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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284화 (284/544)

〈 284화 〉 영지전 # 4

* * *

산 중턱에 지휘소를 만들고 대기를 빨고 있으니.

"끄르륵! 모왕님! 이제 뽀인다고 한따입니다!"

임숭이가 급하게 달려와서 소리쳤다. 경계병이 적군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좋다.

드디어 헬슨 남작군이 우리 시야범위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지금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가서 알려라, 임숭아."

"끄르륵!"

시간은 오후. 정오는 진작에 지났기에 해는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 정도만 있으면 어두워지지 싶은데. 좀만 더 늦게 나타났으면 좋았을 것을.

어둠을 이용한다면 보다 쉽게 격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마앙님. 이제 시작이다에여?"

옆에 붙은 샤란이가 그리 물었다.

"어. 이제 시작이다. 샤란아. 나 잘 지켜줘야 한다?"

"샤아! 마앙님은 샤란이가 지켜여!"

"흐흐흐, 이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고."

작전도 다 짜놨고, 준비도 끝내놨다. 곧 산맥 꼭대기 쪽에 자리를 잡은 픽시들이 적들의 진형 배치도를 가져올 것이다.

ㅡ부웅!

생각하기 무섭게 픽시의 날개짓 소리가 들려온다.

"나왔어!"

"어. 세리뉴. 적들 진형 배치는 확인했냐?"

"물론이야! 이렇게 망원경으로 다 관찰했어!"

세리뉴가 망원경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힘차게 소리쳤다. 참 깜찍한 제스처란 말이지. 아무튼. 세리뉴가 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이거야!"

"호오! 잘 그렸는데!"

"그치?! 난 그리는 것도 잘해!"

"역시 세리뉴다!"

"꺄하하하하하핫! 난 정말 대단해!"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구나.

"흐흐흐, 귀엽고 유능하다니까. 그럼 어디. 그림 좀 봐볼까."

헬슨 남작군의 진군 배치도 그림.

대충 순서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1. 중무장한 기병 셋.

2. 보병대.

3. 마차.

4. 보병대.

5. 기병들.

"흐음. 선두에 있는 기사들은... 헬슨 남작과 휘하의 기사들인가? 바네사님? 맞습니까?"

"아마 맞겠지. 보통 군주가 앞장서서 행군하는 법이니까."

"참 멍청한 방법이로군요."

"당연히 군주들도 조심은 한다. 하지만 저쪽은 헬슨 남작령의 영지다. 자기 영지에서 병사들 뒤에 숨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하겠지."

"아아."

듣고 보니 납득이 된다. 헬슨은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다. 자기 나와바리인 만큼 앞장서서 행군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뭐 국경선 역할을 하는 산맥에 닿기 전까진 쭉 시야가 트여있는 평야 지대이니, 저렇게 선두에 서도 문제없겠지.

"납득이 되는군요. 아무튼 뭐 나쁜 배치는 아닙니다. 선두에 영주와 기사. 그리고 뒤쪽으로 보병대가 있고. 보급 마차가 대열 중간에 있군요. 다시 뒤쪽에 보병대와... 최후방에 기병대가 있습니다."

세리뉴가 건네준 그림이 딱 이거였다.

"어떤가? 이길 수 있겠나?"

"이 비슷하게 올 거라고 예상을 하지 않았습니까. 충분합니다."

일단 보병대의 규모는 대대급이고 기병대는 소대급이다. 보통 남작들이 지닌 병력이 이 정도 규모라고 한다.

뭐가 됐든.

이제 우리는 저 병력을 분쇄해야 한다.

"좋아. 문제없어."

괜찮다는 말을 되뇌이면서 끓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현재 상황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질 이유가 없다. 기습으로 병력의 2할 정도만 박살 내도 저쪽에서는 대패나 다름없지.

사기를 꺾은 뒤에 모조리 사냥할 거다.

그렇다고 적들을 얕봐선 안 돼. 저들은 결코 무능한 것이 아니다... 뻔하긴 하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사기를 치는 건 나다. 내가 사기를 친다고 해서 적들이 병신이 아니란 말이다.

"세리뉴. 전투가 시작되면 작전대로 해. 알겠지?"

"응. 다 알고 있어. 라미아들이 말들을 놀래킨 사이에 신속하게! 후방에 있는 기병들만 조지면 되는 거잖아!"

"맞아. 그래도 조심해. 적들은 석궁을 사용하니까. 최대한 빨리 말만 공격하고 빠지는 거다."

"응! 걱정하지 말라니까!"

세리뉴는 투지가 넘쳤다.

뭐 걱정할 것은 없겠지.

나는 바로 내 다른 중대장들에게도 작전대로 잘 움직일 것을 당부했다. 첫 영지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해. 우리 운명이 여기에 걸려 있다.

"세리뉴. 픽시 하나 시켜서 반대쪽 산맥에 이 상황 알리고. 끝나면 튀김 파티한다고 다시 전파해줘."

"응!"

이제.

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 * *

헬슨 남작군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녀석들은 딱히 정찰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산맥 사이에 나 있는 길에 진입할 때까지 정찰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까.

ㅡ척척척.

ㅡ척척척.

ㅡ척척척.

헬슨의 병사들은 아직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걷고 있었다. 이제 국경을 넘었는데도. 자신들의 나와바리에 벗어나 적진에 들어왔는데도 긴장감 따윈 찾아볼 수 없다.

ㅡ고오오.

그 사실이 나의 피를 더욱 끓어오르게 했다.

"...!"

좋은 갑옷을 걸친 채, 아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선두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저 헬슨 남작부터 대열의 끝에 있는 기병들까지.

전부.

모조리.

싹 다.

자신들이 기습당할 것이란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다.

"크으...!"

아주 격렬하게. 숨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참는 것이 힘들다. 지금이라도 당장 포효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돼! 최적의 시간!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기습을 걸어야 한다!

대승.

대승을 노린다.

"후우, 후우!"

들어온다.

녀석들이 들어온다...!

헬슨 남작군이 전부 산맥 사이로 들어왔다! 산맥 사이에 나 있는 길은 그렇게 짧은 것이 아니다! 병사들이 쭉 건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녀석들이 함정이 배치된 지역 근처까지 들어왔을 때.

나는 진정한 장군이 되었다.

"흡!"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력을 담아 포효한다!

ㅡ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폭죽을 쏘듯이 공중으로 마력탄을 쏘아 올렸다.

ㅡ퍼엉!

진짜로 폭죽처럼 폭발한 저것이 바로 공격 신호다. 자, 이제 전쟁 시작이다. 몬스터 군대의 맛 좀 봐라!

"어, 어어?!"

"어!"

"정지! 정지하라!"

돌연 들려온 괴성에 병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근데 그럴 시간이 있을까? 라미아들은 이미 적들의 말이 배치된 곳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는데.

ㅡ캬하아아아아아악!

ㅡ캬라라라라락!

ㅡ케헤에에에엑!

곧 라미아들의 전투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이 노린 곳은 아주 정확했다. 보급 마차가 있는 곳과 기병들이 배치되어 있는 최후방.

라미아들의 임무는 적들의 말을 무력화시키는 것!

ㅡ히히히힣!

ㅡ으아아아아악!

ㅡ히이이이이힝!

시꺼멓게 칠한 판금 갑옷을 입은 라미아 중기병대가 기병창을 잡아든 채 함성을 내지르면서 돌진하자 말들이 혼란에 빠졌다!

겁에 질린 말들이 폭주함과 동시에 마차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덮쳤고, 후방에 있던 기병을 역시 줄줄이 낙마를 하면서 쓰러졌다!

"괴물이다!!!"

병사들이 그리 소리쳤지만, 괴물에게 옆구리를 찔린 것도 모자라 말들까지 폭주한 상황이다.

대혼란과 함께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정예병이라고 해도 대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터!

ㅡ캬하아아아아악!

판금 갑옷으로 중무장한 라미아들을 누가 막겠는가! 그녀들의 하반신은 비늘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런 강력한 라미아들이 대열을 휘저었고.

ㅡ부웅!

픽시들이 최후방으로 향한다.

궁병들이 자리를 잡고 사격할 시간 따윈 주지 않는다. 기병들부터 빠르게 조질 것이다.

"이제 천사들 차례...!"

그 모든 광경을 나무 위에서 지켜보며 대열의 선두 쪽을 바라봤다.

ㅡ펄럭.

리리엘과 타락 천사들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공중에 자리 잡은 그녀들이 손에서 불길한 암흑의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렇게.

ㅡ콰아아앙!

ㅡ콰앙!

ㅡ콰아아앙!

행군을 하느라 모여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잔혹한 폭격이 떨어진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크하아아아아악!"

병사들이 폭사하고 폭심지에 있던 녀석들이 날아간다. 놈들 중 일부가 하늘을 보고 소리쳤다.

"처, 천사! 천사다!"

"천사다아아아앗!"

터져 나오는 혼란.

"멈춰라! 간격을 벌리고 대열을 유지하라!"

누군가가 그리 소리쳤으나, 이 상황에서 병사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겁에 질린 병사들이 무질서하게 뛰쳐나갔고.

"으아아아악!"

ㅡ퍼억!

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함정지대에 빠져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시작이다."

길의 양옆에는 내 군대가 배치되어 있다. 도망칠 길은 후방밖에 없지만, 그것 역시 내가 노리는 바다.

너희들은 자신들이 기습을 하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기습을 당하는 건 바로 너희들이다.

* * *

"멈춰! 멈춰라!"

"으아아아아악!"

"멈추란 말이다!"

낙마한 헬슨 남작이 부르짖듯 소리쳤으나.

ㅡ콰앙!

ㅡ쿠웅!

"꺄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비명 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궁수대! 궁수대 정렬! 석궁수 정렬! 뭣들 하고 있나! 명령을 전파해라!"

"살려줘어어어어엇!"

"아아아아아악!"

천사들을 요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궁수대와 석궁수들을 다수 모아온 상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저들에게 화살을 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도망치고 도망칠 뿐.

"멈추란 말이다!"

"커헉!"

전방으로 도망치던 병사들이 구덩이 아래로 빠져버린다. 다른 병사들 역시 그 광경을 봤겠지만, 자신만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똑같이 질주했다가 구덩이에 빠질 뿐이었다.

지금 뒤쪽은 어떤 상황이지?

귀신같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자 말들이 광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천사! 저 천사들! 여전히도 머리 위에서 폭격을 가하는 천사들!

막지 않으면 계속해서 마법을 쏘아댈 것이다!

"이럴 수가...!"

함정에 빠졌다. 기습을 당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헬슨 남작 자신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를 한 것이지?

이미 많은 병사를 잃었다.

남작은 판단했다.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서 후퇴해야 한다고. 여기서 병력을 더 잃으면 끝장이다!

"전원!!! 내게 모여라!!!"

산맥 쪽으로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어, 어어어억?!"

"어어어어!"

"도, 도망쳐!!"

돌연.

ㅡ쿠구구구구!

산맥에서 중무장한 보병대가 튀어나와 창과 방패를 앞세운 채 병사들을 찔러 죽이면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대체 어디서...!"

"남작님! 도망쳐야 합니다!"

옆에 있던 기사가 소리쳤다.

"꺄하하하하하하핫!"

그 목소리에 마녀의 웃음소리가 겹쳐진다.

이것은 악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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