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남작령 따먹기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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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감이 들다 못해 긴장감이 느껴진다. 솔직히 여공작 얼굴을 보는 건 좀 꺼려진다고. 아무튼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선 잘 넘어가야겠지.
"그럼 큘스오빠! 이야기 시작할게!"
"그래. 머릿속에 싹 다 박아둘 준비 완료했다. 시작해줘."
"응!"
그렇게 카르티가 설명을 시작했다.
"남작은 아직도 병력 복구를 하지 못한 상태야. 인력은 물론이고 장비까지 모조리 다 잃어버린 상황이니까. 어디선가 돈이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시간이 지나도 복구하기 힘들겠지."
이미 망한 영지라는 것이다.
하기야 내 창고에 쌓인 물자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다. 갑옷이며 장비까지. 어마어마하지. 그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남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세력들이 있어. 천사파와 반천사파. 둘 모두야. 이미 천사들이 남작령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다 펴진 상태잖아? 양쪽 다 침략의 명분이 있어."
"흠."
남작은 천사를 끌어들여 재빠르게 성과를 내고 천사들에게서 한자리를 얻을 생각이었겠지만, 그 야망은 내게 분쇄되었다.
이제 천사를 잃은 대가로 대천당의 식민지가 될 수도 있으며, 천사들에게 반감을 지닌 귀족들에게 노려질 가능성이 높다.
아니. 반드시 그러겠지.
내가 인간 군주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침략당하지 않은 이유는, 천사파와 반천사파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야. 상대적으로 변방에 속하는 남작령 쪽으로 병력을 보낼 여유는 둘 다 없으니까."
"지리적 이점이로군."
하긴 뭐 그런 지리적 이점이 있으니까 남작도 계산기를 굴려보고 행동했던 것이겠지. 중요한 건 내 존재를 잘 몰랐다는 거다. 나만 없었으면 성녀도 잘 납치해서 갖다 바쳤겠지.
남작이 성녀를 '보호'하고 있다면 변방이라고 해도 천사들이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고 했을 터.
"흐흐흐."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중대한 장점이다. 이제는 뭐... 싫어도 노출될 수밖에 없겠지만, 깨달았다. 적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언제나 주의하도록 하자.
"아무튼 큘스오빠! 결론을 말할게! 당장 침투해도 좋아!"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지금의 큘스오빠라면 쉽게 남작을 제압할 수 있을 거야!"
"크크크! 그래! 카르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기본은 하수도를 이용한 야간 침투야. 이걸 위해 하수도 쪽에 이블아이를 많이 풀어놨어. 충분히 침투할 수 있을 거야!"
하수도를 이용한 야간침투라.
말은 쉽지만 훈련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근데 뭐 걱정 없다. 우리 무적마왕군의 별명은 베트콩이니까. 코볼트들이 판 쥐굴을 이용한 기동훈련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병사들 사기도 떨어져 있고, 수도 많지 않아! 그리고 설마 진짜로 남작성이 공격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는 중이지! 카르티가 알려준 루트를 이용해서 침투한다면 남작을 포획할 수 있을 거야!"
"좋아. 그 루트는 카르티만 믿도록 하마. 그럼 언제?"
"진군 날짜를 알려주면 그날 다시 이블아이를 보낼게. 그때부터 길 안내를 해줄 테니까, 카르티만 믿고 따라오면 돼!"
"좋아! 그렇게 할게!"
일단 계획 자체는 심플하다.
카르티의 서포트를 받으면서 하수도를 이용해 병력을 침투시키고, 속전속결로 남작을 제압. 성을 장악한다는 소리다.
위험한 작전이지만 병력이 없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다. 근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카르티가 알려준 정보의 정확도인데, 뭐 여기선 믿어도 될 것이다.
카르티가 날 숙청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카르티가 서포트를 해준다면야 어려울 것도 없지. 반드시 남작령을 차지하도록 할게."
"큘스오빠만 믿어!"
아주 신이 난 얼굴로 대답하는 카르티.
"애초에 남작은 병력을 대부분을 잃었어. 설령 큘스오빠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군주가 쉽게 먹어 치울 수 있는 상태지. 그런 상태야. 큘스오빠가 당연히 이겨."
방심은 좋지 않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봤을 때 이번 전투는 내 승리로 돌아갈 것이다. 원래 전투작전을 할 때는 하기 전에 견적을 짜고 실행하는 것이다. 될 가능성이 높으면 한다. 그뿐이지.
일단 오늘부터 침투훈련 좀 집중적으로 하다가 진군계획을 세우고 출전하면 될 듯.
"아. 근데 카르티.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뭐야?"
"라미아도 하수도를 이용할 수 있을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충분해. 성 바깥으로 연결된 하수도를 이용해 남작령 성벽 안으로 다 침투할 수 있어."
"근데 너무 보안이 허술한 것 같지 않냐?"
"당연히 하수도를 지키는 경계병력이 있는 상태야. 하지만 큘스오빠. 속전속결로 들어간다면 걱정할 건 없어."
말고도 카르티는 하수도의 크기와 생김새 같은 것들을 말로 설명해줬다. 그것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본다. 미로 같은 하수도를 이용해 야간에 침투하여 지상으로 올라간다라... 그와 동시에 전투 시작이다.
경계병들을 빠르게 처치해야 한다.
"경계병 위치도 대략적으로 파악해 뒀어. 큘스오빠가 자랑하는 픽시를 이용한다면 망루 위에 있는 경계병도 처치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
역시 픽시가 씹사기라니까.
뭐 그런 식으로 전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 큘스오빠! 그럼 이야기는 이쯤하고!"
카르티가 그 소식을 알렸다.
"이제 오시는 건가?"
"응! 지금 알림이 왔어!"
드디어 여공작과 재회를 하게 됐군.
"이야기 잘해! 카르티는 가볼 테니까!"
"그래. 카르티 몸조리 잘하고."
그리 인사를 한 카르티가 떠났다. 동시에 화면이 시꺼메진다. 채널을 바꾸는 걸까? 이거 긴장되기 시작하는데.
ㅡ드륵.
나도 의자를 다시 정렬하고 머리를 정리하면서 똑바로 앉았다. 여공작. 지금은 날 좋게 생각하고 있는 여자다. 안 좋게 보일 이유 따윈 없다. 착한 아들을 연기해볼까?
"후우."
긴장 풀자.
그냥 잘 대하면 된다.
ㅡ파칫.
그리고 화면이 번쩍이더니.
ㅡ파앗.
화면이 떴다.
"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마계의 여공작.
케라시스다.
"아들? 잘 지냈니?"
"...!"
그런데 여공작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소름이 돋기 시작하면서 풀렸던 긴장이 빡 솟아오른다!
세상에!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역시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고위 마족 특유의 요사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
그런 여성이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생글생글 웃으면서 날 보고 있었다. 영상통화를 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압도가 될 것만 같아...!
"아... 어머니. 예.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후후후, 그때랑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구나? 그리고 더 강해졌고. 몸집도 커졌어. 사랑하는 아들이 이렇게나 잘 자라다니... 엄마는 정말 기뻐. 큘스가 옆에 있었다면 안아줬을 텐데."
이 여자가 잘도 뻔뻔하게 이런 말을.
"..."
아무튼 분위기 자체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랑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는 어딘지 모르게 날 도구로 여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듯한 느낌이다.
역시 성과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군.
"엄마로서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잘 성장해주다니... 그동안 보인 활약에 대한 보고는 전부 들었어. 미안해? 이 엄마가 아들의 재능을 몰라보고 그런 심한 짓을 하고 말았네. 용서해 주겠니?"
아 시발.
순간 용서할 뻔했네.
"흡!"
바로 정신을 차렸다. 마족 특유의 요사스러운 아름다움과 분위기. 매력. 매혹적인 자태.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남성을 홀려버리는 괴물 같은 여자.
이런 걸 보고 팜므마탈이라고 하는 거냐? 역시 마계의 여공작이다.
중간계에서 본 여자들은 전부 내가 통제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여공작은 아니다... 빈틈을 보이면 바로 날 삼켜버릴 수 있는 여자.
물론.
지금의 나는 중간계의 수많은 미녀들을 취하면서 내성을 기른 상태다. 이런 매력을 뿜는 존재라고 해도 쉽게 매혹되진 않아... 그럼에도 저런 여자가 날 칭찬해준다고 생각하니, 마치 '인정을 받는' 듯한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돼!
여기서 넘어갈 수는 없어!
"아니 뭐 용서를 하겠습니까.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용서할 일조차도 아닙니다."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준비해왔던 멘트를 쳤다. 뭐가 됐든 여공작은 날 좋게 보는 중이고, 화해를 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여기서 이걸 안 받아주면 카르티의 서포트를 받는데 지장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러니 여기선 화해하는 척 허리를 굽혀 줘야지.
착한 아들을 연기해야 한다.
"그래도 뭐, 이렇게 카르티를 보내서 절 지원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거면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
그리 말하자.
"아아..."
돌연 여공작이 눈물을 흘렸다.
"어?"
"기뻐. 사실 용서받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들. 고마워? 이 모자란 엄마를 용서해줘서."
그리 말한 여공작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당황스러운 태도다.
"그러니 앞으로는 엄마 쪽에서도 보다 열심히 아들을 도와주도록 할게. 아들. 아들은 정말 대단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중이야. 먼 옛날 이후로 그 어떤 마족도 중간계에서 이렇게까지 영향력을 펼쳤던 적이 없어."
빈말이 아니라면 나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쉬울 건 저쪽인가?
"마계로 돌아온다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게."
돌아간다면 말이지.
물론 돌아갈 생각은 없다.
"흐흐흐,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아. 그런데 어머니."
"아들? 엄마를 조금 더 편하게 대해주지 않을래?"
"흠... 으, 으음. 네. 그럴게요. 그럼 엄마. 나 돌아가면 내 부하들도 잘 대해줄 거야?"
"아들이 원한다면, 물론이야."
그런 식으로 빈말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지에 대한 것들을 논의하기 위해 생각을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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