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신전에서의 이야기
에반은 마력과 육체에 재능이 없다는 것에 절망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울먹이는 얼굴. 하지만 에반에게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저 녀석은 주인공. 상식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강해지는게 가능한 기회의 괴물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용의 심장을 구하거나 강대한 힘을 가진 마석 조각을 구하는 것도 있다. 주인공이란 그런 존재다.
세상의 강대한 운명에 저항하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강대한 운명을 부여받은 자. 나와는 차원이 다른 성장력을 지닌 세계의 중요 인물.
그렇기에 나는 에반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저 재능없는 에반이 상대할 강적만이 신경 쓰일 뿐이다. 여차하면 주인공의 역할을 대신해 주인공의 적을 내가 해치워야 할 테니깐.
하지만 아리스와 유벨은 이런 걸 모르기에 그저 절망하고 있는 녀석을 위로하기 바빴다.
"에반. 걱정하지 마 에반. 우리가 함께할 텐데 뭐가 걱정이야! 그렇지 유진아!"
"맞아요, 저희도 강하고 유진도 강해요. 저희가 힘을 합쳐 길드를 세우면 에반 오빠도 강해질 수 있을 거예요!"
유벨은 떨떠름한 얼굴이었으나 금방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내 의사는 묻지도 않았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저놈이나 자신들과 함께 길드를 설립할 거라 믿고 있다.
바보 같으니,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길드를 창설한 생각 없어. 나는 황금 길드에 들어갈 거야."
황금 길드. 무려 제국의 황제가 직접 세운 길드로 최고위 길드를 의미하는 다섯 개의 국가란 뜻의 오국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황금 길드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황금 길드가 초거대 길드로서 엄청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던전 내부에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 말로도 다른 이유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봐도 이 세계의 주적은 던전에 있을 것 같거든. 특히 던전이 갑자기 생겨나 지금까지도 그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거슬린다.
그러니 난 황금 길드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와 유벨은 내 말에 이해하지 못한 건지 엄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들은 끝까지 우정을 지키겠다는 건가.
"유, 유진! 우리의 맹세를 잊은 거야! 우리는 언제나 함께!"
"맞아요! 에반 오빠의 재능이 낮게 나왔다지만 이렇게 버리려고 하다니! 당신은 쓰레기인가요!"
아리스와 유벨이 뭐라고 외친다. 금방 마지막 검사장에 도착하기에 그냥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었다. 지금 내 행동이 그들 입장에서 배신인 건 맞으니깐.
곧, 사제의 인도에 따라 마지막 검사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느껴지는 살벌하고 강렬한 기세.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고 그중 몇몇은 수많은 전장을 지나온 역전의 전사다.
그들의 기세에 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아마 저들이 길드 스카우터 일터. 여기서 그녀들은 내가 왜 길드를 설립하지 않겠다고 했는지 깨달을 거다.
"그러면 마지막 검사를 시작하죠."
사제는 담담하게 검사로 이어갔다. 마지막 검사는 신의 축복, 즉 특수한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사제는 특수 능력 여부를 알아보는 성물로 추정되는 황금 반지를 가져왔다.
황금 반지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수수한 모양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여타 성물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번 검사는 에반부터 시작합시다. 에반 이리 오시죠."
첫 타자는 내가 아니라 에반이었다.. 아마 재능 없는 놈은 먼저 보내려는 거겠지. 그리고 내 예상대로 에반은 반지를 꼈을 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제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지 노트에 적고는 에반에게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당신은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아니면 저기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셔도 되고요, 참고로 나가는 문은 저기입니다."
에반은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두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지금 에반은 절망스러울 거다. 지금까지 아무런 위험이나 어려움 없이 살다가 재능이 없다는 선고가 떨어졌으니깐. 그런 에반을 돌보기 위해 아리스와 유벨이 에반 곁에 다가가려 했으나 에반은 오히려 그런 둘을 쳐냈다.
"미안…. 아리스, 유벨. 난 그냥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터덜터덜. 에반은 떨리는 몸을 이끌고 구석에 주저 앉았다. 사제는 그런 에반을 한번 본 후 검사를 이어나갔다. 당연하지만 알렉이라는 놈은 별 특별한 게 나오지 않았다.
사제는 이번에도 나가도 된다며 사형 선고를 했고 그놈은 친구도 없기에 차가운 침묵 속에서 울면서 신전을 뛰쳐나갔다. 유벨과 아리스의 차례 때는 히로인이라 그런지 각자 능력이 있는 거로 나왔다.
사제는 재능 넘치는 소녀들이 축복을 지녀서 그런지 들뜬 얼굴이었다.
"두 분 다 능력이 있으시군요. 그러면 반지의 탐색 능력으로 두 분의 힘을 알아보죠."
사제는 반지의 윗 부분을 돌렸다. 끼리릭, 왼쪽으로 돌아간 반지에서 광채가 났다. 사제는 그 광채를 뚫어지게 봤다.
광채가 사그라들고 그제야 사제는 눈을 뗐다. 그리고 반지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축하합니다. 유벨의 능력은 더블 캐스팅.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영창 할 수 있다는군요. 그리고 아리스의 능력은 대마력. 저주와 마법 공격에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군요."
"더블 캐스팅이라…. 딱 마법사가 되라는 의미 같네요."
"그러게! 마법사 유벨이라니 멋지다! 그리고 내 능력도 좋아 보여!"
둘의 능력이 좋긴 하다. 더블 캐스팅으로 마법 두 개를 동시에 영창 할 수 있다는 건 강력한 이점이다.
아리스의 대마력 또한 검사 특성상 원거리의 마법사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보완해준다.
'둘 다 황금 길드에 들어갈 만한 조건이 되겠어.'
아니지 저 정도면 오히려 길드를 선택하는 입장일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어떤 길드에 들어가더라도 크게 성공하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제의 말에 아리스와 유벨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능력까지 지녔으니 짐 덩이 취급될 에반을 데리고 길드를 창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무르다. 너무나도 무른 생각이다.
에반은 일단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추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에반을 강하게 키울지, 아니면 방관한 채 내가 주인공의 역할을 대신할지 정할 거다.
아무리 기연을 얻어 강해졌다 해도 정신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도움보다 방해가 더 많이 될 것이다. 전생의 그 용사 새끼도 그랬고.
'그러니 최대한 열심히 해보라고, 에반.'
나는 마음속으로 에반을 응원했다.
"유진.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여기 반지를."
벌써 내 차례인가? 사제가 나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반지를 받지 않았다. 이 육체에는 특수 능력 같은 건 없었다. 반지를 껴도 반응이 올리가 없어.
그러니 권능을 특수 능력으로 속이자. 나는 양손을 내밀어 물을 움직였다. 물이 출렁거리며 거대한 활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건… 물! 물이잖아! 설마 특수 능력도 미리 깨우친 겁니까!?"
"네. 꽤 예전에 깨우쳤죠. 물의 활을 형태를 바꿔 쌍검으로 만들었다.
사제는 눈이 커지더니 급하게 노트에 이 모습을 작성했다. 사제는 진이 빠진 듯 마른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하! 설마 제가 하는 적성 검사에 이런 인재분들이 나오실 줄이야. 기분이 묘하군요. 아무튼 이걸로 적성검사는 끝입니다."
드디어 끝났다. 분명 아침 일찍 시작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제님."
"수고라뇨. 이정도야 별거 아니죠."
사제는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검사 결과를 적었던 노트를 덮은 뒤 로브의 품에 넣었다.
"일단 이 결과물을 보고하면 여러분께 길드의 영입 제안이 갈 겁니다…만, 여러분들은 다르죠. 이걸 받으세요."
사제가 우리 3명에게 황금 인장을 건네주었다. 황금 인장에는 검과 방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겉면에는 특수한 마력 코팅이 되어있다.
그리고 화폐인 금화의 5배는 되는 크기에 겉면에는 울퉁불퉁한 돌기가 있었다.
"그건 오국 길드에 들어갈 자격을 지닌 자에게만 건네주는 황금 인장입니다. 그걸 가져갔다가 내일 신전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여러분 같은 인재를 위해 길드의 스카우트를 맡은 분들이 전부 모이실 겁니다."
"아, 근데 저희는 길드를 창설할 예정이라서요."
아리스는 황금 인장을 반환하려 했다. 하지만 사제는 황금 인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황금 인장을 꼬옥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아리스를 설득했다.
"길드를 창설하고 운영하려면 길드 홈은 필수고,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돈을 가졌을리 만무하니 내일 다른 길드의 분들께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 확실히 길드는 규정상 길드 홈이 있어야 창설할 수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 더해 여러분이 길드를 창설해도 다른 길드에서 장난으로 여기거나 진심이 아닐거라 생각해 방해하거나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 내일 와서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어떤가요?"
사제 양반이 말 한번 잘하네. 반면에 아리스는 이런류의 경험이 없어서 사제의 페이스에 휘말렸고. 이거 안 봐도 결과가 뻔하군.
아리스는 황금 인장을 결국 받은 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제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저기 친구분까지 4분이 같은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길드 가입 시 4명 동시 가입이라고 말해보시죠? 아마 여러분의 영입을 위해서 들어줄 겁니다."
그게 끝이었다. 아리스는 사제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좋아하며 황금 인장을 받았다.
우리는 황금 인장을 챙기고 사제에게 다 같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대주교와 만나 뵈어야 한다며 사제가 붙잡으려 했지만 허약한 사제에게 잡힐 리가.
그렇게 무사히 거리로 나올 수 있었고, 에반은 유일하게 황금 인장을 못 받아서 그런지 몸에 힘이 없어 보였다.
"하아, 유진이 가진 재능의 반만 있었더라도…."
에반이 한숨을 내쉬며 자꾸만 꺼내는 말. 어지간히도 마음 상했나 봐. 아리스가 팔짱을 낀 채 꼬옥 껴안고 있는데도 반응이 없다니.
"에반, 걱정 마! 언제나 우린 함께 할거잖아! 그리고 나는 에반의 연인이야! 항상 곁에 있어 줄게!"
"아리스! 고마워 아리스! 응, 나 힘낼게! 재능이 다 뭐야. 그 정도는 노력으로 넘겠어!"
아리스의 호언장담에 에반도 힘이 났는지 몸을 들어 올리며 개소리를 지껄인다. 재능이 아니라 운과 기연으로 커버하겠지. 한 번도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놈이 노력으로 재능을 넘겠다니.
가소롭다. 진정으로 노력하여 자신의 쥐꼬리만 한 재능을 뛰어넘은 주인공을 본 적 있기에 더더욱. 하지만 에반이 다시 활기를 찾은 건 나쁘지 않다.
적어도 멘탈이 현대에서 오는 주인공처럼 조금만 힘들거나 노력을 해야 할 때마다 박살 나는 순두부 멘탈은 아니니깐.
물론 진짜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얘들아! 어서 여관 가서 점심 먹자! 그리고 내일 있을 영입에 대비도 좀 하고!"
에반이 대장처럼 앞서가며 외쳤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불안을 숨기려는 꼬마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