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 영지전 # 5
* * *
ㅡ콰앙!
ㅡ쿠웅!
전장의 혼란이 내겐 기껍기만 했다.
이 혼란이 바로 승리의 열쇠다. 혼란에 빠진 건 적들 뿐. 철저하게 기습 준비를 한 우리들은 그런 적들을 갈아먹기만 하면 될 뿐이다!
"좋아!"
슬슬 타락천사들의 연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력이 떨어진 탓이다. 지금부터는 텀을 두고 차례대로만 발사하게 될 텐데, 천사들은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했다.
대체 몇 명의 병사들이 폭사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폭사보단 그녀들이 만들어낸 혼란이 더욱 크지만.
아무튼 이제 픽시들을 다시 활약시킬 때지.
ㅡ부웅!
픽시들은 기병들을 무력화시키고 공포를 확산시킨다는 임무를 완벽하게 달성했다. 그렇게 할 일을 다 하고 온 세리뉴가 내게 보고했다.
"말들 전부 처치했어! 움직일 수 있는 말은 이제 없을걸! 꺄하하하핫!"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기병들이 무력화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된다. 대대급 병력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기병 소대가 전멸한 것이니, 이 피해는 몹시 크다.
"아주 잘했다, 세리뉴! 기병 없는 군대는 밥에 불과하지!"
"물론이야! 이제 그거 하면 될까?!"
"어. 일단 준비하고 있어. 샤란아!"
"샤아! 마앙님!"
ㅡ처억!
내 부름에 샤란이가 군인처럼 경례했다! 저 귀여운 모습을 보라! 하지만 지금부터 샤란이가 할 일은 귀여운 것을 초월한 일이지!
"가라! 놈들이 있는 곳을 울창하게 만들어줘!"
"샤아! 알겠다에여!"
ㅡ고오오.
샤란이의 눈에서 녹색 안광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샤란이가 전장을 향해 손을 뻗었고.
ㅡ뿌득! 뿌드득!
초록빛을 자랑하는 식물들이 마구잡이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악! 싫어어엇!"
"그만해! 그만해!!!"
"으아아악! 엄마! 엄마아아앗!"
"기사님!"
"구해줘!!"
살인덩굴이다.
피어오른 덩굴들이 병사들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움직임을 방해한다. 뭐 갑자기 피어난 식물인 만큼 내구도는 형편없어서 금방 찢어졌지만, 우리가 노리는 것은 그게 아니지.
약간의 공포와 불쏘시개.
그거면 충분하다.
"루미카."
"응. 맡겨줘."
ㅡ화르륵!
루미카의 몸에서 푸른색의 오라가 흘러나온다. 머리카락이 펄럭인다. 동시에 신비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렇게 전장을 향해 손을 뻗은 루미카에 의해서.
ㅡ샤아악.
피어올랐던 덩굴들이 모조리 수분을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이다! 세리뉴! 2차 폭격 개시해!"
"응!"
"모왕님! 다녀오껬씁니다!"
"그래 임숭아! 모조리 불태워버려라!"
천사들이 폭격으로 인한 파괴를 일삼는다면, 임프들은 훌륭한 방화범들이다!
ㅡ부웅!
픽시들이 날아오른다.
전부 임프들을 태울 수 있도록 만들어둔 벨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그렇게 임프들이 픽시들에게 끌린 채로 날아올랐고.
어느 정도 상승했을 때, 임프들이 손에 들고 있는 특제 척탄용 기름 항아리에 불을 붙였다.
ㅡ휘익!
그리고 일제히 투척. 그리 떨어진 십수 개의 화염 항아리들이 말라비틀어진 덩굴과 맞닿은 순간.
ㅡ퍼엉!
ㅡ화르르르륵!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한다.
"으아아아아악!"
전부 작전대로 진행되고 있다. 몰아쳐야 한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특수병종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적들이 예상치 못하고 또한 경험하지 못한 추억을 선사해 줘야 해!
ㅡ화르륵!
보라!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헬슨 남작의 군대를! 저들은 훈련된 전문적인 군대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훈련받지는 못했다!
"벌써 몇이나 죽은 것이지!"
통상적으로 전체 병력의 1할만 잃어도 엄청난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저기서 시체가 된 병사들의 수가 대체 얼마인지...! 감도 안 잡힌다! 순식간에 백이 넘는 병사들이 죽어버린 것이다!
"완벽해!"
전율.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다. 이렇게 적들의 군대를 또 다시 갈아먹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경험치가 될 것이다.
"으아아악!"
"아아악!"
"모여, 모이라고!"
"이쪽이다!"
아무튼.
저 아래에서는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산맥을 오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활로가 여기밖에 없다는 걸 직감한 모양인데, 그럴 거였으면 대열이라도 이뤘어야지.
ㅡ펄럭!
이블아이를 보내 고블린 보병대가 있는 쪽을 관찰한다.
"케랴아아아악!"
"케르으윽!"
"죽여라! 또 죽여라, 케륵!"
고블린 보병대는 처음부터 고지대를 선점해둔 상태였다. 그것도 함정 뒤에 자리를 잡은 채 도망치듯 올라올 병사들을 찔러 죽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지.
ㅡ푸욱!
"크학!"
인간의 시체로 가득 찬 함정을 짓밟으면서 올라온 병사의 목덜미에 창이 꽂힌다. 고블린들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방패로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무자비하게 창을 내질렀다.
"이야아아아압!"
그러는 와중에도 몇몇 정신이 있는 병사들이 고블린 보병대 진형을 우회하려 하거나 아예 힘으로 방패병들을 밀어붙이려고 했지만.
ㅡ푸훅!
ㅡ푸욱!
"죽어라, 인간!"
"너희들은 사냥감일 뿐이다."
"전부 죽여요!"
고블린들의 후방과 측면에 배치해둔 다크엘프 특전사들이 민첩하게 대처했다. 대열조차 이루지 못한 병사들을 산속에서 죽이는 것은 몹시 쉬운 일이다.
다크엘프들이 창을 짜르고 칼을 휘두르자 인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힘도 체력도 기술도 전부 다크엘프들이 우위다."
마력으로 강화된 다크엘프들을 무시하지 마라.
그쯤 되니.
"마왕님...! 캬학!"
라미아들이 귀환했다.
"오오!"
바로 나무 아래로 내려간다.
"쥬리아님! 부상자는!"
"조금 있어요! 치명상은 아니지만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래야지요! 치명상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수녀를 소수만 데려왔다. 아이린과 다른 수녀들이다. 저 위쪽에 배치해뒀으니 그쪽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어서 위로 올라가게 해주시고, 루미카! 와서 라미아들 몸 좀 식혀주라!"
"응!"
ㅡ촤하아아악!
루미카가 라미아들에게 찬물을 쏴줬다. 격렬한 활동으로 체온이 올라갔으니 식혀줘야지.
"캬학..."
"캬하, 캬하..."
라미아들이 찬물을 맞으면서 자리에 누웠다.
"쥬리아님. 잠깐 쉬신 다음에 2차 총공세에 들어갈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아아, 물론이에요. 지금 몰아치면 전부 죽일 수 있겠죠. 후후후."
쥬리아가 누운 채로 보고했다.
"일단 목적은 달성했어요. 최대한 휘저으면서 인간들을 사냥했죠. 다들 겁에 질린 상태라서 몹시 쉬웠어요."
"예.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이번에 가면 불을 피해서 공격하시면 됩니다. 그것도 전부 모인 상태로요."
이런 상태에서 라미아들이 다시 와서 전장을 휘젓는다?
아무도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대승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바네사는 자기 부대를 이끌고 헬슨을 마크중이다. 남작과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을 마크하면서 움직이는 중이니, 헬슨이 갑자기 활약하여 방어선이 뚫릴 일은 없다.
"그럼 쥬리아님! 출격하십시오!"
"캬하아아아악! 승리를 위해! 가자! 라미아들이여!"
"캬하아아악!"
전투의 열기에 취한 라미아들이 다시금 산을 질주하며 내려갔다.
* * *
압승.
말 그대로 압승이었다.
"적들을 전멸시켰다! 만세!"
"케랴아아아아악!"
"끄르르륵!"
대대 규모의 병력을 전멸시켰다.
소수의 도망친 병력이 있긴 하지만, 픽시들이 추격하기 시작하면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간의 발로 픽시들을 따돌릴 수는 없으며, 이 지역은 국경선 역할을 하던 산맥을 빼면 전부 평야 지대니까.
평야 지대에 숨을 곳 따윈 없다. 마찬가지로 산으로 들어가서 숨는다? 세상 모든 산이 우리 몬스터 군단의 나와바리다.
적들은 전멸했다.
"케랴아아악! 튀김 파티! 튀김 파티다케르으으윽!"
"꺄하하하하핫! 또 이겼어! 역시 우린 무적이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라! 우리는 진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렇게 기뻐하는 내 부하들을 치하해 주면서 텐션을 끌어올렸다.
그러고 있으니 바네사가 날 불렀다.
"아, 바네사님. 정리는 끝났습니까?"
"다 끝났다. 헬슨 남작과 그의 기사 둘. 전부 확실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네사님. 이야. 역시 우리 마왕성 제일가는 기사이십니다? 흐흐흐."
"당연한 칭찬이로군. 확실히 레아보단 내가 더 강하지."
바네사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하다.
바네사는 전장의 혼란 속에서 도망치려고 한 헬슨 남작을 훌륭하게 처치했으니까. 특히나 대인 전투에 특화된 다크엘프 특전사들을 이끌고 가서 기사들까지 모조리 사냥한 것이다.
바로 그녀를 따라서 헬슨 남작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흠."
헬슨 남작이 가져왔던 깃발. 그것이 그의 수의가 되었다. 적이라고는 하지만 군주의 대한 예우라고 해야 하나. 헬슨 남작은 깃발에 둘러싸여 있었다.
"늙었군요."
"늙었지. 헬슨 남작에겐 자식이 있다. 이제 그가 영주가 되겠지. 시체와 깃발을 가지고 있다고 서신을 보내면 협상을 하러 올 것이다."
영주인 아버지의 시체와 깃발을 포기할 귀족은 없다. 이거 너 가져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영주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헬슨 남작의 선공이었으니 강하게 나가도 괜찮을 것이다. 선전포고조차 없었으니까. 뜯어낼 수 있는 만큼 뜯어내야 한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런데 헬슨 남작의 자식이다.
이런 녀석을 잘 휘두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참고로 묻는 겁니다만, 아들입니까?"
"아닛! 네놈! 딸이라면 범하려고 했나!"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도덕과 상식이 있지! 아비를 죽여놓고 딸과 동침하려 드는 것은 좋지 않다!"
"흐흐흐, 농담입니다, 농담."
"네가 말하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단 말이다, 이 색마!"
떽떽 거리는 모습이 참 귀엽다니까.
"아무튼 시체는 관에 넣어서... 소금으로 염을 하면 되는 겁니까?"
"소금? 이건 귀족의 시체다. 마법사들에게서 방부제를 사는 게 더 낫겠군."
"아아, 그렇습니까?"
그럼 그러기로 하고.
"아무튼 전리품이나 좀 챙기도록 합시다. 세상에. 수백 명 분량의 무기와 장비라니! 저 지금 기뻐서 미칠 것 같습니다!"
"진짜 여자와 무기를 좋아하는 마왕이로군. 너는."
"그게 바로 훌륭한 군주의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돌아갔다.
승자는 승자의 권리를 취하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