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남작령 따먹기 # 13
* * *
"침투! 침투! 침투해라!"
"침투케륵!"
"케륵케륵!"
ㅡ투두두두!
내 명령에 따라 고블린들이 베트콩 땅굴을 신속하게 주파한다. 좋다. 좁은 길이지만 내 고블린들은 아주 능숙하게 기동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무장을 한 상태로 말이다.
물론 창으로 무장한 상태는 아니다. 지금 고블린들은 노획한 방패와 검으로 무장했다. 거기에 갑옷이랑 살짝 개조한 투구까지 착용한 상태지.
그야말로 완전무장을 한 것이다.
"케륵, 케륵. 산책 수준입니다."
"케르륵. 공감공감."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케륵."
역시 마족화가 된 이후로 체력이 많이 증가했단 말이지.
"근데 난 존나 힘들어."
굴이 좀 작아서 허리를 굽힌 채로 이동하고 있는 탓에 오히려 고블린들보다 내가 더 힘들었다.
"케루룽. 뫙님이 힘들어 하시면 안됨다. 케룽케룽."
"흐흐흐, 이 새끼가 형을 뭘로 보고. 내가 퍼지겠냐?"
"물론 아님다 케룽!"
퍼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아무튼.
"가슴 때문에 너무 불편해앳...!"
"젖가슴이 낄 것 같아!"
"여기 힘들어!"
픽시들 역시 고블린들 틈 사이에 섞여서 기동을 하는 중이다. 이번 남작성 침투 작전은 고블린들과 픽시들이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일단은 해보자.
"뫙님. 출구임다."
드디어 출구로군.
"좋아. 전원 정지. 완전 침묵 상태를 유지한다."
"침묵케륵."
릴레이식으로 침묵 명령이 전달된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침투 훈련 시작이다.
"자, 다들. 여기는 지금 인간들 하수도의 입구 부분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몰래 쳐들어왔다는 설정이야. 그리고 쳐들어왔으면 뭐다? 공격을 해야 한다. 이제 신속하게 지상으로 올라간 뒤에 근처에 있는 병력을 제압하면 돼. 뭐 일단 처음이니까 그냥 해보자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본다. 이곳은 지금 하수도고, 위쪽으로 수직 통로가 나 있다. 통로에는 사다리가 박혀 있다. 설명에 의하면 벽면에 사다리가 박혀 있어서 내가 따로 챙겨갈 필요는 없다.
"그럼 투구쓰고 방패를 든 고블린들. 앞으로."
그 역할은 고블린 1소대가 맡았다.
"너희들은 신속하게 올라가서 입구 주변에 원형진을 만들고 대기한다. 알겠냐?"
"케륵!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
"케륵!"
ㅡ척척척!
고블린들이 내 명령에 따라 통로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긴 남작성이 아니라 내 던전의 땅굴이다. 사다리가 없는 디테일은 신경 쓰지 말자.
아무튼 그렇게 자세를 낮춘 고블린들이 기어가듯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세리뉴! 픽시들 전원 날아올라라! 쭉 올라가서 공중에 자리 잡은 뒤에 경계병들 위치 파악하고 즉시 참살하는 거다!"
"알겠어! 가자!"
"응!"
ㅡ부우웅!
픽시들이 날개짓을 함과 동시에 땅굴 안이 먼지로 가득 차게 되었다!
"케륵! 케륵!"
기침을 하는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픽시들. 실전이라면 픽시들이 수직으로 날아오르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고블린들을 지나칠 것이다.
"좋아! 다들 쭉쭉 전진!"
"케륵!"
그렇게.
"후우!"
지상으로 나왔다.
ㅡ처억.
고블린 1소대원들이 하수도 입구 주변에 원형진을 쳐 후속 부대를 보호하고 있었고, 픽시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가상의 망루를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ㅡ우루루루!
땅굴 안에서 후속 부대원들이 우루루 튀어나온다. 그것을 보면서 원형진을 적절한 위치로 기동시키고, 지상으로 나온 부대를 운용한다.
"좋아! 1단계는 완료다! 바네사님! 빨리 나오십시오!"
"흐음. 일단 지상까지 올라온 것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군."
바네사가 땅굴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역시 그렇지요? 여기까지는 제가 생각해도 완벽한 것 같습니다."
부대를 상륙시킴과 동시에 픽시들을 보내 경계병을 무력화시키는 작전이다.
여기까진 좋다.
"하지만 이제 외성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외성 공략의 가장 큰 문제인 성문을 하수도를 이용해 극복했지만, 남작을 포획하려면 내성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바네사님. 이건 바네사님이 전문일 텐데."
"...하아."
내 말에 바네사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바네사는 남작에게 고용되었던 몸이다. 당연히 남작성 안에 들어가 본 경험이 다수 있으며, 어디로 가야 성문을 열 수 있는지, 성의 방비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거 참. 남작성에서 근무한 경력을 이렇게 써먹을 줄은. 아무리 네게 충성을 바쳤다지만, 옛 고용주의 뒤통수를 치는 건 썩 유쾌하지가 않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바네사님. 이젠 해야지요."
"뭐어... 5섹스 정도라면..."
"이젠 섹스가 재화가 된 겁니까?"
"시끄럽다! 내 요구사항은 그거다!"
"예, 예. 알겠습니다. 질내사정 1회에 1번으로 치는 거 맞습니까?"
"물론이다!"
바네사가 당당하게 대답했고, 나는 설명을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야간엔 모든 문을 닫아둔다. 그리고 저층에는 창문이 없지. 픽시들이라면 고층의 창문으로 침투할 수 있겠지만."
"픽시들끼리 성 내부로 침투해서 싸우는 건 무리지요."
절대로 그런 위험한 곳에 혼자 던져놓지 않는다. 얘네들은 원딜이지 결코 전사가 아니다. 성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가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만나면 그대로 사망 확정이다.
"그러니 결국 이쪽에서 내성의 성문을 열어야 하는데... 사실 이게 좀 문제지. 내성의 문은 안에서 열고 닫으니까."
"그렇지요."
"따라서, 우리는 내성의 문을 부숴야 한다. 그것만 부순다면 딱히 문제 될 게 없다. 내부가 그렇게 대단한 구조는 아니니까."
"부순다고요?"
"그렇다. 리리엘? 이리 와라!"
바네사가 호통을 치듯 부르자.
"드디어 내 차례인가."
뒤에 자기 소대원들이랑 서 있던 리리엘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리리엘님?"
"일단 이쪽에서도 시험을 해 보았다. 우리들이 지닌 화력이라면, 충분히 성문을 부술 수 있지."
"아니, 바네사님? 그게 진짜입니까? 보고를 못 들었는데?"
"지금 보면 된다. 리리엘. 천사들과 함께 저쪽 벽면에 화력투사 실시."
"알겠다. 다들 이리 와라."
"큿...!"
리리엘이 당당하게 걸어갔고, 천사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리리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흑염포 장전!"
리리엘의 구령에 따라!
ㅡ화르르륵!
ㅡ화르르륵!
ㅡ화르르륵!
천사들이 손에 힘을 집중시키기 시작한다! 저번처럼 찬란한 광채를 지닌 힘이 아니다! 나에 의해 마족화가 된 탓에 시꺼메진 힘!
그것들이.
"발사!"
ㅡ쿠구구구궁!
일제히 발사된다!
그렇게 발사된 흑염포가 절벽을 강타한 순간.
ㅡ콰아아아아앙!
큰 폭발이 발생하면서 벽면이 터져나갔다.
"아니! 이거 생각보다 강한데요!"
"하하하! 이것이 바로 우리 타락천사들의 힘이다! 생각보다 파괴력이 강하지 않나!"
팔짱을 낀 리리엘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소리쳤다!
"와! 언제 이렇게 강해졌대!"
"나름대로 고민을 해 보았다, 마왕. 타락천사가 된 나는... 픽시보다 느리다. 공중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아. 그래서 파괴력 쪽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오!"
"속도로는 픽시들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파괴력이라면 더 강하다!"
"멋집니다, 리리엘님!!! 그런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기특해서 참을 수가 없다!
"아읏!"
바로 리리엘의 엉덩이를 쓰다듬어줬다!
일단 내 구상으로는 천사가 아니라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우리들이 화력을 투사하여 성문을 부수거나, 바네사와 레아를 포함한 다크엘프와 임프 침투조를 창문으로 침투시켜서 정문을 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천사들이 보다 쉬운 방안을 제시해줬다.
"잘했습니다, 리리엘! 타락천사가 이렇게 강한 존재인 줄 몰랐군요!"
비행 능력은 픽시들의 하위호환에 투사체 속도 역시 픽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강력한 한발을 지니고 있었구나!
"후, 후후후! 이제야 내 진가를 알아보았군!"
"리리엘님도 나름 고참 라인이니까요. 기특합니다. 진짜."
"그렇다면 상으로..."
"알겠습니다. 요 이쁜 것."
뭐 그렇게 천사들을 칭찬해주면서 훈련을 계속했다. 합을 더 맞춰보고. 조금 더 개선된 방안을 실행해보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계속 이 훈련을 반복하도록 하자. 내일 또 카르티가 이블아이를 보내 줄 것이다.
남작성의 구조를 자세히 아는 카르티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훈련 또 훈련이다.
* * *
마침내.
작전 결행일이 되었다.
"무적 큘스 마왕군의... 제군들이여."
나의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는 인간들의 땅으로 직접 쳐들어갈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무겁게 말한다.
"그동안 쳐들어오는 쪽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들이었다. 우리의 땅을 탐하려고 했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우리가 역으로 공격을 실시한다! 이제 우리가 쳐들어가는 쪽이 된 것이다!"
"케르으으으윽!"
"끄르르륵!"
"규사아아앗!"
터져 나오는 함성!
"그렇게 인간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제 사랑스러운 던전과는 작별이다! 인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우리는 정든 집을 떠날 것이다!"
던전!
나의 사랑스러운 던전!
이제 이곳을 떠나야만 해!
"인간들의 땅은 너희들이 알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곳엔 풀이 없어!"
"샤아!"
"주변에 넘쳐나는 계곡도 없다!"
"허억!"
"그리고 전부 다 인공물투성이다! 우린 이제 그곳으로 침투를 하는 거다!"
"케르르르륵!"
이건 이미 다 설명을 했던 것이지만 나는 출정에 앞서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그곳은 이제 우리의 제 2의 고향이 될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물품들을 보라! 무기! 갑옷! 도구!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녀석들이 만든 집이다! 그것들을 모조리 차지하자!!!"
그리 소리치자!
ㅡ케랴아아아아아아아악!
ㅡ끄르르르륵!
ㅡ규사아아아아앗!
내 부하들이 모조리 함성을 터트렸다.
"도구...!"
인간들이 만든 물품에 특히나 더 관심이 많은 라미아. 다크엘프. 픽시들이 눈을 빛냈다. 이제 그것들을 다 빼앗을 테니까.
"무적 큘스 마왕군 진격!!!!"
"케랴아아악! 모두 뫙님을 위해 진군하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