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가 시작되었다.
성을 지키는 우리들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우릴 노려보고 있는 천사군들.
"못 찾았어, 큘스오빠. 도대체 무슨 소환수인지 감도 안 잡혀."
"그래?"
오랜만에 나타난 카르티가 그런 정찰 보고를 해줬다. 그동안은 천사들의 힘이 계속 흘러나온바 운용이 곤란하다고 해서 나오질 못했다.
가장 약한 천사가 가볍게 힘을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이블아이들은 추락하고 마니까.
잘 운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픽시들을 이용해 천사들을 견제해주니, 이제 천사들의 비행활동이 크게 위축 되었다. 그렇기에 슬슬 카르티가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데도 소환수 관측이 안 된다니.
"뭐 의심 가는 거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사실 그게 너무 많아서... 게다가 중간계로 보낼 수 있는 것도 잘 모르겠고. 엘프 군대를 전멸시킬 정도라면 더욱더 모르겠어."
카르티 말하길 천계에는 그런 소환수니 신성괴수니 하는 것들이 제법 있다는 모양이다. 마족들도 괴수병기를 만들어내서 싸우는 곳이니까.
중간계의 상식에 사로잡혀 있는 나는 저 이계에서 벌어지는 하이파워틱한 전투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는다.
강력한 마족들이 날아다니면서 파멸적인 마법을 흩뿌리고, 지상에서는 괴수와 마족군대가 전진한다.
천사들은 그에 맞춰서 온갖 병기와 신성괴수들을 동원해 빛을 뻥뻥 터트리면서 역공을 걸어온다는데, 그런 개쎈 놈들이 중간계에 아무런 패널티 없이 올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은 진작 박살났지 싶다.
"일단 강력한 소환수로 의심되는 건... 불타는 차륜이나 신성룡. 빛의 거인. 날개달린 주시자 등. 등급별로 구분된 신성괴수들이라서 그런 게 나올 확률이 높겠지."
"여러 가지 있네."
"응. 후보가 너무 많아서 콕 찝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도 그런 것들은 강력한 신성력을 지녔으니 주의해. 이건 전부 공통된 사항이야."
"흠."
"하지만 파워가 어떨지 감이 안잡혀... 역시 변수가 많네."
카르티가 한숨을 내쉬면서 그리 말했다.
"게다가 도와주기도 빠듯한 상황이야. 대천당이 다시 마계를 공격한 상황이거든. 그에 따라 이런저런 대비를 하는 탓에 차원의 연결도 불안정해."
"위에서도 뭔가를 한다는 건가. 참. 고생이 많다."
"아니야. 큘스오빠에 비하면 괜찮은걸."
"야. 내가 뭐 대단하다고. 마계에는 나보다 강력한 그런 게 많다매? 괴수병기도 넘쳐나고. 아직 마계로 따지면 별거 아닌 거 아냐?"
"사실 그렇지만도 않아!"
카르티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건 세상에 퍼진 마력의 농도가 달라서 그래! 아마 큘스오빠가 마계로 오게 된다면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큘스오빠는 그만큼 그릇이 큰 마족이니까!"
"급성장?"
"응!"
잠깐 설명을 들어봤는데, 마계는 힘이 더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유능한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인다면 마계 사양에 맞게 급성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단다.
"오. 굉장한데. 그러면 마계 한번 찍고 돌아오면 중간계 패왕 되는 거 아냐?"
"그건 아니야. 알다시피 차원을 넘는데는 아주 큰 힘을 소모하니까. 원래대로 돌아올걸?"
"그런 것이로군."
서버가 다르다, 서버가.
근데 내가 그 하이파워 마계섭으로 가면 그만큼 보정을 받는 거고. 거기 있는 애들이 중간계로 오면 패널티를 받는. 뭐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카르티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끊임없이 적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 * *
"아무래도 공격을 할 생각인가 보군."
바깥을 바라보던 베라가 말했다.
"겁대가리가 없군요. 여기서 이렇게 수비에 집중하고 있는데 공격을 걸려고 하다니."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맞는 말이다.
"적 본대가 전진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수의 예비대가 양익과 후방을 감싸고 있다는군. 산속에 숨겨뒀던 별동대로 재미를 보는 건 못할 것으로 판단 된다."
"후방 급습도 잘 대비하고 있는 상태라는 겁니까."
"그렇다. 정석대로 부대를 굴리는군. 뭐, 부대 규모가 그만큼 크니 당연한 일이겠지."
군대는 숫자의 싸움이다. 머릿수가 많으면 이거저거 다 할 수 있다. 그리 베라랑 이야기하면서 결론을 내렸다. 역시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하면서 틈을 찾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걸.
뷰티엘이 있는 천사군의 규모는 역대 최대다.
정석대로 싸우도록 하자.
"자, 다들! 적들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공성병기도 여럿 만들어둔 상태로군! 격전이 예상되니 주의하라!"
"케륵!"
"네!"
현재 이 성에는 인간군대와 몬스터 군대가 뒤섞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태다.
인간과 몬스터가 힘을 합치면 천사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자, 그럼. 녀석들이 어떻게 공격하는지 보자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천사들의 폭격도 봉인이 되었으니 수성의 이점을 살려 이득을 보면서 적 부대를 깎아내면 된다. 소환수는 위협적이지만 우리에게도 비슷한 게 많아.
걱정할 건 없다.
ㅡ둥둥둥둥.
ㅡ뿌우우우우우우!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 그리고 함성소리가 뒤섞이면서 적들의 깃발이 솟아오른다. 천사군이 공성을 하기 위해 온갖 공성병기들을 앞세우면서 진격했다.
"샤란아!"
"샤아!"
그렇게 적들이 일정 영역을 넘어섰을 무렵 샤란이가 힘을 발휘했다. 대지에서 괴식물들이 솟아오르며 적병을 공격한다.
"으아아아아아악!"
실로 정석적인 멘탈공격.
저런 걸 보면 두려워지기 마련이지.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희생자가 생겨난다.
그런데.
ㅡ파앗!
천사들이 빠르게 반응했다. 저공비행을 하던 천사들이 바로 금빛 삼지창을 거꾸로 쥔 채 하강하여 식물을 공격한 것이다.
"물론 예상한 바지. 리리엘! 사격실시!"
"후하하하핫! 알겠다!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지!"
ㅡ펄럭!
바로 타천사들이 날아올라 폭격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적 천사들이 대응하려고 하면 픽시를 보내려고 했는데.
ㅡ파앗!
ㅡ파앗!
반대다.
"이런."
저공비행을 하던 적 천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더니, 그대로 우리 천사들을 향해 빛의 사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형성된 화망.
ㅡ파앙!
우리 측 타천사들이 급히 공격을 중지하고 보호막을 전개한 채 하강한다.
"이런! 실패했다! 갑자기 저렇게 대응하다니!"
"역시 적들도 성장한다는 건가."
우리측 공군이 뜨자마자 천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대응사격을 가했다. 그래. 이제 둘 다 비행병종을 봉인하자는 건가?
"리리엘! 날지 말고 성벽 위에서 곡사로 사격해!"
"좋군!"
바로 시키는 대로 천사들이 포를 쏜 순간.
ㅡ지이잉!
이번엔 적 천사들이 보호막을 생성하여 병사들을 보호한다.
ㅡ퍼어엉!
게다가 우리 사격이 끝난 즉시 적 천사들이 저공비행을 하는 상태 그대로 일제히 곡사 사격을 하여 빛의 화염을 뿜었다.
"레이카!"
"그래! 야! 보호막 전개!"
ㅡ지이잉!
그것을 우리의 암흑수녀들이 막아냈다.
ㅡ콰앙!
말 그대로 막고 막히는 공방전.
"뷰티엘이 준비를 단단히 했나 보네."
옆에 선 여왕님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모든 수단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진짜 정석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겠는데요."
"응. 맞는 말이야."
솔직히 놀랐다. 이번만큼은 천사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존나 당하더니 교훈을 얻고 교리를 재정립한 것이다.
그렇게.
전장의 시간이 흘러간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
인력을 갈아 넣어 견제를 뚫고 적병들이 성벽 앞에 도달했다. 그래도 성문이 박살날 염려는 없다. 샤란이가 있으니까. 문제는 저 공성탑인데.
ㅡ처억!
적병들이 사다리를 걸면서 성벽을 견제하는 한편 공성탑을 차근차근 접근시킨다.
"케르르륵!"
"죽여라!"
"하압!"
우리 측 성벽 수비대가 사다리를 치워내면서 올라오는 적병을 공격하고, 임프들이 공성탑에 열선을 갈겼다.
ㅡ퍼엉!
근데 천사들이 문제다. 보호막을 아주 잘 다루고 있어. 공성탑을 보호하면서 열심히 자기들 군대를 지원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크아아아아아아!"
적 천사군들의 사기가 장난이 아니다.
"끄르르륵! 모왕님! 공성탑을 부술 수 없씁니다! 중지함니까!"
바로 그때 임숭이가 세리뉴에게 양팔을 잡힌 채 날아왔다. 급박한 와중 내게 명령을 받으려고 온 것이다.
"아니! 계속 사격해! 너희들의 목적은 공성탑의 파괴가 아니라 천사들의 보호막 낭비다! 알겠냐, 임숭아!"
"끄륵...! 알껬습니다!"
즉시 복귀를 하는 임숭이. 그런 임숭이를 보면서 다시금 전장을 관찰했다.
ㅡ와아아아아아!
ㅡ케르으윽!
성벽에서 접전이 벌어진다. 아직 올라온 녀석은 없다. 우리가 압도하는 중. 하지만 공성탑이 완전히 붙는다면 또 모르지. 다크엘프를 투입해야 할 것이다.
"문제없이 흘러가는군."
베라가 말했다.
"예. 실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환수가 안 보이는 상태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왜 안 보이는지 원."
뭔가 비장의 한방을 준비하는 걸까?
그러한 생각 속에 전장의 시간이 쭉쭉 흘러갔다. 아침에 시작된 전쟁은 오후가 될 때까지 이어졌고, 적들은 공성탑을 이용해서 우리 성벽에 부대를 보냈다.
물론 여왕님의 활약으로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든 그때.
ㅡ뿌우우우!
적측에서 뿔피리 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퇴! 후퇴하라!"
그렇게 후퇴하는 적병들.
일단 밤까지 싸웠으니 후퇴인가?
결국 소환수는 못 봤구만.
"쫓지 마라! 뭐가 있을지 모른다! 원거리 공격만 시행하라!"
그리 명령을 내리면서 적들을 주시했다... 진짜로 퇴각하는군. 이제 밤 동안 병사들 휴식시키고 그러면서 적들을 방해해볼까.
뭐 그리 생각하고 있던 그때였다.
"어어? 저기!"
옆에 있던 세리뉴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무슨?"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에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잠깐 눈에 마력을 집중시켜서 보니... 공중에 무언가가.
ㅡ번쩍.
"번쩍?"
마치 카메라가 찍힌 것처럼 작은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ㅡ화아아아아악!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말 그대로 주황빛 하늘이 일순간 빛의 하늘로 변해버렸다.
ㅡ오싹.
소름이 돋은 순간.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하늘에서 포효성이 터져 나온다. 그것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니. 떨어진다... 이런 씨발!
"성벽에서 피해!!! 피하라고!!!"
ㅡ번쩍!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새하얀!
"쿠오오오오오!"
새하얀 드래곤이었다!
"아하하하하! 이제 끝입니다! 이 더러운 마족 녀석들!"
드래곤의 위에 탑승한 천사가 백색의 검을 들어 올렸다.
ㅡ번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