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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276화 (276/544)

〈 276화 〉 바깥에서의 첫 전투 # 4

* * *

"부릴아. 가서 애들이랑 전장정리 실시해라. 필요한 것들만 따로 모아서 가져갈 거야."

"시체는 어떡함까?"

"한곳에 모아. 태워야 하니까."

어차피 생존자는 없다.

그러니 여기선 시체를 방치하는 것보단 화장을 해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야지 인간들이 어진 군주로 볼 테니까. 의외로 이런 작업이 참 중요하단 말이지.

보여주기식이란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네크리. 네크리도 가서 고블린들이랑 전장 정리 하세요."

"네. 그럴게요."

그런 식으로 약탈을 실시했다. 불구가 되거나 죽어버린 말은 참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기병을 제압하려면 확실하게 해야만 하는 것을.

그래도 갑옷이니 무기니 장비니 하는 것들은 아주 쏠쏠했다. 이 기병대 새끼들 나름 야무지게 무장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래봤자 마갑이 없다면 픽시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흐흐흐."

역시 약탈은 돈이 되는구만?

시체들 갑옷만 벗겨도 다 얼마냐.

"근데 말고기는 좀 아까워."

옆에 선 세리뉴가 말했다.

"그러게. 솔직히 아깝긴 해."

"어떻게 몇 마리만 챙겨갈까? 저길 봐. 아직 살아있는 말들이 있어. 말고기 먹고 싶단 말이야."

"흐음... 딱 봐도 다리가 삐꾸된 것 같은데."

힘겹게 히힣거리면서 널부러져 있는 상태다. 움직일 수나 있을까? 말 무게만 해도 수백킬로는 될 것이다. 들고 옮기는 건 어려울 것 같단 말이지.

"걸을 수 있는 것만 데려가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가서 먹으면 되잖아."

"그래. 그것도 그러네. 그럼 가서 픽시들이 움직일 수 있는 말만 추려서 와라. 잘 끌고 가서 먹자."

"응!"

고기를 낭비할 수는 없지.

어차피 다리 부상을 입은 이상 말은 끝장이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최대한 움직이게 해서 성으로 가져가도록 하자. 그럼 말고기 파티를 즐길 수가 있다.

정글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고기란 것은 결코 낭비할 수 없는 식량인 것이다.

"가서 밀가루 입혀서 튀겨먹을래! 나 그거 너무 맛있어!"

"이 녀석 튀김의 맛을 아는군?"

여기 와서 얻은 즐거움인데, 내 부하들은 튀김 요리랑 빵을 아주 좋아한다. 빵은 진짜 존나 맛있다면서 칭송을 하는 중이고, 밀가루를 입혀서 튀긴 고기 역시 엄청 좋아한다.

그런 모습 보면 더 챙겨주고 싶단 말이지.

ㅡ부웅!

픽시들이 날아가서 말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뭐 그러는 사이 고블린들이 시체를 다 정렬시켰다.

ㅡ화르륵.

나는 거기에 불을 질렀다.

"저 마적 놈들을 화장시켜 주시다니! 큘스님께선 아량이 참 넓으신 것 같습니다!"

대충 그러고 있으니 내게 다가온 안나가 그런 말을 했다. 봐라. 화장만 시켜줘도 이런 식으로 평판작을 할 수가 있다니까?

이쪽 세계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화장은 가장 기본적인 장례 방식이다. 시체에 대한 예우를 지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

방치된 시체는 추하게 썩어들어가면서 벌레들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건 명예롭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화장을 한다고 레이카에게 배웠다.

"그냥 시체가 보인 김에 화장하는 것뿐입니다. 그편이 더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저런 악당 놈들의 시체를 화장시켜준다는 것은 분명 자비로운 일입니다."

"흐흐흐, 그리 말해주시니 그런 것 같군요. 뭐, 근데 성녀님께서도 망자에 대한 예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뭐가 됐든 죽은 이상 망자일 뿐이니까. 저는 그 가르침을 따를 뿐입니다."

여기서 성녀님을 잘 따르는 기사라고 어필을 한다. 이런 것으로 신뢰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자.

영애도 안젤리카처럼 살살 꼬셔서 인지능력을 상실시킨 뒤에 먹어치워야지.

"과연...! 성녀님 역시 자비로우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녀님이지요."

안나 하민스.

이 영애는 성녀에 대한 큰 환상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뭐 이쪽의 소문을 듣고 바로 부하를 끌고 온 것이겠지. 직접 성녀를 본 적은 없어도 명성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고 있으니 전장 정리가 끝이 났다.

"좋아! 부릴아! 좀 힘들겠지만 챙긴 장비들 들고 마차까지 행군이다!"

"케륵! 뫙님! 가서 말고기 드심까!"

"먹어야지!"

"그럼 힘내서 가겠슴다! 케륵!"

가서 말고기 파티를 즐기도록 하자!

* * *

가면서 영애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흐음... 하민스 백작이 완전히 천사들에게 넘어갔다는 겁니까?"

"네. 안타깝지만 그런 상황입니다."

하민스 백작은 나름 큰 세력을 지닌 귀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파워게임에서 천사들 쪽에 붙어버렸다는 모양이다.

"천사들에게 푹 빠져선 완전히 붙어버린지라... 그들의 악랄함을 알고 있는 저로선 도저히 찬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탈주를 시도한 것이지요."

"그렇군요."

성녀의 말대로다.

귀족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가문의 구성원 모두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주가 천사에게 붙었어도 밑에 있는 애들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근데 하민스 가문은 대부분이 천사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4녀인 이 안나 영애만이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이끌고 탈주를 했다고 한다.

힘들었겠구만.

"천사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들의 사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천사들에게 붙다니, 가주님께선 천사들에게 힘을 보탠 것으로 하여금 가문의 크기를 더욱 키우겠다는 계산이었겠지만, 천사들이 그 약속을 지킬 리가 없습니다."

안나 영애는 아주 정확하게 판단을 했다. 천사들은 인간들을 지배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인간 귀족 따위와의 약속을 지킬 리가 없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천사들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지요. 모든 일이 천사들의 계획대로 풀린다면, 천사를 따르던 인간들은 모조리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큘스님은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성녀님께서 실제로 천사들에게 추격을 당했으니까요. 그들이 사악한 세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런 종류의 전쟁에서 강한 쪽에 붙는 것은 현명한 일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천사들은 아니야. 놈들은 나처럼 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온 놈들이다.

그것도 더 과격한 방식으로.

얼마나 과격한지 수녀들이 날 따르게 될 정도다.

"후우... 그렇군요. 성녀님께서도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만큼 영애님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영애님께선 수녀님들을 구출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공로에 대한 것을 칭찬해주자, 안나 영애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당연한 일입니다. 여신교를 집어삼킨 천사들은 정상적인 수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구출할 수 있는 만큼 구출해야지요."

"잘하셨습니다."

오는 길에 만난 수녀들과 합류해서 여기까지 쭉 온 것이다.

"그래도 희망이 보입니다. 여신교의 성녀님께서 건재하시다면, 분명 정상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천사들을 무찌를 수 있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성녀님께서도 그러한 것을 원하고 있으십니다!"

이미 소문은 다 퍼져 나갔다!

이런 식으로 탈주한 귀족들을 받아들여 힘을 키우기만 한다면 천사들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 * *

돌아온 뒤에는 전투에 참여한 부하들에게 전투 휴무를 부여하고, 영내 대기를 하고 있던 녀석들에게 업무를 인계했다.

그리고 영애와 수녀들은 성에 들이도록 하고, 영애가 끌고 왔던 보병대는 영지에 있는 여관에 묵게 했다.

인간 남성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이라... 이들은 내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영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지휘를 해야겠지.

뭐, 그리고 인간 간부들을 소집해서 간단하게 회의를 했다.

"정말 잘했느니라. 하민스 백작가의 영애라. 그녀로 하여금 우리의 세력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니라."

"바로 그겁니다, 성녀님! 가서 잘 구워삶아 주십시오!"

애초에 영애는 성녀에게 큰 신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성녀에게 좋은 말씀을 들은 것도 모자라 나와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게 되면?

바로 부하가 되는 거다.

"근데 또 수녀들 들어왔네."

"네. 다른 지방에 있던 여신교의 수녀들입니다. 역시 다들 몸매가 좋더군요. 흐흐흐."

"이 새끼 진짜 수녀만 보면 따먹을 생각밖에 안 하네."

"그래야 하니까요. 제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데요."

"그러고 보니."

바네사가 말했다.

"네가 얼마만큼 강해졌는지 측정을 해볼 필요가 있겠군."

"아."

생각해보니 딱히 내 개인 전투력을 측정해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마력량이 커진 것으로 대충 알 수 있으니 신경을 안 썼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강해졌다고 해도, 나는 최고 통수권자다. 내가 나가서 직접 싸울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요즘 개인 전투 수련은 안 하고 있었다.

"기회가 생긴 김에 한 번 해볼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 아무리 지휘관이라지만 자기 몸을 지킬 힘은 있어야 할 테니까. 검술이든. 마법이든. 잘 쓸 수 있다면 어디선가 쓸모가 있지 않겠나?"

"그렇지요."

와.

옛날 생각나네.

그때는 마족 브레스 하나만으로도 엄청 잘 싸웠는데 말이지. 뭐 그러면 전투력 측정은 조만간 해보기로 하고.

"일단 성녀님? 수녀들와 영애를 식당으로 부르겠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좀 나눠주세요. 그러다가 중간에 제가 픽업해가겠습니다."

"알겠느니라."

일단 영애는 외부에서 왔으니, 그만큼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천사들 쪽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지금. 영애의 증언은 아주 좋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보겠느니라."

"아. 레이카님? 레이카님도 다른 수녀들 끌고 내려가서 환영해 주세요."

"그래."

난 영애와 수녀들을 범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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