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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492화 (492/544)

파엘슨 남작의 진영에서 군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신을 보낸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함정? 정말 함정인가? 어떻게 미리 알았지?"

자얀트는 큰 혼란을 느꼈다.

이상하다.

파엘슨은 자신이 사신을 보내자마자 총공격을 걸어왔다. 마치 미리 알았다는 것처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확실하다. 사전에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둔 것이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었다면 이런 속도와 결단력이 나올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뭐가 됐든 적들은 자신이 마족의 힘을 다룬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어쩌면 아주 옛날부터.

계속 판을 짜둔 것인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을 제거하겠다고? 일리가 있다. 파엘슨은 최측근이다. 자신이 죽는다면 많은 걸 얻을 수 있겠지.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과연 마족 계약자라는 생각이 든다.

"후!"

아무튼 온갖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자얀트는 전쟁을 여러 번 거친 귀족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고민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눈앞의 적들을 토벌하는 것뿐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병력을 잃는다고 해도 문제없다.

후퇴하면서 부하들과 합류하면 될 테니까.

어쩐지 적의 계획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조금 손해를 볼지언정 이 정도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호오엘스. 적 마족들은 무슨 힘을 사용하지?"

"알 수 없다."

"직접 봐야 아는 건가?"

"그렇다. 이 정도 마력으로 적들의 수단을 읽어낼 수는 없다."

마족의 존재를 눈치챈 건 좋지만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실책이다. 호오엘스를 더 키웠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더 키우지 못해서."

"여왕이 갑자기 행동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자얀트."

"그렇지."

조금 더 안정적으로 호오엘스를 키우고 싶었는데 여왕이 돌발행동을 한 탓에 이렇게 되었다.

불만은 침대에서 푼다. 여왕을 벗겨놓고 변태적인 성희롱을 하면서 풀면 되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자얀트가 명령했다.

"그럼 호오엘스. 평소 훈련했던 대로 적들을 처치해라. 차근차근 적 부대를 깎아 먹으면서 포위하면 된다. 물론, 적 마족의 힘도 경계해라."

"...알겠다."

ㅡ사르륵.

호오엘스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ㅡ촤락.

곧 녀석이 준비해뒀던 예비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엘스의 능력은 전투 중 적들을 암살하는 것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마계의 화살을 연속적으로 쏘아내 갑옷으로 무장한 적들을 허무하게 쓰러뜨릴 수 있다.

호오엘스는 그런 악몽의 석궁을 쓰는 분신들을 다수 불러낼 수 있으며, 그런 존재들을 중무장한 예비대 사이에 섞어놓고 전투를 시킨다면 필승.

예비대가 투입된 즉시 적들의 머리가 꿰뚫리며 순식간에 쓰러질 것이고, 그 사이에 마력으로 강화된 예비대가 특유의 광포함을 내비치면서 들어가면 곧바로 마주한 적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렇게 적들의 진영을 바깥에서부터 빠르게 붕괴시키면 전투 승리다. 절대적인 공격력을 지닌 예비대라는 것은 충분히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미 호오엘스는 귀족들과 서열정리를 위한 영지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가 화살을 쏘기 시작하면 적들은 버티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얀트는 호오엘스를 믿고 있었다.

"가라!"

"우와아아아아아아!"

정석대로 배치한 본대가 창과 방패를 앞세운채 전진하고, 그러한 본대의 양익에 호오엘스의 예비대가 배치된다. 기병들은 뒤쪽이다.

적들 역시 비슷한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적들의 군대와 이쪽의 군대가 맞닿기 시작했고, 마침내 충돌.

ㅡ우와아아아아아!

ㅡ아아아아아!

격렬한 함성이 쏟아져 나오면서 양측의 본대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죽여, 죽여어어어!"

"어깨 딱 붙여! 떨어지지 마라!"

"밀어버려!"

격렬하게 충돌했지만 전열은 전부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다. 자연히 큰 소모 없이 지지부진한 비비기가 지속될 뿐이다.

"호오엘스!"

그리고 그 사이 진정한 타격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크으으으!"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자얀트는 자신의 예비대를 보았다. 광포해진 병사들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침을 흘리며 검을 치켜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 후드를 뒤집어쓴 마족, 호오엘스의 분신들이 암흑의 화살을 장전하고 있다.

저들이 투입되면 그 부위부터 적들의 진형이 깎여나갈 것이다.

자얀트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예비대를 투입했다.

ㅡ쐐애액!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된다.

ㅡ퍼억!

"끄악...!"

날아간 암흑의 화살이 철갑으로 중무장한 적 전열의 병사들의 머리통을 실로 '허무하게' 날려버린다. 순식간에 전열이 쓰러졌고, 그 안으로 검을 든 광병들이 밀고 들어간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적들 중 실력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ㅡ쐐액!

호오엘스의 분신이 화살을 격발하자 그 역시 허무하게 쓰러진다.

"크하하하하!"

그것으로 전세가 기우는 것이 확실하게 보인다. 자얀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적 마족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물론, 자얀트의 곁에는 호오엘스의 분신이 있는 상태다. 뭐가 온다고 한들 초동대처는 가능할 것이다.

"어디 보여봐라, 마족! 너희의 힘을 보이란 말이다!"

자얀트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의 군대가 적들을 착실하게 쓰러뜨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어?"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     *     *

이블아이를 소환해서 까마귀인 척 전장을 살핀다.

"오오, 저 새끼들 뭐야?"

근데 놀랍게도 적 마족들이 직접 전투에 참가한 상태였다. 예비대에 들러붙은 후드 쓴 마족이 암흑의 화살을 쏘며 아군 측 탱커용병들을 순식간에 살해하고는 광포화된 병사를 보내 진형 붕괴를 실시한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마족과 연계된 부대가 우리 측 용병들을 손쉽게 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족의 능력은 그것만이 아닌지, 갑자기 분열하거나 사라지는 둥. 단거리 순간이동과 분신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저딴 힘을 지닌 놈이 예비대에 섞여 있다면 대응하기 어렵겠지.

"흠."

나는 우리 측 용병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적들을 분석했다. 그렇게 적 마족의 능력을 다 읽어냈다.

"별거 없구만. 강한 흑마법. 그것뿐이야."

다른 비전투적인 서포팅 능력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의미가 없다.

저 화살만 조심하면 되겠어.

"렉사벨라! 네크리!"

"응."

"네!"

"방패를 가져와라!"

"방패?"

"필요하니까 어서!"

내 말에 두 여자가 명령을 전파했고, 곧 철방패 여러 개가 겹쳐 쌓이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방패를 잡아들어 거기에 내 마력을 주입했다.

ㅡ사아악.

일종의 인챈트다.

내 마력으로 방패에 흑마법 저항성을 부여한 것이지. 이거면 놈의 화살을 막는 건 충분할 것이다.

"네크리! 전열에서 달릴 전사들에게 이 방패를 지급해라!"

"알겠습니다!"

다크엘프들이 인챈트된 방패로 무장했다.

"들어라! 너희들은 전장을 우회! 적들의 수뇌부를 치도록 해라! 가다 보면 적측 마족놈이 강력한 흑마법 화살을 쏠 텐데, 이걸 맞으면 치명상 또는 죽음이다! 그것도 다수가 날아올 것이고!"

상황을 전파한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희들의 반사신경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속도이며, 그 인챈트된 방패라면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신속하게 진입해서 적들을 도륙하라!"

"네!"

"알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왕님 만세!"

다크엘프 여전사들이 기쁘게 대답한다. 자, 그럼. 적 마족과 싸우는 일이니 포상을 줘야겠지.

"그 마족을 죽인 이쁜이에겐 이 마왕이 찐하게 포상해주도록 하겠다!"

"꺄, 꺄아아아악!"

"꺄아아앙! 마왕니이임!"

"아아아앙!"

즉시 귀여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다크엘프들이 출격 준비를 마쳤다. 그러면서 세리뉴에게도 말했다.

"세리뉴. 다크엘프 부대 뒤를 쫓아가면서 적 기병들 좀 견제해줘. 마갑을 뚫을 수 있는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해."

"알겠어! 보병들을 지키란 거지!"

"바로 그거야."

좋아.

그럼 준비는 끝났고.

"아, 맞다. 이것도 써볼까? 나와라! 나의 권속들이여!"

ㅡ화르륵!

카르티에게 받은 혼신용 반지를 발동했다.

ㅡ스르륵.

그러자 쭉빵한 누님의 모습을 한 사악한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이들에게 생명은 없다. 내 마력으로 움직이는 인형일 뿐. 다크엘프 전열 쪽에 배치해서 방패로 쓰면 되겠지.

"그럼 출격하라!"

"가자!"

ㅡ파앗!

바로 내 부대원들이 출격했다.

전장을 향해.

*     *     *

전장을 관측한다.

전쟁이 한창인 곳. 내 다크엘프들이 그곳을 우회해 자얀트 후작이 위치한 수뇌부 쪽을 습격하려 한다.

그러자.

ㅡ파앗!

돌연 적 예비대 사이에 섞여 있던 마족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렇다. 침입을 눈치챈 것이다.

ㅡ화륵!

그렇게 사라진 마족들이 자얀트 후작이 있는 곳에 다시 소환되었다. 검은 안개가 모여 형상을 이루는 듯한 느낌. 아무튼 그 수만 해도 수십이고, 적 호위대 역시 규모가 좀 있다.

물론 내 이쁜이들의 상대는 아니지.

ㅡ화르륵!

ㅡ화르륵!

적 마족들이 암흑의 화살을 사출했지만, 전열에서 돌진하고 있는 다크엘프들이 방패로 모조리 막아버렸다.

확실히 방패로 잘 막고 있다.

ㅡ파파팟!

이어서 연발로 발사된 화살들까지 전부 막아내니, 그 마족이 화살을 포기하고 마력으로 무구를 만들어서 장비한다. 원거리와 근거리 전부 수행할 수 있는 타입인가?

물론.

ㅡ콰앙!

숙련된 내 다크엘프 특전사들을 이길 정도는 아니다.

"하아아압!"

렉사벨라를 필두로 한 다크엘프 전사들이 적 호위대의 방진을 일격에 깨부쉈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적 마족이 대응하기 위해 몰려왔지만... 결과는 몰살.

ㅡ촤학!

다크엘프들이 검을 휘두르자 실로 허무하게 절단이 나면서 모습이 사라진다. 동시에 자얀트 쪽에 본체로 추정되는 악마가 나타나 무릎을 꿇으며 입에서 피를 쏟아낸다.

그걸로 끝이었다.

밀고 들어간 다크엘프들이 호위병들을 모조리 도살하고 자얀트 후작에게 당도했다.

"이겼다!"

이걸로 나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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