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382화 (382/544)

이야.

이게 바로 나오네.

"그럼 항복의 증거를 보이도록 하시오! 방금 말대로 하면 정식으로 항복을 받아들이겠소!"

나는 바로 위압적인 말투를 예의 있는 말투로 바꿨다. 적에겐 막 소리쳐도 되지만 항복하면 이제 반쯤 우리 편이다. 전향했으면 그만큼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알겠소이다!"

근데 의심할 법도 한데 바로 요구에 따르려고 한다.

"케륵. 뫙님. 일이 잘 풀린 것 같슴다?"

"흐흐흐, 그러게 말이다. 샤란아! 루미카! 둘 다 너무 잘했다!"

"샤아. 넘 쉽게 끝나서 다행이에여."

"내 물빼기 능력이 도움이 많이 됐네."

간만에 활약한 두 요정이 즐거워한다.

아무튼.

곧.

ㅡ스윽.

ㅡ철컹.

밧줄에 연결된 병장기와 갑옷 같은 것들이 성벽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새 잘 벗어가지고 내리고 있나 보다.

"후후후, 일이 정말 쉽게 풀렸군? 확실히. 저런 상황이라면 이 여군주라도 빠르게 항복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요. 설령 원군이 온다고 우리가 너무 빨랐습니다."

"실로 그렇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적들이 장비를 다 내리는 것을 구경했다.

"다 했소!"

"그럼 성으로 들어가겠소! 가자! 얘들아!"

이미 성문은 박살났고 그 앞에는 덩굴 다리가 만들어진 상태다. 나는 부하들을 이끌고 적들의 성안으로 들어갔다.

ㅡ저벅저벅.

그래도 대비를 좀 하긴 했지만 기습이나 공격 같은 것은 없었다. 무장을 해제한 병사들이 쭉 앉아있었으며, 저 앞에는 성의 지휘관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허억! 몬스터 군단!"

겁에 질린 얼굴이다.

"케륵케륵."

"쉬익, 쉭."

"끄르르륵."

내 부하들이 성 내부로 들어오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주로 항복한 적병들을 보고 있었는데, 싹 다 겁에 질린 상태다. 그런 놈들을 보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그대는?"

아무튼 지휘관과 이야기를 해야지.

"모, 모리알 남작이라고 하오. 항복했으니 포로 대우를 해주시오."

"물론 그럴 것이오. 앞으로 그대는 사이딘 백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성녀님과 세상을 위해 힘을 쓰게 될 것이오."

"성녀님이라..."

"바로 불러드리지. 성녀시여! 이 성은 이제 성녀님의 것입니다!"

ㅡ스윽.

뒤에서 성녀님이 나타났다.

"정말이었군!"

남작이 놀라 소리친다.

"모리알 남작이라고 했더냐. 백작의 시대를 저물었느니라. 앞으로는 이 세상과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하거라."

"아, 알겠소... 그런데 저 몬스터들은 대체..."

"걱정 말거라. 전부 인륜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니."

"인륜?!"

너무 놀라는 거 아니냐?

"성녀님. 그리고 어머니? 일단 이 성을 좀 장악해주십시오. 민심도 좀 돌보고. 회유도 좀 하고. 그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맡기거라."

"알겠다. 내 부하들도 들이도록 하지. 아무래도 인간이 통제하는 게 더 나을 테니 말이야."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모조리 다 성안으로 들어가 점령작업을 실시했다.

"흐흐흐."

실로 간단하게 성 하나를 점령했다.

원래 이런 공성전은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이어진다. 성을 두고 치고 박고 싸우는 게 아니라 거의 포위하면서 보급이 마를 때까지 시간을 떼우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기 마련이다.

근데 우리에겐 특수 병종들이 있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성은 더욱 커지고 성벽은 두꺼워졌다. 적의 대포를 방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대포는 더욱 강력해져갔고, 무식하게 두꺼운 성벽만으로는 방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경사장갑을 지닌 요새로 바뀌었다.

그편이 방어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이 났다.

원거리 병기가 진화하고 진화해 곡사포니 미사일이니 하는 게 나온 시점부터 요새는 방어시설이 아니라 그냥 단단한 샌드백 정도로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타천사들이 곡사포의 역할을 하니, 우리의 공성전은 실로 간단했다. 곡사포로 때리면서 요술을 부리니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생각보다 싱거운 전투였어. 인간들의 성은 크지만, 별거 아닌 모양이네."

"앞으로 더 커질 겁니다. 여왕님."

아무튼 이걸로 백작의 휘하의 성 하나를 무너뜨린 셈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제압하면서 올라가도록 하자.

"아. 근데."

성 하나를 점령했는데 미녀가 없어서 렙업을 못했네.

아쉽다...!

* * *

그런 식으로.

우리들은 성을 점령하면서 진격했다. 너무 빨리 이긴 탓에 그냥 전진보다는 측면으로 이동해서 다른 쪽으로 간 다른 군대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인간 병사들 뿐인 전장.

공성측과 수성측의 지루한 대치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등장했다. 나는 즉시 적의 성문과 다리를 부수고 점령 작전을 실행했다.

"타천사 출격! 루미카! 해자의 물을 빼라!"

"알겠다!"

"응!"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니 또 하나의 성이 제압되었다.

"하! 하하하! 정말 완벽하군! 순식간에 두 개의 성을 제압하다니! 마족이라는 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상대가 되지 않아. 이 정도라면 기존의 전술이 무의미하군. 이 여군주조차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지경이다."

내 옆에서 모든 활약을 지켜본 베라가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내 능력을 아주 크게 사고 있는 것이다.

"역시 큘스 넌 이 땅을 지배할 자격이 있어. 확실히 이런 힘이라면 백작도 천사도 상대가 되지 않겠지."

"흐흐흐, 칭찬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니 확실해."

"에이, 부끄럽게. 근데 사실이라서 뭐."

근데 좀 문제가 있다.

베라의 군대와 내 몬스터 여단이 함께 행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뭐가 됐든 적들은 공포에 질린 상태지만, 그것은 비단 적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라의 부하들 역시 우리 몬스터 여단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군이라는 건 알지만, 신뢰하지는 않는다. 베라의 카리스마로도 그러한 인식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성녀님도 열심히 포교를 하고 설명을 했지만 조금의 불안감만을 지웠을뿐 절대적인 신뢰를 주지는 못했다.

"흐음... 우리의 남작성에서는 시간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민심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점령지에서도 그런다는 것은 많이 어렵구나."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뭐가 됐든 백작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면 인간들에겐 성녀님밖에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싫어도 신뢰를 보내게 되어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리되면 좋겠구나."

열심히 해달라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마왕이니 마족이니 하는 말을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감옥에 처박았다. 백작을 제거한 다음에 민심을 제대로 잡을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할 겁니다. 아이고, 근데 우리 어머니. 귀한 부하들 감옥에 넣어서 마음이 아프겠습니다?"

"좋지만은 않군. 그러니... 그 쓸쓸한 마음을 좀 채워주지 않겠나?"

역시 그거냐?

아무튼.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백작의 성을 하나하나씩 점령했다.

* * *

끝없는 승전보가 울리던 도중.

갑자기 어떤 이변이 일어났다.

평소처럼 성을 점령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베라의 군대를 지원하러 가니, 그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것이다.

아니, 고전하는 수준이 아니라 패배해서 후퇴한 부대도 있다는 모양.

"대체 무슨?"

설마 백작이 천사들에게 뒤통수를 좀 내어주면서 무리하게 원군을 보낸 것일까? 그렇다면 찢어진 부대 중의 하나인 이쪽 베라의 군대가 후퇴한 것도 이해가 간다.

다수의 성을 점령하기 위해 부대를 나눈 상태니, 적의 원군이 왔다면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엘프!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보고서를 읽던 베라가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면서 사납게 소리쳤다.

"무슨? 어머니. 엘프가 나타난 겁니까?"

"적 엘프 부대가 식별되었다는군! 검기를 사용하는 전사들이 전열을 돌파했다는 보고와 엘프 정령사들이 정령을 부려 방어선을 무너뜨렸다는 보고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엘프가 참전했다. 그것도 백작의 편으로."

"쯧."

절로 쯧 소리가 나온다.

"좋지 않을 때 백작에게 힘을 실어주는군. 아니. 확실히 힘을 실어주려면 지금뿐이겠지. 백작의 군대를 방패막으로 삼아 천사와 우리 측까지 전부 견제할 생각이다. 여제란 년이 참 얍삽하게 행동하고 있어."

베라가 짜증을 부르면서 씹어뱉듯 말한다. 베라랑 엘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대치해오면서 여러모로 이야기도 많이 나눈 상태다.

엘프가 우리를 막아섰으니, 그것은 엘프들이 베라랑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뜻과 같다.

"엘프의 여제라. 우리랑은 피부색만 다른 종족이지?"

"본 적 없나?"

"응. 사는 곳이 다르니까. 그곳 여제도 베라 너랑 이 여왕님처럼 강한 전사일까?"

흥미롭다는 듯이 묻는 렉사벨라.

"아니. 엘프여제는 전사가 아니다. 오히려 마법사라고 할 수 있지."

"재미없네."

흥미가 없어졌는지 고개를 젓는다.

"뭐가 됐든 백작이 엘프와 손을 잡았다면 단기간 내에 무너뜨리기 힘들 것이다. 백작 자신이야 여러모로 힘든 상태라 별거 아니지만, 뒤에 엘프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까."

"..."

"이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예.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집니다."

그래.

어째 너무 쉽다 했다.

세상사 큰 노력 없이 거둘 수 있는 일은 없지. 곤경에 처한 백작이 엘프와 손을 잡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의 장기화는 좋지 않아.

그렇다면 엘프를 먼저 쳐야 할까?

엘프여제.

확실히 그녀가 백작의 편에 서서 참전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엘프여제도 노리고 있었다. 비단 엘프들의 여제라는 고귀한 여성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엘프들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계를 지배하려면 엘프들 역시 지배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려면 그들의 여제를 따먹는 수밖에 없지.

"일단 제대로 확인부터 하지요. 정찰과 정탐이 중요합니다. 적 엘프들이라도 사로잡아서 심문을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엘프 군대는 거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뭐, 뭐라고요?"

남자만 있다고?

그럼.

금발 엘프 여자들을 따먹을 수가 없어?

"외부로 나가는 군대는 남성들이고, 여성들이 숲을 지킨다. 아쉽게 됐군?"

"이런!"

당분간은 재미를 볼 수 없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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