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여군주 베라 # 10
* * *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여군주는 내게 이렇게 제안한 것이다.
'나랑 결혼할래?'
'아니면 내 아들 할래?'
세상에 박력도 이런 박력이 없었다. 과연. 인상 그대로의 여성이다. 이렇게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이야.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워서 입을 벌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했다. 결혼 아니면 양자라. 따지고 보면 둘 다 매력적인 제안 아닌가? 아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말하자면 숟가락으로 퍼서 내게 떠 먹여주는 꼴.
여자가 알몸으로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는 꼴이다.
일단 혼인부터 생각을 해보자.
"...!"
아니, 큰일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지가 묵직해지려고 하면서 극발기가 되려고 한다. 절로 흥분이 되면서 고양되기 시작한다.
일단 결혼은 이득이다.
결혼이라면... 아니. 아직 내가 진짜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만 한다면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답고 당당하고 능력 있고 섹시한 여군주를 마음껏 따먹어댈 수 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어떤 문제도 없이. 하루종일 물고 빨고 박아대도 뒤탈이 없다. 강간이나 유혹 같은 수단을 사용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혼인을 해서 잠자리를 같이 하겠다는데 문제 될 건 없으니까.
쉽다.
몹시 쉽다.
그런 상태라면 이 여군주를 아주 손쉽게 조교할 수 있을 것이고, 내 노예로 만들 수 있을 터다.
그냥 밤마다 부부관계를 가지면서 마음껏 즐기고 섹스를 하다 보면 어느샌가 완벽하게 조교가 될 테니까.
그리되면 여군주의 세력이 다 내 수중에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지배자는 없기 때문에 말처럼 쉽게 되진 않겠지. 여군주가 내 뜻을 따르게 된다면, 기존에 있던 여군주의 부하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크니까.
아니지. 가만 있어봐... 여군주의 부하들. 다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일단 여기사들이라면 여군주를 손에 넣은 뒤에 한명한명씩 불러내서 조교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세력을 전부 장악하면 문제없겠지.
이건 알아봐야겠어.
"놀라셨나 보군요."
잠깐의 정적. 생각하고 있으니 여군주가 그리 말했다. 나는 조용히 있었지만, 성녀님은 차를 한잔 마시고는 대답했다.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느니라."
"간단한 일입니다."
간단한 일.
"모든 혼란을 종식시킨 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여신교의 성녀님' 뿐이겠지요."
여군주는 성녀님을 보면서 여신교의 성녀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렇다. 성녀는 왕이 될 수 없다. 성녀는 성녀지 왕이 아니니까.
그러니 지금 자기가 왕을 해 먹고 싶으니 성녀님에게 자신을 거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녀는 여신교의 성녀로서 사람을 한곳으로 모으고, 자기는 통치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왕이 될 생각.
대세를 아주 잘 읽었다.
사이딘 백작은 몰락할 것이고, 성녀는 성녀라는 이름빨을 이용해 이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성장할 것이다. 거기에 여기 큘스라는 유능하고 젊은 장군이 있다.
우리를 수하로 둔다면, 자신이 중심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로 날카로운 판단.
"그러니 우리는 하나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장군은 성녀님을 주군으로 모시는 상태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설령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저는 성녀님과 여신님을 위해 봉사할 생각입니다."
그리 말하자 여군주가 웃었다.
"우후후. 그만큼 성녀께서 중히 여기시는 것이고요. 그러니 장군을 동맹의 강력한 증거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성녀님을 보았다.
"..."
현재 표정 관리 중이다.
"혼인을 하든. 양자로 들어오든. 그런 식으로 인연을 잇는다면 무엇보다 강한 동맹의 증거가 되겠지요."
"...조건을 들어보고 싶구나."
"물론."
ㅡ처억.
여군주가 손을 내밀자 여기사가 다가와서 문서를 내밀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흐음."
일단 결혼을 하면 제약이 생긴다.
1년에 몇 달 정도는 내 마왕성이 아니라 여군주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모양. 그런 식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뺑뺑이를 돌면서 전령 짓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뭐, 이건 당연한 조건이다. 혼인동맹을 맺어놓고 맨날 떨어져 있으면 그게 대체 뭔가.
아무튼 이렇게 된다면 여군주는 자연히 성녀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능한 장군이 잡혀간 꼴이니까.
그리고.
두 번째.
양자가 되는 조건.
양자가 된다면 혼인동맹과는 달리 내가 여군주 쪽으로 가서 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몸이 떨어진 만큼 동맹력이 좀 약화가 되긴 하겠지.
그리고 여군주가 결혼이라는 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건 상관없다.
내가 양자로 들어간다고 해도 여군주를 따먹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양자를 구실로 가깝게 지내겠다고 한 뒤에 무슨 수를 써서 자빠뜨리고 섹스를 하면 될 일이다.
한번 내게 빠진 여자가 다른 남자를 쳐다볼 것 같은가? 내가 주는 쾌락의 파괴력은 이미 몇 번이고 증명되었다. 마왕성의 수많은 여성들이 전부 내게 목을 매고 있으니까.
아니, 근데 양자로 들어가서 섹스할 생각을 하다니.
참 나도 인큐버스 다 됐지 싶다.
"당장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답변을 해줬으면 좋겠군요."
여군주는 그리 말했고.
"알겠느니라. 중한 사항이니 제대로 결정해야겠지. 그럼 식사를 하자꾸나."
바로 만찬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이런 결정을 현장에서 막 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회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찬을 하면서 간단히 이야기를 더 나눴다. 여군주는 이 땅에 조금 더 머물면서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것은 빠르게 결정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애가 타고 있다는 것인가... 뭐, 만찬 끝나면 여군주를 보내놓고 회의를 하도록 하자.
* * *
그렇게 간부들과 함께 회의실에 모이니.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느니라!"
"그래! 뭔 혼인동맹을 해!"
"혼인을 한다면, 우리는 뭐 첩이라는 소리인가? 그건 싫군!"
"겨, 결혼은 반대할게요."
예상대로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성녀님은 거의 떼를 쓰듯이 거부를 했고, 레이카도 큰소리를 쳤으며, 바네사 역시 첩이 되는 것은 기분 나쁘다면서 한소리를 했다.
거기에 네크리도 소심하게 반대.
"마앙님 결혼이 머에여?"
"아이고, 샤란아."
샤란이는 결혼을 모르네.
"남자랑 여자가 둘이 이어지는 걸 뜻하는 거야."
"이미 전부 다 이어졌다 아니에여?"
"그렇긴 한데."
이게 또 공식이란 말이지.
"그게 공식화가 됐다는 게 중요하지! 야! 무슨 혼인을 해! 니는 미혼으로 살던가 해!"
레이카가 그리 소리친다.
진짜 다들 발작을 하고 있군.
"아니, 레이카님. 그렇게나 싫은 겁니까? 제가 혼인을 한다는데?"
"나랑 할 거 아니면 걍 닥치고 있어라."
세상에 우리 레이카님이 이런 소리를 다 하다니!
"아니! 그것도 무슨 소리더냐! 할 거면 이 성녀와...!"
여기서 캣파이트를?
"조용! 진정하세요! 일단 마음 정했으니까!"
"뭐...?"
바로 내게 시선이 집중된다.
"일단 양자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와!"
양자란 말에 발작하고 있던 여성 간부들진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래. 다들 내가 미혼이길 원하는 마음 잘 알았다. 내일부터는 더 잘해줘야겠어.
"아니, 근데 이런 일인데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야! 감정이 아니라! 결혼하면 뭐, 그쪽 영지 가서 살아야 한다매! 그런 이유도 있지!"
"그렇느니라!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었느니라!"
그래도 제대로 생각은 하고 있었구만.
"예. 바로 그겁니다. 저도 일단 그 생각 때문에 양자로 마음을 굳힌 거니까요. 혼인동맹을 하면 뭐가 됐든 1년 중 서너 달 정도는 여군주의 영지로 가서 살아야 합니다. 근데 마왕인 제가 성에 없으면 그게 뭡니까?"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내 모든 세력.
내 부하들.
식구들.
전원 이쪽에 방치하고 나 혼자 여군주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뭐 물론 여군주랑 지내면서 그녀를 조교 하는 것. 그거 자체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마왕인 내가 성을 비운다면 어떤 스노우볼이 굴러갈지 모른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지.
당연히 양자다.
"뭐, 양자로 들어간다고 해도 여군주를 조교하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양자로 들어가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다니..."
바네사가 어이없어했다.
"양자야 그냥 말일 뿐이니까요."
삼국지에서도 이 새끼 저 새끼 다 양자로 삼고 들어가고 그런다. 당장 여포만 해도 아빠가 존나 많지 않은가. 사실 양자라는 것 자체가 그리 큰 의미는 없다.
약간 의형제 맺는 거랑 비슷한데 내가 존나 큰형이다라고 거들먹거리는 느낌.
"그러니 양자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뭐. 만날 구실을 만들면 되는 거고. 여군주를 조교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되면... 여군주의 세력이 우리의 세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 설명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혼인이라니.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느니라. 아, 그런데."
"예?"
"따지고 보면 그대는 이 성녀의 양자가 아니더냐?"
"아니 뭐 그런 말 한 적도 없잖아요."
"그동안 어미라고...!"
"말일 뿐입니다, 말!"
"흐윽!"
바로 성녀가 침울해진다.
"대체 제 엄마가 몇 명인 겁니까. 아무튼. 성녀님의 양자가 되면 여군주의 양자가 될 수 없으니 자연히 혼인동맹을"
"아! 농담이니라! 그냥 마음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겠느니라!"
그리하세요.
"휴우. 살았네. 야. 앞으로 결혼이니 뭐니 상상도 하지 마라. 니는 씨발. 그냥 우리 전체랑 결혼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레이카님...! 너무 솔직한 말씀 감사합니다!"
"닥쳐, 이 씨발새끼야."
"네."
뭐가 됐든 여군주의 제안은 우리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럼 난교나 하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