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311화 (311/544)

〈 311화 〉 여군주 베라 # 1

* * *

라미아들에 대한 건 예쁘고 멋진 다크엘프들이 전부 설명하기로 했다.

"들어라!"

일단 안나의 인간 보병대에는 다크엘프들로 이루어진 선임 부사관들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다. 아무리 그래도 부대를 굴리는데 쌩 이등병들만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그래서 군생활 경력이 있는 다크엘프들을 붙여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략이 있는데, 일단 다크엘프들은 신비한 존재다. 그리고 아름답다. 거기에 강인하고 친절하다.

그런 속성들이 결합된 결과, 인간 병사들은 다크엘프 부사관들을 아주 잘 따르게 되었다. 솔직히 나였어도 다크엘프 눈나들이 뭐 잘 가르쳐주면 추종했을 테니까.

"저 뱀 여인들은 라미아라는 종족이다! 우리 다크엘프들이 부리는 숲의 용병들이지! 이번 전쟁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러온 것이다!"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 이에 대해서 질문 있는 병사?"

선임 부사관인 뷔나가 아주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병! 제! 임! 스! 질문 있습니다!"

"말해라, 제임스."

"라미아들이 위험하진 않습니까! 몬스터들이 계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제임스. 하지만 괜찮다. 라미아들은 계약을 이해할 정도의 지성을 지닌 종족이니까."

"그렇습니까!"

그걸로 병사들의 동요가 가라앉았다.

애초에 천사들이야 뭐 귀순자라는 걸 알고 있는 상태고. 픽시들 역시 신성한 존재라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직 고블린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지.

이종족 부대를 마주쳤지만, 그동안 이걸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작질을 해온 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흐흐흐."

이러니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단 말이지.

"안나님. 따로 문제 사항은?"

"그게. 이종족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반대로 우리가 싸우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 같습니다."

"가서 말하십시오. 이번 전투는 사이딘 백작의 세력과 치른 것이라고."

이런 건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한다.

누구랑 왜 어째서 싸우는지 모르는 병사들은 그저 바보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무지성으로 싸우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전쟁을 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이딘 백작은 우리의 성녀님을 강제로 납치해 아내로 삼고, 성녀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나에게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천사가 쳐들어온 것을 핑계로 힘을 합치겠다면서 패악질을 부린 것이지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 인간끼리 싸운 겁니다. 알겠습니까?"

"네...! 그리 설명하겠습니다!"

감격한 표정을 지은 안나가 바로 뛰어가서 병사들에게 정훈교육을 실시했다. 이거면 병사들 사기랑 의지 관리는 다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정신무장을 했으면 물질적으로도 무장을 시켜 줘야지.

"지금부터 전리품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승리를 했으면 그만한 포상을 줘야 한다. 인간병사들 역시 훌륭하게 모루의 역할을 수행했으니, 짭짤하게 한몫 챙기게 해줘야지.

갑옷이든. 옷이든. 죽은 적병들의 소지품이든.

그 모든 것이 다 환장할 만큼 큰 값어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한 포상 아래 병사들의 불신감은 사라졌다. 뭐가 됐든 현물이 들어오면 기쁘고 행복하기 마련이니까.

* * *

공식적인 대승리다.

거리에는 승전 소식이 파다하고, 이번에 직접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이 사방팔방에서 떠들어댄 탓에 영지 전역이 활기차다.

나는 소영주 셋이 지니고 있던 모든 물자들을 먹어 치웠다. 그 값어치는 어마어마하다. 영주들이 야금야금 모아왔던 군수품을 한꺼번에 잡아먹은 것이다!

물론 아쉽게도 헬슨처럼 옆집도 아니고,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서 배상금을 받는 것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백작도 이젠 쉽게 날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좋아."

그런 생각이 든 김에 지하감옥으로 내려갔다.

가서 보니까 켈스론 자작은 완전히 멸치가 된 상태였다. 사이딘 백작의 명령으로 와서 헛소리를 하다가 지니고 있던 살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되었지.

"좋은 아침이다. 켈스론."

"아, 아아...?"

"마일러. 멜러자. 오간브리트. 세 명의 남작군을 분쇄했다. 이제 백작이 내밀 카드도 없지 않나?"

"뭐랏!"

그 말에 켈스론이 깜짝 놀랐다.

"설마 그들을 다 이길 줄은...!"

"원래는 당연히 우리가 질 줄 알았다고 했지."

"그, 그렇소. 어떻게 혼자서 세 명의 영주들을...! 말도 안 돼!"

"사실이다. 그래서 말인데. 백작이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놈은 백작의 심복이다.

얘를 이용하면 백작의 판단이라던가 생각 같은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지.

"다, 당연히 다시 협상을 하러 올 것이오... 이젠 대등한 상대이니, 내가 했던 것처럼 일부러 행패를 부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제대로 조약을 맺으려 할 것이오."

"흐음."

동맹 협상이라.

"제발... 제발 밥 좀 주시오... 지금 먹는 것만으로는 너무 배고파서 살 수가 없소..."

몸무게가 거의 반의 반이 되어버린 켈스론이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죽으면 곤란하니 가끔 특식 정도는 넣어주자.

"간수."

"네. 마왕님."

간수는 다크엘프였다.

"이놈에게 콩이 잔뜩 들어간 죽을 대접해줘라."

"알겠습니다."

"콩은 싫어엇...!"

배가 불렀구만?

* * *

대승리를 거둔 이후. 우리들은 물자를 정리하고 군수품을 비축하는 한편. 프로파간다도 제작해 퍼트리고 내 부하들 복지도 향상시켜줬다.

그러다 보니 이젠 다들 던전에서 다시 살라고 하면 대체 거기서 어떻게 사냐고 말할 정도로 도시에 익숙해져버렸다.

"마왕님. 들어보세요. 인간들 상점이 얼마나 휘황찬란하던지."

"즐거웠어요."

"응! 맞아! 너무 재밌었어!"

쥬리아부터 시작해서 네크리. 그리고 세리뉴까지. 얘들한테도 이제 돈을 주기로 했고, 쉴 때는 분대 단위 외출까지 허가해줬다. 그러고 있으니 다들 나가서 뭐 사 먹고 장신구 같은 것들을 사기도 하면서 즐거워하더라.

"흐흐흐, 그렇게 좋았어? 다들?"

"네!"

"네!"

"응!"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근데 이건 여자들이라서 그런가? 라미아, 다크엘프, 픽시들은 나가서 노는 걸 좋아했지만, 나머지 고블린과 코볼트 임프들은 조금 시큰둥한 모양이었다.

얘네들은 그냥 내무반에서 퍼 자면서 노는 걸 더 좋아하더라. 그냥 돈보다는 맛있는 것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짜 몬스터 천국이다, 몬스터 천국. 살면서 영지가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볼 줄이야."

"좋지 않습니까? 레이카님?"

"좋긴."

"보세요. 몬스터들이랑 인간들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좋은 것이지요."

"언뜻 보면 좋은 말 같은데, 사실 그 몬스터들이 인간들 죽이고 있지 않냐?"

"흐흐흐, 그건 그렇지만요."

ㅡ스윽.

말을 하던 레이카가 내 책상 위에 엉덩이를 올리고 앉았다.

"뭐...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건가?"

"그렇죠. 우리는 성장했습니다. 어지간한 남작들은 비비지도 못하니, 그 윗단계 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근데 백작에겐 못 비비니 아직 안심은 일러요."

"그런가... 야. 그런데..."

레이카는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침대로 가자고요?"

"몰라 씨발."

그럼 가야지.

* * *

켈스론의 말대로 백작은 다시 사자를 보냈다.

"흐음."

그런데 이번에는 백작뿐만이 아니라 다른 군주의 사자도 왔다.

ㅡ절그럭.

여기사였다.

갈색의 머리칼을 지닌 쭉 빠진 여기사.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는 제법 매혹적이었고, 절도 있는 동작에서 보이는 예의와 충성심은 내 소유욕을 자극했다.

전반적으로 바네사랑 비슷한 스타일의 여기사라고 할 수 있다. 마나와 육체를 단련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섹시해진 그런 여성.

"여군주 베라님께서 절 보내셨습니다, 장군."

"여군주 베라."

나는 나를 성녀의 장군이라고 소개했고, 여기사는 예를 갖춰서 나를 대했다.

그런데 여군주 베라라니... 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성녀님이 알려준 이름 중에 하나니까.

상당히 강한 군주라고 들었다. 시뻘건 적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걸이라고 했는데, 아름답고 난폭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그 세력은 사이딘 백작만큼이나 크지만, 현 천사사태에서는 중립을 유지중이라고 했다. 중앙이랑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 영지가 있어서 가능한 중립이라는 모양.

근데 여기서는 그렇게 멀지 않지.

"여군주께선 성녀님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남작들을 격파한 흑발의 장군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군주가 우리랑 어떻게 끈을 만들고 싶어하는 모양이지. 나는 잠깐 생각했다. 켈스론과는 달리 이 여기사는 충분히 예를 표했다.

그렇다는 건 대화가 통한다는 뜻이 아닐까?

게다가 아름다운 여군주라니... 흥미가 생긴다. 만일 내가 이 여군주를 지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력이 아주 강력해질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군요. 먼저 귀띔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야."

ㅡ스윽.

여기사가 허리 뒤에 장착해뒀던 스크롤을 꺼내서 내게 건네줬다. 읽어보니 과연.

동맹에 관한 내용이다.

"흐음."

이거... 생각할 거리가 많다.

현재 가장 강한 귀족은 단연 사이딘 백작이다. 그는 원래도 강했지만, 이번 전쟁에서 급격하게 세력을 모아 몸집을 불렸다. 당연히 원탑이다.

여군주 베라. 그녀 역시 사이딘 백작만큼 강한 귀족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사이딘 백작만큼 체급을 키우진 못했지.

그러니까 콩라인이다.

아마 백작으로부터 여러가지 제안을 받고 있을 텐데, 이 상황에서 백작과 거의 적대하게 된 나와 동맹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흐흐흐."

이 여자도 야망이 엄청난 것 같다.

말 그대로 사이딘 백작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야망을 읽은 순간, 나는 여군주 베라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인큐버스로서의 본능이다.

우수한 암컷을 차지해야 한다는 충동. 그것이 끓어오른다.

그나저나... 천사들과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인간들은 그것을 기회 삼아 끊임없이 내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간들이 이러니, 자연히 마족인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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