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구멍이 있는 편이 좋습니다!"
"뭐, 뭐라?"
설정 오류가 있으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생긴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구멍에 대해서 물어본 녀석들과 언쟁해서 홀려버리면... 또 열성 신도로 거듭나게 되지요!"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완벽한 설정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정 따위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뿐이지.
심리만 파고든다면 설정 오류쯤이야 큰 뜻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깊은 곳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종교를 믿을 때 그 종교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보고 믿는 게 아니니까.
일단 지인들의 권유와 필요에 따라 믿기 시작한다.
"완벽한 종교 따윈 없습니다.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냥 믿게 하면 그만입니다. 세상에 인간들은 넘쳐 납니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성녀님은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보고 있었고, 베스티나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알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호소력입니다. 설득력과 믿고 싶을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 그거면 되는 겁니다."
"사, 상식과는 너무 달라서 혼란이..."
"바로! 바로 그거에요, 큘스님! 역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강림한 위대한 존재시여!"
상반된 두 반응.
물론 이야기가 진행된 즉시 성녀님은 아주 진지하게 여신교의 교리에 대해서 고찰해보면서 어드바이스를 해줬다.
그렇게 대충 얼개가 잡혔다.
"광명진리교의 신 이름은 큘스입니다. 저는 그 신의 이름을 딴 아들 또는 사도 같은 존재지요."
광명진리교.
줄여서 광진교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화합과 평화와 사랑. 그리고 약간 개평 같은 느낌으로 악의 분쇄.
사악한 존재를 처단하는 것 역시 화합이고 평화고 사랑이다.
"주신, 큘스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아들이자 사도인 제가 무려 몬스터들에게 가르침을 내려 따르게 만들었지요."
"확실히. 설득력은 있구나."
"몬스터마저 포용하는 신기!"
성녀님과 베스티나가 메모한다.
둘은 종교 전문가다. 얼개를 만들고 연구해서 보다 괜찮은 종교를 만들고 난다면, 성녀님의 권위를 이용해서 이 새로운 종교를 얼마든지 퍼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교리를 만들었다.
"화합과 평화.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간 자는 사후 큘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락한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사악한 일을 해온 자들은 불타는 지옥에서 태워지며 처벌받을 것이며... 그러니 구원을 위해 광진교를 믿고, 큘스님을 숭배하며, 천국에 가기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성녀님?"
그 말을 들은 성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 굉장히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람들을 속이는 것만 뺀다면 좀 괜찮은 종교지 않느냐? 평화와 사랑의 가치로서 백성들을 지배하겠다니. 성공만 한다면 태평성대가 올 것이니라."
"당연하죠. 그게 목적입니다. 세상이 안락해야 제가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통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왕인 나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내 식구들과 잘먹고 잘살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세상을 태평성대의 땅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수단과 사상은 나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것 같구나. 후후후."
그녀의 얼굴에 그윽한 미소가 걸린다.
"역시 그대는 근본적으로는 선한 존재이니라."
손을 뻗은 성녀님이 내 얼굴을 쓸어줬다. 딱히 선한 존재는 아닌데 말이지. 어찌 군주가 진정으로 선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건 누구도 믿지 않는다.
"뭐, 그리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 아무튼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열심히 종교를 만들도록 합시다."
"알겠느니라!"
기분이 좋군.
"아, 큘스님. 이런 설정은 어떨까요? 지은 죄의 종류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지옥에 가게 된다는 설정..."
"오, 정리해서 보여주십시오. 괜찮으면 채택하겠습니다."
"네!"
"그 전에 죄에 대한 설정도 잘해야겠군요?"
사악하지만 발랄한 분위기.
거 종교 만들기 딱 좋은 날씨다.
* * *
그리 종교를 만드는 한편 백작령의 안정화에 힘썼다.
전쟁의 상처를 지운 다음엔 또 다른 전쟁이다.
이제 이곳은 사악한 천사년들과 싸우는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우리들의 본부로 삼고 제대로 헤쳐 나가야 한다.
"백작이 하던 짓을 내가 해야 해."
천사들은 계속해서 공격해올 것이고, 우리들은 방어를 하면서 역습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백작이 해오던 일이니까.
종교야 뭐 이젠 성녀님한테 맡겨두면 알아서 완성하고 내 명령에 따라 포교를 실시할 것이다.
"사이딘 백작. 천사들의 공세에 대해서 좀 듣고 싶은데."
"...나 같은 퇴물의 도움이 필요한가. 그저 목숨만 붙어있을 뿐인데."
백작은 적당한 저택 안에서 감시를 받으며 노인네처럼 살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패배한 그는 완전히 노인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당연히 필요하다. 네가 도운다면 이쪽 백성들이 더 편해지겠지."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살려줬으니 아는 걸 말하도록 하겠소."
좋은 선택이다.
"현재, 나는 수도에서 결전을 준비하려고 병력을 다 빼 온 상태요. 따라서... 천사들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쪽. 그곳에 있는 성과 요새의 병력을 다 물린 상태이니... 곧 천사들이 그곳을 점령하면서 들어올 것이고, 이곳은 최전선이 될 것이오."
당초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사와의 전투에서 성은 크게 의미가 없지만, 일단은 필요가 있소. 천사들이 위험하긴 해도 숙련된 궁수 부대로 견제할 수 있고, 무엇보다 녀석들의 지상군들은 전부 인간이니까."
궁수와 성을 잘 이용하는 게 역량이고 천사와 싸울 수 있었던 노하우라고 한다.
"고맙군."
백작 휘하의 쓸만한 병사와 장교들은 전부 내 밑으로 들어온 상태다.
그럼 베라한테 가볼까.
"어머니! 저 왔습니다!"
"아아, 큘스 왔나."
ㅡ쪽.
다가가자 날 끌어안은 베라가 내 입을 맞춰줬다.
"기분이 좋아지는 입맞춤입니다. 아무튼 백작군 지휘에 대해서 말인데요."
"내가 부리도록 하지."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대 천사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을 잘 써야 합니다."
"안 그래도 그러는 중이었다. 귀순한 장교들과 전술 토론을 하고 있었지. 곧 이곳이 최전선이 될 텐데, 구 백작군 지휘는 내게 맡기고 있으면 된다. 천사들과 적 지상군을 잘 견제하도록 할 테니."
"역시! 척하면 척이로군요!"
과연 위대한 군사 지휘관답게 이미 자기 일을 다 하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기특해서 베라의 엉덩이를 쓰다듬어줬다.
"정말 기특합니다, 어머니."
"엄마에게 손버릇이 나쁘군? 뭐, 좋다. 잘하고 나면 포상을 주도록."
"네."
그럼 이제 딱히 걱정할 건 없나.
세력도 통합했고 병력도 다 모였다.
"기다려라, 뷰티엘."
잡아 넘어뜨리고 삼박사일 동안 애널에 박아주면서 조교 해주마.
* * *
"하등한 백작. 드디어 쓰러졌습니까."
지긋지긋하게 싸워오던 백작이 무너졌다. 엘프들과 연합군이 손을 잡고 하루 만에 무너뜨린 것이다.
물론 그들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기존에 있던 저등한 마족 녀석과 이번에 새롭게 강림한 열등한 마족놈들의 힘이 더해진 탓이다.
새로운 마족이 강림했다는 건 이미 느껴서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에 뷰티엘은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녀는 자랑스러운 대천당의 유능한 인재다. 적들이 뭉쳤다면 오히려 좋다. 손쉽게 전멸시키면 그만이니까. 전멸시키면 더 이상의 저항 세력은 없다.
그것을 위해.
"열등한 노예 놈들. 당신들이 발버둥 쳐봤자 그 끝은 죽음뿐이라는 걸 어찌 모릅니까?"
대천당의 지원을 끌어낸 상태다.
"노예에게 합당한 운명을 선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뷰티엘의 입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저들만 분쇄하면 중간계를 차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자신이 중간계를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대천당의 최고위 간부 자리인 발키리즈의 7석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후후후♥"
ㅡ움찔움찔♥
그리 생각하니 절로 애널이 움찔거리면서, 깊게 박혀든 애널 플러그가 성감대를 자극한다.
정이 든 애널 플러그지만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발키리즈의 일원이 된다면 더욱 값지고 귀한 보석으로 새로운 애널 플러그를 만들 것이다.
그것을 끼우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발키리들과 서로의 애널 플러그를 품평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절로 흥분된다.
ㅡ스릉!
뷰티엘이 성검 뷰벌린드를 뽑아 들었다.
"준비는 끝났다! 진격을 개시하라!"
* * *
천사들의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빈집털이를 실시했다. 백작령의 군대가 전부 빠졌기에 저항 따위는 없었다.
"크학...!"
하지만 병사가 빠졌다고 해도.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빠질 수가 없다. 평생을 마을에서 살아왔으며 모든 재산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아아악!"
"으아아악!"
"살려줘어어엇!"
군대가 빠진 백작령에 있던 마을들이 유린당한다.
"천사님들을 위하여!"
"그분들께 영광을!"
"모조리 죽여라! 건방진 쓰레기들!"
"천사님들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 버러지 놈들!"
천사 신앙에 심취한 천사군에게 있어서 백작령에 있는 민간인들은 전부 이단자요, 사악한 쓰레기들일 뿐이다.
"하하하하!"
병사들이 인간들을 죽이면서 희열에 차 웃음을 터트렸다. 공을 세운다면 천사들께서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믿음으로서 죽이고 자신의 정의를 의심치 않는다.
"죽어라, 죽어!"
저항하지 못하는 민간인들을 죽이면서도, 그들은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 모습은 전설 속 마왕의 군세와 실로 닮아 있었다.
"아아...!"
같은 인간에게 살해당하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구원은! 하늘이시여! 구원은 없는 겁니까!"
이 혼란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 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