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님! 여왕님!"
근위대장이 다급하게 비비앙 여왕을 찾는다.
"무슨?"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의문을 느낀 비비앙이 근위대장을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근위대장인 네가 이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니?"
"죄송합니다, 여왕님! 너무 믿기 힘든 보고를 듣게 되어서 그만! 보고 하겠습니다!"
"믿기 힘든 일?"
대체 무슨 일일까?
비비앙은 근위대장의 보고를 들었다.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뭐? 그게 무슨...?"
"예! 천사들이 드래곤을 부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어떤 강력한 기병대를 은유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드래곤이 정말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궁정 마법사 나탈리아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나, 나탈리아가?"
"정보의 신뢰도는 최상! 그쪽에서 급하게 파발이 왔습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근위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사에 이어서 드래곤이라니... 참."
비비앙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서 머리를 짚었다. 요즘 생각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다니?
일단 성국 쪽에 진짜로 '천사'들이 강림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런 보고가 다수 들어왔으니까.
날개 달린 천사들은 마족의 멸절을 외치면서 세력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천사들이 드래곤까지 부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믿기 힘든 일이다. 드래곤처럼 강한, 어떤 천사들로 이루어진 기병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나타나다니?
천사들은 결국 몰락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다면 그 드래곤이 성국의 지도자. 사도왕 큘스에게 넘어갔다는 말인가?
"나탈리아."
분명 나탈리아를 다시 외교관 자격으로 보냈었다. 사도왕과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오라고. 나탈리아가 왔다는 걸 보면... 그 이야기를 성사시킨 것일까?
그래서 사도왕이 드래곤을 타고 바로 와버린 걸까?
"이 무슨."
만남을 기다리긴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일정 조율이나 계획 같은 것도 없이 드래곤을 타고 오다니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라서 아연 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네. 그쪽에서... 나탈리아 궁정 마법사와. 성국의 사도왕이 대기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아, 그쪽의 수행원들도 온 상태입니다."
"드래곤은?"
"그게, 착지한 뒤에 돌연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섬광과 함께 사라져?"
그 정도의 마법이 정말 존재할까?
천사들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을 갑자기 꺼냈다고 감추는 것은 너무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그런 마법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경계를 할 필요가 있겠는데... 근위대장. 일단 나탈리아를 들이고 설명을 듣도록 해야겠어. 그리고 그들에게 귀빈 대접을."
"네!"
아무리 봐도 외교적 결례인 일이다.
하지만 드래곤을 타고 온 존재를 홀대할 수는 없다. 정말로 드래곤이 있고, 그 커다란 드래곤을 마음껏 감출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적대적으로 구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하아."
한숨이 흘러나온다.
상대방이 능력 좋은 신생 왕국의 왕이 아니라 정말로 강력한 어떤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도왕이 그런 존재라면, 좋은 외교는 불가능하다. 당초 상정했던 것들이 전부 파기되고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강력한 힘을 지닌 이웃 왕국이 샤르오드 왕국의 왕실과 귀족들을 모조리 분쇄하고, 왕국 그 자체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상상.
정말로 드래곤을 부리는 동화 속 마왕 같은 존재가 있다면 국력이 약화된 지금 그런 존재를 당해내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어도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왕이 된 자의 책무니까.
왕실을 온존하고 백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지금 여왕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과연 드래곤을 타고 온 존재는 무슨 요구를 할 것인가.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비비앙은 사도왕을 만날 준비를 했다.
* * *
"그게 정말이야?"
"응...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이야. 사도왕. 그는 야망이 아주 큰 남자야. 우리 왕국과 빠르게 관계를 확립하고 싶어 해. 적이든 동지든 빠르게 정할 생각이겠지. 드래곤을 끌고 온건 일종의 무력 시위일지도 몰라."
비비앙 여왕의 말에 나탈리아는 적당히 교육 받은 대로 대답했다. 사도왕이 드래곤을 끌고 온 것은 무력 시위다.
드래곤을 끌고 온 상태고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이야기를 하자며 으름장을 놓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원하겠다는 태도.
"하아."
비비앙은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대체 어떤 이권을 넘겨줘야 할지 고민했다.
승냥이 떼 같은 귀족 세력 다음엔 외국의 왕이라니.
"뭐가 됐든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겠네. 그렇다면 최대한 덜 손해 보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외국의 왕이 요구하는 게 크다면 어쩔 수 없이 귀족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이득과 손해의 크기에 따라 얼마든지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
"그런데 나탈리아? 드래곤은 얼마나 강한 거지?"
"힘을 보진 못했지만... 우리와 수행원을 태우고 아주 빠르게 날아왔어. 만일 그런 게 궁전으로 비행 돌격을 감행한다면, 우린 무사하지 못하겠지."
"...강하다는 거네."
비비앙은 친구의 판단을 신뢰했다. 궁정 마법사가 직접 보고 와서 하는 이야기다. 당연히 신뢰할 수 있다.
드래곤은 강하며 사도왕은 자신과 제법 강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어찌 됐든 만나야만 한다.
"좋아. 만나서 그의 의중을 떠봐야겠어. 드래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왕국을 쉽게 흔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여차하면 귀족들과 손을 잡아야 할 거야."
"비비앙..."
자얀트 후작에게 왕위와 몸을 넘겨주고 싶진 않지만 사도왕이 요구하는 것이 정도 이상으로 클 경우 귀족들과 함께 힘을 합쳐 외적을 물리쳐야 한다.
비비앙은 그런 생각을 했고.
몇 가지 준비를 한 끝에 성국의 사도왕을 만찬 자리에 정식으로 초대했다.
"..."
그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귀족들을 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다.
역시 왕관의 무게는 무겁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해."
하지만 비비앙은 여왕으로서. 그리고 두 딸의 어머니로서 결심을 굳혔다. 손해를 최소하면서 왕국을 지키겠다고.
"여왕님. 곧 귀빈들이 만찬회장에 방문합니다."
"정중하게 모셔라."
"네."
시종장이 움직였고.
ㅡ끼익.
만찬회장의 문이 열렸다.
"신성국 큘스의 사도왕 큘스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시종장이 소리침과 동시에 비비앙 여왕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어, 어어?"
과연 어떤 사람일지 제대로 보고 판단하겠다는 그녀의 결심이 무색해지는 순간.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녀가 크게 놀라는 순간이었다.
ㅡ저벅저벅.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외모에 대한 것은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의 외견을 상상하면서 판단하다 보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왕의 모습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내가..."
사도왕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귀공자 같은 외모를 지닌 미청년이었다. 저렇게 잘생긴 사내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미청년의 키는 컸으며 육체 역시 장군의 그것처럼 강인해 보였다.
말 그대로 이야기 속 왕자 같은 모습... 사도왕이 저런 존재였던가?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칼이 몹시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 사도왕이.
ㅡ...
자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앗."
그것이 몹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비앙은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은 여왕이다.
측근과 백성들을 제외한다면 결코 마음을 허락해선 안 된다. 게다가 사내의 외모에 감탄을 하다니. 미망인이라고 하나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읏."
그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야 나탈리아와 놀러 다니면서 조금 즐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옛날 일일 뿐이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곁에서 왕을 섬기면서 성장해 비비앙은 정숙해지고 정절을 지키게 되었다.
남편에게 사랑과 충성을 바치는 것이 절대적인 미덕임을 알게 된 그녀에게 있어서 사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눈이 살짝 즐거웠을 뿐, 다른 마음은 들지 않는다.
비비앙은 사도왕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며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찬을 즐긴 뒤엔 머리 아픈 정치적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거기에서 승부를 봐야만 한다.
* * *
과연 샤르오드 왕국의 여왕 비비앙은 어떤 여자일까.
나탈리아는 그녀를 걸레라 칭했지만 그건 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면서 그녀의 초대를 기다렸고, 결국 만찬회장에 가게 되었다.
ㅡ끼익.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상석에 앉은 비비앙 여왕을 보게 되었다.
"...오."
작게 감탄했다.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니. 초상화가 그녀의 미모를 다 담지 못했다. 잘 관리된 미모. 비비앙 여왕은 과연 여왕이라고 칭할 만큼 정숙하고 어른스러운 미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물론.
몸매는 전혀 정숙하지 못하다.
여왕의 드레스는 권위롭지만 은근히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드러난 가슴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허리는 애엄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았다. 하지만 골반과 엉덩이는 과연 애를 둘이나 낳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정숙하고 아름답고 어른스러운 유부녀의 색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음란한 몸매.
거기에 머리 위에 얹어진 티아라가 매력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처녀성은 '하늘색'이었다.
"흠."
그 색의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했다.
가만 보니 성경험 상대가 남편 하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거 결혼 전에 남자 몇몇과 관계를 가진 모양이다. 하지만 마지막 남성. 즉 왕비가 된 뒤에는 오직 한 남자랑만 잠자리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결혼 전에는 가볍게 즐기곤 했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정절을 지키면서 오직 남편만을 섬겨온 것인가.
저 하늘색은 오직 남편을 진심으로 섬겼을 경우에만 드러나는 색이다.
"..."
그러니 판결.
비비앙 여왕은 정절을 지켜온 훌륭한 유부녀다.
나탈리아 이년.
여왕 험담을 그렇게 하더니 완전히 구라였다. 여왕의 처녀성이 푸르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완전히 시꺼먼 색을 지닌 걸레같은 나탈리아와는 달리 여왕은 깨끗하다.
그렇다면 가질만 해.
ㅡ울컥.
자지에 반응이 온다.
당장이라도 저 여자를 가지고 싶었다. 저 정숙한 유부녀를 침대에 눕히고 내 아래에 깐 뒤에 풍만한 젖을 주물러대면서 내 자지로 그녀의 보지를 채굴해대며 새로운 주인인 날 섬기라고 강요하고 싶은 충동이 들끓어 오른다.
저런 푸른색을 지닌 미망인 여왕이라면 날 아주 잘 섬길 것이다. 게다가 몸매도 내 취향이지 않은가. 과연 비비앙 여왕은 내게 어떤 섹스를 보여줄 것인가. 기대가 된다.
인큐버스 킹인 내가 그리 마음먹은 이상 그것은 필연.
"반갑습니다. 여왕님."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