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길드에 가입하는 이야기
"너가 황금 길드에 가겠다고? 진심이야?"
나는 유벨이 에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지금까지 유벨의 행동으로는 그렇게 느꼈고, 유진의 기억으로도 유벨은 에반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유벨이 자기 입으로 에반을 두고 황금 길드로 오겠다고 했을 때는 놀랐다.
이는 아리스도 마찬가지인지 깜짝 놀란 얼굴로 유벨을 다그쳤다.
"유벨!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도 에반을 버릴 생각이야? 우리는 언제나 함께 하기로 했잖아!"
"응,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기로 했지. 그러니 들어가도 우리는 4명이 같이 들어가."
4명이 같이 들어간다고? 그건 불가능할 텐데. 에반은 재능이 없어 모험가가 되기에 부적합하니…. 아. 그 방법이 있었지. 확실히 4명이 같이 들어갈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을 길드 스카우트 들과 갑옷을 입고 있던 오국 소속의 간부들도 깨달은 모양이다.
"확실히…. 저 3명을 영입할 수 있다면 한 명 정도는 그냥 고용해도 되겠지."
"아무리 약해도 짐을 옮기는 일은 할 수 있겠지."
짐꾼. 던전에서 모험가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필요한 식량과 예비 무기 등을 옮기고, 몬스터를 사냥하여 얻은 마석과 몬스터의 소재를 옮기는 직업이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양의 짐을 옮겨야 하나 안전성 도 떨어지고 급료도 적다.
대부분 짐꾼은 모험가가 되어 몬스터와 싸우기 무서워하거나 능력이 부족한 자들이 주로 하는 직업이라 모험가들 사이에서 무시 당하는 게 이상이다.
하지만 짐꾼이라면 4명 전부 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좋은 생각 같다.
그거라면 4명이 다 같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난 딱히 4명이 같이 다니고 싶지는 않지만.
"짐꾼 일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거라면 4명이 다같이이긴 하네…. 하지만 그러면 에반에게 미안하잖아......"
씁쓸한 표정을 짓는 아리스. 유벨도 짐꾼의 취급이 어떤지 알기에 자기가 말을 하고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근데 이거 진짜 좋은 생각 이긴 해.
어찌 됐건 4명이 같이 다닐 수 있는 건 맞으니깐. 하지만 그 생각도 금방 벽을 마주치게 되었다. 황금 길드의 간부가 황금 길드의 규정을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 길드는 규정상 짐꾼도 신분과 실력 보장된 자들을 선정해 훈련한 뒤 이를 수료할 시에 일하게 하네. 그 친구는 우리 길드의 짐꾼도 될 수 없어."
"뭣! 그건 규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저희는 4명이 항상 함께하기로 맹세했어요. 제발 어떻게 안 될까요!"
둘은 애원했다. 하지만 인생은 실정인 법. 다짜고짜 저렇게 달라붙는다고 들어줄 리가 만무하지.
거기에다 나는 에반 길드에 들어오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게 규정이니깐. 싫다면 다른 길드에 가게. 우리 황금 길드는 여기, 이 소년의 영입만으로 충분하니깐."
그것은 최후통첩이었다. 이거 안타깝네, 결국 에반은 함께하지 못하겠어. 나는 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거니깐.
"유진아..."
"유진 오빠..."
둘이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유벨이 나한테 오빠라는 말을 한 걸 보니 둘다 어지간히도 에반이 좋은 모양이다.
뭐, 내 알바는 아니지만.
"나는 황금 길드에 들어갈 거야. 이 생각은 바꾸지 않아."
나도 마지막으로 내 입장을 말했다. 유벨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저도 황금 길드에 들어가죠. 언니, 언니도 잘 생각해 주세요. 이렇게 된 이상 저희가 큰돈을 벌어서 에반 오빠를 돕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에반을 혼자 놔둘 수는 없잖아..."
하아…. 이쯤되면 질린다 질려. 이놈에 에반 타령! 나는 번개의 창을 만들고 아리스의 코앞 부분에 찔렀다.
파앙!
"우…. 우왓!"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 눈앞에서 번쩍이는 번개의 창에 아리스가 주저앉았다.
주변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날 본다. 나는 창을 거두고 진심으로 말했다.
"방금 그건 야생 늑대 수준의 속도야. 그런데 넌 반응하지 못했지. 그리고 몬스터는 방금의 그것보다 더 빠를 거야. 방금의 속도에 제대로 반응도 못 하면서 길드를 세우겠다고?"
"그, 그건! 우리 재능이 뛰어나니깐 훈련만 하면!"
"훈련은 개뿔. 어떻게 훈련해야 효율적인지 알아? 훈련 장소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제대로 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그리고 던전은 언제 어디서 죽을 모르는 곳이야. 제발 긴장 좀 해!"
재능을 개화했다면 모를까. 이제 막 자신의 재능을 자각한 시골 소녀가 던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장담하건대 3일 이상 살아남기만 해도 운이 좋은 거고, 죽지만 않아도 천운을 썼다고 표현해야 할 거다.
"네가 알아서 생각해서 결정해.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다."
내 말을 끝으로 아리스는 고뇌하는 듯 머리를 손으로 잡으며 에반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도……. 황금 길드에 들어갈게."
"...잘 선택했어."
이걸로 끝, 우리 3명은 황금 길드에 들어간다. 간부를 바라보니 간부는 인재 3명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쁜지 웃고 있었다.
"이걸로 오늘 내 할 일을 잘 마쳤군, 오늘은 정시퇴근이다!"
간부의 말에 사제를 포함한 사람들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정시퇴근은 못 참지. 기뻐할 만도 해.
근데 사제도 퇴근이란 걸 하나? 저 양반은 왜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거지? 의아해서 바라보고 있으니 사제가 흠흠, 헛기침했다.
"그러면 이렇게 3분은 황금 길드에 가시는 거로 기록해 놓겠습니다. 대주교님께도 그리 말해놓죠."
"아, 그러고 보니 대주교님은 어디 가셨나요?"
오늘은 기다리면서 나를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포기했나?
"대주교님께서는 현재 황금 길드의 단장의 부름에 응하셔서 잠깐 나가셨습니다."
확실히 대주교가 나갈 법도 하네. 황금 길드는 제국이 세웠으며 단장도 황족만이 맡는다.
그리고 현재 단장은 무려 황제의 여동생이다. 대주교 신분으로는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지. 납득했다.
"그러면 대주교님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가도 되겠네요. 황금 길드의…. 그, 성함이?"
"라피드라 부르게!"
"라피드 씨를 따라가면 되겠네요."
"그전에 계약서를 작성해야지! 이보게, 여기로 계약서 3장만 주게나!"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라피드의 명령에 사제가 품에서 종이 3장을 꺼냈다.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종이라, 마법 계약서인가? 우리에게 종이를 건네는 라피드. 나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계약서의 조항은 합리적이다.
[제1항, 길드 가입 시 길드 내부의 지위 제도를 따라야 한다. 길드의 지위 제도는 단장, 부단장, 간부가 있으며 나머지는 모험가 연합의 랭크제를 따른다.
제2항, 길드 임무시 상급자의 명령이 법과 길드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은 한 반드시 따른다.
제3항, 길드 처음 가입 시엔 몇 달 가량의 수습 기간을 가지며 수습 기간은 실력에 따라 달라진다.
제4항, 길드 가입 시 길드의 원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며 C 랭크 이하의 모험가는 일주일에 한 개 이상의 임무와 한 달에 한 개 이상의 의뢰를 행해야 한다.
제 5항, 길드는 길드원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이에 길드원은 의무적으로 원정을 제외한 때에 던전에 가서 얻은 것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제6항, 원정에서 얻은 모든 것은 길드의 것으로 한다]
"이 계약서에 사인하면 그때부터 자네들은 우리 길드 소속이 되지."
"봤을 때 이상한 조항은 없네요. 사인하죠."
나는 이름을 적고 종이를 건넸다. 문자는 세계를 넘나들 때 기본적으로 익히기에 계약서를 읽는데 별문제 없었다. 유벨과 아리스도 계약서를 잘 읽고 사인했다.
라피드는 계약서를 잘 챙겼다.
"이걸로 우리는 같은 길드 소속이네! 일단 밖으로 가지! 내가 길드까지 안내하겠네!"
라피드의 말에 아리스와 유벨이 구석에 있던에반에게 다가갔다. 에반은 짐꾼이라는 말에 딱딱한 표정을 짓다가 그것도 안 된다는 말에 에반은 아리스와 유벨을 보았다.
"에반. 우리는, 그러니..."
"아냐, 괜찮아, 얘들아! 나, 나는 신경 쓸 것 없어…. 이게 전부 내가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거니깐. 그냥 길드에 들어가!"
"....미안해."
"아니, 아니…. 아니야! 난 괜찮아! 괜찮고말고! 나도 길드 밖에서 노력해서 열심히 할 테니깐 나중에 함께하면 되는……. 거…. 젠장!"
감정이 끓어오르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지던 에반은 결국 침묵했다.
그리고 몸을 떨더니 그대로 신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에 아리스가 당황하며 에반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유벨이 아리스를 만류했다.
"지금은 가봤자 소용없을 거예요. 나중에 찾아가요, 언니."
"그치만 에반이!"
아리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반이 떠나간 곳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에반은 이미 밖으로 나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유벨의 말대로 지금은 찾아가봤자 관계만 더 나빠질걸.
지금 에반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이 자기를 배신했으니깐.
물론 유벨과 아리스는 에반을 위해 그런 거지만 당장은 머리가 뜨거워져 그런 것 따위 모를 거다.
나중이 되어서야 유벨과 아리스의 의도를 깨닫고 다시 관계를 회복해보려 해도 그때에는 우리가 길드에서 수습 기간을 보내느라 만나기 힘들 거다.
'그때 동안 쟤네 둘 작업이나 해서 에반한테 보여줄까?'
나는 풍만한 몸매의 아리스와 조금 빈약하지만 분명 상당한 수준의 미소녀인 유벨을 보며 음란한 생각을 했다.
여기에 빙의된 뒤로 레베카로 10발을 뺐다. 그녀는 내 섹프나 다름없지만 난 좀 더 특별한 여자를 원한다.
"뭐하나, 빨리 가세!"
여자 생각하느라 걷는 속도가 좀 느려졌는지 라피드가 앞에서 우리를 불렀다. 애들도 에반 때문인지 걸음걸이에 힘이 없었다.
"얘들아, 가자. 에반은 나중에 내가 찾아가서 잘 설명해둘게."
우리는 라피드를 따라 길드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