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신전에서의 이야기
마력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생명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다.
마법이라는 신비한 학문을 실현하며, 육체를 강화시켜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지닌 몬스터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강대한 에너지다.
다만 마력은 누구나 가질 수 없다. 마력을 지닐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가 극한의 수련이나 전장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아야만 비로소 마력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마력의 재능은 적성검사로 알 수 있다.
귀족이라면 모를까 평민이나 상인들은 적성검사에서 뛰어난 결과를 얻어야만 마력을 깨우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기에 적성검사 이전에, 스스로 마력을 깨우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귀족들도 적성검사 이전부터 훈련하는데도 대부분 적성검사 전에는 마력을 깨우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평민이라면 더욱.
"오, 오오오! 벌써 마력을 지녔다니! 실로 천재로군!"
"그렇습니다. 대주교님! 벌써 저희 도시에서만 천재가 2명이나 나왔습니다. 거기다 이 아이는 평민이 아닙니까! 그 천재성은 이루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크하하하하하! 이게 전부 창세신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전부 창세신님의 은혜입니다!"
사제들은 평민의 몸으로 벌써 마력을 가진 나를 천재라 부르더니 이윽고 늙은이인 대주교까지 불러왔다. 그들은 입으로는 신의 은혜를 외치고, 몸짓을 경건하게 했으나 내 눈에는 그들의 탐욕이 보였다.
던전 도시는 여기 한군데가 아니며, 대도시마다 이런 거대한 신전이 있다. 그리고 대도시의 신전들은 언제나 다른 신전과 기 싸움을 벌이는 법. 여기라도 다르지는 않을 거다.
아마 대주교의 머릿속은 내 이름을 팔아 신전을 홍보할 생각이 가득할 거다. 저런 종교쟁이를 한두 번 보는 게 아닌 거든. 그런 식으로 신도를 늘리면 많은 헌금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신전을 널리 알려 다른 신전보다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조금 전에 나처럼 마력을 가진 아이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지만, 저들의 반응을 봤을 땐 귀족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나 같은 뒷배가 없는 평민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그리고 날 이용하는 게 더 효과 있기도 할테고.
평민이 마력을 깨우친 신전!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홍보로 쓰기에 최고의 선전 문구다. 저런 걸 보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런 걸 믿는 멍청이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꼬마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너한테 아주 좋은 일을 해주마!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거다!"
대주교가 내민 손. 나는 그 손을 쳐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잡지도 않았다. 나를 시골 촌뜨기로 여겨서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대주교님. 죄송하지만 저는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말씀은 거절하겠습니다."
"친구라면 함께 와도 되네! 자네 같은 인재의 친구라면 환영이지!"
내 친구마저 이용하겠다는 말을 참 잘 돌리네. 나는 대주교를 따라갈 생각도, 이용 당할 생각도 없다. 어떻게 대주교를 떨어트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금화를 슬쩍 보였다.
"죄송하지만 제가 바쁜지라."
"…허, 그런 건가."
대주교는 납득한 것 같다. 골드는 부유한 자의 상징. 시골출신인 내가 이런걸 어디서 낫을거라 생각할까. 당연히 누군가에게 후원 받았다 여기겠지.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나중에는 시간이 좀 생기겠나?"
"나중이라면 정확히 언제쯤인지요?"
"흐음… 나는 검사 마지막을 생각 중이네만. 그때라면 자네도 시간이 나지 않겠나?"
마지막이라, 그때라면 상관 없겠지.
"대주교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그때 뵙도록 하죠."
대주교가 끝에서 기다리겠다며 사제들을 이끌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변명이 잘 먹힌 것 같군. 그들에게 난 친구와 함께 온 시골 촌뜨기이니 금화를 보고 내 말을 믿는 거겠지.
'짜증나지만 이걸로 당장은 문제를 넘겼군.'
설마하니 마력 하나로 이 난리를 피울 줄이야. 아무래도 나는 이 세계의 마력이 가진 가치를 낮게 평가한 모양이다. 최대한 빨리 내 뒷배를 구해야겠어.
그러려면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야겠지. 나는 아직도 얼빠진 상태의 아이들과 사제를 제치고 검으로 향했다.
이걸 잡으면 마력 재능이 표시된다 그랬지.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검의 손잡이를 시작으로 특수한 힘이 나를 흩는다.
마치 나의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내려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에 순간 검을 놓아버릴 뻔했다. 검은 내 육체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재능과 경험 그 자체를 스캔하고 있었다.
'이게 신의 축복이라는 건가!'
소름 끼치지만 검을 꽉 잡고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곧 검이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화아악!!!
압도적인 빛! 씨발 눈뽕! 나는 환한 빛에 눈을 가렸다.
그 사이에 검이 내뿜는 빛이 점점 변해간다. 처음에는 무색의 빛을 내뿜었으나 서서히 노란색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아예 황금색이 되어 주변 일대를 빛으로 채워버렸다.
"우오오! 유진, 그대는 최고 랭크입니다! 이제 그만 나오세요!"
사제의 말에 검을 놓고 떨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검은빛이 사라진 채 잠잠해졌다. 강한 빛 때문에 눈이 아프다. 눈을 비비며 애들 곁으로 돌아갔다.
"유진. 당신의 마력 재능은 최고 랭크인 S입니다. 제국 황제 폐하의 3명으로 구성된 기사단인 황금 기사단과 황금 길드의 간부와 단장을 포함한 S 랭크 모험가들 중 소수만이 받은 랭크죠."
"그런가요. 그거 영광이네요. 제가 그분들과 같은 등급이라니!"
사실 3명으로 구성된 기사단과 S 랭크 모험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냥 알아들은 척하며 영광스럽다는 연기를 하니 사제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 일행이 아닌 이들도 나에게 존경과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사제의 말대로면 내가 거물이 되는 건 반쯤 확실하니 저럴 만도 하지.
그리고 이것은 내 동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도 충분했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친구들이 내가 다가오자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우와아! 유진 대단하다! 언제부터 마력을 다룰 수 있었던 거야!? 나도 알려줘!"
"맞아! 이 누나한테도 말해주지 않고, 누나한테 말했으면 성대하게 축하해줬을 텐데. 마을 사람들과 파티도 벌이고! 근데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이거 섭섭한데."
유벨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에반과 아리스는 순수하게 축하해줬다. 그나저나 마을의 축하 파티? 웃기고 있네. 뭔 놈의 얼어 죽을 파티야.
유진의 기억에 따르면 마을에서 유진은 왕따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어미라는 년이 아들 친구한테 빠져 아들의 생일조차 잊어버리는데 잘도 그런 걸 해주겠다.
나는 싸늘함을 애써 삼키며 그저 웃었다. 에반과 아리스는 계속해서 나에게 마력에 관해 물어봤다. 마력을 어떻게 다루니, 마력은 어떤 느낌이니, 마력을 다룰 때 몸이 뜨겁지는 않니. 등등. 이에 적당히 대답하고 있는 동안 측정은 계속 이어졌다.
알렉이라는 처음 보는 애는 F 랭크 정도의 희미한 빛이 나왔다. 사제도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담담하게 노트에 적었다. 알렉은 측정 결과에 아예 울더라.
아리스와 유벨은 각자 C 랭크와 A 랭크가 나왔다. 나와 비교하면 하찮은 수준이지만 저 정도는 나쁘지 않지. 아리스와 유벨도 그리 생각하는지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에반 차례가 됐다.
"에반. 당신 차례입니다. 가서 검을 잡으십시오."
"네!"
에반이 환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불안한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진! 나도 유진처럼 될 수 있을까?"
"너라면 가능할 거야!"
무리다. 에반의 마력은 재능은 내가 확인해 봤기에 잘 알고 있다. 에반은 재능이 없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에반은 내 말에 기뻐하며 검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검을 잡았다.
"으으…!"
빛이 나올 걸 예상하고 미리 눈을 감는 에반.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 에반이 잡은 검에서는 조금의 빛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에반은 마력에 대한 재능 자체가 전무하다는 증거다.
"어라? 이, 이게 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군요. 에반, 당신은 마력에 대한 재능이 없는 모양입니다."
사제는 동정의 시선으로 에반을 바라보며 노트에다 기록했다. 사실 에반처럼 마력에 대한 재능이 전무한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처럼 고랭크 두 명에 S 랭크 한 명이 있는 게 비정상적인 거지.
하지만 에반은 납득할 수 없는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크흠, 슬픈 건 알겠으나 인제 그만 나와주세요. 다음 검사를 해야 하니."
"네…. 네."
에반이 얼빠진 얼굴로 대답하며 검을 놨다.
"이런 아예 재능 자체가 없나 보네.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모험가로서 D 랭크가 최대일 텐데…."
"유진! 그걸 꼭 지금 말해야겠어!"
아리스가 성난 표정으로 외친다. 근데 난 지금 말해야겠는데? 이게 내 역할인 것 같으니까.
"에반, 일단 힘내. 육체 재능이 A 랭크 이상이면 마력이 없더라도 C 랭크 모험자는 될 수 있을 테니깐."
"하, 하하. 그렇… 겠지?"
에반은 애써 웃었다.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절망이 보였다. 결국 다음 검사를 하러 가는 동안 앞장선 건 나였다. 에반은 처음과 달리 의기소침해져서는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여기가 다음 검사인 육체 재능을 확인하는 곳입니다. 유진, 저기 원판에 손을 대보시죠."
육체 재능을 검사하는 도구는 은색의 원판이었다. 원판에는 처음 보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문자에서는 엄청나게 성스러운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에 문자를 쳐다보니 사제가 내 시선을 알아채고 설명해준다.
"이건 신성 문자입니다. 여러분의 육체 재능을 확인하고 회전하여 그 수준을 나타내죠."
"신성 문자라… 대단하네요."
나는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신성 문자에 감탄하며 첫 타자로 나가 원판에 손을 짚었다.
우우웅-!!!
원판이 재빠르게 회전한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산성 문자가 보이질 않을 지경이다.
"오오, 역시! 육체 재능도 최고 수준인 S 랭크군요!"
감탄을 터트리는 사제. 에반은 나를 부러운 표정으로 봤다. 나는 원판에서 손을 떼고 다음 차례가 되었다. 알렉은 C 랭크로 나왔다.
유벨과 아리스는 각자 D 랭크와 A 랭크로 나왔다. 유벨은 전형적인 마법사의 재능을 지녔고, 아리스는 근접전에 어울리겠어. 나중에 창이라도 가르쳐볼까? 그리 생각하고 있으려니 에반의 차례가 되었다.
"에반, 당신 차례입니다."
"네, 네!"
에반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원판에 손을 올렸다. 내 옆에 있는 유벨과 아리스가 에반보다 더 긴장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리고 결과가 잘 나오길 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에반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원판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판의 회전력은 안타깝게도 유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에반, 당신의 육체 재능은 D 랭크입니다."
지금 사제가 한 말은 에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으리라. 에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흐르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에반에게는 주인공다운 재능이 없다.
'아니, 재능이 없지는 않지.'
에반은 주인공. 이렇게 재능이 없다 나오더라도 행운으로 기연을 얻어서 어떻게든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걸로 내 역할이 뭔지 알 것 같다. 흔히 저런 주인공 겉에 존재하는 삼류 악역.
주인공한테 열등감을 품고 있다가 재능이 있다고 주인공을 배신, 혹은 무시하다가 나중에 역관광 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근데 난 그런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
저런 유형의 주인공은 뺏어 먹을 게 많거든. 에반이 주인공으로서 맡게 되는 숙명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분명 그 곁에는 강대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비해서라도 기연 좀 훔쳐먹고 강해져야지.
에반의 신뢰를 얻지 못해도 상관없다. 운명상 나와 주인공은 엮이게 되고, 그때가 주인공이 기연을 얻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에 실시간으로 절망하고 있는 에반과 그런 에반을 위로하는 아리스와 유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