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다구리 그마아안 # 8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ㅡ그르르르륵.
대지를 뚫고 올라온 마계의 식물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든다. 식물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행동. 놈들은 꽃잎이 마치 머리라도 된 양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울음소리를 흩뿌렸다.
"흐하하하하하!"
나 역시 그들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 보니 제법 장관이다. 산 중앙에 나 있는 길. 그 길의 양옆으로 저 마물들이 쭉 늘어선 상태였으니까.
그야말로 디펜스 게임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누가 됐든 이 길을 건너간다면, 결코 안전하지 않겠지. 제발 이것에 실전성이 있기를 빌겠다. 있다면, 앞으로 산 같은 곳을 방어하는 게 더 편해질 테니까.
ㅡ부웅!
그때 정찰을 갔던 세리뉴가 돌아왔다.
"어, 세리뉴. 좀 어때?"
"불이 보여. 지금 다들 야영하고 있는 중이야."
"거리는?"
"조금 먼데... 아마 아침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오후쯤에 도착할걸?"
"그럼 이쪽에서 공격하는 건 무리겠군."
"응! 그런 것 같아! 그냥 평소처럼 기다렸다가 치는 게 좋을 거야!"
세리뉴가 신이 나서는 소리쳤다.
"이야. 우리 세리뉴 이거 그런 판단도 할 줄 알아?"
"뭐어. 이제 나도 짬이 있으니까. 아, 녀석들 병력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아. 한 200명 정도?"
그 정도면 많은 건데.
하긴 뭐 평소보단 작은 숫자니까. 저 정도면 걱정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헬슨 남작이 강했던 거지.
"내가 다 파악하고 왔어."
세리뉴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흐흐흐, 우리 세리뉴 꼼꼼하게 잘 체크 했잖아?"
"그치, 앗, 아앙!"
그래서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왼팔로 세리뉴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오른손 검지를 이용해 세리뉴의 젖꼭지를 꾹꾹 찔러줬다.
ㅡ꾹꾹.
"응으으읏♥ 젖꼭지 찔리는거어엇♥ 기분 좋아아앗♥ 아응♥"
"이렇게. 이렇게 해주면 좋아?"
"으으응...♥"
ㅡ꾹꾹.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꾹 찔러주고, 그대로 슥슥 문질러준다. 오직 옷 하나만으로 가려진 상태이기 때문에 세리뉴의 젖꼭지가 단단하게 선 것이 다 느껴졌다.
"빨리... 젖꼭지 말고 잠지도 찔러줘♥ 잠지도 찔리고 싶어♥"
"어. 작전 중엔 안돼."
"아 뭐야!"
바로 짜증을 부리는 세리뉴를 놔줬다.
"나빴어!"
얼굴을 붉힌 채 삐졌다는 듯이 소리치며 옷을 추스른다. 그런 세리뉴를 잠깐 만져주면서 위로해줬다.
"가면 잔뜩 해줄 테니까. 지금은 기다려."
"으, 으응... 그럼 촉수 플레이도 해줄 거야?"
"어떻게 해줄까?"
"입이랑 젖꼭지랑 잠지랑 애널이랑 다 찔리고 싶어."
이 변태 같으니라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세리뉴가 말했다.
"좋았어! 아무튼 픽시들은 쉬어도 되는 거지?"
"어. 애들이랑 푹 쉬어라. 내일은 작전대로 말들 죽일 준비 하고."
"응!"
바로 픽시들을 보냈다.
"부릴아. 내일 오후쯤에 전투가 일어날 것 같다."
"케륵. 행군해서 피곤한 놈들 상대하면 되는 검까? 그럼 좆밥임다. 케룽케룽."
"확실히 그렇지."
행군이라는 건 체력을 많이 잡아먹는 행위다.
"부릴이 너도 가서 푹 쉬어라."
"알씀다! 케륵!"
내일이 기다려지는군.
* * *
"적 관측 완료! 다들 오고 있어, 마왕아! 마일러 남작군 곧 지옥으로 진입 예정!"
"수고했다, 픽시야!"
픽시의 보고를 듣고.
"멜러자 남작은 다른 쪽 방향에서 오고 있어. 아직 국경 가까이도 못 온 상태야. 추세를 보면 우리 영지에서 모이려고 했을 확률이 높아."
"그럼 모조리 각개격파를 해줘야겠지."
카르티의 보고도 듣는다.
이제 얌전히 각개격파를 즐기면 된다. 여기서 마일러를 깨부수고 멜러자까지 부순다. 오간브리트 남작은 좀 더 늦는다고 하는데, 그건 지금 신경 쓰지 말자.
"좋아."
신병기인 플랜트 타워들을 배치한 상황이니 만드라고라는 다음 전투에서 사용할 것이다.
전술은 간단하다.
헬슨을 처치했을 때처럼 길에 진입한 놈들의 말들을 라미아로 무력화시키고 전투를 시작한다. 말들이 발광함과 동시에 전방에 고블린 보병대를 배치.
그렇게 놈들이 전투를 걸어오면.
"플랜트 타워의 차례지."
길 옆에 쭉 심어 놓은 플랜트 타워들.
이것들이 활약할 것이다.
우리 보병대와 적 보병들이 충돌하는 즉시 파리지옥이 일어날 것이고, 그 뒤에 숨겨둔 볼트 플랜트들이 일제히 일어나 씨앗을 쏠 것이다.
심지어 이 플랜트들은 꽃 위에 위장까지 해놓은 상태지. 적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끝까지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전방에서 보병대가 버텨주기만 해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양옆에서 공격해오는 식물 타워의 맛 좀 보라지.
그 상태에서 천사들을 출격시키면 끝이다.
"케룩. 이번엔 정면에서 상대하는 검까? 상당히 오랜만임다."
"어. 그래도 걱정마라. 너희들의 장비 수준은 극단적으로 좋아진 상태니까. 안 다쳐."
"케륵케륵. 그렇슴다. 거기에 마력으로 힘까지 강해졌슴다. 이건 무조건 이김다."
고블린들은 이제 중장보병이다. 기사처럼 철을 두르고, 방패 역시 철로 보강된 것을 쓴다.
이런 보병대열을 뚫는 것을 쉽지 않아.
"크하!"
ㅡ파앗!
바로 마력을 집중시키며 양손을 치켜들었다. 그리하여 내 손에 마력의 구체가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안개처럼 만들어 내 부하들에게 뿌려줬다.
"케륵...!"
"캬라라락!"
전쟁하기 전에 마력 버프는 걸어 줘야지!
흥분한 병사들이 빠르게 호흡하면서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고 있으니.
마일러 남작군이 길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 위에서 직접 소환한 이블아이를 조종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기수, 보병, 수송대, 보병, 기병 순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장 상태? 평범한 수준이다. 소영주 군대의 장비가 좋을 리 없지.
ㅡ척척척.
남작군은 기수의 행진에 따라 천천히 전진했다. 이미 그쪽 길에 플랜트 타워가 설치된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타워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건 교전이 일어난 다음에 하도록 하자.
ㅡ꿀꺽.
적병들이 점점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다.
수송대. 적 보급마차부터 노려야 한다.
"픽시야."
"응...!"
"가서 쥬리아한테 전해. 수송대 칠 각 나오면 먼저 공격하라고. 그 신호에 맞춰서 싸울 테니까."
"알았어...!"
결의에 찬 픽시가 빠르게 날아간다.
말부터 처리하고 시작하자.
얼마나 지났을까.
ㅡ캬하아아아악!
드디어 라미아 기병대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히히히히힝!"
"히이잉!"
라미아들이 포효하자 패닉 상태에 빠진 말들이 발광한다.
"어, 어! 뭐야!"
"캬하아아아악!"
"괴물이다아아아아앗!"
ㅡ퍼어어억!
그와 동시에 튀어 나간 라미아 중기병대가 행군 대열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찔렀다! 놈들의 수송대를 강타한 것이다!
"캬하아아악!"
아주 용맹하기 짝이 없다! 라미아들은 하나 같이 거창돌격을 하고는, 목적을 완수하자마자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전장을 유린했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이게 뭐야아아아아앗!"
"캬하아아아악!"
기습을 당한 탓에 속수무책이다. 말과 병사들이 날뛰었다. 저항을 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라미아들은 현재 중무장을 한 상태. 공격을 해도 먹히지 않고, 덩치 차이가 있는 탓에 되려 역공을 당하고 쓰러진다.
지금이다!
"부릴아! 길을 막아라!"
"케르으으으윽!"
바로 고블린 중장보병대를 투입한다!
ㅡ우수수!
수풀 속에 숨어있던 나의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내리막길을 타고 길로 내려가 진형을 만들었다.
"어, 어어?! 저건 뭐야!"
"뒤는 대체!"
"신경 쓰지 마라! 적습이다! 전투태세! 전투태세! 뒤쪽의 일은 뒤쪽 부대에게 맡겨라!"
선두 부대 놈들의 부사관이 소리쳤다.
"크읍!"
그러자 대충 상황이 수습된 것인지 놈들도 창과 방패를 겨누면서 진형을 만들었다. 이번 녀석들은 그래도 혼란 상태에서 금방 벗어났다. 물론 선두에 있던 놈들 한정이지만. 아직도 뒤는 혼란에 빠진 상태다.
아무튼 나는 바로 고블린 보병대를 전진시켰다.
"리리엘. 신호하면 날아오르십시오."
"알겠다! 또 적 보병들을 파괴하면 되겠나!"
"바로 그겁니다."
녀석들이 내 고블린들과 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천사들이 그 뒤쪽에 흑염탄을 날릴 것이다. 그것으로 놈들은 붕괴될 것이고, 무작정 뒤로 도망치겠지.
그때쯤 라미아들은 이미 길을 열어준 상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플랜트 타워일 뿐이니까.
* * *
"젠장!"
마일러 남작군에서 오랫동안 복무를 해온 부사관, 바릭이 욕설을 내뱉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 뒤쪽에서 기습이 들어온 모양이다.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했지만, 마침 눈앞에 적병들이 나타난 상태. 매복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적들이 전진해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머리를 돌리는 건 자살행위. 뒤쪽 일은 후방 부대에게 맡기고 일단은 저 보병대와 싸워야 한다!
"멍청이들아! 방패를 들고 창을 겨누어라! 전투 실시다!"
"바, 바릭님!"
"뭐!"
"뭔가 이상합니다! 저들을 보십시오!"
"뭐?"
그 말에 바릭이 다시 고개를 들어 적병들을 보았다. 딱 봐도 빡쎈 갑옷을 입고 있는 중장보병들이다. 이기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지금 충돌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도륙당할 뿐이다.
그런데.
"어?"
얼핏 녀석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뭐랄까, 이상했다.
"새? 모기?"
마치 긴 부리가 달린 것 같은 철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자 무엇인지 모를 오한이 들면서 공포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의 모습이 전부 똑같다. 모조리 다 통일된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저 중장보병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거기에 철가면 까지 똑같다.
"위험해."
바릭은 그리 생각했지만, 지금은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후방부대가 상황을 정리하면 어떻게든 후퇴할 수 있을 것이다.
선봉 부대는 궤멸당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순간.
ㅡ케랴아아악!
ㅡ케르으으으으윽!
ㅡ케랴아아악!
적 중장보병대가 마치 괴물 같은 함성을 내지르더니.
ㅡ파앗!
강철 창을 앞세운 채로 일제히 돌격을 해왔다!
그것도 고속으로!
"아닛?!"
바릭은 경악했다.
저 중무장을 한 보병들이, 빠른 속도로 일제히 땅을 박차 달리면서 돌진을 실시했다. 대체 얼마나 훈련을 받은 것이지? 저런 장비를 장착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대열을 맞추며 고속 돌진을 감행하고 있다.
저것과 충돌한다면... 1선은 완전히 박살난다!
"방패를 들어! 방패를 들어라!"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겁에 질린 선봉 병사들이 창을 버리고 방패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ㅡ콰아아앙!
ㅡ쿠구우우웅!
ㅡ파칙!
적 중보병대와 충돌함과 동시에.
"끄아아악...!"
"헉!"
"끄으윽!"
선봉 병사들의 방패가 박살이 나며, 그대로 뚫고 들어온 창에 몸통까지 관통되었다.
"케륵!"
그제서야 바릭은 적들의 정체를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초록색 피부를 지닌 괴물들이 악마 같은 철가면을 쓴 채 인간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괴물...!"
저들은 괴물들의 군대였다.
ㅡ파앗!
동시에 저 하늘에서 불길한 색채가 쏘아진다. 날아오른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공포스러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천사까지...!"
무언가 잘못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