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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489화 (489/544)

샤르오드 왕국엔 산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평지란 소리. 군대를 숨기기에는 최악의 지형이지만, 우리는 적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저 성이다.

현재 우리들은 성의 뒤쪽에 자리를 잡고 대기하는 상태다. 자얀트 귀족군이 우회 정찰을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유리의 존재를 눈치챌 순 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당하게 되겠지.

그리고 곧 비비앙의 군대도 올 것이다. 뭐가 됐든 직접 맞붙으려면 병력이 많을때 해야 한다. 본격적인 전쟁은 여왕군이 도착하면 하도록 하고.

지금은 그때가 오길 기다리면서 적 병력을 깎아 먹으면 될 뿐이다.

물론 적들이 오는 것도 기다려야 하지만.

ㅡ부웅!

멀리까지 정찰을 갔던 픽시가 돌아왔다.

"어때?"

"아직 보이진 않아! 적어도 행군 이틀거리엔 없는 게 분명해!"

"흐음, 그래? 그럼 뭐 그때까지 휴식을 취해야겠구만."

너무 빨리 와서 적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기다림과 기다림의 연속 아니겠나.

나는 바로 휴식을 명령한 뒤에 내 여자들과 가볍게 즐기면서 놀았고, 그렇게 며칠 동안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나타났어! 곧 이곳으로 올 거야!"

"좋아."

적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빠르긴 했지만 역시 느려.

"규모는?"

"식별한 건 삼천 정도야! 몰래 정찰하라고 했지? 더 깊게 들어가는 건 어려워!"

"삼천이라."

그래도 귀족들이 연합해서 군대를 모은 것 치고는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든다.

"깃발은?"

"응! 하나!"

"하나?"

귀족 하나가 삼천 수준의 군대를 모은 건가?

그럼 괜찮은 수준이다.

"여기에 문장 좀 그려줘."

바로 세리뉴에게 적당한 폐문서와 펜을 건네줬다. 세리뉴는 아주 신이 나서는 자신이 본 문장을 그렸다.

제법 디테일하고 자세한 그림.

"이야. 세리뉴 그림 잘 그리네. 화가 해도 되겠어, 흐흐흐."

"난 그림도 잘 그려!"

재능을 칭찬해주니 세리뉴가 더듬이를 바짝 세우면서 즐거워한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미술 도구 사줘야지.

아무튼 나는 샤르오드 왕국의 귀족문장이 정리된 책을 꺼내 그것을 대조했다. 귀족들의 대략적인 관계랑 구도는 다 들어서 알고 있다. 삼천 수준이면 나름 강한 놈들.

보자... 아, 이거다.

"파엘슨 남작이라."

그는 쟈얀트 후작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작이다. 자얀트의 아들과 파엘슨의 딸이 혼인을 했을 정도니까. 아마 옛날부터 자얀트의 말을 듣고 군대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가장 먼저 집결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충성심을 증명하든, 아니면 미래의 왕에게 더욱더 이쁨받고 싶다는 마음이든.

자얀트 후작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동료겠지만, 내 눈엔 운 없는 희생자일 뿐이다.

"털어먹어야겠군. 얘들아! 적 귀족군 한 부대가 도착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들을 좀 살짝 괴롭혀주고 싶은데, 누가 가서 놀다 오겠나!"

내가 원하는 것은 가볍게 흔들어주는 것 정도다. 그 과정에서 용병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도 즐겁겠지. 더불어 사기 저하도 노릴 수 있다. 전투력을 알아볼 수도 있고.

"그런 거라면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마왕님."

"응. 그래그래. 위력정찰이라면 다크엘프들이 제격 아니겠어?"

싸울 기회를 노리고 있던 네크리와 렉사벨라 여왕님이 나서서 말했다. 확실히 다크엘프가 보병 중에선 기동성이 제일 좋지.

"알겠다! 그럼 녀석들이 진을 치면 야간에 습격조를 보내 놀려주도록 하겠다! 적들의 주머니를 반드시 털어오도록!"

*     *     *

남작군의 우익을 맡은 용병부대.

그들의 분위기는 과연 용병부대답게 상당히 프리한 편이었다.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웃고 떠들면서 긴장을 풀고 있는 듯한 느낌.

깐깐한 지휘관이라는 이 모습을 보고 군기가 완전히 빠져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전부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쟁의 전문가들이다.

프리해보이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전부 하고 있었다. 용병대장의 명령에 따라 경계병을 편성하고 경계를 하며 교대로 휴식을 하는 중이다.

단지 불필요한 허례허식 따위를 경멸하기에 해이하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전쟁터를 찾아다니면서 돈을 버는 존재들이 결코 경계를 허투루 할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습격 따위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상황일지라도 할일은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정규군과 다를 것이 없다.

"크흐흐. 이거 참. 이번 전쟁만 끝내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겠어."

"고향에 돌아가면 가게도 하나 차릴 수 있겠는데."

용병들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왕과 귀족들이 대립함에 따라 자기들 몸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선금으로 두툼해진 주머니를 어루만지고 있노라면 젖 큰 마누라를 지닌 동료가 부럽지 않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상태이니, 만난 지 얼마 안 된 다른 용병들과도 금세 말을 터서는 이완된 분위기 속에 편한 농담을 즐긴다.

"크크크, 그런데 이거 반역 아냐? 나중에 다 처형당하겠어."

"지면 반역인 거지, 지면. 애초에 지면 다 얄짤 없어. 반역이니 뭐니 따지는 게 존나 무의미한거라고."

"게다가 여왕은 힘이 없잖아. 자연히 왕관이 자얀트 후작에게 넘어가겠지."

왕국의 분위기는 용병들도 다 알고 있다. 애초에 용병들은 소문에 민감하다. 선왕이 죽을 뒤로 홀로 남겨진 여왕의 입지가 여러모로 불안하다는 사실쯤은 용병이라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얀트 후작이 승리할 것이고,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기만 하면 된다.

이길 전쟁을 한다는 생각.

그것이 용병들을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왕좌도 힘이 있어야 지키는 거지. 여자가 뭘 하겠어?"

"남편 좆이나 빨던 여자가 여왕은 뭔 여왕. 이제 여왕이 자얀트 후작 좆을 빨게 되는 건가?"

여왕에 대한 화제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이 흘러나온다.

"여왕이 좆 빨아주면 어떤 기분일까. 창녀가 빨아주는 것보다 더 좋겠지?"

"야. 논리적으로 생각해봐. 맨날 자지만 빠는 년들이랑 성에 틀어박혀서 일만 하는 여왕이 같겠냐? 창녀가 더 잘빨 걸?"

"어어? 그런가?"

"근데 난 창녀보다는 여왕님이 빨아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당연한 소리를."

용병들에겐 당연한 화제.

"아, 근데 우리 여왕님 그거 어떻게 생겼냐? 소문은 무성하던데. 진실을 몰라."

"그건 내가 본 적이 있지."

한 용병이 말하자 즉시 이목이 집중된다.

"오?!"

"야, 말해봐!"

"빨리!"

용병은 그러한 시선을 즐기면서 과거 자신이 봤던 모습을 설명했다.

"뭘 기대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존나 쎅스러워. 젖탱이도 존나 크고. 허리도 쭉 빠졌고. 엉덩이도 빵빵하더라."

"뭐라고!"

"근데 놀라운 게 뭔 줄 아냐? 몸매가 그런데 얼굴도 무슨 조각 같아서 우리 여왕님... 아니. 그땐 왕비였지. 아무튼 그거 보고 나서 한동안 왕비님으로 상딸만 존나게 쳤어."

"씨발!"

여왕의 외모에 대한 설명을 들은 용병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상상력을 돋구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용병은 없다.

"존나 따먹고 싶네, 씨발년."

"크크크, 남편도 잃고 혼자서 지내는 여자 아니냐? 어떻게, 이번에 왕성에 쳐들어가서 한번 쑤셔봐? 존나 따먹어서 만족시키면 내가 왕 아냐?"

"야. 아무리 그래도 여왕님이 용병새끼한테 박히면서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내 생각엔 존나 환영할 것 같아. 남편 죽고 매일 손으로만 해댔을 거 아냐? 그런 상황에서 나 같은 놈이 와서 찔러주면 아주 그냥 좋아죽겠지."

음담패설이 이어진다.

"지랄하지 마시오. 여왕이 매일 손으로만 하겠소?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자지 큰 놈들만 존나게 모아다가 밤마다 자기 구멍이란 구멍을 죄다 쑤시라고 시킬 것 같소만. 남편도 죽었으니 원 없이 떡쳐댈 거요."

늙은 용병도 그 이야기에 동참한다.

"맞는 말이네! 크하하하!"

"하긴! 나도 왕이었으면 젖큰년들만 모아다가 매일 밤 쑤셔댔어!"

"여왕도 마찬가지겠지! 하하하!"

다 늙은 영감탱이가 자신들 못지 않게 천박한 말을 하는 꼴을 본 용병들이 크게 웃었다.

"이거 우리 여왕님 보지 너무 너덜너덜해져서 우리 좆은 넣어봤자 느끼지도 않-"

ㅡ푸슉.

어둠을 꿰뚫는 날카로운 소리.

"-어?"

여왕의 보지에 대해서 말하던 용병이 말을 하다 말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야, 왜?"

"저 새끼 왜 저래?"

"뭔가 농담을 하려나 보다."

용병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ㅡ푸확.

ㅡ털썩.

그의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몸체가 썩은 고목처럼 쿵 쓰러지기 전까지.

"씨, 씨발! 야! 저 새끼...!"

"적습이다! 적습이야!"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이 큰 소리를 치면서 대응을 시작했다. 이완된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투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것은.

"뭐, 뭐가 기어 오고 있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기어 오고 있는 기이한 침입자들의 모습이었다.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들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은밀한 침입이다.

ㅡ벌떡!

그렇게 다가온 침입자가 벌떡 일어나서 칼을 뽑아 들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어두운 피부를 지닌 전사들.

"나팔을 울려라! 적들이 습, 커학?!"

마치 그림자 속에서 솟아난 듯한 습격자들은 아주 신속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검을 뽑은 것으로 모든 행동이 개시되었다.

ㅡ풀쩍!

목책을 가볍게 뛰어넘은 습격자들이 검을 휘두른다. 그 검의 숫자가 순식간에 불어난다. 하나. 둘. 열. 수십. 그림자 속에서 뿜어진 전사들이 칼춤을 추었음에.

"허억?!"

"억...!"

갑옷으로 무장한 용병들의 목이 아주 정확하게 절단된다. 방금전까지 농담하던 용병들이 순식간에 도살당한 것이다.

"신속하게 살해해라."

"사랑하는 마왕님 만세."

"죽이고, 금품을 강탈하세요."

"시체는 뒤쪽으로 끌고가세요."

떨어지는 머리 사이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용병들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애초에 침입자들이 다크엘프란 사실조차도 몰랐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빨리오라고!"

비교적 뒤쪽에 있던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대열을 이루었다.

ㅡ뿌우우우우우!

이어서 나팔이 울린다.

등을 보이고 도망쳐선 안 된다. 그랬다간 몰살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용병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방패를 앞세웠고, 나팔소리를 들은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 저 새끼들 대체...!"

하지만 습격자들은 마치 자신들에겐 관심이 전혀 없다는 듯, 쓰러진 시체들의 발목을 잡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갈 뿐이었다.

"저놈들! 시체를 가져가고 있어!"

"무슨!"

"저 씨발놈들이!"

대체 왜?

의문이 증폭된다.

동료들의 시체가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다. 그것도 단체로. 그 상황이 전해주는 공포감이 용병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ㅡ뿌우우우우!

다른 곳에서도 습격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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