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207화 (207/544)

〈 207화 〉 성녀! # 1

* * *

말고도 카르티는 다른 정보를 더 알려줬다.

"피켈 남작은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요 앞에 있는 남작 말이지."

"응."

내 정글과 인접해 있는 남작령의 이름이 바로 피켈이다.

카르티의 첩보에 의하면 그 피켈남작이라는 자는 천사파와 반천사파 사이에서 어디에 붙을지 간을 보며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천사파가 유리하면 천사파에 붙고. 반천사파가 유리하면 반천사파에 붙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거구만."

선택 타이밍을 잘 정한다면 그게 바로 정치력이겠으나, 그걸 못하면 박쥐 소리를 듣게 된다. 어중간한 중립은 유혈사태를 낳을 뿐이니까.

"맞아. 초반에는 천사에 대한 정보가 적어서 선택을 보류하고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천사파가 우세해지고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야. 피켈 남작은 이미 천사파에 붙기로 마음을 결정한 것 같아."

"그래서 성녀가 이쪽으로 도망을 쳤던 건가."

성녀는 피켈 남작이 반천사파쪽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쪽으로 도망을 쳤던 것이고.

뭐가 됐든 피켈 남작령은 왕국 최동단에 있는 곳이다. 여기서 반천사파를 결집시켜서 천사들에게 저항한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피켈 남작이 천사파에 붙기로 마음먹은 지금. 성녀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성녀를 사로잡아서 천사들에게 넘긴다면 말 그대로 엄청난 대우를 받게 될 터.

인간 권력자가 이런 기회를 걷어찰 리가 없다.

"지금 어떤 수를 써야 하는 건가? 카르티 생각은 어때?"

"으음... 아직 성녀도 남작도 서로에 대해서 잘 몰라. 하지만 성녀가 나타난 순간 피켈 남작은 본심을 드러낼 거야. 그리고 성녀는 다시 도주하겠지."

도주라.

"카르티 생각으로는... 기습을 당하게 될 경우 딱히 갈 곳도 없기 때문에 이쪽 정글로 도망을 칠 가능성이 높아."

"그게 제일 좋은 상황인데 말이지."

그렇게만 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다. 나는 성녀를 손에 넣고, 성녀의 추적만 생각하고 있는 남작의 추적군을 박살 낼 수도 있다.

이걸 잘 유도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야. 근데 카르티 엄청 유능하네. 어떻게 거기까지 다 알아냈어?"

"카르티는 뭐든지 다 아니까!"

"흐흐흐, 그런 건가."

"지금 개조한 이블아이들을 퍼트릴 수 있는 만큼 퍼트려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야. 우리 벨라크루 가문에서도 이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까."

이쪽에는 아직 천사들이 제대로 진출하지 않아서 비교적 쉽게 이블아이들을 운용할 수 있다고, 카르티는 덧붙였다.

"그리고 이 작업에만 수많은 마족들이 달라붙은 상태야. 다들 이블아이가 보내오는 정보를 열심히 취합해서 정리하는 중!"

"뭐 마족들이 이블아이로 다 보고 있다는 거냐?"

"응!"

벨라크루 가문 소속의 마족들이 CCTV 감시병마냥 중간계를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정말 소름 끼치는군.

마족들이 중간계를 염탐하고 있음에도 인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과연 인간들이 천사나 마족같은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어렵겠지, 아마.

"근데 그런 상태라면 이거 곧 마계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겠구만."

자원이나 기술 같은 걸 지원받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병력? 병력은 내가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 마족 여성들로만 보내달라고 하면 좀... 카르티가 이상하게 보겠지?

아무리 그래도 카르티한테 여자를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조금 그렇다. 명색이 여동생 비슷한 것인데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알려줄 수 있을 리가.

그래도 필요하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해야겠다.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 최대한 노력 중이야. 그러니까 큘스오빠도 중간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힘을 써줘."

"언제나 그러고 있다. 걱정 마라."

이미 내 목표가 그거거든.

"아, 근데. 카르티."

"응?"

"생각해보니까 어떻게 중간계 인간 언어를 익혔네? 어려웠을 텐데."

보아하니 중간계 언어를 잘 익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정보 수집이 가능한 거였겠지.

"그거야 큘스오빠가."

"내가?"

"아니지! 어떻게든 가능해! 카르티가 모르는 건 없어!"

"그래, 그래. 카르티 똑똑하다!"

아무튼 카르티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면서 궁금한 것을 더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미 내 위치도 알고 있고. 연락을 잘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해진 모양.

"천사들. 얼마나 강해?"

"그걸 물어볼 줄 알았어. 중요한 일이니까. 하지만 안심해. 중간계로 떨어진 천사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까."

"강하지 않다고?"

"강한 천사가 왔다고는 해도 그 과정에서 힘을 일부 잃게 되거든. 중간계에서 다시 성장을 해야만 해. 그건 오래 걸리겠지. 그리고 천사들도 마음껏 넘어올 수는 없어. 천천히 병력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야."

"그나마 낫구만."

천사들은 약화가 되며, 한꺼번에 우루루 몰려올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비벼볼 수 있다.

"좋아, 카르티! 앞으로도 이렇게 정보 좀 가져다 줘! 아주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정보만 있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응! 그렇게 할게!"

이렇게 정보만 잘 준다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다.

잠깐.

이렇게 카르티가 첩보를 해주면 바네사를 보낼 필요가...? 아, 아니지. 카르티는 지금 현지 정보원인 바네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게 있고 없고는 크지.

현지 정보원은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블아이의 유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카르티와 이야기를 했고, 성녀를 탈취할 작전을 세웠다.

* * *

도주 중인 여신교의 성녀, 세실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도주를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신성력이 넘쳐나는 몸이지만 육체적인 피로가 전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정신적인 피로 역시 늘어만 가는 중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병력을 잃었다.

근위대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며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죽어가면서까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로부터 여신교와 세상을 구원할 것은 세실리아 성녀뿐이라며 굳게 믿었다.

세실리아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반드시 그 믿음에 부응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괜찮나요? 성녀님."

성녀의 근위기사, 레아.

그녀 역시 성녀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 힘겹게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자신이 더 유능하고 강했다면 성녀님이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자책감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너야말로 괜찮느냐."

"저는... 괜찮아요."

"거짓말을. 피곤한 눈이지 않느냐."

세실리아 성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선한 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아름다우신 분.'

도주하는 몸이지만 성녀의 몸은 신성력으로 보호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찬란한 금발은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푸른빛 눈동자는 보석 같았다.

심지어 날카롭고 권위로운 눈매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흔들릴 정도다... 거기에 여성적인 매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여체는­

'무슨 생각을.'

거기까지 생각한 레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성녀님. 지금이라도 백작령 쪽으로 가는 편이..."

"그럴 순 없다."

단호한 대답.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백작급 이상의 영주에게 몸을 의탁해봐야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지 않느냐."

"그래도."

"결국엔 이용을 당할 뿐이다. 천계의 귀신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여신교는 몰락하고 말겠지."

죽어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덧붙이는 성녀.

"여신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선 내가 중심이 될 필요가 있어."

천사들의 등장으로 여신교는 분열되었고, 전쟁의 중심이 되었다. 천사들에게 넘어가 세뇌된 여신교의 세력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임했으니까.

여신교는 반드시 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성녀가 주체성을 잃는다면, 전후 여신교는 반드시 몰락할 것이 분명.

성녀는 야심이 많은 여자였다.

여신교의 몰락 따위, 두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피켈 남작인 건가요."

"그 정도가 적당하겠지."

성녀는 피켈 남작을 이용할 생각이다. 피켈 남작령은 왕국 끄트머리에 있다. 남작을 휘어잡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반천사파의 동지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다.

성녀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피켈 남작이 반천사파라면 가능하겠지만... 천사파라면 오히려 위험할 거에요, 성녀님."

마지막으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왕국 최동단 쪽 귀족들은 천사들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성녀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니라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미개척 지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쪽을 이용해서 도주한다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터다."

"..."

"레아. 이 한 몸이 살아남는 것이라면 간단하다. 어딘가에 몸을 의탁하고, 그자의 부하로서 굴려지만 그만이니까."

차라리 그랬으면.

성녀는 강인하게 말했지만 레아의 생각은 나약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여신교의 부흥이다. 죽어간 자들을 생각하거라. 멈출 수가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잡고 휘두를 수 있는 귀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세력을 모아 천계의 귀신 놈들을 몰아낼 것이다. 피켈 남작이 안 된다면... 그래. 사이엘 남작령 쪽으로 가보도록 하지."

세력을 모으고 천계의 귀신들을 단죄한다.

그리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고 몰락한 여신교를 부흥시키리라.

"분부대로 할게요, 성녀님."

레아는 얌전히 대답했다.

성녀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

"예정대로에요. 피켈 남작령 쪽으로 가겠어요."

"알겠습니다! 근위대장님!"

명령을 하면서도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피켈 남작이 천사들에게 붙었다면 다시금 위험한 도주극이 시작될 것이다.

* * *

"큘스오빠아아아아아앜!!!"

"어?! 카르티!"

다시 찾아온 카르티의 이블아이가 절규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이거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갑자기 카르티가 이런 반응을!

"무슨 일­"

"성녀가 도주 중이야! 이쪽으로!"

"그렇게 된 건가!"

결국 성녀가 이쪽으로 도주를 하게 되었다!

"좋아!"

기다리고 있던 바다!

"전군 전투집합!!!"

즉시 전투집합 명령을 내린다. 카르티에게서 정보를 입수한 뒤로 나는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방비를 해놓은 상태였으니까!

좋아!

성녀를 잡아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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