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525화 (525/544)

"술식은 이쪽에서 전개할게."

카르티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제든지 술식에 응할 수 있도록 평정 상태를 유지했다.

"안심해. 큘스오빠에겐 꿈으로 정신체를 이동시키는 능력이 있잖아? 그게 길잡이가 될 거야."

"그러냐? 역시 혈족 특성인가?"

"응. 혈족원들은 다들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 물론 큘스오빠 같은 특출난 존재들은 그런 특성을 보다 잘 이어받은 게 분명해."

"그래. 어서 시작하자. 카르티."

"응."

ㅡ고오오.

발밑의 마법진에서 빛이 떠오른다. 이 시점에서 관객들은 모조리 다 대피를 했다. 이 공간에 있는 것은 카르티의 이블아이와 나뿐.

"그럼 강림의식의 역! 지금부터 시작할게!"

카르티의 목소리가 도플러 효과를 일으키면서 멀어진다.

그리고.

"어서 와! 마계에!"

ㅡ휘리리릭!

엄청난 마력이 몰아친다. 마치 발밑에서 돌풍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게이트는 어디에 생기지? 머리 위? 아니면 눈앞?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ㅡ쑤우욱!

"아래였냐!"

나는 바닥으로 쑥 빠져버렸다!

마법진 그 자체가 원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게이트가 된 것이다! 조금 멋지게 입장하려고 했는데 아래로 떨어지는 형태라니! 이거 시작부터 마왕 가오 죄다 구겨졌다!

"후우!"

정신을 다잡으면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 강림의식 때 느꼈던가. 얼마 전 일인지 기억도 안 난다.

나는 흐름에 몸을 맡겼다.

*     *     *

신기한 기분이다.

동시에 극도로 이상하다.

"크윽...!"

마치 내가 유성 비슷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들어왔던 차원 간 장벽이 느껴진다. 물론 그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통과하는 중이지만.

"압력이 무슨!"

구멍 사이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차원의 압력이 느껴진다. 깊은 곳에 잠수해서 수압을 느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상당히 괴롭다.

내 마력이 빠르게 소모될 정도.

그래도 내가 누군가? 강력한 마왕이다. 이 정도 압력 정도는 버틸만 하다. 피부에 마력을 두른 채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흐름에 몸을 맡겼다.

ㅡ파앗!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ㅡ번쩍!

눈앞이 한번 번쩍였고.

"큽!"

ㅡ투웅!

통과했다,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 발이 땅에 닿았다. 잠깐 몸이 휘청였지만 이런 걸로 넘어지진 않는다. 바로 중심을 잡고 주변을 살폈다.

"성공했나?"

하늘이 붉다.

저편에서는 보라색 색체가. 그리고 또 저편에서는 불길한 분홍빛 색채가... 그렇다.

"마계의 하늘."

환생하고 질리도록 봐왔던 마계의 기괴한 하늘이다. 온갖 기이한 색채가 뒤섞여 혼돈. 태양 따윈 없었고 불길한 색채만이 부정한 대지에 내리쬘 뿐이었다. 신의 축복이 없는 세상의 하늘이 이러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별들은 반짝이고 있지만 하늘의 장막에 가려져 그 빛은 별로 밝지 않았다... 하지만 그딴 것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늘 저 멀리에 떠 있는 기괴한 악몽의 행성들이다.

생물체일까?

아니면 사악한 흑마법의 잔해일까?

불길하기 짝이 없는 행성들은 마치 하늘에 페인트칠을 하는 기술자들처럼 기묘한 빛을 하늘에 덧씌우면서 천천히 공전한다.

무엇보다.

"...이 힘은."

주변에 산재해 있는 마력.

"큿...!"

농도가 너무 높다!

마치 마력으로 이루어진 강물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중간계는 마계가 희박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 자체가 없는데 정말 이 정도란 말인가?!

나 어렸을 때는 이런 걸 느끼지도 못했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땐 그냥 좆밥 나부랭이였으니까.

이런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후우!"

힘차게 숨을 들이쉬었다.

강물 속에 빠진 듯한 기분이지만 반대로 나는 물고기가 된 것처럼 이 환경이 너무나도 편하고 안락하게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쾌하다.

방금까지 멀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치 극한의 숙면을 취하고 일요일의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어난 듯한 기분이다.

"이게 바로 마계의 마력인가. 좋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흠. 연병장인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다. 바닥에는 박살난 듯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내가 한번 오면서 기능을 다한 모양이다.

내 시선은 정면에 있는 거대한 정문에 닿았다.

ㅡ끼익.

그 커다란 정문이 열렸고.

"..."

문의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디작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내 시력이면 그냥 알 수 있다.

작은 소녀.

"카르티!!!"

그것도 아주 반가운 소녀, 카르티다!

"큘스오빠!"

힘차게 카르티를 부르니 카르티 역시 날 부르면서 총총총 강렬하게 뛰어왔다. 나 역시 카르티를 향해 뛰어갔다. 반가운 마음이 넘쳐흐른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

"카르티! 오랜만이야!"

"응!"

그렇게 나와 가까워진 카르티가 점프했고, 나는 카르티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인사했다.

"진짜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얼마 만에 보는 거냐! 널 실제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나도 보게 되어서 기뻐, 큘스오빠. 그동안 고생 많았어. 최선을 다했기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축하해."

"그래! 고맙다!"

그리 카르티와 포옹을 한 뒤에 놔줬다.

"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다른 건 몰라도 카르티의 은혜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내 여동생과 드디어 재회했구나.

"큘스오빠. 눈물 나오고 있어."

"반가워서 그래, 반가워서."

"사실 자주 봤는데 말이야. 후후후."

"진짜로 보는 거랑 다르지. 와 진짜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제법 많이 흐르긴 했다.

"마계 기준으로는 별거 아닌 시간이지만. 아무튼 잘 돌아왔어. 마계의 공기는 어때?"

"완벽해. 마치 물 만난 물고기가 된 듯한 기분이야."

ㅡ후읍.

길게 호흡하자 풍부한 마력이 내게 스며든다.

"상쾌해."

"후후후, 마음껏 만끽해둬."

카르티가 눈웃음을 지르면서 말했다.

"일이 끝나면 중간계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어쩌면 이 기운이 그리워질지도 몰라."

"확실히."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기분인데 중간계로 가면 상실감이 느껴지겠지. 여기서 많이 만끽해 둬야겠다.

"느껴져? 큘스오빠의 그릇이 커지는 게?"

"음?"

카르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봤다.

"어어?!"

그렇다.

지금 실시간으로 내 그릇이 커지고 있다. 미세하지만 확실하다. 마계의 대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하고 있단 말이다.

중간계에선 강한 미녀들과 섹스하고 굴복시켜야지만 성장했는데 여기선 단순 호흡만으로도 강해지다니.

정말 놀랍다.

"후후후, 놀랍지? 이게 바로 마계의 대기!"

허리에 손을 얹은 카르티가 가슴을 쭉 펴면서 자랑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마 어느 정도까지는 호흡만으로 성장이 될 거야. 큘스오빠는 그만한 역량을 키운 상태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자연적인 성장은 멈출 거고-"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바로 그거야. 마계에 온 김에 그 한계를 깨뜨리고 그 이상으로 성장할 기반을 만들도록 해. 그 정도는 해줘야 중간계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흐흐흐, 역시. 카르티. 뭐든지 다 아는구만."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래."

그랬지.

처음 만난 곳도 도서관이었다.

"카르티. 사실 나 알고 있어. 너 혈족 내에서도 엄청난 고위직이지?"

"이런. 들켜버렸네. 그래도 카르티는 큘스오빠의 여동생이야."

그건 좀 의심스러운데.

"아무튼 큘스오빠?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 계속 서 있긴 그러니까."

"그래. 안내 좀 해주라. 고향이긴 한데 도무지 고향 같지가 않아서 말이지."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고향은 중간계에 있는 그 던전이다. 부릴이랑 샤란이랑 같이 지내던 그곳이야말로 내 고향이지.

나는 그걸 잊지 않는다.

"가자, 큘스오빠."

"어."

카르티를 따라 연병장의 바깥으로 나갔다.

근데 보니까 내리막길이 무슨.

"뭐야. 여기 고지대였네?"

내 눈앞에 마계의 광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어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곳이었다. 저 아래로 쭉 내려가야 건물이 나오는 듯.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외길 계단 위에 올라온 듯한 기분이다.

"높지? 소환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내려가다 보면 비행형 호문쿨루스가 우릴 데리러 올 거야."

"오오..."

그 말이 무섭게.

"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이 씹."

부풀어 오른 태아의 얼굴을 한 살점 드래곤... 말 그대로 기괴한 비행 괴물이 날아와 앞에 착지했다.

진짜 이 마계 놈들 센스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온갖 기괴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타자!"

"엇!"

카르티가 염력을 사용해 나를 띄웠고, 그렇게 나는 카르티와 함께 괴수의 등위에 타게 되었다.

"출발!"

"야호!"

ㅡ쐐애애액!

그래도 속도는 빨랐다.

"이대로 어머니 여공작님이 지내시는 성으로 갈 거야! 저번에 가봐서 알고 있지? 바로 거기!"

"이야. 거기로 가는 거구만?"

그때도 뭐 타고 갔었는데.

"기쁘지?"

"물론!"

사실 좀 미묘하다.

"아, 맞다. 큘스오빠. 혈족 내에서도 제법 소문이 퍼진 상태야."

"뭐가?"

"중간계로 침투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큘스오빠에 대한 소문."

내 소문이 퍼져 있다라.

"흐흐흐, 그래? 마지막에 갈 땐 비웃음만 당했는데 말이지."

"옛날 일일 뿐이야, 큘스오빠. 결국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잖아? 마계에선 그게 전부일 뿐."

"그것도 그렇지. 아, 근데 카르티. 내가 원래 지내던 곳은 어떻게 됐어?"

마계 어린이일 적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초급 장교들을 길러내는 그 시설 말이지? 큘스오빠랑 동 나이대의 혈족원들은 전부 전장으로 가지 않았을까?"

"크."

그것들도 그것들 나름 대로의 고충이 있구만.

마계에선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소모품이다.

"아, 저기. 훈련장이야. 한번 보면서 가자."

그때 카르티가 아래를 가리켰고, 괴수가 저공비행을 실시했다.

"호오."

ㅡ화르륵!

강인한 마족들이 지옥의 갑옷을 입고 사악한 흑마법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단체로 절도있게 움직이는 것이... 정말 강해 보인다.

"저놈들은?"

"정예병들이야."

"정예병!"

내 군대로 따지자면 고블린 보병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들 나 정도로 강해 보인다. 아니. 사실 나보다 강하겠지.

"엄청난데. 굉장해."

"하지만 저런 녀석들이라고 해도 중간계에 맨몸으로 떨어진다면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건 큘스오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아, 나! 카르티! 나 부끄러워!"

"후후후! 부끄러워 하지마! 자랑스러운 일이니까! 아, 도착했다!"

ㅡ파앗!

드디어 도착인가.

"오랜만이네."

흉악한 마계의 고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거대하고 사악해 보이는 성.

저곳에 나의 어머니가 있다.

발기참기 난이도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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