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279화 (279/544)

〈 279화 〉 내정 # 3

* * *

아무튼 나는 나의 잘생김을 적극 활용하면서 안나 영애를 '설득'했다. 뭐가 됐든 이미 내게 범해진 것이다. 그 쾌락은 깊게 새겨졌으며, 아랫배에 박힌 문양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부감이 있다고 해도 인큐버스의 매력은 치명적인 법이지. 이런 순진한 영애가 뭘 하겠나? 성녀조차도 내게 넘어온 상황이다.

"그런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정리하자면."

"예."

"결국 성녀님이 아니라... 큘스님이 사실상 일인자라는 뜻이로군요?"

"잘 이해하셨습니다."

이해가 아주 빠르다.

내가 흔쾌히 인정하자 영애는 살짝 충격을 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성녀에게 감화되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라니.

물론 그 충격을 이해한다.

"앗."

바로 손을 뻗어서 영애의 귀를 만져주며 말했다.

"안나님. 안나님의 목적은 천사를 타도하고 세상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하민스 백작가를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야심.

이 활기차고 순진해 보이는 영애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문을 차지하는 것.

하민스 백작가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천사 쪽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천사들이 대차게 망해버리고 우리의 이 성녀 세력이 일어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하민스 백작가는 안나의 것이 된다.

안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잘못된 가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제가 가문을 차지할 필요가 있기에."

이해한다.

"그러니 제게 충성을 바치십시오. 천사를 물리치고 하민스 백작가를 안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더 큰 힘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건 실제로 하는 약속이다.

어차피 난 세력을 불릴 거고, 그 힘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지배하고 나면 뭐 하겠나? 당연히 신하들이랑 노나묵어야지. 당연히 안나에게도 몫을 줄 것이다.

"..."

안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마족이라고는 하지만... 크게 수상한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목적도 일치하고."

"예. 이야기가 잘 통하니 좋습니다. 사실 이 성에 있는 다른 여인들도 전부 비슷한 느낌으로 제게 충성을 맹세했지요."

"그럴 수가!"

"다들 마음속에 품은 목적이 있습니다. 천사를 향한 증오도 있고, 그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이상일 수도 있지요. 절 도우신다면, 저 역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천사 타도는 계기에 불과한 일이었지요."

새로운 왕이 탄생할 계기에 불과하다.

징기스칸의 아버지를 무참히 도륙 낸 타타르족을 보라. 그것이 계기가 되어 쥐뿔도 없던 초원의 고아가 칸이 되었다.

내게 있어서 천사란 건 그런 것이다.

"절 따른다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안나 영애님."

그리 말을 해주자.

"..."

안나는 뭔가 멍해진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나 영애님?"

"아, 아아?"

몹시 당황한 얼굴.

눈이 풀려있다.

"아, 예.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목적을 위해 큘스님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완전히 넘어왔군. 처음엔 분노했지만 내가 백작가를 차지하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완전히 마음을 돌린 것이다.

그래.

이런 것도 중요하겠어. 야심이 많은 여인들을 부리기 위해선 그만한 메리트가 필요하다. 섹스는 많이 해줄 수 없으니까. 뭔가 현물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큘스님?"

"예."

"제 아랫배에 새겨진 이 문신은."

"그건 제 신하가 되었다는 증표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증표로 하여금 영애님과 저는 이어진 겁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음문은 필수다, 필수.

음문이 없는 여자는 믿을 수가 없지.

아무튼.

이렇게 안나 영애와 동침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나는 또 한 명의 장수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 그녀는 날 위해서 인간 군대를 지휘해줄 것이다.

* * *

대략적인 정리가 끝났다.

안나 영애는 인간 병사들을 이끄는 중대장 자리에 올랐고, 그녀의 보호를 받던 수녀들은 다들 내게 질내사정을 받고 음문이 새겨진 채로 '본부중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본부중대장은 레이카다. 레이카는 수녀들의 정점으로서, 치료 및 행정일을 총괄한다. 본부중대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투고랑 쓰리고가 아이린과 라이자다. 안젤리카는 수녀원장이었지만 이젠 레이카의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뭐 그래도 안젤리카는 약간 준위 느낌이다. 레이카도 딱히 부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고. 그냥 원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일을 부탁하는 정도.

아무튼.

수녀들이 많아진바 내정 관련으로는 이제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남작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중세식 행정을 탈피했으니까.

김큘스식 현대 행정이 뿌리내린 성은 이제 명실상부 마왕성이다. 더 이상 남작성이라고 할 수 없지.

그래서 내가 할 일이 대폭 줄어들었다.

뭐 세금부터 시작해서 기타 잡다한 일까지 전부. 나는 최종 결재만 하면 됐으니까.

"흐흐흐. 성은 완전히 장악했군."

그리고 민심도 어느 정도 잡았다. 그럼 이제 군사력에 집중할 때가 아니겠나? 지금부터 병력을 늘리고 훈련시키면서 힘을 비축하기만 한다면 변방의 패자로 등극할 수 있을 터다.

그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으니.

ㅡ똑똑.

네크리가 내 집무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십시오. 네크리님."

"아, 네."

"준비가 다 된 겁니까?"

"물론이에요. 다 함께 조율했어요."

"피리 부는 법은?"

"그, 그게... 네.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에요."

"그럼 됐습니다."

좋다.

이제 나가보자.

"인간들에게 다크엘프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겁니다. 흐흐흐."

"실제로 그런 능력은 없는데..."

"잘 날조하면 진실이 되는 법입니다. 인간들의 친구이자 믿음직한 이웃이 되어 보자고요. 그러면 보다 자유롭게 산책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열심히 할게요."

네크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 * *

"와아아아!"

터져 나온 탄성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오, 오오오오오!"

"세상에!"

"놀랍군! 놀라워!"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감탄을 하면서 단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사태에 주목했다. 지금 광장에 있는 모든 눈이 그곳으로 향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ㅡ삐리리릴리리.

ㅡ삐릴삐릴삐리릴.

ㅡ삐리리리릿.

ㅡ삘리리삘리삘리.

신비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매혹적인 다크엘프가 피리를 불자.

"케륵! 케르르륵! 케륵!"

"끄륵끄륵!"

"규사사삿!"

마치 사람 같은 옷을 입은 몬스터들이 구령에 맞춰 움직인다!

그것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으아아아아!"

"말도 안 돼!"

"저,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 미개척 지대와 맞닿아 있는 남작령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블린이나 임프. 코볼트 같은 저급 몬스터들은 몹시 친숙한 존재였다.

위험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게 강하진 않기 때문에 사냥감 취급을 받는 것이다.

굳이 모험가나 군인. 용병이나 사냥꾼이 아니더라도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몇 번씩은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농기구 하나만 들어도 쉽게 처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작물을 훔치러 온 저급 몬스터를 죽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적이긴 하지만 그냥 별거 아닌 수준의 몬스터일 뿐.

그러나 결코 길들일 수는 없는 존재.

"케르르륵!"

"끄륵!"

"규사사삿!"

그런 몬스터들이 다크엘프의 피리 소리에 맞춰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걸 길들일 수가 있다니!"

"저 병사들 같은 움직임을 좀 봐!"

"놀라워! 역시 다크엘프들은 신비해!"

몹시 신비한 광경이라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몬스터들이 병사처럼 움직인다니. 서커스단이 묘기를 부린다고 해도 이것보다 신기하진 않을 것이다.

"이 성녀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크엘프들은 이렇게 몬스터들을 길들여서 각종 노동이나 농사일에 동원한다고 하는구나. 정말 신비롭지 않느냐? 이들의 지혜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니라!"

성녀의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소나 말처럼 몬스터들을 부릴 수 있다면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지식은 딱히 없었지만,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다크엘프들에 이어 이런 몬스터들까지 우리와 함께한다! 인간들이여! 우리는 사악한 천사들에게 맞설 수 있다! 상식과 정의를 바로 세우자!"

천사 리리엘이 성녀의 옆에서 크게 소리를 쳤다.

"캬! 세상에 변하고 있다는 게 아주 잘 느껴지는군!"

"내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럼 어서 입대해! 병사들 다시 뽑는다던데!"

"그건 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워했다. 요즘은 이런 놀라운 일뿐이다. 성녀에 천사. 그리고 다크엘프에 가축화된 몬스터라니. 이 변방에 살면서 이런 것들을 볼 기회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내일은 다크엘프들이 몬스터들을 이끌고 천사들과 함께 도시를 한 바퀴 돈다고 했다. 따라가서 구경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남작령에 활기가 돌고 있어."

누군가가 그리 말했고.

"그러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님과 성녀님 만세!"

"남작님! 만세!"

"성녀님 만세!"

"남작님 최고!"

사람들은 크게 웃으면서 남작을 칭송했으나, 그들 중 남작이 마족에게 패배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채 백수처럼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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