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다구리 그마아안 # 4
* * *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훈련받지 않은 신병들이다. 입소식은 인사와 다짐을 듣는 것으로 가볍게 진행되었다. 입소식이 진행되는 내내 딱히 무질서한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이제 이들도 군율에 매인 병사들이다. 다크엘프 조교들이 근엄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쫄린 것이겠지.
그렇게 입소 행사가 끝이 났고, 곧바로 보급품 불출이 시작되었다.
"따라와라!"
"보급품을 불출하겠다!"
조교들의 안내에 따라 신병들이 2열 종대 이동을 실시한다. 아직 제식훈련을 안 해서 보는 맛은 없군. 아무튼. 보급품 관련 준비는 새벽에 다 해놨다.
"자! 차례대로 받아 가라!"
막사로 들어간 신병들이 각자 군복 바지와 천 갑옷 상의. 그리고 장화와 장갑. 투구. 방패와 검을 보급받았다. 솔직히 그동안 전리품으로 확득한 장비가 워낙 많았어야지.
이걸 준비하는 것에는 문제가 딱히 없었다.
"와... 갑옷이잖아?"
"무기도 있어."
대충 보아하니 다들 장비를 받는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신기함과 기대감? 그런 감정이 보인다. 내가 옛날에 훈련소에서 보급품 받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전투복으로 갈아입도록!"
"..."
"대답!"
"예, 예!"
"알겠습니다!"
다크엘프 조교들이 아주 잘해주고 있다. 그동안 실전을 여러 번 치른 탓에 다들 상여자가 된 상태. 지시를 아주 잘하고 있어. 우리 예쁜 조교들은 다음에 제대로 포상해주도록 하자.
ㅡ처억.
그렇게 신병들이 하나둘씩 보급품을 챙겨 입고 연병장에 모여 정렬했다. 장비를 챙겨 입은 모습을 보니 병사처럼 보이긴 한다.
"인간 병사라."
저런 녀석들을 수도 없이 죽여왔다. 근데 이젠 저들이 나의 부하로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다 모였고, 단상에 선 안나가 말했다.
"장비는 마음에 들었나! 이제 너희들은 병사가 되었다! 그 보급품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손질하도록!"
아주 신나 보이는군.
"그럼 지금부터 성전군 병사로 복무하기 위한 언어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겠다! 조교들! 신병들을 막사로 안내하라! 언어 예절을 교육하겠다!"
"네!"
"네!"
그렇게 신병들이 막사로 들어간다.
나는 안나의 뒤에 선 채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 들어라! 앞으로 모든 말은 다나 까로 끝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상급자가 너희를 불렀을 경우에는 관등성명을 대도록 한다! 자, 그럼 관등성명이 무엇이냐!"
다크엘프 조교들이 관등성명의 예시를 보여줬다. 터치를 하면 누구누구하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진짜 내가 가르쳐준 대로 잘하고 있다. 육군훈련소가 재현되고 있어...!
간단한 교육이 끝난 뒤에는 실천.
"거기 너!"
조교가 신병 하나를 지명하자.
"1번 훈련병 제! 임! 스!"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좋다! 아주 똑똑한 것 같군! 그럼 너!"
"2번 훈련병 파! 이! 머!"
오오.
이 녀석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데? 머리가 잘 안 굴러가는 놈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어리버리인데, 다들 눈도 똘망똘망하고 의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참 A급이지 싶다.
하긴 뭐. 다들 자원해서 들어왔고. 퇴근 시간 되면 집에 갈 수도 있다. 심지어 머리도 안 밀었어. 2년씩이나 노예 생활을 하는 징집병들이랑은 근본부터 다른 것이지.
이들은 병사가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와. 잘 잘하고 있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안나님?"
"네! 마왕님!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들 잘하고 있네요!"
그렇게 오전 시간 동안 언어와 예절. 그리고 군대 생활에 대한 교육이 이어졌다. 신병들은 조교들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고, 따라서 필수적인 교육을 오전 시간 안에 끝마칠 수가 있었다.
"식사 시간이다! 점심은 밖에 나가서 먹도록 하겠다!"
제휴해둔 식당이 있다.
밥은 앞으로 거기서 먹을 것이다. 당연히 뭐 행군하면서 야외에서 밥 먹는 훈련도 할 거긴 하지만, 영내에서 지낼 때는 식당에서 먹어야지.
ㅡ척척척.
신병들이 훈련장 바깥으로 나가 바로 앞에 있는 민간 식당으로 차례대로 들어간다. 이미 메뉴는 정해진 상태다. 야채와 생선 살. 소량의 고기와 기름. 그리고 감자를 썰어 넣은 뜨거운 스튜와 빵. 달걀이다.
"캬! 밥 잘 나오는구만!"
"훈련받을 맛 나겠어!"
"일단 아침엔 별거 없었는데? 이게 병사생활이라면 영원히 할 수 있겠군!"
"흐하하하!"
신병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제식훈련 시작이다.
"지금부터 제식훈련을 시작하겠다!"
사실 라인배틀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식은 그 자체로는 딱히 쓸모가 없다. 행군할 때조차 제식을 시킨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제식의 중요한 점은 그런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보병 방진.
방진은 옆 사람. 뒷사람. 앞사람과의 간격과 움직임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제식훈련이다. 제식을 하다 보면 근처 사람들과 움직임을 맞추는 능력이 길러진다.
"우선 조교의 시범을 보고 생각을 하라!"
"알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ㅡ척척척!
다크엘프 조교들이 제식을 선보인다. 절도 있고 딱딱 맞아떨어지며 통일된 동작. 그야말로 제식의 귀재들이다.
"오오..."
신병들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통일된 동작을 딱딱 보여주니 신기한 거겠지.
"제식훈련은 그 자체로는 딱히 쓸모가 없다! 하지만 제식훈련의 중요한 점은 바로!"
ㅡ처억!
이번엔 제식훈련에서 비롯된 보병 방진을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다크엘프들도 방진 훈련은 다 받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방진이 만들어졌고, 그 상태로 자유롭게 움직이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보병 방진을 형성할 때 주변 사람들과 움직임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훈련이나 활동을 할 때 그것을 왜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너희들은 성전군에 소속된 자랑스러운 병사다!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병사의 움직임을 배우도록! 그럼 시작! 다들 연병장으로 나간다!"
"알겠습니다!"
연병장에서 제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흐흐흐."
이거 고블린들 처음 훈련 시킬 때 생각 나는구만? 그때도 이랬는데. 추억이 방울방울이다.
"끄응."
근데 역시 처음 해서 그런 건가. 다들 엉망진창이었다. 물론 조교들이 윽박을 지르는 일은 없었다. 다들 목소리만 클 뿐 친절하게 알려준다.
제식훈련을 한 다음에는 오후 체력 단련이 있다. 달리기랑 근력운동을 시킨 뒤에, 저녁 점호를 하고 퇴근시키면 오늘의 일과는 끝.
그것이 바로 성전군의 군생활이다.
* * *
"다들 첫날인데 수고 많았다! 앞으로는 이렇게 병사의 움직임과 전투 훈련! 그리고 체력 단련을 할 것이다! 알겠나!"
"네!"
"수고 많았다!"
조교가 인사했고.
"고생했다! 너희들은 이런 식으로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퇴근하도록!"
안나의 퇴근 명령을 마지막으로, 일과가 끝이 났다.
"크으!"
"오오오오!"
"야호!"
그대로 병사들이 훈련장 바깥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퇴소하는 예비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재밌니? 나도 재밌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이블아이로 감시를 해야겠군.
"이블아이."
ㅡ화르륵.
내 전용의 이블아이를 소환해서 퇴근하는 신병들을 따라갔다.
"뭐랄까! 이거 보람찬 하루였다네!"
"그러게 말일세!"
"술집으로 가자!"
신병들이 즐겁게 떠들면서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간 그들은 바로 술과 고기를 주문하고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크게 떠들었다.
"다나까로 끝낸다! 알겠나!"
"캬! 그런데 다크엘프들이 정말 예쁘더군!"
"훈련받을 맛 나겠어!"
"크하하하하!"
분위기가 아주 좋다.
"흐흐흐."
그것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저들은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다. 전부 자발적으로 왔다. 그런 상황인데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하고 훈련도 하고 돈도 벌고 퇴근까지 했는데 분위기가 나쁠 리가 있겠나?
무엇보다 첫날인 만큼 빡세게 하지도 않았다.
"좋아."
성전군의 병사라는 자긍심을 고취시켜야 한다.
내가 군대 경험이 좀 있어서 아는데, 한국군 병사들에게는 의욕은 커녕 애국심마저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군대의 좆같은 문화와 아무 의미 없는 행동. 비효율적이고 빡대가리 같은 방침과 명령. 노예 취급과 사회인들이 보내는 멸시. 그리고 2년이라는 긴 세월을 마주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게 된다.
군대라는 병신 빡통대가리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자괴감이 들게 된다. 그것은 사기 저하로 이루어지며, 애국심의 상실로 귀결된다.
결코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저들은 내 군대다. 한국군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내 군대를 확실하게 챙겨주는 마왕이다. 군인들을 안 챙겨주면 누가 싸우려고 하겠나? 병사들도 얻는 게 있어야 잘 싸우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자부심이다.
내가 좋은 집단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여기는 버러지 소굴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그 집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버러지 소굴에서 열심히 할 사람은 없으니까.
무적 강군을 만들도록 하자!
"안나님."
"네!"
안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늘은 첫날이었고, 그런대로 진행이 잘 된 것 같습니다만. 어땠습니까?"
"정말 기대가 되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다들 통제를 아주 잘 따르더군요! 저들은 이미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병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아주 그냥 의욕이 넘치는군?
"흐흐흐, 잘 생각하셨습니다."
"전투 훈련을 할 때가 기대되는군요!"
이제 걱정할 것은 없다.
"제가 참관하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내일부터는 안나님이 조교들을 잘 지도하면서 병사들을 키워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마왕님!"
이것으로 우리 마왕성의 전력이 늘어났다.
경사로세!
* * *
안나는 신병들을 잘 훈련시켰다. 이렇게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것은 이 세계에서 우리 군대가 유일하겠지. 그것이 바로 적들과의 차이가 된다.
아무튼 뭐 그리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큘스오빠. 슬슬 남작령에 이블아이 기지를 만들까 해."
"뭐, 뭐? 이블아이 기지?"
카르티가 그런 말을 했다.
"응. 지금은 모체가 되는 이블아이 수송선이 상공에 뜬 채 사방으로 이블아이를 보내고 있는 중이야. 근데 그걸 이제 남작성 꼭대기에 옮겨둘까 하는데, 괜찮을까?"
"아니. 그건 안돼. 이블아이 날라다니는 거 다 보일 거 아냐. 최대한 조심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어. 다른 곳에 만들자."
이블아이들을 위한 지상 거점이 필요하다는 건데, 여긴 안 된다.
"흐음... 그런가? 그럼 큘스오빠. 근처 산에 통신 요새를 만드는 건 어때? 통신 요새가 있으면 더 빠르게 첩보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그거 좋구만. 알았어. 그렇게 진행하자."
그럼 통신 요새를 만들어야겠군.
"좋아. 카르티. 달리 보고할 건?"
"조금 거리가 불명확하지만, 내륙 쪽에 있는 소영주들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게 메인이야!"
"아."
드디어 쳐들어올 준비를 하는 건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