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다구리 그마아안 # 12
* * *
"큰일이야, 큘스오빠!"
두 번째 소영주를 쓰러뜨리고 정리를 마친 뒤에 간단하게 파티를 열어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카르티가 다급하게 보고를 해왔다.
"어. 나의 귀여운 여동생 카르티? 무슨 일인데."
"오간브리트 남작이 국경을 넘었어!"
"뭐랏...!"
이게 무슨 일이야!
이건 조금 당황스럽다. 녀석이 국경을 넘었다니. 그렇다는 것은 내 특기인 외길에서 기습하기 전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산맥으로 이루어진 국경지대를 넘어가면 남작성까지 전부 평지다. 따라서 매복을 할 곳도 없고, 병사들을 숨겨둘 곳도 마땅치가 않다.
말 그대로 정면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녀석들이 빠르게 기동했나 봐? 카르티?"
"응! 세 남작중에 제일 빠르게 움직였어! 상황을 해석해보자면 늦게 출발한 만큼 속도를 맞추려고 강행군을 한 모양이야!"
"그럴 필요 없는데! 하, 이 새끼들!"
이런 까다로운 자식들 같으니라고!
상황이 이상하게 물려버렸다.
"후우!"
위험하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 일어나 버렸다... 그래. 뭐 좋다 이거야.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갈 거라고 여기는 게 오만이지. 오만은 버리자.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대응을 해야겠지.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그것이 나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카르티. 녀석들 숫자는?"
"일단 앞의 두 소영주보다 병력이 조금 더 많은 정도야."
대충 0.5배 정도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다는 것은 대충 한 300명의 병력을 평지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300명 정도라고 보면 되겠고."
이놈들을 평지에서 잡는다고?
아니면 마을이나 남작성에서 수성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전부 처음 하는 일이다. 내 병사들의 숙련도가 너무 딸린다. 경험이 없는 전장에 내보내는 건 신중해야 한다.
"흐음."
어떻게 하지?
"쿨스 오빠. 침착해. 큘스오빠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고민하고 있으니 카르티가 잔잔한 어조로 그리 말했다.
"당연하지. 이것조차 못 이기면 그건 군주의 자격이 없어. 일단 카르티.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내가 만약 성에 틀어박힌다면 오간브리트 남작이 주변 마을이나 도시를 죄다 약탈하겠지?"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겠지."
역시 약탈은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영지가 황폐화 될 거야."
내가 수성을 한다면 당연히 그만큼 약탈이 일어나게 된다. 약탈이 일어나면 성녀의 민심이 떨어진다. 적들에 대해서 분노를 하기는 하겠지만, 정작 성녀가 한 것은 성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해석될 테니까.
세금을 냈는데 지켜주지 않은 것이다.
민심은 절로 떡락.
그리고 영지민들이 재산과 기반을 잃는다면 세금 역시 크게 감소할 것이다. 세금은 아주 중요하다. 전쟁과 정복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마왕으로서 영지민들의 재산 역시 지켜야 한다. 마왕이라서 사악하게 굴고 싶었는데, 결국 나를 위하려면 영지민들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오케이. 수성은 포기."
마찬가지로 마을 하나를 잡고 거기서 농성하는 것도 포기다. 쿨하게 생각하자, 쿨하게. 여기서 성에 틀어박혔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회전을 할 수밖에 없겠어."
차라리 바깥으로 나가서 박살을 내주는 수밖에.
기습도 할 수 없고 정면에서 힘싸움을 해야겠지만 내겐 능력이 증명된 부하들이 많이 있다. 어렵긴 해도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또... 인간군대도 있지."
100명이 채 안 되는 숫자지만, 그들과 내 부하들을 합친다면 숫자로는 이미 압도다.
좋다.
여기선 인간군대를 사용해보도록 하자. 안나가 보병방진 훈련만큼은 아주 빡세게 시켰다고 내게 매일 보고했으니까.
단순히 방진을 이룰 줄 아는 병사들만 있어도 편해진다. 그들을 모루로 삼고 이쪽에서 공격을 하면 될 테니까.
"카르티. 루미카랑 성녀님한테 내 말 좀 전해줘."
"응!"
"안나시켜서 병사들 끌고 나오라고 해."
드디어 인간군대와 마물군대가 연합을 하겠군.
가슴이 뛴다.
이것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인가, 아니면 해본 적 없는 도전에 대한 불안감인가.
"..."
그러한 감정을 집어삼키고, 나는 내 감정을 기대라고 규정했다. 불안에 떠는 마왕을 누가 따르겠는가.
* * *
마왕의 부재시 마왕성은 성녀가 관리한다.
성에는 그녀보다 고참인 여인들이 더 많았지만, 그녀들은 관리자의 위치에 서 본 경험이 없었다. 성녀만큼 내정을 잘하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오간브리트 남작이 국경을 넘었다라."
"그런 상황이야."
"알겠다."
소식을 전해 들은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간브리트 남작이 국경을 넘었으니, 안나를 출병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마왕은 수성을 할 생각이 아니라 회전을 벌일 생각이다.
"바로 준비하지. 위치는?"
"지도를 꺼내줘."
대화는 무기질적이고, 직설적이었으며, 딱딱했다. 하지만 그만큼 효율적이었다. 카르티와 성녀는 지도를 앞에 두고 서로 필요한 말만을 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ㅡ파닥파닥.
이야기를 마친 카르티가 떠나갔다.
"흐음."
성녀는 작전을 다시 한번 검토했다. 문제는 없다. 병력을 보낸다면, 평소처럼 마왕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훗."
그나저나. 다른 두 명의 남작을 피해 없이 박살 내다니. 역시 마왕은 대단하다. 가진 세력이 작을 뿐이지 그의 능력은 이미 몇 번이고 증명되었다.
성녀는 그를 따르고 있다.
그는 우월하고 강한 수컷이다. 결국 이 세계의 모든 여성들과 토지를 지배할 운명을 지닌 수컷.
그것을 생각하니 하복부가 뜨거워지면서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과거엔 여신을 섬기던 성녀였지만, 이젠 누굴 섬겨야 하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그녀가 섬겨야 될 존재는 마왕뿐인 것이다.
"레아. 안나를 불러오거라."
"알겠습니다. 성녀님."
곧 레아가 안나를 불러왔다.
"안나. 마왕의 명령이다. 부대를 이끌고 지정된 위치로 가거라."
"설마...! 적들이 쳐들어온 것입니까!"
"그렇느니라. 적들 중 일부가 국경을 넘어섰으니, 가서 지원을 하거라."
"알겠습니다!"
기대감에 찬 안나가 힘차게 대답했다.
드디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다. 오늘을 위해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능력을 증명한다면 더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녀와 안나는 지도를 앞에 둔 채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 * *
"빨리빨리 움직여라! 출병이다!"
"행군이다, 행군! 전원 위치로!"
다크엘프 부사관들이 사납게 소리쳤고, 병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전투복을 챙겨 입고 군장을 싼다. 그리고 갑옷을 두르고 무기를 챙겼다.
ㅡ척척척!
그동안 여러 번이나 훈련을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곧 행군 준비를 마친 병사들이 연병장에 모였고, 안나 중대장이 소리쳤다.
"전쟁이다!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 적들을 깨부술 것이다! 알겠나!"
"네!"
"알겠나!"
"네에에엣!"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제 전쟁을 하러 간다는 것을. 계약서를 쓸 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당황한 병사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면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행군 실시! 1소대부터 이동한다!"
ㅡ척척척!
병사들의 사고속도보다 빠르게 행군이 시작되었다. 1소대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정말로 전쟁을 하러 가는 것인가? 병사들 중 몇몇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전쟁이라니...!"
전쟁을 하게 되면 당연히 그에 대한 수당도 받게 된다. 심지어 전리품을 챙길 수도 있고, 공을 세우면 상을 받을 수도 있다.
전쟁은 기회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병사들에겐 실전경험이 없다. 훈련은 많이 했지만, 경험이 없으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미 성녀님의 군대가 먼저 싸우고 있는 중이니까! 우리는 예비대다! 직접적인 전투는 본대가 할 것이다!"
"아...!"
아름다운 다크엘프 부사관이 소리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도 겁을 먹은 자들이 있나!"
"아닙니다!"
두렵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근거리기도 한다. 성녀님을 위해 싸울 기회다. 적들은 분명 천사를 따르는 사악한 무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정의를 행하는 일이 될 터.
성녀님의 말씀대로 분명 사후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 * *
"큘스 오빠! 안나가 출병했어!"
"좋아.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지?"
"응!"
역시 카르티가 있으니 통신이 빠르게 된다. 이런 게 있는데 질 수가 있나. 아무튼 안나가 도착한다면 바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들은 오간브리트 남작의 뒤를 쫓는 중이다. 거리를 벌리고 움직인 탓에 아직 눈치를 채진 못했다. 녀석들은 계속 행군하는 중이고,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안나의 보병대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경계하겠지.
그리고 그 틈에 우리들이 녀석들의 뒤를 잡으면, 놈들은 앞뒤로 포위된 상태가 된다. 우선적으로 사기가 떨어지겠지.
그 상황에서 타락천사들을 이용해 대열을 붕괴시키고, 픽시들로 기병들을 박살 낸다면 결국 보병대 보병 싸움이 된다.
진형전으로 가면 우리가 질 리가 없어. 게다가 우리에겐 라미아 기병대들이 있다.
"세리뉴. 이번에도 픽시들이 기병들을 무력화 시켜야 돼."
"응! 우리만 믿어! 이젠 너무 익숙한 일이니까!"
참 믿음직스럽다.
"리리엘. 마찬가지입니다. 적들의 보병진형에 흑염포를 갈겨주시면 됩니다."
"알겠다."
리리엘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자, 그럼.
첫 회전을 해보자.
이놈들까지 잡는다면 나는 총 다섯 명의 남작을 잡아먹은 셈이 된다. 남작 다섯을 깨부술 정도라면 제법 강한 것이 아닌가? 승리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 성녀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것으로 천사 vs 백작 vs 성녀라는 삼파전 형태가 완성된다. 이걸 바탕으로 천사와 백작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최종적으로 내가 모든 것을 잡아먹도록 하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