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다구리 그마아안 # 6
* * *
"케륵! 드디어 또 전쟁임까!"
전쟁에 앞서 지형정찰을 나가자 부릴이가 완전히 신이 나서는 케룩거리며 말했다.
"너무 기대됨다! 케랴아아아아악!"
아주 그냥 의욕와 투지가 폭발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저주검을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복날이 난 모양.
"흐흐흐, 새끼. 그렇게 좋냐?"
"케륵! 전쟁이야 말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길! 좋을 수밖에 없슴다!"
"역시 대장군감이라니까!"
"케륵! 거기에 저주검도 쓰고 싶슴다!"
이렇게나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자신감이 차오른다. 일당백의 고블린 보병대가 있으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 뫙님. 투구 좀 벗어도 되겠슴까?"
"어. 부릴이 탈모."
"탈모! 케륵!"
바로 철투구와 철가면을 해제한 부릴이가 땀을 닦았다.
"케륵. 이 철가면 성능도 시험해 보고 싶슴다."
"야. 그건 시험할 일 없는게 제일 좋은 거야 임마."
"그렇긴 함다."
안면보호대는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다.
"아무튼 부릴아. 이번 상대는 강하다. 저번에 박살냈던 놈들의 두배정도 돼. 우리가 거기에서 다 박살 냈지? 그 상황인데 딱 놈들의 원군이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확실히 어려울 것 같긴 함다. 그래도 문제 있겠슴까? 마왕님의 천재적인 두뇌가 있다면 또 압승이다, 케륵."
"나만 믿어라."
부하들의 신뢰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 뭐 그렇게 마차 위에서 부릴이랑 노가리를 까고 있으니, 샤란이가 달라붙어 왔다.
"마앙님. 부릴이랑만 놀지 말구, 샤란이랑두 놀아여."
"흐흐흐, 그래야지."
어차피 거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샤란이랑 놀아주도록 하자. 바로 부릴이를 자기 마차로 보낸 뒤에 샤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샤아샤아."
"샤란이 좋아?"
"네. 샤란이 마앙님이랑 소풍 가는 거 너무 즐겁다에여."
"아이고, 샤란아. 이거 소풍 아니라 전쟁인데."
"샤란이두 전쟁 좋아해여. 샤아샤아!"
샤란이가 전사 흉내를 내면서 팔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내 식구들이 어느샌가 전부 전쟁광이 되었구나.
"그래! 우리 샤란이 나 잘 지켜주라!"
"네 마앙님!"
"샤란이만 믿어!"
"샤아!"
우리는 목적지로 향했다.
* * *
내륙 쪽에 있는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바로 픽시들을 풀어서 적들의 침투 루트를 확인해 보았는데.
"뭐야? 산사태가 일어났네?"
제일 큰 길이 산사태로 무너진 상태였다. 그것도 좀 거하게 산사태가 일어났는지 치우려면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 것 같다.
"이거면 길이 막힌 거 아닌가? 바네사님? 이거 치우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흐음... 치울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히긴 하지만, 치우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저쪽도 전쟁을 하려고 오는 것이니까.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만 치운다면 금방이겠지."
"그렇군요."
만리장성도 아니고 이런 걸로 길을 막을 수는 없겠지. 아무튼 길은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회를 할 수도 있지만.
"샤란아! 이 주변에 식물 좀 키워주라!"
"네 마앙님!"
여기도 유력한 충돌지점이다. 여러모로 식물을 피어오르게 하면 우리 측에 도움이 된다. 병사들을 숨길 수 있으니까.
ㅡ사라락.
그렇게 샤란이가 주변에 식물을 피어오르게 했다.
ㅡ뿌득뿌득.
덩굴이며 풀들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참 기분 좋지 싶다. 다큐멘타리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식물 자라는 거 계속 촬영한 걸 고속 재생해서 보는 거 같애.
"세리뉴. 픽시들은 주변 정찰 좀 더 해주라."
"알겠어! 자, 다들 가자!"
"야호!"
픽시들은 그저 즐거워할 뿐이다. 힘차게 날아오른 픽시들이 폭유 젖가슴을 덜렁대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진짜 돌아볼 곳이 너무 많다.
"부릴아. 너도 애들 끌고 가서 주변 좀 정찰해 봐라. 그리고 니 생각에 여기서 뭘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뭐 그런 걸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해."
"케륵케륵. 알씀다. 스스로 판단해보라는 말씀 아님까?"
"바로 그거지!"
"케륵! 그럼 가겠슴다!"
ㅡ처억!
경례한 부릴이가 튀어 나갔고 나 역시 적당히 주변을 돌았다.
그러고 있으니.
"샤아! 마앙님!"
샤란이가 날 부르면서 뛰어왔다.
"어. 샤란아. 무슨 일이야?"
"마앙님! 이거 본다에여!"
"이거?"
보니까 무슨 투구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 투구를 거꾸로 잡고, 안에 무슨 식물을 심어서 화분처럼 만들어 놓은 상태.
"뭐지?"
"만드라고라에여!"
"뭣!"
아!
만드라고라!
뽑으면 비명을 지르는 위험한 식물이다!
"그거 하나 있는데!"
아주 옛날에 하나 구해서 지금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거 언젠가 전투에 써먹어 보려고 계속 키우고 있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지.
"이야! 이걸 또 발견하네! 샤란아! 가져가서 키우자!"
"네 마앙님!"
"흐흐흐, 운이 좋았구만? 샤란이 잘했다."
"샤아샤아."
좋은 걸 찾은 샤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가만 있어 봐."
어쩌면 이번 전쟁에서 만드라고라를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적들은 여태까지 상대했던 놈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 이기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만드라고라로 적 기병을 친다면..."
픽시들을 바로 보내기 어려울 때. 그리고 라미아들을 돌격시키기 어려울 때. 세리뉴를 시켜서, 저 높은 곳에서 만드라고라가 심어진 화분을 떨어뜨린다면?
ㅡ꺄아아아악!
분명 괜찮을 것이다!
이건 말 그대로 마법적인 아이템이나 다름없다! 설령 적 기병들이 마갑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만드라고라를 이용한다면 먹힐지도 몰라!
"이거 괜찮구만!"
좋다.
이번 전투에서는 만드라고라를 한번 써먹어 봐야겠어.
"화분에 잘 키우자, 샤란아."
"네 마앙님. 아, 그런데 마앙님. 샤란이가 재밌는 거 만들었다에여."
"만들어?"
"샤아. 따라와여."
ㅡ스윽.
샤란이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대체 뭘 만들었길래 그러는 걸까? 그렇게 따라가니 아까 그 산사태 지역에 도착했다.
"마앙님 이거에여."
"무슨... 어?"
저쪽을 본 순간.
ㅡ스르륵.
수풀 사이에서 뭔가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몸을 일으켜? 그것은 뭔가 신기한 식물이었다.
그 식물의 키는 2m쯤 되었는데, 줄기가 좀 굵었다. 하지만 나무 같은 느낌은 아니다. 말 그대로 초록색 식물 줄기가 확대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식물의 머리는 마치 살이 차오른 파리지옥의 그것 같았다. 정리해보자면 이것은 뭔가 아주 흉악하고 무서워 보이는 키 2m의 파리지옥이다.
파리지옥?
"샤, 샤란아. 이건?"
"마침 보여서, 마력으로 좀 크게 만들어 봤다에여. 마앙님? 이런 거 있으면 방해? 잘될 것 같아여. 샤아."
"그러니까 마력으로 이런 걸 만들었다고?"
"네 마앙님."
ㅡ고오오.
눈앞에 있는 이 미친 파리지옥은 아무리 봐도 식물 따위가 아니라 '마물'처럼 느껴졌다.
이걸... 마력으로 만들어?
몬스터 군단.
진짜 몬스터 군단. 이젠 진짜로 괴물까지 부리는 거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이 차오른다...!
"샤란아! 이거 능력은!"
"보여드릴게여! 샤아!"
샤란이가 기합을 내뱉은 순간!
ㅡ쩌억!
아가리를 크게 벌린 거대 파리지옥이, 그대로 허리를 숙이고는.
ㅡ터엉!
아가리를 강하게 닫았다!
"와...!"
이 강한 소리를 좀 들어보소! 아가리 닫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바로 파리지옥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이거 왜 이렇게 딴딴해!"
이거 엄청난데!
"샤란아! 샤란이 잘했다! 아주 잘했어! 고마워! 이런 걸 만들어줘서!"
"마앙님이 좋아할 줄 알았어여. 이걸루 적 병사들 죽인다에여!"
"가능할 것 같아!"
이 자체만으로는 크게 쓸모가 없지만 지금 이걸 제대로 활용할 방법이 내 머릿속에서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더! 더 만들 수 있어!"
"샤아! 마력만 있으면 가능하다에여!"
"대체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있었던 거지?"
"몰라여. 갑자기 생각나서 해봤어여. 샤아."
어쩌면 샤란이의 능력은 아주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기괴한 식물들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병기 생산이 아닌가.
ㅡ쩌업.
파리지옥이 다시 아가리를 벌리고는 허리를 세웠다. 진짜 엄청나군. 이런 무서운 식물이 존재할 줄이야.
"타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완전 근접 타워 아닌가? 그 타워디펜스 할 때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잠깐.
근접 타워가 있다면, 원거리 타워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샤란아."
"샤아?"
"혹시 독이나... 유해한 포자를 뿜는 식물이라던가. 이렇게 근접 공격 말고 원거리 공격이 되는 식물 같은 건 없을까?"
내가 말하고도 참 억지지 싶다.
"샤아."
하지만 샤란이는 고민하는 것처럼 입술을 쓸었고.
"생각해보니, 몇 개 가능할 것 같아여. 마앙님."
"그럼 만들어보자!"
"그런데 원거리 공격은 어떻게 한다에여?"
그건.
"그거. 그거 좀. 그런 거 안 될까? 약간 식물들은 자기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곤 하잖아?"
"샤아."
고개를 끄덕이는 샤란이.
"그러니까 거기서 착안해서... 뭔가 큰 식물이? 화살촉처럼 생긴 씨앗을 강하게 쏘아내는 거지. 이렇게 푸슛! 하고 씨앗을 쏘아내는 거야. 그 힘이 강해서 이게 살을 관통할 정도로. 어때?"
즉석에서 생각한 것이지만.
샤란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샤아... 샤아! 뭔가 생각이 나는 것 같아여! 마앙님!"
"오오! 진짜!"
"한번 만들어 볼게여!"
"그래! 그렇게 해주라!"
ㅡ파앗!
순간 샤란이가 벌 아저씨처럼 질주했다. 그리고는 저 앞에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 뭔가를 찾을 생각인가 보다!
"아니, 근데 이건 확실히 쓸모가 있어."
ㅡ...
앞에 서 있는 거대 파리지옥을 보았다.
농담이 아니다. 샤란이가 이런 종류의 괴악하고 강력한 식물을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더욱 개량할 수 있다면. 이건 진짜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길목 옆에 이런 걸 만들어두고 공격을 해도 될 테니까. 물론 아무리 그래도 갑옷에는 소용이 없겠지만, 이런 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마물."
말 그대로 마물을 부리는 것도 가능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