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
보병진과 보병진이 맞붙은 채 힘싸움을 실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쟁의 정석과도 같은 모습. 인간과 인간이 싸우는 것은 대게 저런 모습이 되기 마련이지.
아무튼 저런 정석적인 전투는 베라가 전문이다.
내 역할은 일종의 예비대다. 주변에 병사들을 배치시켜둔 채 정찰을 실시하면서 끊임없이 정보를 확인한다.
"저쪽! 적 기병대가 우회하고 있어!"
세리뉴의 보고.
현재 천사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바, 제공권이 우리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마음껏 정찰하고 온 픽시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나는 명령을 내린다.
"라미아들 준비하라!"
"샤아!"
마침 우리가 나서기 딱 좋은 위치다.
"세리뉴! 특이사항은!"
"놈들이 방어막을 두르고 있어! 천사들이 힘을 써줬나 봐!"
"방어막? 플라잉 큘스 실시!"
"실시!"
ㅡ부웅!
픽시들의 힘을 빌어 날아오른다. 그 상태로 우회하는 적 기병대를 보니, 과연.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상태였다. 저런 게 베라군의 옆구리나 뒤를 치면 아주 위험하겠지.
"그럼 샤란이가 힘을 좀 써줘야겠구만. 샤란아! 라미아들이랑 함께 저쪽으로 가라! 가서 적 기병대가 올 때 덩굴을 막 만들어내서 발을 걸어 넘어뜨려 버려!"
"샤아!"
중갑 기병 상대로는 픽시들의 윈드커터도 별 쓸모가 없고, 저렇게 보호막까지 둘렀다면 임프나 타천사의 사격으로도 재미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
샤란이.
ㅡ처억.
내 부대가 이동하고 샤란이가 힘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ㅡ촤학!
ㅡ촤학!
달리고 있는 적 기병대의 전방 쪽에 단단하고 높은 덩굴들이 마구잡이로 솟아오른다.
"...!"
ㅡ파앗!
민첩한 기병들이 우회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
ㅡ콰앙!
첫 번째 기병이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을 시작으로, 적 기병대가 우루루 넘어지기 시작한다.
"피해라!"
"후퇴!"
"크학!"
선두는 완전히 박살 났고, 그 뒤에 있던 녀석들도 아군에게 걸려 넘어진다. 뒷 열은 급제동을 걸어봤지만, 뒤에서 달려오던 아군과 충돌해서 넘어진다.
그런 식으로 앞쪽의 기병들이 개박살 나고 나서야 뒷열의 기병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정지하거나 말머리를 돌려 피한다.
"캬하아아아악!"
그리고 그곳을 라미아 기병대가 덮친다.
ㅡ콰앙!
전장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술. 원래 맵핵은 이길 수가 없는 거다. 그리 기병대를 치워버리고 있으니 적 천사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세리뉴!"
"응!"
ㅡ부웅!
물론 픽시들이 출격한 즉시 손해를 보고 후퇴할 뿐. 이렇게 당했으니 다시는 나서지 못할 것이다.
"좋아!"
적 예비대에게 큰 타격을 먹였으니 이제 본대를 도와줄 때다.
"리리엘!"
"알겠다!"
ㅡ파앗!
내 말에 바로 리리엘이 '타천사 군단'을 이끌고 날아올랐다. 수십 명의 타천사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니 정말 장관이다. 그래도 열심히 조교하니 당장의 명령을 따르는 수준이 되긴 했지.
"일제 사격 실시!"
그렇게 떠오른 수십 명의 타천사들이 적 보병진형을 향해 암흑의 불덩이를 쏘아낸다.
ㅡ화르륵!
근데 화력이 약해.
"흠."
이제 막 타천사가 된 탓에 화력이 약하다. 내 숙련된 임프군단보다 격이 떨어지는 불덩이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수십 발이 한꺼번 떨어지니 위협적이긴 하다.
ㅡ퍼엉!
적 보병진에 떨어진 불벼락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아아아아악!"
"으아아악!"
그래도 마음에 드는군.
뭐 그렇게 두 발 정도 더 쏜 타천사 신병들이 다시 착륙했다. 아직은 약하기 때문에 전투를 더 지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크. 상황이 이런데도 천사들이 추격을 안 오네."
타천사들이 공격받을 때 픽시를 한번 더 보내려고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또 당하진 않는 건가.
아무튼.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내가 적 예비대의 지원을 틀어막으면서 간간이 본대를 공격해주니, 베라의 군대가 완전히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다시 승리했다.
"압승이다! 이번 전투 역시 우리가 압승했노라!"
전투 승리.
적 천사들의 두 번째 군단 역시 우리들에게 대패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남은 것은 신성총독 뷰티엘이 이끄는 직속부대 뿐. 제일 강하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의 협공을 이겨낼 수는 없을 터다!
"함성을 내질러라!"
"케랴아아아아아아악!"
* * *
엘프군대의 시체들이 즐비한 평원.
"이상입니다, 뷰티엘님!"
보고를 받은 뷰티엘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무능한 쓰레기 년들이...!"
하얀 안광이 흘러나오면서 그녀의 주먹에서 신성한 오라가 휘몰아친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ㅡ콰앙!
분노한 뷰티엘이 발을 구른 순간, 환한 빛이 터져 나온다. 보고를 한 위비엘은 잠깐 두려움에 빠졌지만 자리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뷰티엘은 고지식하고 능력주의적인 면이 있지만, 그렇기에 절대 허튼일로 부하를 건드리지 않으니까.
"헬라엘은!"
"시, 실종상태입니다! 포로, 전사, 탈영, 전부 불명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ㅡ쿠웅!
뷰티엘은 이마를 부여잡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적 부대를 잡아두는 것도 못 하다니, 정말 놀랍군요."
적들의 병력을 세 개로 분산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그렇게 그 두 부대가 적 부대를 잡아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두 부대 모두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가장 최악의 경우가 찾아온 것이다.
"쯧!"
이래서야 앞으로가 문제다.
"엘프군을 물리쳤지만, 그것들이 문제로군요."
엘프들은 상당히 강한 전투력과 온갖 기이한 수단을 사용하면서 덤벼들었지만, 뷰티엘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결정적으로.
"크르르...!"
대천당에서 신경 써서 준비해준 소환수에 의해 대패했다.
"역시 믿을 건 당신뿐입니까?"
뒤를 돌아본 뷰티엘이 그리 말했다.
"크르르르!"
"좋은 투지입니다. 하지만 힘든 전투가 되겠지요."
원래는 엘프의 군대를 박살내자마자 계속 이동하여 아군 부대와 합류하고 적 부대를 격멸한 뒤에 똑같은 정차를 다시 반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아군은 전멸한지 오래. 이 상태라면 완전히 합쳐진 적 군대를 상대해야 한다. 소환수의 힘으로 엘프군을 처부수긴 했지만, 적들은 이미 천사군을 두 개나 격파했다.
그런 강적들이 하나로 뭉쳐있다면.
거기에 싸움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
"..."
뷰티엘은 고민했다.
원군도 없는 상태이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쯧."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다.
"어쩔 수 없군. 위비엘."
"네!"
"당신에게 내릴 명령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인간 신자들을 광신도로 만드십시오."
"네...? 그건!"
그 말에 위비엘이 눈을 크게 뜨면서 반사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축복의 수위를 높이라는 소리입니다."
뷰티엘로서도 위대한 종족인 천사들을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곳에서 밀린다면 대천당의 중간계 침투작전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희생이 필요할 때다.
"그 말은...?"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대로 실행하면 됩니다."
"..."
"불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엘과 슈라엘이 실패했지요. 이대로면 위대한 대천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됩니다만, 과연 그것이 천사 개인의 기분보다 중요하겠습니까."
"마, 맞는 말입니다... 분명 그녀들도 이해하겠지요."
"지원자를 우선으로 실행하십시오. 전후 최우선 승진 대상으로 삼도록 할 테니."
"알겠습니다."
위비엘이 뷰티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인간 수컷들은 다루기가 쉬우니... 정말. 이 얼마나 열등한 종족입니까. 성욕에 지배를 당하다니."
천사들은 성욕을 즐길지언정 지배되지 않는다.
인간 수컷들을 광신도로 바꾸는 작업은 실로 간단하다. 그동안 중간계에 내려와서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인간 수컷들은 천사들에게 조건 없이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치 자기들 왕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쉽게 복종을 하는데, 이것은 인간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인간들은 천사교를 믿는 신자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나, 인간 수컷들의 눈에 비친 여성 천사들의 모습은 마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세에 대한 좋은 말을 해주고, 응원해주고, 간단한 스킨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광신도의 자질을 싹틔운다.
거기서 그러한 '축복'의 수위를 살짝 더 높인다면, 인간 수컷들은 실로 훌륭한 광신도로 거듭나게 된다.
천사들은 광신도를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목숨을 던져버릴 수 있는 미쳐버린 인간으로 정의한다.
"그들의 영혼이 당신을 강하게 만들 겁니다, 홀드."
뷰티엘이 소환수에게 말했다.
"크르르...!"
인신공양.
인간의 영혼은 예로부터 좋은 연료였다.
* * *
그리 두 번째 전쟁을 끝마친 뒤.
꿈속에서 엘프여제 릴리안느와 교신한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게 무슨? 엘프 군대가 당하다니요?"
"네... 실로 그렇습니다."
무릎을 꿇은 알몸의 릴리안느가 벌을 서는 것처럼 손을 든 채 고개를 숙인 상태로 말했다. 결코 내가 시킨 것이 아니다. 꿈속에 들어오니까 바로 저러고 있었다.
자기 휘하의 군대가 대패해서 미안한 모양.
"알겠습니다.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대체 어떤 수단으로 대패를 했는지. 그것입니다."
일단 그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물어보니.
"그것이... 잘 알 수가 없어요."
"뭐라? 릴리안느. 그러면 혼납니다."
"아니아니! 그런게 아니라요! 보고에 의하면 하얀 장막과 밝은 섬광이 계속 뿜어져서 전장을 제대로 관측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