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전쟁 준비를 실시하면서 적대 세력에 대한 공부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쟁으로 단련된 우리의 상대는 아니다. 상대가 샤르오드 왕국의 쟁쟁한 귀족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군대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용병들.
칼밥을 먹고 사는 용병들이 잘 싸우는 건 사실이다. 전쟁터를 찾아다니면서 싸우고, 장비를 맞추고 기술을 연마하는 놈들이 약하다면 애초에 벌어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능숙하게 적을 처부수고, 이렇다 할 살인 기예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위험한 놈들이지.
하지만 녀석들은 이리 모였다 저리 모였다 자유분방해서 모이고 찢어지는 놈들이다. 한 곳에 쭉 모여 있는 게 아니야.
그렇기에.
"케륵, 케륵!"
"끄르르륵!"
짬밥 먹으면서 훈련된 상비군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용병들 개인이 병사보다 강할지언정 집단전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느슨한 연대와 훈련만으로는 단련된 정규군을 결코 이길 수 없어.
"케랴아아악!"
"규삿!"
그리고 내 군대는 마력으로 강화된 몬스터들이다. 피지컬부터가 다른 보병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실전을 거듭하여 괴물로 성장했지.
이런 걸 인간 용병 나부랭이가 어떻게 이겨?
"공중제압 실시!"
"표적들의 눈을 노려!"
게다가 내 병사들은 픽시와 타천사들의 공중 지원까지 받고 있다. 지상에서 열심히 전투 훈련을 하는 녀석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공군들을 보니 그저 든든하기 그지없다.
"좋아! 샤란아! 루미카! 진형붕괴 실시!"
"샤아!"
ㅡ고오오.
그리고 샤란이와 루미카가 힘을 합쳐 거대한 식물을 잭과 콩나물마냥 갑자기 성장시켰다. 저런 게 적 부대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혼란은 가중. 진형은 붕괴다.
"홀드!"
"크륵...!"
ㅡ번쩍!
동시에 홀드가 드래곤으로 변신하여 훈련장에 그 거체를 드러낸다.
"크워어어어어어어!"
포효만으로도 적은 제압될 것이 분명.
"이럇!"
그렇게 홀드를 타고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드래곤 라이딩 능력을 훈련했고, 적당한 고도까지 하강한 뒤에는.
"플라잉 큘스!"
ㅡ쫘악!
등 뒤에 마족의 날개를 불러내 자체 비행을 실시했다.
"여억시 느려!"
"아직도 느려!"
"타천사들보다 느려!"
"마왕이 허접이야, 허접!"
그러고 있으니 픽시들이 다가와서 킥킥거리며 날 놀리기 시작한다. 여전히도 내 비행 능력은 타천사 미만이다... 그보다 이 요망한 것들이?
"감히 날 놀리느냐! 잡히면 촉수고문이야!"
"꺄아아아악!"
"도망쳐!"
웃으며 도망치는 픽시들을 쫓으면서 간단히 훈련하고 그대로 착지했다.
"좋아."
충실한 나날이다.
그럼 슬슬 비비앙 쪽도 준비가 됐겠지. 조만간 홀드 타고 가서 상황을 조율하면 될 것이다.
"이거 참."
세력이 늘어나니 출장이 정말 잦아진다. 근데 뭐, 샤르오드 왕국을 완벽하게 점령하기 전까진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가서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으니까.
* * *
"회담 일정이 잡혔어."
"그렇습니까."
"네."
비비앙이 회담에 대해서 설명했다.
현재 여왕과 귀족 세력이 대립을 하곤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밑으로 하고 있는 일이며, 겉으로는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뭐 북한이랑 한국처럼 선 긋고 으르렁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지닌 채 상대방의 전력을 재보며 속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을 뿐.
겉으로는 약점을 드러내거나 섣불리 목적을 들키지 않도록 가면을 쓴 채 웃으며 대화할 뿐이다.
이번 회담도 그렇다.
왕과 귀족들이 모여서 앞으로 왕국을 어떻게 더 번영시킬까 하면서 이야기하는. 뭐 명목상으로는 그런 자리다. 물론 왕이 자기 자리를 꽉 잡고 있다면 단순히 무도회를 즐기면 될 뿐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소위 말해 가면을 쓰고 안 그런 척 서로를 은근히 비난하면서 '맥이는' 종류의 대화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드디어 그 일정이 잡힌 것이다.
"아마도 자얀트 후작은 그 자리에서 날 압박할 거야. 그러면서 자신과 결혼하고 왕위를 넘기라는 제압을 해올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군비를 증축하겠다는 말을 넌지시 흘릴 것 같네."
너무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그러겠지요. 사실 제가 자얀트 후작이었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겁니다."
"어떻게 할까? 이제 난 당신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 물론 그에 따른 조언과 판단은 하겠지만."
"현명하군요. 앞으로는 제게 맡기십시오. 무거운 짐은 제게 넘기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비비앙."
"아..."
내 말에 비비앙이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숨을 내쉬었다.
"괜찮네.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어. 얄궂게도 의지할 상대가 생겼다는 게 참... 편안하네."
"흐흐흐, 그러면 됩니다. 뭐 제게 처음 당할 땐 싫을 수 있어도 막상 당하고 나면 좋아지는 법이지요."
"그런 거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아무튼. 귀족 세력은 그 자리를 빌어 천천히 명분을 쌓으며 군비를 증축할 것이고, 승산이 크다고 판단됐을 때 주저없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비비앙님과 강제로 결혼해 왕위에 오를 것이 자명합니다."
"응. 그렇겠지."
권력이란 건 그런 거니까.
"바꿔말해 아직 귀족 세력은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제 군대를 등에 업고 선공을 건다면 아주 쉬울 겁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선공을 건다면 명분이 서지 않을 텐데."
"그게 말이죠."
다 방법이 있다.
"가까이."
"응?"
고개를 갸웃한 비비앙이 내게 다가와서 귀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귀에 살살 속삭여줬다.
"전쟁은 빨리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당연히 그럴만한 계획이 있지요. 일단... 그 자리에 저도 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발표하는 겁니다."
"하윽... 무엇을?"
"혼인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무슨?!"
그 말에 비비앙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간단합니다. 여왕님과 결혼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을 갈망하는 자얀트 후작의 앞에서 누군지 잘 모를 남자인 저와 혼인동맹을 맺겠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다들 발광할 테지요. 인정도 못 할 것이고. 그 상황에서 동맹 이야기를 계속해서 밀어붙이면, 귀족들은 그것을 명분으로 빠르게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그러면 저쪽에서 선공을 건 것이 된다. 명분으로도, 백성들을 납득시키는 것도 몹시 간단.
바로 군대를 일으켜서 귀족 세력을 치면 되는 이야기다.
"화, 확실히... 가만히 있지 않겠지. 응. 맞아. 바로 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공격해올 게 뻔해."
"그걸 유도하는 겁니다. 군대는 충분합니다. 제 병사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거든요. 그에 반해 귀족군의 용병군대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준비되지 않았죠."
비싼 용병들은 급하게 모으다 보면 필연적으로 인플레가 붙을 것이고, 그것으로 귀족들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상태로 내가 그 용병 군대를 쓸어버리고 주머니를 털어버린다면? 귀족군의 군비가 고스란히 내 호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오게 된다.
전쟁은 이겼을 경우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혼인 동맹이라니... 으읏."
아무튼 말을 마치니 비비앙이 얼굴을 완전히 붉힌 채 부끄러워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와 재혼한다는 말에 큰 기쁨을 느낀 것이겠지.
물론 비비앙도 내 여자로 들어왔으니 이뻐해 주겠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
내 최측근인 여자들이 지금 내 혼인을 막고 있는 상태다. 그것은 나를 향한 충성심과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다.
아마 내가 누구랑 정식으로 혼인하면 크게 슬퍼하지 않을까.
"모두의 아이돌이란 거지."
아이돌 가수는 열애설을 터트려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지배자인 나 역시 누군가와 정식으로 혼인하면 좀 그런 것이다.
"아무튼 비비앙님? 그걸로 계획 좀 짭시다."
"...네."
나는 비비앙과 말을 맞췄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회담날이 찾아왔다.
말 그대로 만찬장과 무도회장이 합쳐진 장소. 나는 비비앙의 호위인 척 투구를 쓰고 함께 입장했고, 함께 회담장을 걸으면서 샤르오드 왕국의 다른 귀족들을 살폈다.
"저쪽은 중립 분자들. 아직 자얀트 후작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사실상 중립으로 봐도 좋을 거야. 물론, 이런 상황에서 중립은 적일 뿐이지. 정치적 감각이 없는 녀석들이니 별볼일은 없어."
비비앙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내게 귀족들의 정보를 건네줬다.
"그리고 저쪽이 바로 친왕파들. 날 지지하는 귀족들이야. 혼란한 상황에 왕실을 지지해준 건 고맙지만, 전쟁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끝날 경우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겠지. 내 생각으로는... 전쟁 중에 그들의 세력을 조금 축소시킬 필요가 있어. 물론 적들과 부딪히게 하면서."
"호오."
역시 여왕은 여왕이다.
유부녀 여왕인 비비앙은 비록 침대 위에선 교성을 내지르며 쾌락에 허덕일지언정, 왕관을 쓰고 밖에 나가면 바로 카리스마를 내보인다.
"그럼 저기가?"
"응. 저 남자가 바로 자얀트 후작이야."
자얀트 후작은 제법 덩치가 큰 남자였다. 하지만 비열해 보이는 수염을 기른 탓에 덩치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덧붙여서 머리카락은 녹색이다.
아무튼 이 새끼가 마족과 결탁한 놈이다 이거지.
거리가 좀 있어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 있다 제대로 확인해 보자.
"그리고 저들은..."
자얀트 후작의 곁에 모여있는 다른 귀족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지금은 서로 모인 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곧 시간이 되면 비비앙은 이 회담의 책임자로서 저 상석으로 가 이 자리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그때부터 왕과 귀족. 그리고 귀족과 귀족 사이의 이야기가 진행되겠지.
"좋습니다. 뭐, 저만 믿으십시오. 솔직히 귀족들이 강하다곤 해도 저보다 강하진 않을 테니."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설령 누군가가 행패를 부린다고 해도 지금의 내겐 소용이 없다.
나도 그만큼 강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