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417화 (417/544)

ㅡ퍼어엉!

게이트 너머에서 뿜어진 마계의 불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하여 저 앞에 있던 건물들이 박살나면서 원형의 광장이 만들어진다. 마치 전사들을 위한 투기장처럼 원형 필드가 나타났단 말이다.

나는 건물의 옥상 위에서 그 모든 것을 관찰했다.

"이 새끼들."

그리고.

ㅡ츠팟!

ㅡ츠팟!

마족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뿔이 난 양 같은 머리통을 지닌 근육질의 검투사같은 전사들이다.

그들이 소환되면 소환될수록 마계의 요새를 비추고 있는 게이트가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ㅡ파앗!

모든 전사를 쏟아낸 것인지 게이트가 사라졌다.

그것으로 어두워졌던 하늘이 정상적인 푸른 하늘로 돌아왔다. 사악한 기운은 흩어지고 청명한 빛이 하늘을 밝힌다.

그렇지만 대지는 그렇지 않으리.

"크하아아아! 크루아의 군세, 이 땅에 도래했도다!"

"형제들이여!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자!"

"나약한 자들을 무너뜨려라! 중간계의 버러지들은 우리를 당해낼 수 없다!"

"크루아의 혼이여! 우리의 팔뚝에 깃드소서!"

"양 머리 형제들 앞에 무궁한 영광 있으리!"

ㅡ크아아아아!

양 머리 마족들이 투지에 차 포효한다.

하나같이 전사의 육체를 지닌 마족들이다. 부족에서도 덩치가 크고 강한 오크들이 전문적으로 단련한다면 저렇게 될까.

"크루아의 군대야!"

내 어깨에 이블아이가 내려앉는다.

"카르티? 어디 있다가?"

"아까 마력이 요동쳐서 이블아이들이 다 찢어졌어! 근데 게이트가 사라져서 이제 괜찮아!"

"그런 거냐?"

"아무튼 큘스오빠! 크루아의 군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줄게! 저들을 정복과 전투를 즐기는 전사 혈족이야! 흑마법에는 큰 재능이 없지만 근접 전투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

"딱 봐도 그래 보여."

검투사처럼 완갑과 하갑만을 걸친 전사들이다. 근육질의 상체가 노출되어 있고 들고 있는 화려한 무기는 실전용보다는 의장용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강하겠지.

"그래도 우리 상대는 아냐."

마족의 힘은 결국 지니고 있는 마력의 크기에 의존된다. 영웅과도 같은 육체라고 한들, 그 안에 마력이 없다면 생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지금 저기 있는 저 양대가리 새끼들은 강해 보이지만, 그만한 마력을 품고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크하하하!"

이제 막 지상에 강림한 마족 나부랭이들이 강할 수는 없으니까!

저들이 시간을 들여서 힘을 키운다면 분명 내 병사들보다 강해지겠지! 마력이 없다고 한들 기본 스펙이 단련된 오크보다 강할 테니까! 고블린 군단이 크고 또 큰다고 한들 태생부터 마계의 전사 종족인 저런 새끼들과는 아주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놈들의 마력을 느껴보고 계산한 결과.

방치하면 아주 위험한 세력으로 급부상하겠지만 지금 처리하면 완벽하게 몰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교도들과 백작이여. 고작 저딴 마족들에게 의존을 하려고 한 것인가?

마력 없는 마족은 빈깡통!

써먹으려면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힘을 회복시키며 육성해야 한다! 전장에 띡 소환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패인이다!

마족에 대해서 잘 몰랐구나!

"우오오오오오! 중간계의 벌레들이 판을 아주 잘 만들어줬구나!"

"그들은 쓸모가 있다! 합의한 대로 이 전장을 평정하고 구출한다!"

"놈들의 힘을 이용하고, 이 세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피를 흩뿌리자!"

"이 전장의 주인공은 우리다!"

신이 난 양대가리들이 포효하자, 곳곳에서 로브 쓴 자들이 나타났다. 직감했다. 저들이 바로 이교도들이다.

"위대한 크루아님의 전사들이시여! 나약한 우리 인간들이 충성을 맹세합니다!"

"부디 적들을 물리쳐주시옵소서!"

이교도들이 마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 그 모습을 본 양대가리들이 크게 폭소하며 즐거워했다.

"알겠다, 나약한 인간들이여! 우리의 발아래에 엎드려서 충성하고 또 충성하라!"

"우리 전사들을 숭배한다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라!"

ㅡ알겠나이다!

ㅡ알겠나이다!

ㅡ알겠나이다!

아니 근데 저 미친 이교도 새끼들은 저 마족들의 어디가 믿음직스럽다고 보자마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거지?

인큐버스로서 상당히 강해진 나조차도 여성에게 충성을 받으려면 가서 몸을 섞거나 만져주는 작업이 필수 불가결인데.

하여간 웃기는 새끼들이라니까.

내가 처음부터 저런 녀석들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튼. 이제 시작해라. 리리엘. 준비됐냐?"

"됐다. 버러지 같고 열등하며 또한 비천하기 짝이 없는 마족들을 보니 살의가 끓어오르는군."

"지금 누구 들으라고 한 말?"

"혼잣말이다!"

"그럼 가라! 우선 중간계에 탄생한 걸 축하하는 의미로 생일 선물을 던져 주란 말이다! 리리엘!"

"알겠다아아아!"

ㅡ펄럭!

리리엘이 날아오르자 그녀의 뒤로 아름다운 타천사들이 따라붙는다. 참 장관이지 싶다. 죽음을 흩뿌리는 암흑의 천사들. 그녀들의 취미는 애널자위다.

"으음?"

"음?"

양대가리 전사들이 하늘을 본다.

곧,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괴조가 불을 뿜었다.

"전부 구워주마!"

"타올라라!"

"화염의 비를 흩뿌리노니!"

중간계에서 착실히 성장한 타천사들이 전사들의 머리에 검은 화염을 쏟아부은 순간.

"막아라!"

"방어하라!"

양대가리 전사들이 마법이 서린 방패를 들어 올려 검은 화염을 막아낸다.

ㅡ화르르륵!

"우오오오!"

"마계의 힘이다아앗!"

"막아라, 또 막아라!"

페르시아군의 화살비를 막아내는 스파르타 전사와도 같은 모습이다. 화염의 벼락이 방패를 강타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버텨냈다.

"이걸 버텨?"

물론 우리는 공중공격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임숭아! 세리뉴! 저기 쪼그려 앉아서 방패 쳐들고 있는 새끼들! 모조리 조져버려라!"

"끄르륵! 모왕님께 승리를!"

"꺄하하하핫! 우리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자!"

임프와 픽시들이 살인적인 저격을 실시했다.

ㅡ푸샥!

ㅡ촤하아악!

쏟아지는 화염을 막아내느라 놈들의 옆구리가 훤히 드러난 상태. 그곳에 살인마법이 박혀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에 따라 양대가리 전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진다. 동시에 방패를 놓치고 불벼락에 구워지게 되었다.

"흐하하하하! 너흰 내 상대가 안 돼!"

그렇게 마법적인 공격이 끝난 순간!

"부릴아! 자랑스러운 보병방진! 전진시켜라! 적을 섬멸하란 말이다!"

"케랴아아악! 전진! 전진하라! 적들을 쓸어버려라!"

"케륵! 케륵!"

"케르으으으윽!"

고블린들이 시뻘건 안광을 내뿜으면서 양대가리 전사들을 향해 진군한다. 그에 따라 정신을 차린 적들이 일어났다.

"적습이다! 형제들이여, 대응해라!"

"크하하! 좋은 전장이군! 시작부터 화끈해!"

"죽은 놈들은 나중에 화장해줘라! 지금은 적을 섬멸하는 게 우선!"

"크루아님이시여, 제게 힘을!"

투지를 뿜어낸 양대가리들이 땅을 박차 방진을 향해 돌진한다.

그렇게.

ㅡ콰앙!

두 세력이 맞붙었다.

"케랴아악! 케륵!"

"죽아라아아, 케륵!"

선두의 고블린들이 방패를 앞세운 채 칼을 뻗는다. 이어서 뒤쪽의 고블린이 창을 찌른다.

ㅡ촤하아악!

마력이 없는 마족은 그냥 빈 깡통이다. 강력한 전사들이 마력으로 강화된 고블린 방진 앞에 홉고블린처럼 쓰러졌다.

쉽게 말해서 우리 고블린들이 더 쎄다.

"크하아악!"

"강하다! 강한 적이다!"

"아니야! 우리가 약해졌다!"

거기에.

"하아아아압!"

"죽여라!"

"마왕님께 사랑받기 위하여!"

좌측에서 다크엘프 돌격대가 몰아치고.

"캬하아아악! 적 전사들을 꿰어라!"

"죽여어어어! 캬학!"

"잡아 먹을 테다! 캬흐르륵!"

우측에서 라미아 기병대가 돌격한다.

"허억!"

정면에는 고블린. 좌우에는 이종족 돌격대. 그것을 한꺼번에 받아낸 양대가리 전사 부대는.

"으아아아아악!"

"하아아악!"

"크하아아아아악!"

ㅡ콰아앙!

그대로 짓눌리면서 개박살이 나 토막난 채 하늘을 날았다. 중간계로 내려왔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냐?

"여긴 내 땅이야, 이 개새끼들아!"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넘겨줘!

나의 땅이고 나의 세상이다!

감히 누가 넘보느냐!

"혀,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방진을 형성하고 싸우라!"

그렇게 도륙당하는 양대가리 전사들 가운데, 쓸만해 보이는 놈들이 주변 부하들을 규합하고 분전했다. 물론, 그들의 힘은 내 마력을 잔뜩 먹은 엘리트 전사들에게 닿지 않는다. 무장 차이도 굉장하거든.

"저게 대가리로군. 흐읍!"

숨을 내쉬고.

"크루아! 네놈이 크루아인가!"

놈을 불렀다.

옆에서 카르티가 저건 크루아의 전사라고 말했지만, 이건 그냥 어그로 끌기용이다.

"너는...!"

"마계의 전사 크루아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니! 실망이다!"

"나는 크루아님이 아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크루아! 명예조차 없느냐!"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분의 전사, 크학!"

ㅡ퍼억!

시선이 분산된 놈의 어깨에 윈드커터가 꽂힌다.

그렇게 싸우는 도중에 적 말에 어울려주면 안 되지.

"크학...! 놈! 먼저 와 있던 마족이로군! 저급한 음마 따위가 내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형제들이여! 내게 모여라!"

"오오오!"

"오오오오!"

전사의 뿔이 빛났고, 놈들이 한 곳에 뭉쳤다. 일단 모여서 전력을 다 해 일점 돌파라도 할 생각인가?

나는 즉시 장전해뒀던 흑마법을 전개했다.

"다크 플레임 블래스트!"

성벽조차 무너뜨릴 강력한 흑마법!

나는 그것을 갈고닦고 또 갈고 닦았다. 내 부하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더 좁고 정확하고 작게 폭발하지만 아주 정확한.

"개(改)! 인퍼널 스피어!!!"

그런 흑마법의 일격을 날렸다!

ㅡ쐐애애액!

폭발의 힘이 담긴 검은 흑마법의 투창이 날아간다. 포위된 채 방진을 형성한 전사들은 마법사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적 대장이 비명 질렀고.

ㅡ콰아아아아앙!

창이 충돌함과 동시에 딱 놈들의 방진만을 덮칠 크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형제들이여어어어!"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양대가리 전사들이 터져나간다.

"큘스 마왕군!"

나는 소리쳤다.

"적을 섬멸하라! 도륙하라! 몰살해라! 저 마족 전사들은 우리들의 경쟁자가 될 놈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싹을 없애라! 놈들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케랴아아아아아악!"

"끄르르륵!"

인간 포로는 받지만 마족 포로는 안 받는다!

"물론 미녀라면 살려주지!"

대신 내 노예가 되겠지만!

* * *

"아아...!"

이단의 대주교, 베스티나는 감동하고 또 감동하여 손을 모은 채 눈물을 흘렸다.

고대하던 마계와의 게이트가 열리고, 전설 속 악의 전사들이 강림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마계는 실존했으며, 자신 역시 저들과 같은 마족으로 승천할 것이다.

하찮은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마족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양머리...'

하지만 사소한 게 아쉽다. 목소리는 분명 멋진 전사의 그것이었는데, 보니까 양의 머리를 지닌 투사들이다. 물론 외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봉사하는 기쁨이 사소하게 줄어들긴 하겠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저들의 힘이다.

중간계를 짓밟고 세계를 정복할 힘. 마족들에겐 그런 힘이 있다. 차원조차 뛰어넘는 위대한 전사들이 이 미개한 인간들의 성벽을 부수지 못하겠는가?

과장 조금 보태서 손짓 한 번으로 성을 무너뜨리고 각력으로 궁전의 외벽을 넘어 왕족들을 살해할 존재들이다.

성녀 측에 붙은 마족도 그 강대한 거력으로 하여금 파죽지세의 승리를 거두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마족의 위대한 힘이다. 그 적측 마족이 경계되긴 하지만, 크루아는 옛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근본 있는 마족.

성녀 측에 붙은 마족 따위, 한 끼 식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서, 어서...! 그대들의 신화적인 힘을! 전설적인 위용을 보여주세요!"

ㅡ크하아아아아아!

양의 머리를 한 악의 전사들이 울부짖는다.

"아아!"

베스티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황홀하고 또한 기쁜 눈으로 마족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고 있으니.

ㅡ스윽.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훗. 가련한 것들."

성벽을 순식간에 제압한 건 칭찬할만 하지만 이제 저들의 운명도 끝이 났다. 그 누구도 저 신화적인 악의 전사들을 당해낼 수 없으리라.

그리 생각한 순간.

"응...?"

날개 달린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그것이 불벼락을 쏟아냈다.

베스티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런 하찮은 마법공격 따위, 흑마법의 주인들이나 다름 없는 마족들에게 있어서 산들바람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

순간, 자신조차도 자각하지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벼락이 쏟아졌고 적들이 공격했으며.

크루아의 전사들이 쓰러졌다.

"어어?"

심지어 폭격이 끝난 즉시 적들의 몬스터 군단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말 몬스터다운 사나움과 폭력성이다. 하지만 결코 크루아군의 상대는 안 될 터인데.

"크아아아악!"

"아아악!"

양머리 전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ㅡ뎅겅!

썰려나간 손목이 하늘을 난다.

"어어? 어어어? 이, 이게 무슨...?"

베스티나는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크루아의 군세가... 적들에게 일방적으로 섬멸을 당하고 있었다.

"왜, 왜? 왜죠? 뛰, 뛰어올라 탈출하면 되는 것을? 그대로 적 후방에 착지하면서 대지를 부수고, 검격으로 건물을 쪼개 잔해만 떨어뜨려도..."

베스티나가 황망하게 중얼거린 그 순간.

"크루아! 네놈이 크루아인가!"

몹시 미혹적인.

귓가에 꽂혀 드는 듯한 매력적인 목소리가 청각을 강타했다.

"에?"

그리고 보인 것은.

"허억...!"

강력한 마족의 뿔과.

긴 귀를 지닌.

아주 매력적인.

그런 흑발의 귀공자.

마계의 왕자가 있다면 필시 저런 모습이겠지.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진다.

"그, 그대는 대체..."

귀공자가 흑마법으로 양머리 전사들을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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