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318화 (318/544)

〈 318화 〉 여군주 베라 # 8

* * *

"샤아. 그런데 마앙님."

"음? 샤란이 왜?"

"얘두, 흙으로 만들었다 아니에여?"

"그렇지."

"그럼 여기에 꽃 심어도 된다에여?"

"어?"

꽃을 심어?

"좋지. 마음껏 장식해줘."

"샤아!"

바로 샤란이가 골렘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심는다고 표현하는 건 좀 그렇지. 샤란이가 힘을 발휘하자마자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니.

"오오, 좋은데 샤란아."

아무튼 꽃으로 뒤덮이고 있는 골렘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바로 힐링이지. 전쟁이니 뭐니 신경 쓰지 않고 꽃을 감상하는 것.

그게 바로 힐링인 것이다.

"흠?"

근데 저렇게 골렘에 꽃을 심으니 위장 효과가 장난이 아니다. 아니지. 꽃뿐만이 아니라 풀이나 덩굴 같은 걸 심어두고 어디에 숨긴다면?

"그야말로 불멸의 매복군대...!"

골렘인 만큼 아무리 매복을 시켜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며, 오직 내 명령만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골렘이 굉장한 전쟁 병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로 위장을 시켜두고 필요한 길목에 매복을 시켜둔다면? 골렘의 행동 패턴은 단순하지만, 단순히 무기를 겨눈 채 전진하라는 명령 같은 것은 잘 따를 수 있을 터다.

적이 범위 내로 들어오는 순간, 몇날며칠이고 말없이 매복하고 있던 꽃 위장 골렘이 창을 앞세운 채 일제히 전진하는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 상상해보니 공포로군.

"샤아!"

"아니! 잠깐! 샤란아!"

"마앙님?"

잠깐!

꽃을 심을 수 있다면 위장만 가능한 게 아니야!

"샤란아! 빨리! 그 골렘 위에 플랜트 타워 좀 심어봐라!"

"샤아? 샤아! 알았다에여, 마앙님!"

좋은 아이디어라는 듯, 샤란이가 크게 탄성을 내뱉으면서 골렘 머리 위에 플랜트 타워 파리지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ㅡ쩌억!

골렘의 머리를 화분 삼아 한 1미터 크기로 자라난 거대 파리지옥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골렘! 전진해라!"

ㅡ파앗!

동시에 내 의지를 전달한 순간.

ㅡ쿠웅.

ㅡ쿠웅.

머리에 거대 파리지옥을 단 골렘이 무기질적으로 전진했다. 그렇다! 플랜트 타워에 발을 달아준 것이다! 이거면 근접공격 특화형 골렘이고, 씨앗을 쏘는 볼트 플랜트를 심는다면?

"그게 바로 원거리 골렘이지! 와! 이런 게 가능할 줄은! 샤란아 잘했다!"

"샤아! 마앙님! 식물들이 막 움직인다에여!"

"그러니까!"

말하자면 성큰 콜로니가 이동하면서 공격도 할 수 있게 된 상황...! 이 엄청난 대발견에 나는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앞으로는 촉수 스킬과 함께 골렘 스킬도 제대로 단련해보도록 하자! 흑마법서 다음 페이지에는 언데드술에 관련된 것이 수록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골렘이 먼저다!

먼저 이 전쟁병기에 투자해야 한다!

"케륵...! 뫙님! 뭔가 엄청남다! 케륵!"

"그래! 내가 봐도 엄청나!"

부릴이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골렘을 보았다. 앞으로 저런 골렘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면 고블린들의 부담이 줄어들겠지.

"솔직히 놀라서 입을 닫을 수가 없군. 마계의 흑마법과 마왕의 사악한 상상력이 합쳐져서... 아주 끔찍한 것이 탄생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탈영 해야되냐?"

"섹스와 촉수를 포기할 수 있겠나? 레이카."

"아니. 그건 좀."

바네사와 레이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골렘을 바라보았다. 두 여자가 보기에도 저 골렘 플랜트 타워는 아주 신기했던 모양.

아니, 근데 역시 탈영 못하는 거갸고.

"어떻습니까! 제 능력이!"

"말해서 뭘 하겠나? 잘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해라. 마왕."

"물론 그래야지요!"

바네사는 완전히 나를 인정한 상태다.

"저딴 걸 만들어내는 놈이 비키니 아머에 심취해 있다니. 너 만약 세계정복하고 나면 여자란 여자들은 다 모아서 속옷만 입고 다니게 할 생각이지?"

"들켰네."

"미친놈."

"아니, 레이카님 왜 또 욕을."

뭐 그렇게 자리를 정리하고 해산을 시켰다.

"마앙님! 샤란이랑, 골렘에 꽃심기 놀이 더 해여!"

"그래! 오늘 많이 하자!"

"샤아!"

오늘은 샤란이랑 놀아줄 시간이 많겠구나!

* * *

그로부터 며칠 뒤.

"꺄하하하핫! 다들 너무 느려!"

"세리뉴 너무 빨라!"

"저렇게 무거운 가슴을 달고 왜 이렇게 빠르지!"

"쟤꺼 골렘이 제일 좋아서 그래! 바꿔 타!"

"바꿔 타고 싶으면 따라 잡아 봐!"

픽시들이 골렘을 타고 경주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동안 골렘을 열 기나 만든 상태다. 다섯 기에는 플랜트 타워를 부착시켰고, 다른 다섯 기는 그냥 업그레이드를 안 한 상태.

아무튼 골렘들은 내 명령에 따라 의미 없이 연병장을 돌고 있었다. 픽시들이 그런 골렘에 관심을 보이고 가지고 노는 것은 당연지사.

완전히 골렘을 범버카처럼 다루고 있는 중이다.

"귀여운 녀석들."

픽시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힐링이 된다. 그래. 마음껏 가지고 놀아라. 사실상 움직이는 로봇 위에 타서 노는 중인데 즐겁겠지.

뭐가 됐든 나는 열심히 골렘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아무튼 그리 픽시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으니.

ㅡ끼익.

비키니 아머 차림의 다크엘프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아, 마왕님. 성녀님께서 곧 방문하신다고."

"어, 그래. 고마워. 돌아가 봐."

"네."

다크엘프가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녀님이 내 업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할 말이 있나 보지.

"무슨 일입니까?"

"그대를 보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하더냐?"

"흐흐흐, 가까이 오시지요."

바로 성녀가 내 책상 위로 앉아서 다소곳하게 앉았다.

"여군주가 서신을 보냈느니라."

"아아, 드디어. 근데 무슨 내용입니까?"

"남작령 안에 있는 마을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다는구나."

이게 바로 귀족식 예의였다.

찾아가도 그냥 찾아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행군 중 어딘가에 묵게 되었을 때, 먼저 파발꾼을 보내서 내가 이렇게 가고 있다고 소식을 알리곤 한다.

"야영이라. 이거 참. 설마 화친 회의를 핑계로 군대를 끌고 와 기습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계락도 있긴 있느니라."

당연히 이런 종류의 계략은 존재한다.

"그러니 성문 바깥에 적병을 주둔시키게 하고 들이는 것이지. 물론 문단속 또한 철저히 해야 하느니라."

"근데 성녀님. 그럼 상대측 군주가 들어오겠습니까?"

이렇게 군사를 놓고 오면 그게 또 위험하다. 완전히 상대방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라."

내 물음에 성녀님이 고개를 저었다.

"호위병을 대동하는 것까진 허가하는 수밖에. 호위병 없이 움직이는 군주는 없느니라."

"흐흐흐, 뭐가 됐든 이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까."

"저쪽이 배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라."

그렇지.

특이하게도 여군주는 우리 측의 제안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말 그대로 내 영지. 내 성에서 회담을 하자는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보통 이런 회담을 할 때는 둘 다 납득할 수 있는 장소에서 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완전히 우리 쪽에 맞춰줬다.

"그게 자신감일지 만용일지. 참 궁금합니다."

"만용은 아닐 것이니라. 수완이 좋은 군주라고 들었으니.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

"습격당하지 않을 자신감이라."

성녀님의 명성도 있겠지만, 명성만 믿고 몸을 맡기기에는 팍팍한 세상이라서 말이지.

아무튼 이걸로 여군주가 더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가 대체 어떤 야망과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그것을 고민했다.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닌. 그런 능력 있고 당당한 여성이 이쪽을 배려해주면서 찾아온 이유가 뭔가.

당장 나만 해도 그런 여군주를 어떻게 해볼까 하는 음모를 꾸미는 중이다. 당연히 여군주 측도 그런 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해봤겠지.

그리고 그걸 당한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가 있으니 온 것일 테고.

"듣기로는 여군주 또한 여신교의 신도라는 말이 있던데... 이것은 아직 진위 여부가 판별되지 않았느니라."

"그럼 신앙을 믿고 온 게 맞는 겁니까?"

"알 수 없느니라."

"흐음, 역시 어렵습니다."

뭐가 됐든 백작을 상대하기 위해선 여군주와 동맹을 하는 것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노린 것일까.

"일단 답장을 쓰도록 하지요. 어떻게 쓰는 게 좋겠습니까?"

"군사를 그쪽에 두고 호위병만 대동하고 오란 말을 잘 풀어서 쓰도록 하거라."

"이거 참. 귀족들 돌려 말하기라는 게 진짜 어려워서 말이지요."

"후후후, 알고 있느니라. 이 성녀가 대신 써줄 테니, 앉아 있거라."

"네."

아무튼 여군주의 의중에 대한 의문만이 넘쳐흐르는 가운데, 그녀의 방문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 *

당일이 되었다.

대충 보고를 듣자 하니 여군주는 실제로 자신이 끌고 왔던 다수의 군대를 남작성에서 좀 먼 곳에 주둔시키고, 자신의 호위기사들만 끌고 온 모양이다.

실제로 그랬다.

ㅡ척척척.

ㅡ척척척.

ㅡ척척척.

창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미니 성문 앞에 대기한 여기사들의 행렬이 보인다. 그런데 몇몇 여기사들이 양산을 들고 있어서 여군주가 어떤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 네크리.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가서 문을 열어주시지요."

"네. 마왕님.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무기를 거두면 될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외부에서 손님들이 온 상황이다. 다크엘프들은 전부 평범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 병사들이 마왕성 고층에서 대기 중이지.

바로 네크리가 나갔고.

"그럼 홀로 가죠."

나는 성녀님 및 내 여성 간부진들을 이끌고 홀로 내려갔다. 자, 그럼. 여군주가 어떤 여자인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여군주 베라."

"바네사님?"

"어떤 여성일지 기대되는군. 사실 여군주라는 명성을 듣고 그동안 흠모해온 상태다."

"뭐, 저도 명성 정도는 알고 있네요."

바네사는 흠모를 한다고 했고, 오랜만에 얼굴을 본 레아 역시 명성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여군주도 험한 꼴을 당하게 되겠지... 하아."

"뭐, 바네사님. 그건 봐야 아는 거니까 벌써 그러진 마시지요."

"알겠다."

그럼 가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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