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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209화 (209/544)

〈 209화 〉 성녀! # 3

* * *

진형을 이룬 채 보낸 픽시들을 기다린다. 전투에서 통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대였으면 96k로 뭐 어디어디 진지투입 완료했네뭐네 하는걸 알릴 수 있지만 여긴 아니야.

전령인 픽시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임프들 후방에 도착했어! 아직 안 들킨 상태야! 명령만 기다리고 있겠대!"

훈련된 픽시는 아주 훌륭한 전령이다. 커다란 젖을 덜렁이며 날아온 픽시가 아주 또박또박한 어조로 보고했다.

"잘했다, 픽시야. 후방으로 가서 날개 좀 쉬고 있어."

"응. 아... 그거 기분 좋아."

포상의 의미로 젖을 조금 주물러주자 픽시가 금세 기분 좋아하면서 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더 받고 싶은데..."

"전쟁 끝나면 해줄게."

그렇게 픽시를 보내니.

ㅡ부우웅!

"라미아들 자리 잡았어! 공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겠대!"

라미아 측에 붙여 놨던 픽시도 귀환해 보고했다. 역시 라미아들이로군. 적당히 명령만 내려도 알아서 전투 위치를 잡는다. 이래서 실무자들이 능력이 있어야 한다니까.

"좋아. 수고했다, 픽시야!"

"응!"

그런 식으로 픽시들의 보고를 취합했다.

"횃불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저쪽도 이쪽을 알아챌 거야!"

부대 배치는 완료했고, 횃불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픽시들의 보고를 듣자하니 현재 적들에게선 방어전을 준비하는 기색 따윈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자기들이 공격당할 것이라곤 꿈에도 모르고 있는 상태.

"이블아이 소환."

ㅡ화르륵!

나는 이블아이를 소환해서 공중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성녀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횃불을 든 인간 병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고함을 치고 있는 중이다.

슬슬 가까워졌군.

"부릴아!!!"

바로 이블아이를 역소환하고 부릴이를 불렀다.

"케륵! 명령을 내려주십쇼! 뫙님!"

엘리트 군인 그 자체인 부릴이!

"적들이 가까워지고 있다! 가까워진 적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꼬치로 꿰어버림다! 케륵!"

"바로 그거다! 보병대! 전진하라!!!"

"케르르륵! 보병대 전진!!!"

ㅡ척척척.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2열 횡대를 만든 고블린 방진이 진격한다. 방패를 앞세우고, 창으로 무장한 무적의 병사들!

중간중간 나무나 바위가 돌출된 울퉁불퉁한 지형이 있긴 하지만, 나의 보병대는 그럴 때마다 능숙하게 간격을 벌렸다 줄이면서 지형을 극복했다.

"규삿삿! 좌우 똑바로 살펴라!"

"규사아아앗!"

"규삿삿!"

그런 고블린 방진의 좌측으로는 코볼트 창병들이 위치해 있고, 저 우측에는 리자드맨 돌격병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슈와아악...! 인간들로 포식이다!"

"슈라라라라락!"

"슈라악!"

그때 날아오는 세리뉴.

"야! 이제 엄청 가까워졌어! 1분 안에 우리 위치가 노출될 거야!"

"그럼 시작하지."

저기에 있는 횃불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내 눈에 인간병사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인간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케르으윽...!"

"케륵!"

고블린들이 투지를 터트리기 시작한 순간!

"보병대!!! 진형을 유지하면서, 단거리 돌격 실시!!!"

그 투지에 부응하여 명령을 내렸다!

"케르으으윽! 단거리 돌겨어어억!"

ㅡ케랴아아아아아악!

동시에 고블린들이 속도를 맞춰 일제히 단거리 돌격을 실시했다. 고블린 보병대가 인간들의 횃불 범위 안으로 들어간 즉시!

"어, 어어?"

"어어어어!"

"저, 적이다! 적이다아아앗!"

혼란에 빠진 인간들이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적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정면에서. 칼을 들고 있긴 하지만 대응할 수 있을까?

ㅡ푸욱!

ㅡ푸우우욱!

물론 불가능이다.

"케랴아아악! 전부 죽여라!"

"케륵! 케륵! 죽인다!"

"죽어라! 케르으으윽!"

광란에 빠진 고블린들이 다가오고 있는 인간들을 창으로 찔렀다. 지금부터 개전이다!

"픽시들! 플라잉 큘스 온! 복창하라!"

"플라잉 큘스 온!"

"플라잉 큘스 온!"

"플라잉 큘스 온!"

마치 마법소녀들처럼 동시에 소리친 픽시들이 내게 달라붙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한번 하늘을 날게 되었다.

ㅡ하압.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전장을 주시하면서!

"전군!!!!!!!!! 공격하라!!!!!!!!!!!!!"

마족의 언어로 아주 크게 소리쳤다!!!

ㅡ화아아아악!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것으로 배치해뒀던 임프들과 라미아들이 움직일 것이다!

"착지해!"

"착지하래!"

바로 지상으로 내려왔다.

"케랴아아아악!"

"케르으으윽!"

"으하아아아아아악!"

이미 정면은 아비규환이었다.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도 성녀를 수색하기 위해 좀 넓게 퍼진 수색진형을 이루고 있던 상태로 기습을 당한 것이다.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진형! 진형을 만들어라! 적군이다!"

"고, 고블린?! 고블린이다!"

"아니! 오크다!"

"오크부족이다! 오크다아아앗!"

인간들 사이에서 아무 의미 없는 고함소리가 오간다. 내 시야에 들어온 인간들은 저항 따윈 하지 못했고, 그저 창에 찔리거나 뒤쪽으로 도망치기 급급했다...!

나의 고블린 보병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잘하고 있다! 아주 잘하고 있어!"

인간들을 마구 찌르고 있어!

"케랴아아악! 전부 죽이고 짓밟는다! 전우와 떨어지지 마라!"

부릴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마왕아! 저 뒤에 임프들 불 붙었어!"

"오냐!"

픽시들의 보고가 내 주변을 뒤덮는다. 그렇게 보병대가 진군하며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던 그 순간.

ㅡ쿠구구구구구구궁!

ㅡ쿠구구구구궁!

저쪽에서 라미아들의 돌격 소리가 들려온다.

"캬하아아아아아악!"

"캬하아아악!"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라미아들의 기합소리.

ㅡ퍼억!

ㅡ쿠구구구궁!

ㅡ콰앙!

그리고 들려오는 파육음.

"으하아아아아악!"

"배, 배애애애앰!"

"괴물이다! 괴물이야아아아아!"

절규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참으로 감미롭구나! 라미아 기병대가 전장을 휩쓸면서 지나간다!

"지금이다! 리자드맨 소대! 돌격하라!!!"

"슈와아아아아악!"

"닥치는 대로 죽여!!!"

이러려고 편성해 놓은 리자드맨들이다. 라미아들이 휩쓴 전장을 돌격대가 박살낼 것이다.

심지어 아직 내 뒤에 있는 친위대들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전부 쓸어버려!!!"

후방은 임프들이 교란중이다. 불이 난 곳에서 섣불리 진형을 만들 수는 없을 터. 불이 나지 않은 쪽으로 가면 어찌어찌 냉정하게 상황판단을 하여 모여든 숙련병 녀석들을 도륙할 수 있을 것이다!

* * *

기사, 칸토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비명소리 같은 게 들려오더니 돌연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온 세상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악마 같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자 지휘계통이 박살나고 병사들이 무질서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악!"

"살려줘!"

"멈춰라!"

칸토는 도망치는 병사들을 잡고 넘어뜨리거나 뺨을 때리면서 진정을 시켜보았지만, 패닉에 빠진 병사들은 당최 말을 들어 처먹질 않았다.

"이쪽으로 와라! 도망치지 말고 붙으란 말이다! 너!"

"아아아악!"

"괴물이야! 괴물들이다!"

"제길...!"

부대가 완전히 와해 되었다. 이제와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 칸토는 차라리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이라도 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칼을 잡아 든 채 전방 쪽으로 향했다.

"저, 저건!"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몬스터!"

하지만.

"대체!"

몬스터치곤 이상하다.

생긴 건 고블린이나 오크와 비슷한데 녀석들은 기이하게도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방패에 창을 들고 보병방진을 이룬 채 진격을 해오는 중이었다.

인간 병사들의 시체를 짓밟고 전진하면서, 창으로 찔러댄다. 그야말로 훈련된 군대 그 자체다.

"몬스터가 군대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살면서 저런 건 듣도보도 못했다. 칸토는 뒷걸음질을 쳤다. 도주가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을 하면서. 기사라고 해도 저런 보병방진을 단신으로 뚫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

칸토는 아예 몸을 돌리고 달렸다.

"마녀가 진짜로 있었나 보다!"

남작은 한밤중에 아주 갑작스럽게 마녀를 추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솔직히 마녀라니 이 새끼가 노망이라도 난 건가 싶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확실해졌다.

분명 도주중인 마녀가 사악한 요술을 부려 지옥의 군대를 소환한 것이리라!

그거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준비된 군대다! 심지어 수색진형을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야간에 기습을 당했으니 전투 수행은 불가능!

살릴 수 있는 병사들만 살려서 후퇴하는 수밖에.

그런데.

ㅡ쿠구구구구구궁!

ㅡ쿠구구구궁!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병? 하지만 이곳은..."

마치 기병이 돌진 해오는 듯한 소리.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칸토는 눈앞에 멍청하게 서 있는 병사를 살리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거기 너! 뭘 멍청하게 서 있는 건가! 정신 차려! 날 따라와라!"

"기사님... 저거."

"저거?"

병사가 황망한 얼굴로 저쪽을 가리켰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다. 무언가 여자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는 환각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여자?"

진짜 여자라고?

헐벗은 미녀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ㅡ쿠구구궁!

그래, 계속 들려오는 그 소음을 내면서.

그녀가 창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순간.

ㅡ퍼어어어억!

"꿔어어억!"

앞에 있던 병사가 내장을 흩뿌리면서 하늘을 날았다.

ㅡ사라라락!

그리고 보이는 커다란 뱀.

"배, 뱀! 거대 뱀! 뱀이다아아아아앗!"

칸토는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질주했다. 뱀의 하반신을 지닌 여자들이 마치 기병처럼 무서운 속도로 돌진을 해오면서 병사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크하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엇!"

대열을 갖추려고 하던 병사들 역시 뱀여자들에게 당해 박살이 났다.

"슈와아아아아악!"

"쓔와아아악!!"

그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리자드맨들이 나무방패를 앞세운 채 돌도끼를 휘둘러대며 도망치는 병사들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도망쳐라! 도망쳐!"

"이쪽으로 와!"

"꺄아아아아아아악!"

칸토는 패닉에 빠진 와중에도 기사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살려, 도망칠 방향을 설정하고 질주했다. 이럴 때는 무조건 후방 쪽으로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ㅡ화르르르륵.

부대 후방에서 보랏빛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지옥의 그것같은.

"지옥이다! 여긴 지옥이야!!"

한 병사의 외침.

"마녀가 지옥을 소환했다!!!"

"사람살려어어어어어!"

그리고 다른 병사들의 외침.

"지옥의 악귀들이 나타났다아아앗!!!"

칸토 역시 거기에 비명을 보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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