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 다시 정글로 # 3
* * *
"자, 그럼! 다들 오랜만에 고향 좀 보고 오자고! 힘차게 가자! 알겠나!"
"케랴아아아악!"
"끄르르르륵!"
고향으로 간다는 말에 텐션이 높아진 것인지 몬스터 부대원들이 크게 소리쳤다. 나도 오랜만에 내 던전을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행군 실시!"
ㅡ척!
그렇게 행군이 시작되었다. 준비는 신속했고 군기는 엄정하다. 정예 중의 정예인 내 병사들은 동작 하나하나가 정말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완벽했다.
"샤아. 마앙님. 기대된다에여."
"후후후, 나도 그래."
옆에 붙은 샤란이와 루미카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나도 지금 너무 좋아. 이야. 오랜만에 고향이라니. 가서 마음의 안정을 좀 취하고 오자."
몬스터 놈들을 되는대로 박살 내면서 우리 세력을 키우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안정이 취해질 것이다.
"던전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에여."
"많이 더러워졌을 것 같은데... 아마 잠깐은 거점으로 써야 할 테니 청소도 해야겠는걸."
"던전이 기뻐한다에여! 샤아!"
순수하게 기뻐하는 샤란이.
"흐흐흐!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자고!"
분위기만 보면 어디 소풍 가는 듯한 느낌이다. 뭐 행군 시작부터 군기를 유지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서 픽시들도 찾아보자!"
세리뉴 역시 신이 나선 말했다.
"물론 그래야지. 세리뉴. 픽시들 보면 다 설득할 자신 있지?"
"물론이야! 저번에도 그렇게 데려왔잖아! 픽시들 더 많아지면 나도 진급이니까 열심히 할게!"
"명예욕이 얼마나 큰 거냐고."
뭐가 됐든 천사들과의 결전을 대비하고 있는 지금, 엔젤 킬러들인 픽시들은 최중요 병력이다. 싹 다 부하로 들이면 아주 좋을 것이다.
물론 야생의 몬스터들과 이종족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내 부하들이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이는 것도 다 내 마력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하들을 잡아 오면 놈들을 훈련시킴과 동시에 마력으로 강화도 시켜야 한다. 당연히 내가 강해진 만큼 그들의 적응 기간이 단축되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
이렇듯 난세에는 모든 것이 시간 싸움인 법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군웅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
"행군 간에!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몬스터 전우!"
"몬스터 전우! 케륵!"
"군가 시작! 핫! 둘! 세! 네!"
그렇게 우리들은 군가를 부르면서 미개척 지대를 향해 전진했다.
* * *
간만에 정글에 들어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그동안 도시에서 사는 게 많이 익숙해져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 오묘한 기분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결국 이곳은 우리들의 예전 나와바리다. 물길을 찾아서 선선하게 행군을 하고 있으니 절로 힐링이 됨과 동시에 속도도 잘 나온다.
그렇게 우리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예전 던전에 도착했다.
ㅡ콰앙!
막아뒀던 입구를 무너뜨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케략! 오랜만임다, 뫙님!"
"흐흐흐! 그러게 말이다!"
사방에 먼지랑 모래가 좀 쌓이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쓸 정도로 더러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천장을 받치고 있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건 좀 그렇군.
"샤아! 마앙님! 예전에 쓰던 방이에여!"
"나무들 다 말라붙었네. 안타까워라."
"끄르르륵! 모왕님! 오늘 여기서 쓉니까!"
그래도 다들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면서 즐거워하는 중이다.
"그래야지. 그 전에 잠깐 간단하게 청소부터 하자."
"케륵! 알씀다!"
"청소하고 짐 풀고 푹 쉬자고."
변함없는 던전의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다. 향수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마음이 참 안정되는군. 나중에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여길 별장으로 쓰도록 하자.
"이야. 여기가 바로 거긴데."
"감옥 아닙니까?"
레이카가 감옥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내가 납치당해서 성고문 당하던 곳. 더불어 강간도 존나게 당했지."
"동감이다. 이 변태 같은 자식은 우리들을 하염없이 강간하면서 아랫배에 음문을 새겼다."
바네사랑 아주 그냥 죽이 척척 맞는다. 두 여자들이 불길하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옛날 일은 잊읍시다. 청소나 하세요."
"내 짬에 청소를?"
"그러네."
짬 대우 해줘야지.
"케륵? 뫙님. 대체 뭠까. 저도 짬 대우 해주심까?"
"부릴이 니는 임마. 그냥 지휘나 해. 말로 척척 시키기만 하라고."
"알씀다!"
이런 게 바로 짬 대우지. 원래 계급이 높아질수록 몸을 잘 안 움직이게 된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쓰는 것보단 말로 시키고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많아질 뿐이지.
ㅡ슥슥.
인원이 많아서 금방 청소가 되었다. 그리고 샤란이가 말라비틀어진 식물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루미카가 수분을 공급해주니 그걸로 입주 준비 완료.
"야! 지하에 수로도 있었지?! 빨리 목욕하러 가자!"
"빨래를 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군... 그래도 목욕하고 싶어서 몸이 쑤시던 참이다. 어서 내려가지."
"그때의 리리엘은 정말 망나니 같았다."
"그, 그때는 아직 대천당의 일원이었으니까!"
그럼 목욕 좀 하러 가볼까?
"좋습니다. 지하에 목욕이나 하러 가죠. 하루 푹 쉬고 내일 우리 둔전병들을 찾으러 가 봅시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일하면 되겠지.
* * *
"슈와아악! 마왕님 오셨습니까!"
"그락그락. 오랜만입니다."
둔전으로 가니 리자드맨 대장인 쥬라기와 홉고블린 대장인 혹부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오오, 이 새끼들. 뭔가 좀 성장했다?"
"슈왁. 그동안 잘 살아서 그렇습니다!"
"거기에 둔전도 좀 커졌고."
당초 여기엔 작은 경작지와 울타리. 그리고 숙소로 쓸 작은 건물 두 채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
내가 남작령에서 지내는 사이에 테크를 좀 올려놨는지 경작지도 더 넓어졌고, 울타리도 더 커졌으며, 이런저런 원시적인 건물들 역시 다수 생겨난 상태였다.
"그리고 부하들도 존나 많아졌네?"
심상치 않다.
야생의 몬스터로 밖에 안 보이는 리자드맨과 홉고블린들이 건물 사이사이에 몸을 숨긴 채 우리를 경계하는 중이다.
"그락. 저들은 다 신병입니다, 그락. 잡아 왔습니다."
"슈왁. 노동력이 많아져서 경작지도 더 키웠습니다!"
"이야! 이 새끼들 아주 잘 운영하고 있었어?!"
자세한 보고를 들어보니 진짜 대단한 성과였다. 부대 규모도 세 배 이상으로 늘었고 경작지는 그것보다 더 커졌다.
이제 이들은 농사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지들끼리 농사도 짓고 이것저것 심기도 하고 작은 가축들도 기른다고 한다.
"대단하네요. 하나의 사회를 만들었어요."
네크리가 감탄했다.
"그러게요. 제법 능력이 좋군요."
라미아 역시 인정한다.
둔전병들이 철기를 생산하고 다루는 수준까지 올라간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다크엘프나 라미아들이 보기에도 썩 괜찮은 문명인 것 같았다.
"역시. 다 마왕군 소속이라서 잘하는 것 같습니다. 야. 쥬라기. 그동안 분쟁은 없었고? 다크엘프나 라미아가 쳐들어온 적은 없었어?"
일단 이 둔전병들이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근처 사는 다크엘프 지휘관이었다면 이 이웃을 좋아하지 않았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섬멸하고 땅을 빼앗았을 것이다.
적이 강하다고 해서 타협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될 테니까.
"슈왁.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변에 있는 소규모의 야생 오크들과 잠깐 싸웠을 뿐입니다."
"그러냐?"
근처에 다크엘프랑 라미아가 없었나 보군.
"네크리? 쥬리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이상해요. 다크엘프랑 싸운 적이 없다니."
"저도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잠깐 생각해 보세요. 여기는 네크리와 쥬리아의 고향 아닙니까."
"네."
그렇게 네크리와 쥬리아가 잠깐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더니,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날 불렀다.
"마왕님! 생각난 게 있어요!"
네크리의 외침.
"뭡니까?"
"다크엘프들과 라미아들이 본격적인 전쟁을 벌여서, 변방 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죠."
쥬리아가 네크리의 앞으로 나오면서 그리 말했다.
"전쟁?"
"네. 마왕님도 알다시피 원래 두 종족의 사이는 좋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두 세력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탓에 이쪽이 평화로운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네크리가 답했다.
"흐음, 그거 설득력 있습니다."
저기도 전쟁 여기도 전쟁.
전쟁투성이다.
물론 내게는 아주 좋은 일이다. 나는 전쟁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원래 두 사람이 전쟁하고 있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주변에 있는 제삼자다.
"제삼자 큘스. 일단 정보 확인부터 시작해보죠. 여기를 거점으로 주변을 빙 둘러보면서 정글의 정세를 확인하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네."
"네."
확인이 필요한 일이지만 진짜로 두 종족이 전쟁을 하고 있다면 아주 큰 기회였다. 다크엘프 여왕이든 라미아 여왕이든 둘 다 손쉽게 내 노예로 만들 수 있을 터다.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국력을 깎아 먹는 행위.
그 무대에 내가 난입한다면 두 여왕을 아주 간단하게 내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겠지.
"흐흐흐."
그것을 생각하니 의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운이 좋다니까. 전쟁이라니. 기회도 이런 기회가 없다.
"그럼 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죠! 세리뉴! 이쪽으로!"
"나 불렀어!"
정글에 돌아온 뒤에 내내 텐션이 높아져 있던 세리뉴가 신나게 날아왔다.
"정찰 좀 하자! 들어보니까 다크엘프랑 라미아들이 전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대."
"전쟁! 여기서도 맨날 전쟁이네!"
"그렇지."
"역시 내 고향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뭐라고?
"전쟁, 더 많은 전쟁!"
주먹을 꽉 쥔 세리뉴가 씨익 웃으면서 소리쳤다.
"나는 전쟁에 굶주려 있어! 야호!"
ㅡ쌩!
그렇게 기쁘다는 듯 소리친 작은 전쟁광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흐흐흐, 위험한 녀석 같으니라고."
평소엔 폭유 젖탱이를 덜렁대면서 신나게 노는 순수한 요정들이지만, 전쟁 소리만 들으면 바로 전사로 변모한다. 그것이 바로 픽시들의 본능이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종족인 만큼 타고난 폭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새끼. 입이 완전 귀에 걸렸네? 왜. 다크엘프 여왕이랑 라미아 여왕 따먹을 생각 하니까 자지가 근질거려서 못 참겠어?"
"물론이죠!"
"미친 섹스 중독자 새끼."
어디 여왕들 뿐인가!
다크엘프 왕국에 있든 모든 쭉빵한 처녀들이 다 내 것이다. 다크엘프 남성들은... 그래. 그냥 대충 굴복시켜서 병사로 써먹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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