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신전에서의 이야기 (10/198)



〈 10화 〉신전에서의 이야기

여관에 돌아가 식사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우리는 여관 자리에 앉았다. 어제 먹은 여관의 식사는 최고였지.

메뉴판을 보고 적당한 요리인 스프와 고기 요리, 샐러드 등등을 주문했다. 4인분으로 2 실버라. 적당하네. 여급에게 실버를 건넸다.

요리는 금방 나왔고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했다. 우리의 미모에 여관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특히 잘생긴 에반과 예쁘고 몸매도 좋은 아리스에게는 모두의 시선이 독점되다시피 했다.

둘은 시선을 모르는지 화기애애하게 서로 먹여주기나 하고 있었고, 그걸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던 건데. 너희들은 목표가 뭐야?"

이게 항상 궁금했다.

얘네들이 모험가가 되려는 건 알겠는데 모험가가 돼서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듣지 못했기에 궁금하다.

"응? 목표라니?"

"우리가 여기 온 게 모험가가 되려는 거였잖아. 그러면 모험가가 돼서 뭘 하려는 거야? 나는 던전을 탐험하고 싶은데."

도서관에서 본 책에는 던전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던전에서는 몬스터가 무한하게 탄생하고 깊게 들어갈수록 몬스터가 강해지고 마석도 품질이 좋아진다는 게 다였다.

던전이 몇 층인지, 어떤 구조인지, 위험한 현상은 없는지, 던전의 끝 층에 도달한 사람이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그렇기에 그런 정보가 많은 황금 길드에 들어가 던전을 탐험할 생각이다.

"너희는 어때? 목표가 있어?"

"으음…. 난 강해지고 싶어서?"

"강해지고 싶다고?"

"응, 처음에는 그냥 적당히 벌어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되려고 한 건데 지금은 진심으로 강해지고 싶어!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우면 금방 강해질 수 있잖아."

에반은 무언가 각오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유진을 뛰어넘는 모험가가 될 거야!"

주인공답다면 주인공다운 말인데 왠지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믿음이 가질 않는다. 아니, 주인공이니깐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쑥쑥 크겠지.

그나저나 나를 뛰어넘는 다라, 내가 지금까지 세계를 넘나들며 얻은 힘과 쌓은 기술이 몇 개인데 쉽게 따라잡힐 리가 있나.

"뭐, 그래도 열심히 해봐. 언젠가는 날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응! 그럴 거야!"

날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 약하더라도 의지를 다지고 목표를 세웠다. 이에 만족하며 고기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우리는 그 외에도 유벨과 아리스의 목표도 물어봤다.
"나는 모험가로서 성공하고 싶어. 마을 사람들한테 돈을 보내야 하니깐. 그래도 돈을 못 벌게 된다 해도 에반하고 애들이랑 4명이 항상 같이 있고 싶어."

"나도 아리스 오빠랑 같은 심정이야. 모험가로서 좋은 길드에 들어가서 많은 돈을 벌고 싶어. 엄마랑 아빠한테 돈 부쳐 드려야지."

모험가로서 성공하고 싶다고 한다. 오, 이건 의외네. 설마 저 둘이 성공을 목표로 할 줄이야.

그래도 마을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마을을 위해서인 마음이 강한가 보네.

나 같은 경우에는 마을에 대한 나쁜 기억뿐이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와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당연하지만 난 마을로 가거나 할 생각이 없다. 가더라도 좋은 목적으로 갈 일은 없을 거다.

마을을 생각하니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흔들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어 싸한 미소가 나오려는 걸 참았다. 여기서 그런 어두운 미소를 지으면 안 되지.

그리 생각하며 태연하게 밥을 먹었다. 맛있는 음식이라서 금방 접시를 비웠다. 식기를 여급한테 돌려주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아리스가 실버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흔들었다.

"그러면 이제 장비를 구하러 가자. 우리가 입고 있는 갑옷은 마을 사람들이 구해주신 거라 공격을 막기엔 조금 부족하잖아. 내일 길드 분들 만나는데 그냥 만날 수는 없지. 강철 갑옷을 구해서 입자."

"아리스 언니 말대로 가죽 갑옷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그리고 무기도 하나도 없잖아. 무기를 길드에서 지원 받을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깐 사러 가자."

둘 다 내일을 대비해서 장비를 사자고 한다. 근데 우리 장비는 지원 받을 텐데? 나야 주더라도 거절하겠지만 유벨과 아리스는 지원 받는 걸로도 충분할 터다.

그러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실버를 보고 있는 에반의 모습을 보니에반은 길드에 들어가기도, 지원을 받기도 힘들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마 아리스와 유벨은 에반을 의식해서 저런 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에반은 자신보다 유벨을 더 걱정했다.

"근데 유벨은 마법사에게 맞는 능력을 갖췄잖아. 근데 마법 지팡이랑 마법 도구는 비싸지 않아?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에반의 걱정은 합당하다. 마법은 돈 잡아먹는 하마.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하지만 그건 걱정 없지.

"그거라면 걱정 없어. 마법 물품은 우리가 구매할 필요가 없거든."

"우리가 구매할 필요 없다니, 어째서?"

"길드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마법 관련 능력을 지닌 사람은 엄청난 인재로서 팍팍 지원해줘. 아마 길드원 중 가장 지원이 많을걸."

그만큼 마법을 다루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지만. 유벨이라면 잘할 수 있겠지. 히로인에 능력도 완전 마법사 맞춤이잖아. 금방 읽힐 거다.

어쨌든 이걸로 유벨한테 돈 쓸 일은 없어졌다. 아리스는 실버를 꺼내 3명의 몫으로 나누고 있었다.

"이걸로 우리 3명의 장비를 마련하자."

3명의 몫으로 나눈 실버는 적었다. 무기도 하나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정도. 불쌍하긴, 저 돈으로 장비를 어떻게 구하겠어.

"이거나 받아."

주머니에서 골드를 꺼내 아리스에게 넘겼다.

"이건…. 골드!?"

내가 건넨 골드에 아리스는 놀라며 골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우왓! 고, 골드가!"

허겁지겁, 아리스는 몸을 흔들며 바닥에 떨어진 골드를 잡아챘다. 골드의 등장에 다들 놀란 눈치. 나는 골드 몇 개를 자랑하듯 꺼냈다.

"그걸로 너희 장비나 구하라고, 내 장비는 알아서 구할 테니까."

나는 내가 직접 만든 장비만 사용한다. 시중에서 파는 건 잘 안 쓰지. 그렇기에 장비를 만들러 이제부터 대장간으로 갈 거다.

"내 장비는 걱정 말고 너희 장비 잘 구해라. 여기 근처 둘러보면 엄청나게 큰 대장간 있거든. 거기 꼭 한번 둘러보고. 그리고 오늘 나는 외박한다, 나 찾지 마!"

"어, 아, 알았어! 꼭 한번 둘러볼게!"

골드의 등장에 아리스는 바싹 얼어붙은 것 마냥 꼿꼿하게 섰다. 마치 쓰리스타 앞의 일등병 같았다. 저렇게 긴장하는 걸 보니 꼼꼼하게 따져가며 쓰겠지.

나는 여관을 나왔다. 저번에 기술을 팔았던 대장간이 시설이 좋았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큰 건물에는 괜찮은 수준의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무기를 보지도 않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의 대장장이는 덩치가 컸고, 마치 드워프처럼 거칠게 수염이 자라있었다. 다듬지도 않은 건지 뻑뻑해 보이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품을 쩍쩍해대다가 나를 보고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서 오쇼. 무기라면 저쪽에 있는 거 대충 고르시고 방어구는 저쪽입니..."

"난 내가 만든 장비만 써. 대장간을 쓰고 싶은데 안내 좀 해줘."

덩치의 말을 끊고 내 목적을 말하자 대장장이 얼굴이 기묘하게 휘어졌다. 그리고 내 위아래를 쳐다봤다. 어제 없었던 대장장인가? 날 바라보지 못하는 덩치.

덩치는 내 위아래를 보고 나서 웃었다. 마치 가소로운 애송이를 바라보는 듯한 건방진 웃음이었다.

"너 같은 비실한 놈이 망치질하겠다고? 조용히 하고 꺼져. 그렇지 않아도 카운터 보느라 지루해 죽겠는데."

건방진 소리를 하는 덩치. 손님한테 이런 소리를 하다니 이래서 장인이란 카운터에 세우면 안 된다.

대부분의 장인들이 자존심에 강하고, 친절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놈은 특히나 교육이 엉망이네. 이런 직원한테는 참교육이 필요하다.

"너같이 물 근육으로 가득 찬 것보다는 낫지."

"....뭐라고?"

"귀가 막혔나? 너같이 물 근육으로 가득 찬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덩치야."

도발에 도발로 응해주니 표정이 볼만 해졌다. 잔뜩 화가나 붉어진 얼굴이 웃기기 그지없었다. 덩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큼지막한 망치를 꺼내 들었다.

얼씨구, 입으로 밀리니깐 무력으로 가겠다는 거냐.

"이 새끼가! 너 뒤졌어!"

"쯧. 귀찮게 하기는."

덩치가 망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에 맞추어 덩치의 배에 정권을 때려 박으려는 생각으로 주먹을 쥐는데 누군가가 덩치를 뒤에서 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덩치의 머리를 붙잡는 거대한 손. 곧 덩치의 몸이 짓눌려 바닥에 쓰러지고, 망치는 뒤로 튕겨 나갔다.

누구지? 주먹을 풀고 난입한 자를 보았다. 그는 어제 봤던 대장장이였다. 대장장이는 덩치를 대충 구석에 던져두고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거 미안하네. 저 친구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네! 나중에 다시 교육해 두지!"

"그건 됐고, 여기 시설 좀 씁시다. 그리고 주괴도 몇 개 살 거고."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건넸다. 대장장이는 금화를 받아들었다.

"날 따라오게. 마침 비는 시설이 있거든. 그리고 원하는 주괴가 있나?"

"대충 강철이랑 이것저것 하나씩 주시죠."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하게 시키지요. 이봐! 손님이다! 당장 가서 강철 주괴와 세드라이트 주괴, 광찰 주괴 가져와!"

대장장이가 지나가던 직원한테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직원이 급하게 달려 나갔다.

"주괴는 금방 준비 될 겁니다. 그리고 시설은 여기 이걸 쓰시죠."

"호오."

시설은 꽤 좋았다. 잘 만들어진 망치와 모루는 새것 같았고, 화덕에서는 쉴 새 없이 뜨거운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기서 망치질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여기 주과 가져왔습니다!"

때마침 주괴도 도착했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옆의 대장장이는 주괴를 들고 와 옆자리에 놓은 뒤 내 뒤로 가 특수한 보호경을 쓰고 앉았다.

"...? 왜 뒤에?"

"별거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기술을 보고 싶을 뿐이죠. 그때 당신의 기술을 보고, 제 실력이 배는 상승 했어요."

뛰어난 장인의 솜씨는 보는 것 만으로도 수업이 된다. 아마 저 장인도 내 기술이 본인에게 훌륭한 수업이 될 거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원래는 공짜로 이런 걸 해주는 사람이 아니지만 내 실력을 보고 저 대장장이는 예의를 차렸다. 그렇다면 내 야금술을 보여줄 자격이 충분해.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술은 세계를 넘나들며 수많은 스승을 거치며 완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이상 스승들의 이름에 먹칠을 할 만한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작업을 시작한다. 우선 금속 주괴를 둘러봤다. 질 좋은 금속 주괴가 많다. 그중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꺼낸 뒤 망치로 두들겨 부쉈다.

콰앙!

망치질 한 번에 박살 나는 금속 주괴들 사이로 마력을 흘러 넣었다.

부글부글!

여러 개의 금속을 녹이며 하나로 합친다. 고온에 녹아내린 금속이 하나가 되어갔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좀 더 뜨겁게, 좀 더 강렬하게!

까앙-  까앙-

작업에 집중하며 시간 따윈 잊었다. 나는 쉴 새 없이 망치를 내리쳤다. 녹아내린 금속이 완전하게 합금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를 굳히면서 연신 망치질을 해 형태를 잡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창 단 한 자루뿐. 무겁고 거치적거리는 방어구 따위 나한테 필요 없다.

깡- 깡-

망치로 두들겨 기다란 봉의 형태를 잡았다. 그리고 앞부분은 날카로운 날을 양옆에 대칭을 이루도록 두들긴다.

형태는 완벽하게 잡혔다. 남은 건 마무리 작업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대장장이가 물건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망치를 내리쳐 이를 표현한다. 이것이 내가 스승에게 배운 기술이다.

이야기를 담자, 내 삶을 담자. 창이라는 분야에서 극에 다다른 나를 담자.

깡- 깡- 깡- 깡-

치이이-

어느새 무기가 완성되었다. 물속에 집어넣은 무기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속에서 무기를 꺼내 마력으로 물기를 날려버렸다.

".....됐다!"

은색으로 빛나는 내 키만 한 장창이 손에 들려있었다. 창은 아름다웠다. 내가 만든 것이니 당연했다.

내 기술의 완성자는 헤파이스토다. 그는 내 스승이었고, 나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했다.

비록 신의 법칙에 의해 신의 영역의 기술은 배우지 못했지만 나는 스승과 함께 스스로의 손으로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 외에도 나는 많은 이들에게 온갖 기술을 배웠고, 이런 기술들은 나에게 쌓여 세계를 넘어 이어졌고 언제나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완성된 창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실력은 역시 녹슬지 않았군!"

이런저런 금속을 합쳤으나 조금의 이상함도 보이지 않는 장창. 그 내구도는 내 힘과 창술을 버틸 수 있을 거다.

"어디 보자, 사용감은 어떨까."

나는 만들어진 창을 손에 쥐어봤다. 손에 잡히는 감각도 최상이다. 몇 번 휘둘러봐도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내가 만든 무기지만 아주 잘 만들어졌다.

결과물에 만족하며 밖을 보았다. 과연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 하는 심정이었는데. 내 눈에 보인 건 어둠이었다. 이미 해가 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해가 지면 그녀랑 만나기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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