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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485화 (485/544)

그리 바르카 여해적단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았다.

명색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인 만큼 힘이 있긴 한 모양이다. 힘이 없었으면 이미 다 박살이 났을 테니까. 마나를 지닌 여성들이 제법 많다는 듯.

하긴.

그 정도 힘이 있으니 사략해적 노릇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외국의 상선들은 바르카 여해적단을 상당히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근데 역시 본진이 바다에 있는 섬이고. 배 위에서 지낸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요격할 방법이 많지가 않다. 루미카? 혼자고. 공군만으로 강군을 상대하는 건 꺼려지는데.

홀드가 있다지만 해상전에서 얼마나 강할지는 알 수 없고 말이다. 이거는 천천히 잘 생각을 해봐야겠군.

다시 비비앙과 정치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무튼. 아직 전쟁이 일어난 건 아니야. 서로에게 명분이 없으니까. 만들면 그만이지만, 그걸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회담과 사건이 필요하겠지. 그래도 곧이야."

현재 여왕과 귀족들은 대립 중이다.

아직 전쟁이 터진 건 아니다.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명분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모인다.

"그렇군요. 대충 알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쉬세요."

그리 이야기를 마치고 내 숙소로 돌아왔다. 비비앙은 아쉬워하면서 입맛을 다셨지만, 매일 해주는 것도 좋지 않아. 더 안달나게 만들어야 내게 더 충성할 거다.

"흐음."

그런데.

"명분이라."

마왕군 소속인 내 몬스터 병사들에겐 이유도 명분도 필요 없다.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그 녀석들은 내 명령이라면 언제까지고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내 마왕군 병사들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건 정복과 승리라는 개념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거기엔 어떠한 선악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왕군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분이 중요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명분을 찾는다. 말단 병사들도 왕들도 전부 명분을 만들어서 전쟁을 하지.

그러나 내 마왕군에겐 그런 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정복과 승리의 기쁨을 얻겠다는 말 하나면 충분하니까. 내 애들은 언제까지고 날 따라올 것이다.

정복자의 군세.

가히 마왕군이라 칭할만 하다.

근데 아직 내 왕국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건 인간들이란 말이지. 베라의 군대도 그렇고 내가 흡수한 모든 군대가 그렇다.

그들은 인간이다.

사악한 천사들과 맞서 싸운다는 명분으로는 열심히 싸워줬지만, 천사 세력이 전소된 지금. 그들에게 외국과 전쟁한다는 명분을 불어넣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전제군주인 만큼 마음껏 싸워도 괜찮긴 하다. 근데 결국 중요한 것은 '납득'이다. 백성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 휘두르기만 한다면 불만은 쌓이게 될 것이고, 결과 나를 지배자로서 지탱하는 토대가 흔들리게 된다.

뭐 백성을 악압하고 착취하고 감시하는 것으로 지배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국가전투력이 약화된다.

왕이 공포로 군림하는 북한은 특수케이스일 뿐이다. 북한의 군대는 외세와 싸울 능력이 거의 없다. 순전히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기형적인 군대. 아니. 군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경비원들이다.

21세기. 그것도 한국과 국경을 마주한 특수한 국가이기에 옛날 같은 전쟁은 없다. 그렇기에 외세의 침략이 없어 성립하는 국가일 뿐이지,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 외적을 막지 못하면 끝이니까.

따라서 난 마왕이지만 지배하기 위해서 인의를 알아야 한다.

"무슨 명분이 있어야 할까?"

잠깐 고민했고, 나는 곧 천사 신앙이 외국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오, 그래. 이게 있었지."

살아남은 천사와 그녀들이 퍼트린 천사 신앙으로 다시금 중간계가 혼란해질지도 모른다... 그 정도 명분이라면 군사를 좀 부릴 수 있겠군.

일단 비비앙 여왕을 도와 샤르오드 왕국의 귀족 세력을 격멸할 생각이다.

비비앙 여왕의 군대와 내 마왕군. 그리고 베라의 인간군 일부를 투입하도록 하자.

충분하다.

*     *     *

"응. 맞아. 최근 백성들 사이에서 천사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어. 어쩌면 이미 천사들을 숭배하는 종교단체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지. 시간을 더 들인다면 정보는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거야."

과연 비비앙은 여왕답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었다. 사실 뭐 알긴 해야 한다. 왕에게 있어서 종교 세력에 대한 건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이니까.

"천사들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파악해두고 있었으니까."

바로 이거다.

"좋군요. 빠르게 조사해주시길."

음지에 숨어든 천사들.

이거면 명분은 충분하다.

충분히 인간 군대를 끌어올 수 있을 거다. 천사교의 존재만 확인되면 그것을 박멸하기 위해 샤르오드 왕국의 여왕과 공조해서 움직인다는 그림도 가능해.

"그럼 이 이야긴 여기서 마무리하고. 여왕님? 공주들은?"

"아..."

그 말에 비비앙이 불안하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아직 오지 않았어. 좀 먼 곳으로 보내둔 상태였으니까. 오면 바로 연락해줄게."

"그거면 됩니다. 아, 참고로 왕국에 마법사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마법사?"

비비앙은 의문을 표했지만 바로 말을 해줬다.

마법사들.

샤르오드 왕국에는 마법사들이 좀 있는 모양이다. 듣기로는 마법사의 도서관이라는 전문 양성기관도 좀 있는 듯.

거기서 마법사들을 배출하고, 그 마법사들은 각지로 퍼져나가 일을 한다는 것 같다.

"흠."

여기서 미색이 고운 여마법사들을 끌어와서 내 네크로맨서로 만들고 싶은데 말이다. 이것도 천천히 공작하면 되겠지. 샤르오드 왕국은 일종의 꿀통이었다.

날 위한 여왕과 공주들. 그리고 여마법사들과 여해적까지. 여기서 따먹을 여자들이 아주 많다.

"좋습니다. 그럼 여왕님? 저는 잠깐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전쟁 관련으로 할 일이 많으니."

"앗...!"

그 말에 비비앙의 동공이 흔들린다.

"어, 언제 올 수 있지?"

"글쎄요. 하지만 비비앙 여왕. 당신이 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따, 딱히 그런 걸 걱정하는 건..."

얼굴을 붉힌 비비앙이 괜히 내빼는 모습을 보여준다. 츤데레 유부녀 여왕이라. 이건 이것대로 좋은걸.

ㅡ스윽.

바로 여왕에게 다가갔다.

"그럼 가기 전에 즐겁게 놀도록 하죠. 저번처럼 기승위로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응... 물론이야."

그렇게 나는 여왕과 함께 침실로 향했다.

즐길 거 즐기고 일해야지.

*     *     *

"이야호오오!"

홀드를 타고 가니 귀환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며칠간의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나를 모두가 환영해줬고, 나는 곧바로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해서 알려줬다.

이미 샤르오드 왕국을 먹어 치웠다. 여왕이었기에 가능한 일. 제법 축약한 설명이지만 다들 잘 알아들었다.

무엇보다.

"역시 큘스오빠야! 상대가 여왕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이용해서 지배하고 오다니!"

카르티의 반응이 좋았다.

"그렇지? 이미 여왕이 전력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그러니 그 마족 놈들도 간단히 깨부술 수 있을 거라고. 무식하게 전쟁을 거는 것보단 현지 협력자랑 싸우는 편이 낫잖아."

"바로 그거야! 역시 대단해! 이거면 아주 쉽게 그 마족 놈들을 처치할 수 있어!"

그거다.

"그럼 카르티. 일을 시작하자. 다들. 상황은 다 들었겠지. 우린 이제부터 샤르오드 왕국의 귀족 연합과 전쟁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천사들보다 쉬운 상대이니 안심하도록."

"드디어 전쟁인가. 피가 끓는군."

"솔직히 최대한 좋게 끝났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뿐이니라."

베라는 투지를 드러냈고 성녀는 전쟁이 잘 끝나길 기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잘 끝내면 내 세력은 그야말로 왕국 두개 급이 된다.

강대국이지.

"좋아!"

나는 바로 비비앙 여왕에게서 받아온 자료들을 내 측근들에게 공유했다. 여기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건 베라다. 베라가 지도와 귀족 세력이 정리된 문서와 전쟁 기록을 보면서 분석한다.

"그런데. 인간 군대를 사용하려면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한데 말이지. 큘스. 그런 게 있나?"

"물론이죠. 명분은 충분합니다. 여기."

"이건? 호오."

샤르오드 왕국내 천사교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된 정보가 담긴 문서를 건네줬다.

"천사교 잔당이라."

"그걸 비비앙 여왕과 함께 토벌하기로 대충 말을 맞췄습니다. 이거면 명분은 충분하겠지요."

"물론이다. 이 정도면 인간군도 잘 쓸 수 있겠군."

씨익 웃은 베라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성장이 기쁜 모양.

"일단은 작전과 보급계획 및 교란 계획을 세우면서 준비합시다. 아직 전쟁이 터진 건 아니라서요. 뭐 금방 터지긴 하겠지만 적어도 내일 당장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주세요. 어머니."

"알겠다. 이 어머니만 믿도록."

역시 베라.

그렇게 참모들에게 상황을 알린 뒤에 내 부하들도 찾아갔다.

"부릴아!!!"

"뫙님?!"

가자마자 부릴이가 날듯이 점프해서 나를 끌어안으려고 한다. 나는 그런 부릴이와 교차된 채 멋진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보고 싶었다!!!"

"저돔다!!!"

"그리고 알리고 싶었다!!! 전쟁의 시작을!!!"

"케르으으으으윽!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슴다!!!"

격정.

"전쟁의 영과아아앙! 큘스마왕군 만세에에에에! 저희가 어디로 가면 되겠슴까, 뫙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ㅡ번쩍!

근육질의 부릴이가 시뻘건 안광을 터트리면서 포효하듯 소리치며 전쟁을 갈망했다.

이거 누가 보면 진짜 사악한 마왕군 사천왕 중 무투파인 전사인 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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