픽시들이 바네사를 인간들 땅까지 안내를 해줘야 해."
"으으... 인간들 땅으로 말이지."
예상한 일이라는 듯이 세리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불안해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불안감을 지우고 대답했다.
"알았어. 바네사만 혼자 보내면 위험할 테니까. 무섭긴 해도 우리 픽시들이 도와줘야겠지. 해줄게!"
오오! 이 찬란한 미소를 보라!
"바네사님! 세리뉴가 도와주겠답니다! 이 얼마나 착한 아이입니까!"
"으, 으음... 길은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무리하게 도와줄 필요는..."
"나갈 때까진 픽시들의 지원을 받도록 합시다. 그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공중지원의 유용성은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요. 그리고 뭐 정글을 나가기 전까지 외로울 일도 없을 거고요."
픽시들은 수다쟁이다. 가면서 외로울 일은 없겠지. 거기에 인간 땅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정찰이 필수다.
"알겠다."
납득한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세리뉴."
"뭘! 우리 식구를 위해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려는 거잖아! 당연히 우리도 도와줘야지!"
"아..."
세리뉴 성장했구나!
이렇게 배려심이 넘칠 줄이야!
"그러면 픽시들은 바네사랑 같이 작전 짤 준비 좀 하자고. 바네사님은 필요한 짐들 싸주세요."
"알겠다."
순조롭군.
이제 바깥으로 나간 바네사가 성녀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기만 하면 만사 OK다. 앞으로 인간계로 진출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남작령부터 점령을 해봐?
그리고 반천사파들을 이용하면서 세력을 늘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보고 있어 줘, 카르티."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큰 성과를 본다면 카르티에게 만큼은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다.
* * *
그동안 자원을 갈아 넣은바, 카르티는 어떻게든 중간계 측에 정찰기반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천사들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며, 정기적으로 마력만 주입해 준다면 별다른 문제 없이 중간계를 살필 수 있을 터다.
거기에 큘스와 접촉에 성공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블아이들을 운용하여 얻을 정보를 큘스에게 보내주기만 한다면, 큘스는 알아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할 것이다.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큘스오빠."
큘스는 단순하고 나약한 마족이 아니다. 그 속에는 명확한 목표와 야망이 가득하다. 거기에 머리까지 굴릴 줄 아는 존재.
여공작의 판단이 틀렸던 것이다. 마계에서 제대로 키웠다면 아주 쓸만한 장군으로 만들 수 있었을 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공작의 판단이 틀렸기 때문에 그런 제대로 된 마족을 중간계로 내려보낼 수가 있었다. 아주 큰 행운이다. 그렇기에 이 행운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후우!"
백작령의 상황이 좋지 않다. 중간계 측에 자원을 투자한 것은 전투력의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이 기회를 노린 마족들이 너나할 것 없이 국경을 침범하려는 상황.
이래저래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 죽일 수만 있다면...!"
카르티는 현재 중간계 첩보 쪽 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지휘할 수가 없다. 그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침략자들을 박살내야 이 짜증을 풀 수 있을 텐데. 하는 일이라고는 중간계를 염탐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큘스를 보는 건 재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참을만하다. 다음엔 어떤 정보를 전해 줘야 할까?
왕국 동쪽에 있는 거대한 미개척 지대. 그곳이 바로 큘스의 본진이다. 거기까지 이블아이를 보내는 것은 아주 어려웠지만 유용한 정보를 건네는 것에 성공했다.
큘스라면 분명 제대로 된
"카르티 장군!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뭐? 무슨?"
"아무래도 큘스 중대장이 인간세계 측으로 첩보원을 보낼 생각인 듯합니다!"
"첩보원!"
역시 바로 움직이려고 하는구나!
카르티는 바로 그쪽 화면을 틀어 확인했다. 보니까 큘스가 저번에 사로잡은 여기사를 첩보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좋아! 바로 이거지! 떠먹여 줬으면 이용할 줄 알아야 해! 큘스오빠 너무 기특하잖아!"
정보를 얻은 것을 넘어,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럼."
여신교의 성녀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미개척 지대와 인접해 있는 남작령. 그곳의 남작은 반천사파이며, 성녀는 남작령을 반천사파의 집결지로 만들고 천사들과 싸워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아니란 말이지..."
남작은 반천사파가 아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성녀가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간다면 남작에게 잡히게 될 것이다.
그 전에 큘스에게 선수를 치게 해야 한다.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큘스가 성녀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아주 큰 이득이 될 테니까.
"좋아."
이번에 큘스가 첩보원으로 보낸 여기사. 그녀를 지원하도록 하자. 이블아이를 보내 정보를 건네주고, 성녀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 * *
"세리뉴! 그리고 바네사!"
준비는 끝났다.
"이 임무는 아주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 출발!"
이제 바네사는 인간계로 갈 것이다.
과거 자신의 고향이었던 곳에 스파이로.
"세리뉴. 바네사 잘 도와주고. 인간들 최대한 조심해."
"응!"
"믿음직스러운 대답. 참 좋아."
"내가 누군데. 나 픽시들 대장이야, 대장."
가슴을 편 세리뉴가 유방을 두들겼다.
귀엽기는.
"흐흐흐, 그래."
픽시들 신용도야 뭐 100%다.
"바네사님 역시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런 어설픈 짓 따윈 하지 않는다."
"그렇겠지요. 아, 그리고 돌아오면 다시 해드릴 테니까. 예? 아시죠?"
"크읏...!"
붉어지는 얼굴.
"그리 말하면 빨리 돌아오고 싶어지지 않나!"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왔을 때의 말입니다."
"깐깐하군. 그럼 출발하지."
"네. 가세요."
그렇게 바네사와 픽시들이 연병장을 나섰다.
"갈게!"
"갔다 올게!"
"마왕아 잘 있어!"
활기차게 인사하는 픽시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다.
"그래! 너희들도 잘 갔다 와라!"
픽시들은 바네사를 일종의 국경지대까지 잘 안내를 해준 뒤에 귀환할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바네사가 혼자서 해야 하지.
나는 바네사와 픽시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괜찮을까요... 바네사. 인간들한테 걸리면 위험할 텐데."
옆에 선 아이린이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발 안 걸렸으면 좋겠네요."
"당연히 그래야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