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린 천사들을 잠깐 심문해본 결과 한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천사들이 특별한 창을 이용해서 강습을 할 거라는 작전이었다.
근데 이거는 이미 겪었으니 패스.
"이미 다 아는 정보입니다. 그럼 쓸모없는 대답을 했으니 처벌을 해야겠군요."
ㅡ꾸물꾸물.
손바닥 위에 소환한 팔뚝만한 마력촉수가 마구 꾸물거린다. 그것을 구속된 천사의 보지 쪽에 갖다 대려고 하니, 천사가 허벅지를 꽉 오므리면서 소리쳤다.
"소, 소환수! 신성한 소환수를 불러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흐음? 소환수?"
이게 무슨?
"말해보시죠."
"우, 우리 같은 말단 전투천사들은 몰라요! 하지만 헬라엘이! 우리 전투천사장인 헬라엘이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을 거예요!"
"다른 정보는?"
"모, 모른다니까요...! 뷰티엘이 소환수를 이용해 전황을 바꿀 거라는 말을 들은 것 외에는 없어요! 히이이익!"
천사가 공포에 질려 상체를 흔들자 풍만한 젖가슴이 출렁인다. 역시 천사들을 묶어놓고 괴롭히는 건 재밌단 말이지.
ㅡ핥짝.
촉수가 천사의 사타구니 안쪽과 보지 바로 위쪽을 핥는다. 천사는 이를 꽉 깨문 채 괴로워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안돼애앳! 하지마아앗!"
더 아는 건 없는 모양이지.
"그럼 패스."
바로 성고문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심문을 한 시간은 15분 남짓. 천사를 성적으로 괴롭히면서 수치심을 주는 것쯤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은 정보획득과 전투에 집중해야지.
"세리뉴! 보고!"
"세리뉴 보고!"
가슴을 출렁이며 부웅 날아와서 내게 경례한 세리뉴가 더음이를 빳빳하게 세운 채 군인 같은 어조로 또박또박 보고를 실시했다.
"적이 진을 치고 있어! 그리고 라미아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야! 더 어두워지면 공격을 감행할 거래!"
"좋은 생각이로군. 밤눈은 우리 몬스터 쪽이 더 밝으니까. 공격하려면 밤에 해야지."
천사들은 낮동안 격전을 치르면서 많은 힘을 소모했다. 밤에 라미아들을 격퇴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겠지. 광원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어둠 속에서 라미아가 갑자기 비춰지면 그건 그것대로 큰 공포다.
나야 뭐 라미아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하반신이 뱀인 여자는 그냥 괴물일 뿐일 테니까.
아무튼 라미아들이 중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확실시 된다면, 아예 이쪽에서도 병사를 보내 적을 쓸어버리면 된다.
"우리 픽시들은 뭐 할 거 없을까!"
"일단은 쉬고 있어. 힘 좀 회복하다가 출격할 일 있으면 천사들 견제하러 가자."
"알았어!"
어차피 밤에는 픽시들의 정찰효율이 급감한다. 몇 명만 불러서 공격부대 주변만 살피게 하면 돼.
"좋아. 그럼 여왕님!"
"불렀니?"
"준비하십시오. 높은 확률로 나가서 싸우게 될 것 같으니."
"후우. 역시 방어전은 성미에 맞지 않아.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야지. 몸 좀 풀어볼까."
씨익 웃은 렉사벨라가 투지를 드러내면서 다크엘프들에게 갔다. 이걸 위해 다크엘프들을 휴식시켜둔 상태지.
예비대이자 공격대다.
뭐 그렇게 부대를 관리하면서 쉬고 있으니.
ㅡ부웅!
라미아들에게 붙여뒀던 픽시가 날아왔다.
"마왕아! 공격이 시작됐어!"
"오오, 그러냐! 플라잉 큘스! 실시!"
"실시!"
ㅡ파앗!
픽시들이 달라붙어 나를 끌어올린다. 이제 픽시들도 많이 강해져서 그렇게 힘든 눈치는 아니다.
"호오."
보니까 하산한 라미아들이 적들의 후방 쪽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ㅡ번쩍!
천사들이 빛을 터트릴 때마다 마치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그 모습이 더욱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라미아들이 대규모 돌격을 감행했고, 천사군의 진지가 박살나는 중이다.
ㅡ캬하아아아아아아에에에엑!
"오오! 츄렐이!"
츄렐이가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것도 보인다. 저 커다란 녀석을 보라. 마구 대도를 휘두르면서 천사군을 도륙하는 중이다.
ㅡ번쩍!
ㅡ콰앙!
계속해서 섬광이 터져 나온다. 츄렐이는 천사들의 빛 속성 공격을 받으면서도 버텨냈고, 다른 라미아들은 츄렐이가 공격당하는 틈을 타 창을 던져 천사를 격추하기도 했다.
"지금이다! 여왕님! 부대를 이끌고 적병들을 공격하십시오! 상황 봐서 라미아들과 연계하면 됩니다! 타천사들도 출격! 다크엘프들을 보조해라!"
이제 시작이다!
"샤란아! 성문 오픈!"
"샤아!"
ㅡ뿌드드득!
내 말에 샤란이가 두꺼운 덩굴로 꽉 틀어막힌 성문을 열었다. 격전 중에도 뚫리지 않은 덩굴벽이다. 어지간한 성문 따위보다 강력하지.
아무튼 문이 열리자 다크엘프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럼 나도 가볼까! 친위대! 나를 따르라!"
나 역시 말에 탑승했다.
* * *
"으아아아악!"
"아아악! 천사니이임!"
"끼아아악!"
병사들이 비명을 지른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악마 놈들이 후방을 급습했다. 그에 따라 패닉이 번져나간다.
이미 천사군은 사기를 크게 잃은 상태다.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었고, 아까는 천사들이 직접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완패를 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가운데, 어둠 속에서 사신 부대가 나타난 것이다.
"저건 대체!"
"말도 안돼애애애애!"
"뱀인간이다아아아아아앗!"
크고 강해 보이는 뱀인간들이 기사처럼 창을 잡아 쥔 채 돌진을 감행한다. 그 숫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마치 기사단이 돌격하는 것 같은 모습에, 진형을 만들었던 병사들도 달아나기 시작한다.
"자리를 지켜라! 떨어지지 말란 말이다!"
천사들이 빛을 비추면서 독전을 하지만 이미 이것은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사방이 어둡다. 어둠은 두렵고, 시야가 제한되어 제대로 싸울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곳에서 귀신 부대가 나타나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는데 대체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ㅡ번쩍!
섬광이 터져 나와 적 뱀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병사들의 패닉이 가중된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
어둠 속에 저런 뱀괴물들이 우글우글하다! 그 충격적인 모습과 숫자가 자꾸만 드러나고 있단 말이다!
병사들은 절망해 도망쳤고, 저들끼리 부딪히면서 비전투 손실을 냈다.
ㅡ콰앙!
심지어 천사에 의한 아군오폭마저 일어나고 있으니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쯤에서 천사들 역시 크게 절망했다.
"다, 다른 쪽 부대도 이런 상태인가?"
"몰라, 모른다! 어떻게 해야할지...!"
"도망쳐야 하나?"
"적전도주는 사형이야! 어떻게든 수습해!"
"헬라엘님은!"
당황한 천사들이 부대를 방치하고 공중에 모여서 논의했다. 저 괴물들을 상대할 힘은 이제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남은 힘은 적들의 비행체들을 상대하는 데 써야 한다.
여기에 힘을 다 써버리면 적들의 비행체들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격추될 테니까.
게다가.
ㅡ키하아아아아아아악!
대도를 휘두르는 저 거대한 괴물은 신성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폭주만 했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들이 천사의 전의를 떨어뜨렸다.
"으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
병사들이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죽어간다. 그 모습은 마치 마을을 약탈했을 때 자신들의 손으로 도륙하던 농부들의 모습과 소름끼칠 만큼 닮아 있었다.
"캬하아아아악!"
"1선 후퇴은 후퇴해라! 2선이 들어온다! 캬하학!"
그렇게 라미아들이 병사들을 도륙하는 와중.
ㅡ부웅!
한 천사가 미친듯이 날아 도망치고 있었다.
"제길...! 빌어먹을!"
전투천사장 헬라엘이다.
이 군대의 책임자인 헬라엘이 다른 모두를 버려둔 채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친 것이다.
"빌어먹을!"
패배자가 되어 돌아가는 것과 탈영을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천당의 가혹한 군기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었다고 헬라엘은 애써 자위하며 도주했다.
어차피 전쟁은 진 것 같다.
군대 하나가 완파되었으니 쉽지 않겠지. 잘 쳐봐야 중간계에서의 대립이 심화될 뿐이다. 뷰티엘이 소환수를 불러냈다고 해도 그게 무적은 아닐 테니까.
마침 헬라엘은 나름 강한 천사였다.
도망만 친다면 중간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개하고 저열한 인간들을 홀려 숭배받으면서 그 지역의 여신처럼 군림할 수 있을 거란 말이다.
마치 뷰티엘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영원할 일은 없을 거고, 천사든 마족이든 승자가 가려진다면 결국 또 도주 생활을 해야겠지만 헬라엘은 살고 싶었다.
"어차피 전사 처리가 될 테니까... 괜찮겠지."
천계로는 영영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돌아가서 수치를 당하느니 그냥 죽은 걸로 해두고 인간들 사이에서 숭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게 백배는 더 나을 거다.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쳐서 그쪽에 있는 귀족이나 왕족을 홀려볼까? 모든 인간을 홀리는 것쯤이야 자신 있다. 속살을 은은하게 드러내면서 자애로운 척을 하며 힘을 조금만 보여주면 누구든 매료가 될 테니까.
전쟁 따위 잊고 안락하게 지낼 수도 있겠지.
ㅡ파앗!
헬라엘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주했다.
* * *
"아하하하하하하하!"
"이야."
여왕님 진짜 무섭네.
다크엘프의 여왕이 광소하면서 검을 휘두르자 천사군 병사들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픽픽 쓰러진다.
"크아아아압!"
"하아압!"
마찬가지로 다크엘프 특전사들도 조를 이룬 채 패닉에 빠진 적병들을 일방적으로 썰어 죽였다.
"죽어!"
"쓰러져라!"
소서리스들 역시 온갖 기기묘묘한 주술을 사용해 적들의 발을 묶었다.
"이노오옴!"
바로 그때, 미쳐버린 병사가 뜬금없는 곳에서 날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악!"
ㅡ파칙!
물론 다가오기도 전에 샤란이가 바닥에서 덩굴을 피워내 발목을 잡아 넘어뜨렸고.
ㅡ꽈드득!
"샤아!"
"컥!"
손에서 덩굴창을 생성하더니 그대로 던져서 1킬을 적립한다.
"완전히 전의를 잃었군. 우리의 승리다."
ㅡ촤학!
이쪽으로 뛰어오는 적병을 베면서 바네사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거야 원. 아까 정신을 완전히 박살내놓은 성과가 있군요."
사방이 비명 투성이다.
라미아들과 다크엘프들이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을 뿐이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우리 군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무해한 사냥감이 되어서 도망치고 넘어질 뿐이다.
"근데 천사들이 안 보이네?"
어느시점부터 사방이 암흑 뿐이다.
천사들이 전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설마 다 도망친 건가?"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어차피 천사들은 원하는만큼 생포한 상태고, 그녀들이 없다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이 이 천사 군대를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일단 픽시들도 끌고 온 상태다. 천사들이 도망쳤다며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그리 완승을 거두고 베라를 지원하러 가면 된다.
그렇게 천사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전원! 승리의 함성을 내질러라! 승리를 노래하며 적들을 분쇄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