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줴에에엑! 줴에에엑!"
[살려다오, 제발!]
마치 비명을 터트리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주술사. 듣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일단은 정보 수집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닥쳐라!"
그리 소리치면서 가볍게 얼굴을 발로 차줬다.
"줴엑!"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 입을 열지 마라, 어인!"
"줵...!"
딱 보니까 말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 녀석은?"
"말을 알아들었어?"
뭐야.
"설마 못 알아들었어?"
"응. 그냥 줴엑거리기만 할 뿐이야."
루미카가 그리 대답했다.
"이거 마력 때문에 그런가. 일단은 나만 들을 수 있는 모양이네. 그럼 잠깐 심문 좀 할 테니까 잔여병들 처치 좀 해줘."
"알겠어."
그럼 심문을 시작해보자.
"이리 와!"
"줵...!"
놈의 축 늘어진 팔을 잡아 들고 적당한 곳으로 가서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이 새끼 내가 마족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놈이 그 미상의 마족 협력자일까?
"네 이름과 직위를 말해라."
"줵...!"
[내, 내 이름은...]
녀석이 이름을 말했지만 그것은 어인들 고유의 발음으로 이루어진 탓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직위는... 상급 주술사...]
상급 주술사!
"그 상급 주술사라는 직위는 어떤 위상을 지니지?"
[...]
"어서 말해!"
[크학! 무리를 지휘한다!]
이 새끼 너무 뭉뚱그려서 말하는군.
"네 집단에서 서열 몇 위라고 할 수 있지? 대답해!"
[줴에에에엑!]
바로 녀석의 박살난 관절을 짓밟으면서 윽박을 질렀다. 이런 녀석은 정보를 숨기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확실하게 듣기 위해선 고통이 제격이지.
[1위! 현재로선 1위다!]
"흠. 네가 1위인 이유는?"
[깨어난 동포들 중 내가 서열이 제일 높기 때문이다!]
"깨어나? 설명해라."
내 말에 녀석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간계 바다 어딘가에서 동면하던 어류 마족들이라고 한다. 그 역사에 대한 것은 불분명하고 신뢰성이 없는 데다가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되니 생략하도록 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간계에 퍼진 마력이 너희 일족의 동면을 깨웠다는 거냐?"
[그렇다...]
내가 존나 쎄져서 중간계에 마력을 퍼트린 탓에 깨어났다는 모양이다.
씨발.
내 잘못이었어?
"아니."
어이가 없지만 딱히 내 잘못은 아니다. 이들은 옛날부터 동면하고 있던 종족이었고, 그냥 중간계에 마력이 퍼지자 그거에 반응해서 깨어난 것뿐이니까.
내가 아니라 다른 마족이 성장해 비슷한 짓을 했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거다.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잠깐. 그렇다면 동면에서 풀려날 네 동포들이 더 많이 있는 거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설마 다른 종족이 또 있나?"
[거기까진 알 수 없, 크아아아아악!]
다시 폭행을 시작했다.
[사실이다! 사실!]
대충 사실이라는 답이 나온다.
"흠."
이거 어쩌지?
대충 예상해보자면, 중간계 바다나 또 어딘가에는 동면 중이거나 봉인 중인 마계의 일족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그놈들이 마력에 반응해서 깨어나기 시작한다면 많이 피곤해질 것이다.
"근데 네 목적은 뭐냐?"
일단 그걸 물어보니.
[우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 소리쳤다.
"뭔 소리야?"
[돌아가야 한다...! 마계의 그 바다로!]
녀석의 진심이 느껴진다.
"동면 중이던 녀석이 왜? 임무가 있지 않나?"
[임무는 실패했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들어보니 이미 모든 게 다 옛날이야기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마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양이다.
이해는 된다. 마족은 마계에서 제대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어인들은 좆밥같아 보여도 마계로 가서 기운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근데 어떻게 거기로 가?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지?"
[깨, 깨워야 한다. 우리들의 인도자를.]
"인도자?"
[현재 동면 중인... 우리들의 지도자다. 그를 깨워야지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깨우지?"
[제물이 필요하다!]
제물이라고.
[많은 제물이 필요하다! 동면 중인 동포들을 깨우고 일족을 늘려야 한다! 더 많은 제물을 모아서 인도자를 깨울 것이다!]
그리 소리친 주술사가 내 눈을 응시하면서 포효하듯 소리쳤다.
[동맹을 맺자!]
"동맹이라."
[넌 육지의 종족! 바닷속까지 영향력을 펼치는 것은 어려울 것이나, 육지의 존재가 바다의 협조를 얻는다면 아주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맹을 맺는다면 몇 가지 조건을 이행 받는 것을 대가로 바닷속에서 널 지원하겠다!]
솔깃한 말.
이놈의 말대로 바닷속의 존재와 동맹을 맺고,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내겐 큰 이득이 될 것이다. 당장 무역이나 해상전에서 절대적인 이점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상호 이득이다! 동맹을 맺어다오!]
"동맹을 맺는 대가로... 내가 뭘 주면 되겠나?"
흥미가 있는 척 말하니, 녀석이 더욱더 강한 어조로 확언하듯 말했다.
[정기적으로 육지의 암컷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면 된다! 우린 그 암컷들로 세력을 늘릴 것이고, 인도자께 제물로 바쳐 그를 깨울 것이다! 인도자가 깨어나면 우린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지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암컷들을 제공하면 된, 줴에에에에에엑?!]
"기각."
절대로.
"죽어라."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조건이다.
[어째서엇...!]
"암컷들은 전부 내 차지다."
"줵...!"
"그걸 타협할 수는 없지."
"줴에에에에에에엑!"
주술사가 포효하며 상반신을 일으켰으나, 이미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주저 없이 바로 녀석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ㅡ뎅겅!
징그러운 머리가 떨어진다.
"크!"
용납할 수 없다!
감히 이 인큐버스 마왕 앞에서 여자를 넘기라고? 미친 새끼냐? 내가 여자들을 넘길 것 같아!
"중간계에 있는 모든 암컷들은 전부 다 내 것이다!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ㅡ크아아아아아!
절로 포효가 터져 나온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암컷을 소유할 수 없다! 중간계에 있는 모든 미녀들은 다 나의 것. 괴물 따위에게 넘길 것 같으냐!
"그것이 바로 네가 죽는 이유다."
ㅡ후우.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물론, 어인의 제안은 상당히 끌리는 것이었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암컷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놈은 마족이다. 그 어떤 신뢰도 할 수 없고, 내가 타협하는 사이에 세력을 불릴지도 모른다. 고향으로 돌아가? 무엇하나 신뢰할 수 없다. 전부 다 구라일지도 모르니 무시하는 게 상책.
빠르게 제거해야지.
결코 살려둘 수는 없다.
괜히 동맹 같은 걸 맺었다가 경쟁자를 키우는 꼴이 될 수 있으니까.
"마왕!"
"죽였어?"
"어.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한가지 신경 쓰이는 점은 어인들이 저 바닷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면 중인 인도자라는 놈도.
무슨 일이 있어도 바다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내가 다 토벌할 수가 없다. 육지와 바다의 존재는 상호 작용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존재와 목적을 알았고, 게다가 상급 주술사쯤 되는 녀석의 목을 쳤으니, 나중에 어인들이 또 나온다고 해도 보다 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이 녀석들은 육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니까. 이 해적섬은 그렇게까지 큰 것은 아니다. 육지랑 떨어져 있으니 점령이 가능했던 거지만 어인들은 결국 육지에서 살 수가 없다.
착실히 제거해 둔다면 내겐 별로 위협이 되지 않을 거다.
"자! 이곳을 조사하고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가자! 적의 지휘관을 쳤으니 당분간 시간이 날 것이다!"
상급 주술사가 죽었다고 해서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 * *
그렇게 동굴 수색을 실시하니, 뭔가 의식에 쓰이는 도구나 기이한 문어 우상. 수상한 마법서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법서?"
표지가 생선의 비늘로 되어 있는 기묘한 방수 책이었다. 문자를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딱 봐도 중요한 것 같아서 챙기도록 했다. 그리 주술사의 시체와 포로들까지 다 챙겨서 마을로 귀환했다.
"케륵! 뫙님! 오셨슴까! 근무중 이상 없슴다!"
"오오, 그러냐? 잘했다. 난 가서 적 주술사를 처치하고 왔지."
"역시 뫙님! 케륵케륵!"
자, 그럼.
여기서 돌아갈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 이 마을은 우리의 임시 본부다.
"츠압!"
ㅡ화르륵!
흑염을 뿜어 마을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바다 식물들을 태워버리고 내 마력으로 정화했다. 여기 상태가 영 아니다. 다 태워버리는 게 낫다.
"공사 실시! 바다 흔적을 지워버려라!"
"끄륵!"
임프들이 그 작업을 돕는다.
그리 작업을 끝마치니 해가 떨어졌다. 슬슬 잘 시간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린 뒤에 적당히 자리에 누웠다.
"나 잠깐 잘게."
이제 꿈을 통해서 내 여자들을 찾아가 소식을 알리고 배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ㅡ쿠궁!
"음?"
드림패스가 연결되지 않아?
"이게 무슨..."
여자들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뭔가 이 꿈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게 안 되는데. 기묘함을 느낀 순간.
ㅡ철퍽.
나는 내 발이 바닷물에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이게 뭐야 씨발!
"씨발!"
ㅡ화악!
정신이 들면서 눈이 떠졌다. 뭐지? 내 꿈의 공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전신이 땀으로 푹 젖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으응... 마왕? 무슨 일이야?"
"샤아?"
"뭐야? 뭔가 생각났어?"
근처에서 자고 있던 내 여자들이 깨어난다.
"뭐 못 느꼈어?"
"응? 아니? 아무것도?"
태평한 표정.
방금 나는 꿈의 통로를 이용해서 릴리안느나 비비앙. 그리고 성녀님을 찾아가려고 했다. 근데 그 메인이 되는 공간에 바닷물이 차 있었다. 내 고유한 능력을 침범받았다. 이 현상은 어인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때.
"케륵! 뫙님! 뭔가 소리가 들림다!"
부릴이가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