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화 〉 여군주 베라 # 22
* * *
그것을 자각하니 갑자기 공포가 몰려온다.
역시. 여공작은 아주 진지하게 날 자식으로서 대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유혹하려고 하는 중이지.
그러니 질투를 하는 것도 이해가 돼.
그런데 마계 여공작쯤 되는 여자가 질투를 한다면...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소름이 돋는다. 나이스 큘스 엔딩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마족들은 잔인하다. 어쩌면 박제 큘스를 만들지도 몰라.
이렇듯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자들은 위험하다.
"후, 후우...!"
숨이 절로 떨린다...!
보트 엔딩만은 안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베라를 새엄마로 삼아서 공경하고 사랑을 좀 나눴다고 해서 그러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앞으로 조심한다고 쳐도, 나는 이미 내 새엄마가 마음에 드는데... 물론 내 성욕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것은 여공작이 맞지만, 그녀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하아."
다음에 통신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카르티가 미리 소식을 전해줬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도록 하자.
ㅡ파닥파닥.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이블아이가 하나 더 도착했다.
"어?"
"큘스오빠...!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통신이 들어왔어! 카르티 지금 너무 무서워! 이만 도망칠게!"
"어, 어! 가지 마! 어딜 가!"
후다닥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카르티가 사라졌고,
ㅡ촤학!
이블아이가 눈으로 스크린을 쐈다... 좆됐군.
ㅡ파앗!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옷을 가다듬었다. 그래! 베라는 내 새엄마다! 하지만 여공작은 내 진짜 엄마라고 할 수 있지! 진짜 별일 있을까?
ㅡ사르륵.
곧 화면에 여공작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아하고, 기품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계의 여공작이 왕좌에 앉아 눈웃음을 지은 채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중이다.
ㅡ사아악.
요사한 아름다움. 현재 노출을 한 것도 아니고, 드레스로 주요 부위를 다 가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공작이 풍겨대는 미(美)는 절대적으로 완벽했다.
"어, 엄마?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습니다."
"아들."
긴장하면서 인사하니.
"엄마 보고 싶었어?"
그 무엇보다도 무거운 질문이 나를 짓눌렀다. 부,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이겨내고 대답했다.
"무, 물론이지요. 언제나 엄마를 보고 싶었습니다... 자나 깨나 항상... 엄마 생각만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후후후, 그런 거야?"
내 립서비스가 좋다는 듯 미소지는 그녀.
"흐응."
그렇게 여공작은.
"그런데 큘스 엄마는."
미소를 지은 채로.
"저기 있는 것 같던데."
그런 말을 했다... 저기에 있다고?
아!
"맨날 보면서 그립다니. 후후후, 이상해. 큘스."
"아니! 엄마! 그런 게 아니라요! 베라는 어디까지나 제 새엄마로서!"
"저런, 큘스..."
순간 여공작이 안타깝다는 듯한 눈으로 날 보았다.
정말로 불쌍한 것을 보고 위로를 해주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여공작이 날 저런 눈으로 보고 있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장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게 된다... 물론 그러한 충동을 억누른다.
"그런 대체품을 만들려고 하다니...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나 보구나."
베라는 여공작의 대체품이 아니다.
내 소중한 여자지.
"안타까워. 하지만 큘스. 새엄마 같은 것은 필요 없어. 큘스는 이 엄마의 자식이잖아? 이 엄마가 여기에 아주 잘 있는데, 새로운 엄마를 들일 필요가 있을까?"
"..."
"딱히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데."
"..."
"아들. 아들의 엄마는 나 뿐이야. 그렇지?"
연신.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여공작. 이미 나는 사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쾌락을 절제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했다.
"아니, 엄마. 근데 그건요... 일종의 동맹 조건이었어요. 제가 양자로 들어간 건 그 여군주와 동맹을 하기 위한 조건 같은 거라서... 어쩔 수 없이 한 거죠.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 합니다. 엄마."
변명이 통했을까?
"그런데 이미 큘스의 권속으로 만들었잖니?"
여공작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렇다면... 새엄마 설정은 필요 없는 게 아니려나?"
"..."
"큘스? 마계와 이어지기만 한다면, 엄마가 얼마든지 안아줄 테니까. 이상한 짓은 하지 말자?"
"그게."
"엄마 침대에서 매일 같이 자는 거야. 서로 꼭 끌어안고. 목욕도 같이 하고. 엄마가 매일매일 큘스를 사랑한다고 속삭여줄게. 그러니 새엄마 같은 건 필요 없겠지?"
노골적인 유혹.
나는 여공작의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상상을 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것만 같다.
ㅡ파창!
바로 그 상념을 깨어버린다.
정신 차려라, 큘스! 유혹을 이겨내는 거다!
여기서 여공작에게 종속될 수는 없어. 나는 마왕이다. 인간세계를 지배할 제왕이란 말이다. 그런 내가 마계의 암컷에게 넘어갈 수는 없지.
"후우."
숨을 내쉬고 상황을 정리한다.
결국 여공작의 말은 그거다.
베라랑 모자 관계를 청산하고 오직 자기만을 어머니로서 섬길 것. 그럼 베라는 내 새엄마가 아니라 그냥 내 부하인 여군주가 되어버린다.
"...!"
싫다!
그런 건 싫다!
이미 베라랑 새엄마 플레이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단 말이다! 아무래도 이 여공작님이 자꾸 나한테 요사스런 미모를 자랑하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사정을 시킨 탓에 성욕이 좀 뒤틀리게 된 것인지 베라랑 새엄마 플레이를 하는 것이 진짜 너무나도 흥분이 되었다.
흥분이 심하면 뭐다?
그만큼 더 성장할 수 있다. 인큐버스는 더욱더 자극적인 섹스를 찾아다니는 마족. 여기서 베라랑 새엄마 플레이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내 성장 능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건 타협할 수 없다!
"큘스. 엄마 말 듣고 있으려나?"
여공작의 샛노란 눈동자는 그야말로 맹수의 그것과도 같았다. 분명 저번까지만 해도... 알몸을 보여주면서 키스를 날려줬는데, 질투라는 감정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다니!
못 참는다.
그러니 여기선 당하게 나가도록 하자.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 저는 이제 참을 수가 없어요!"
"으, 으응?"
크게 소리치자 여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어려서부터 사랑받은 적이 없어서... 제 새엄마를 자칭하는 베라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범하면, 저는 더욱 강해지지요! 그러니 베라는 포기 못합니다! 제 성장을 위해서!"
"..."
내 말에 여공작이 잠시 입을 닫았고.
"큘스."
그녀라 뭐라고 말하려던 것보다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엄마. 그래도 제 마음속 진정한 엄마는 엄마뿐이니까요. 언젠가 반드시 마계로 돌아가서 엄마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그쯤 말하니 여공작이 머뭇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여공작은 나를 아주 사랑하는 아들로 대하고 있다. 그런 아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당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이번엔 제 고집을 이해해주세요."
"고집..."
그 말에 여공작이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으응... 그런 거려나... 알겠어, 큘스."
무언가 대답을 했다.
"엄마로서 유능한 아들의 고집을 꺾고 싶진 않아. 그러니 허가해줄게. 하지만 너무 심취해선 안 돼. 베라는 어디까지나 중간계에서 가볍게 사귄 새엄마일 뿐. 큘스의 진정한 엄마는 여기에 있으니까. 알겠지?"
"당연하죠!"
살았다!
"후후후, 응. 그렇게 하렴. 아무튼 아주 잘했어, 큘스. 베라의 권력을 이용한다면 큘스는 분명 중간계를 차지할 수 있을 거야."
"저만 믿으십시오!"
이후의 대화는 평범했다.
진짜 죽다 살아나는 줄 알았네.
그런데 매일 밤 여공작과 같이 잔다고?
솔직히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엄마한테서 새엄마 인정받았다!
이렇게 말하니 개싸이코 같군. 하지만 인간과 마족은 다릅니다.
* * *
통신이 끝난 후.
"하아."
여공작 케라시스는 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심기가 불편하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큘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새엄마를 인정해주긴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떼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다.
ㅡ촤륵.
바로 저번의 영상을 돌려본다.
"어머니. 여기가 좋습니까?"
"오옷♥ 오오옷♥ 아들♥ 아드으을♥ 응오오오옷♥"
화면 속의 큘스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격렬하게 섹스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큘스. 네 엄마는 여기 있잖니."
케라시스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어떻게든 해야겠어."
말로는 고집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조만간 큘스를 다시 제대로 유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자신만이 진짜 엄마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줘야 한다.
여군주 베라.
성녀 세실리아.
현재 두 인간 암컷들은 큘스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중이다. 짜증이 나는 존재다. 큘스 역시 그녀들을 아낀다. 실제도 두 암컷들은 아주 큰 쓸모가 있다. 큘스에게 있어서 성녀는 없어선 안 될 존재고, 베라 역시 큘스가 중간계를 지배하기 위해선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할 암컷이다.
현실적으로 떼어내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머니'라는 호칭에 대한 거리감을 만들어야 할 텐데, 큘스에겐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공작 케라시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하다. 자신의 매력으로 큘스를 푹 빠지게 만들면 될 뿐이다.
"큘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 엄마의 품이니까."
큘스가 중간계를 지배할 날이 기대된다.
그러기 위해선 마계에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줘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