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남작령 따먹기 # 14
* * *
ㅡ파닥파닥.
귀여운 이블아이가 내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카르티다. 인간계를 향한 내 첫 발돋움을 서포트할 것이고, 그리하여 이 작전을 완벽으로 이끌 것이다.
"카르티. 눈을 하나만 쓰는 건 아니지?"
"물론이야! 지금도 남작령 주변을 살피고 있어! 하수도 내부 역시 살피고 있는 중이고! 큘스오빠가 걱정할 건 없음이야!"
그러니까, 마치 CCTV 감시병 같은 거다. 카르티는 수많은 모니터가 있는 방에서 다양한 화면들을 보며 내게 직접 통신을 해준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기술력이다. 이런 존재의 서포트를 받고 있는데 실패할 리가 있나.
"하수도는 텅 비었어. 아직 낮이라서 성 주변을 관측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선 안전한 상황이야."
"이대로만 가면 되겠군."
"그보다 큘스오빠.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아주 기뻐하시고 있는 중이야. 계속 큘스오빠 이야기만 할 정도거든."
그 말을 듣자 잠깐 멈칫하게 된다.
"..."
여공작이 내게 보내주던 과도한 호의. 뭐 좋은 감정이 드는 건 아니지만 호의 자체는 고마웠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느껴지던 색기와 성적흥분. 이건 내 과도한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설마 자기 아들에게 발정을 한 건가? 나와 섹스하길 원하는 건가?
아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다. 애초에 알에서 태어났고. 자식이라는 개체에 대한 정 같은 것은 희박하다.
나조차도 여공작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크게 느끼고 있을 정도니까.
그녀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족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남남인 것이다. 그냥. 나도 순간적으로 여공작을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말이다.
지구인들도 따지고 보면 전부 아프리카에서 발현된 것이니, 엄밀히 말해 전 인류가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지구인도 따지고 보면 친척일지 모르는 사람과 사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여공작은 딱 그런 거리감을 지닌 여자였다.
"아마 큘스오빠가 마계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만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해. 벨라크루 혈족 권력 구도에 큰 변동이 생길 거라고 봐!"
"흐흐흐, 그렇단 말이지."
"물론 그런 거물이 된다고 해도 카르티를 잊는 건 금지야!"
"내가 널 어떻게 잊겠니!"
사실상 카르티 덕분에 살아있는 건데. 뭐 그렇게 나는 카르티와 잡담 겸 전략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그러고 있으니.
"마앙님."
"음? 샤란아?"
"카르티랑만 이야기 하지 말구, 샤란이랑두 놀아여. 샤아샤아."
심심해진 샤란이가 내게 애교를 부리면서 달라붙어왔다.
"어이고. 그래야지. 샤란이 일루 와."
"샤아."
바로 샤란이와 팔짱을 끼고 걸었다. 샤란이는 신체접촉만으로도 즐거운 것인지 샤아샤아 콧노래를 부르면서 날 따라왔다.
"마앙님. 샤란이가 인간들 다 죽일 테니까, 샤란이만 믿어여."
"흐흐흐! 그래! 샤란이만 믿는다!"
샤란이의 전투 능력은 굉장한 편이다. 샤란이가 지켜준다면 걱정이 없지.
"마왕. 나도 있으니까 안심해."
"루미카도 믿는다."
워터 에로우의 위력은 살벌하다. 남작성으로 진입하면 당연히 전투가 있을 텐데, 루미카가 적의 안면을 향해 물화살을 날린다면 놈은 대처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ㅡ부웅!
그때 픽시들이 주변을 날기 시작했다.
"으읏! 빨리 우리들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
행군이 지루한 것인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세리뉴가 내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크게 소리쳤다.
"인간놈들! 모조리 없애버릴 거야!"
"이야! 우리 세리뉴 이거 의욕이 넘치는걸!"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거니까! 어떤 곳일지 기대돼! 인간놈들 다 죽이고 빼앗을 거야! 야호! 세리뉴는 킬링머신이야! 전부 죽이고 불태워!"
ㅡ출렁!
정말 천진난만하게 만세를 부르면서 전의를 내비치는 왕빨통 전쟁광 세리뉴. 그 모습을 본 레이카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야. 뭘 다 없애? 헛소리 좀 하지 마."
"레이카는 인간 출신이라서 몰라! 인간들은 다 죽여야 돼!"
"아오, 이 왕빨통젖탱이년이 진짜. 죽이긴 뭘 다 죽인다고. 야. 그렇지 않냐?"
내게 눈치를 보내는 레이카.
레이카는 우리 몬스터 군단이 인간에게 보내는 본능적인 증오와 적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뭐, 그렇지요. 세리뉴. 다 죽이진 않아. 필요한 만큼만 죽일 거다. 우리들의 적만."
"필요한 만큼만? 인간이 필요해?"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세리뉴를 보니 그냥 웃음만 나온다. 뭐, 딱히 걱정 없다. 다 통제할 수 있으니까.
"저, 저 왕찌찌빨통년 저거 말하는 것 좀 보소."
"레이카는 인간이라 젖이 작아! 찌찌도 없는 게 까불지 마!"
"닥쳐!"
적의는 필요하다.
어차피 내 명령도 없이 인간을 학살하고 다닐만한 녀석들은 아니니까.
"그래도 픽시들의 본능은 조금 교육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아. 바네사님."
"나가서 활동한다면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선 입단속을 시켜야만 하겠지. 점령지의 인간들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듣는다면..."
"다 알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다 생각이 있다.
"우리 훌륭한 젖탱이 천사들... 아니. 빨통엔젤."
픽시들은 딱 봐도 귀엽고 순수하게 생겼다. 천진난만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 젖가슴이 좀 과도하게 커서 보는 이들의 성욕을 좀 많이 자극하긴 하지만, 아무튼 요정은 요정이다.
픽시들을 대충 천사 같은 무언가로 탈바꿈해서 프로파간다용으로 써먹을 것이다.
"케륵! 뫙님! 슬슬 이쯤에서 식사하는 게 좋을 것 같슴다!"
"어. 부릴이! 좋다! 니가 경계병 편성해서 나한테 보고 해봐라!"
"알씀다, 뫙님!"
저거 진짜 믿음직스럽다니까.
* * *
보급품을 소모하면서 행군을 지속한다. 며칠간 지속된 행군은 아주 순조로웠고, 적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지루한 이동일 뿐이었다.
"큘스오빠. 곧 정글지대가 끝나. 인간들의 땅 시작이야."
"그래."
"밤까진 휴식을 취하도록 해. 야간행군을 해야 할 거야. 방향은 카르티가 잡아줄 테니까 지금은 병사들을 매복시켜둬."
아주 그냥 조언이 척척 나온다.
"진짜 훌륭한 참모구나, 카르티는."
카르티가 없었다면 지금쯤 픽시들이 열심히 정찰을 하고 있었겠지. 픽시마저 없었다? 그럼 인간세계 침공은 무리다.
"참모가 아니라 장군... 아니! 응! 카르티는 큘스오빠의 참모야!"
"흐흐흐, 그래."
그럼 명령을 내리자.
"지금부터 매복 후 휴식을 취할 것이다. 봐둔 곳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
"케륵! 알씀다! 뫙님!"
오면서 괜찮은 곳이 있다면 다 기억 속에 넣어두는 편이다. 정글에서 지휘관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되더라. 어떤 지형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어디서 휴식을 취해야 할지 대강 보인다.
이 숙련도를 인간들 땅에서는 써먹을 수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뭐 숲 지형은 흔하게 있으니까.
거기라면 써먹을 수 있겠지.
"자! 지금부터 휴식이다! 불침번들 빼고 싹다 먹고 싶은 거 먹고 누워서 자라! 우린 밤에 행동할 것이다! 밤에 자고 있는 인간들을 몰래 공격해야 하니까! 그럼 휴식 실시!"
휴식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고, 나도 자리를 만들어서 앉았다.
"성녀님."
"시킬 일이라도 있느냐?"
"네. 애들 컨디션 확인 좀 해주세요. 아픈 것 같은 애들 띠로 빼서 치료해주시길."
"알겠느니라... 아들?"
"아니! 엄마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아들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해봐야 이미 이 성녀는 마음속 깊이 그대를 아들로 여기고 있느니라. 후후후."
주변 엄마들이 다 이상하다!
"마앙님. 샤란이 쭈쭈 먹을 시간에여."
"아, 벌써 그런 시간인가? 샤란아. 여기 같이 눕자."
"네 마앙님."
이무튼 뭐, 나도 휴식을 좀 취해야 한다.
푹 쉬고 야간작전 시작이다.
* * *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들은 고개를 들어주세요... 문득 떠올랐는데 이거 참 오랜만이다. 마피아 게임이라니. 남작성 점거하면 다 같이 한번 해볼까? 이건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놀이다. 특히 픽시들이 좋아하겠지.
"전군 기상. 이제 인간들의 땅으로 침투할 때다."
"끄륵...!"
"규삿...!"
흥분한 몬스터 군단이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전의를 내비쳤다. 이제 적지에 침입해야 한다. 그것이 녀석들의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큘스오빠. 이제 카르티만 따라와. 지금 저 주변에 이블아이들을 많이 풀어둔 상태라서 들킬 걱정은 없을 거야."
역시 사기라니까.
"그럼 야간 행군실시."
"케륵."
바로 카르티의 유도를 따라 야간행군을 실시한다.
ㅡ처억.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글지대가 끝이 났다.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증거.
"케르륵...! 뫙님. 뭔가 기분이 나쁨다."
부릴이가 말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여긴 인간들의 영역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적지다. 마음이 안정되는 정글도 아니고, 위험만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지옥과도 같은 곳이지. 우리의 나와바리를 벗어났으니 본능적인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니까. 하지만 부릴아. 유능한 군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뫙님. 이거 보이심까?"
"뭐가?"
돌연 부릴이가 자기 옷깃을 들춰 내게 살을 보여줬다.
"평정심이 이 안에 가득함다 케루룽. 하나도 안 잃어버렸슴다. 케륵케륵."
"흐흐흐, 이 유쾌한 새끼 진짜."
웃음벨 같은 녀석.
뭐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ㅡ솨아아.
강줄기가 나타났다.
"큘스오빠. 이 강줄기를 타고 쭉 올라가면 하수도가 나올 거야. 그쪽을 이용해서 침투해야만 해."
"그래... 이제 곧이로군."
어쩌겠나.
가야지.
가서 승리해야지.
"흐응, 악취가 나고 있어."
강줄기를 따라 행군하고 있으니 루미카가 말했다.
"마왕. 불쾌한 강줄기야."
"인간들이 사용한 물이 나오는 거니까."
"인간들은 더럽나 보네."
동감이다.
"확실히. 그렇게 좋은 물은 아닌 것 같아요. 마왕님. 이런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쥬리아님. 이런 건 못 쓰지요. 인간들 땅에서는 신선한 물을 구하는 게 일입니다."
"어머나... 혹독한 환경이네요."
"루미카. 물 정화 얼마나 할 수 있겠어?"
"부대원을 전부 먹일 수는 없을 거야. 어쩐지 식수를 많이 챙긴다고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네."
당연히 물을 많이 챙겨 왔다. 내 새끼들한테 하수도 물을 먹일 수는 없으니까. 근데 이젠 하수도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약초를 잔뜩 챙겨왔다.
"아니... 도시에서 신선한 물 다 구할 수 있거든? 헛소릴 하고 있어."
"아 그렇습니까?"
레이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물 걱정 할 필요는 없겠군.
"큘스오빠. 몇 시간만 더 행군하다 보면 숲이 하나 나올 거야. 거기 숨어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야간행군을 실시하면 하수도 도착이야."
"흐음. 이틀을 써야 하는 건가?"
"낮에 행군하는 건 위험해. 마찬가지로 하수도 앞에 도착하면 쉴만한 곳이 없어.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하수도에 들어갔다가 싸우게 될 거야."
그건 안되지.
"하수도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비전투손실이 일어나겠지. 알겠어, 카르티. 숲까지 진격이다."
"응!"
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