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던전에 들어왔다. 던전의 초입부에는 수많은 모험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던전 내부의 구석진 곳에서 투명화를 해제했다.
"어때, 무사히 들어왔지."
나는 자신만만하게 황금 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리스는 몸이 투명해진 게 그리도 신기했던 건지 자신의 팔, 다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유진아. 우리 이제부터 뭐 하는 거야?"
"뭘하긴 뭘 해. 당연히 몬스터 사냥이지."
나는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들고, 마석폭탄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아리스에게는 미리 챙겨둔 롱소드를 주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던전을 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할 거야."
"몬스터 사냥?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 수준이면 초입부는 껌이지. 나도 있으니깐 중반부까지도 괜찮아."
던전은 총 30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하층은 10층까지. 중층은는 25층까지다. 그리고 26층부터는 하층이다.
기본적으로 계층에 따라 몬스터의 수와 질이 달라지고 얻을수 있은 마석의 값도 달라진다.
현재 내 수준은 턱걸이로 간신히 B급에 다다를 정도. 하층은 꿈도 못꾸고 중층도 20층대 아래는 무진장 위험하다.
'우리는 윗쪽만 돌거니까 이건 상관 없으려나.'
나는 내 주제를 알기에 목숨 아깝게 위험한 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 물론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긴 하지만 20층 미만으로는 가지않을 거다.
그리고 지금 아리스의 능력이면 초입부는 무난하게 돌 수 있다.
전투 경험과 무술이 조금 부족하지만 상승한 신체 능력으로 몬스터를 압도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유진아. 우리는 그 초입부라는 부분의 몬스터를 잡으면 되는 거지?"
"맞아. 근데 조금만 기다려봐."
몬스터를 상대하기 전에 조사할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던전. 나는 던전의 벽을 손으로 짚었다.
"역시 이상해."
이곳의 던전 내부는 다른 세계의 던전처럼 동굴이나 유적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 세계의 던전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던전 내부의 벽은 붉은색을 띄고 있는 고깃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형태의 돌이나 금속이 아닐까 싶었지만 손으로 짚어본 결과 고깃덩이가 맞다.
이 고깃덩이들로 이루어진 벽은 초입부에선 거대한 홀 마냥 이루어져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십 개의 입구와 거대한 길로 나누어진다.
나는 이것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꼈다. 분명 책에 기록된 바로는 원래부터 이런 형태로 위험하지 않다고 나와 있지만 내 직감이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고깃덩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과 생명력. 마치 던전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니지 정말로 살아있는 걸지도 몰라.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에 벽에다 마력을 흘러 넣었다. 던전의 벽에 마력을 넣는 건 위험하다고 책에 나와 있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넣은 마력이 벽에 퍼지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내 마력이 퉁겨지며 몸 내부에 막대한 충격파가 퍼졌다.
"쿨럭!"
씨발…. 방금의 충격파로 내장이 조각났다. 나는 급하게 초재생 능력을 사용해 상처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에 배를 부여잡으며 피를 토했다.
"유, 유진아!"
아리스가 급하게 나를 부축했다. 근데 역병 치료사 복장이라 그런지 다친 상태로 부축을 받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괜히 최근에 꾼 역병 치료사 시절의 꿈이 생각난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지금은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야."
"고마워 아리스. 이제는 다 나았다."
"무슨 소리야! 방금 피까지 토했으면서! 빨리 나가서 치료받자!"
아리스의 가면 사이에서 반짝이는 눈물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나갈 생각이 없다. 궁금한 건 반드시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나는 내장이 거의다 재생된 걸 확인하고 다시 한번 벽에 손을 짚었다. 책에 따르면 던전의 벽은 파괴하거나 부숴버려도 수복되고, 아예 분리해 버리면 말라비틀어져 사라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력을 넣어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렇지만 이번에는 방금과는 다를 거다.
"후우, 마력 입자 해석."
대마도공화국에서 배운 극도로 발전한 마법 과학 기술 중 하나. 마력을 입자의 형태로 흩뿌려 의도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우우우웅-!!!
지하 감옥의 벽에 뿌려진 마력 입자에 벽에서 마력 입자를 격추하듯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나는 그 힘을 대강 이해하고 손을 뗐다.
"이건…. 권능이군."
내가 느낀 건 권능의 힘이다. 창세신의 권능이 아니다. 그것과는 별개의, 다만 무언가를 가둬놓고 그걸 푸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용 권능이었다.
"역시 던전에 뭐가 있긴 있다는 건가."
다른 던전을 보지 못해 뭐라고 확답을 할 수 없지만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신했다. 일단 더 이상 얻을 정보도 없어 보이고, 벽에서 손을 뗐다.
내 옆에서는 그녀가 아직도 징징거리며 달라붙고 있었다.
"유진아. 그만하고 다른 데로 가자. 몬스터 사냥해야지."
나를 걱정하며 행동을 막으려는 모습이 귀엽다.
"알았어. 이제 다른 데로 가자. 할 건 다 했거든."
"정말? 정말이지! 또 위험한거 하고선 피 토하거나 하지 않을 거지!"
"안 해. 안 할 거니깐 안심해."
나는 아픈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궁금한 게 있고, 피해를 감수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닥치고 돌격을 외칠 뿐이지.
"이제 진짜 몬스터 잡자."
나는 아리스를 안심시키며 던전 내부로 깊숙이 들어갔다. 무수히 많은 갈림길 중 사람이 적은 쪽으로만 이동했다. 얼마 동안 걸으니 멀리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온다.
으르르르...
마치 짐승이 우는 소리. 나는 단검 두 자루를 역수로 들었다. 옆에 있던 아리스도 내가 무기를 들자 긴장하며 롱소드를 쥐었다.
"몬스터야? 몬스터가 오는 거야?"
아리스는 몸을 떨었다. 본인이 강해졌어도 그녀는 아직 심적으로 나약한 소녀기에 지금 상황이 무섭겠지.
"아리스 잘 들어.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개야. 하나는 마석 채집,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의 전투 경험 쌓기. 몬스터를 상대하며 몇 마리는 의도적으로 너한테 흘릴 테니까 상대해봐."
전투 경험은 결국 본인이 싸우면서 쌓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대련해보긴 했지만, 목숨을 건 싸움은 이번이 처음. 아리스는 침을 삼키며 롱소드를 꾸욱 잡았다.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말해봤자 들리지도 않겠지. 나는 그녀가 잘할 거라 믿으며 감각을 최대한 넓혔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많은 몬스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단검을 역수로 쥐고 몬스터가 오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 유진아!"
아리스는 내 갑작스러운 돌진에 당황하여 반응이 늦어졌다.
"너는 뒤에 있어! 적당히 2마리 정도는 그냥 보낼 거니깐!"
읏차, 던전의 벽을 박차고 옆으로 점프, 옆의 벽을 박차고 다시 점프. 그 과정을 반복하여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내 아래에는 달려오는 몬스터가 보였다. 숫자는 14마리 정도다. 그리고 170cm는 되지 않을까 싶은 덩치에 푸른색 털과 가죽. 그리고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달려있었다.
전체적으로 늑대를 연상시키지만, 비정상적인 송곳니가 얼굴 위까지 솟아있어 기묘해 보인다.
"뭐, 몬스터의 외형은 상관없나."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 4자루를 꺼내 약하게 마력을 담아 투척했다.
콰앙!
마력에 의해 적용되는 에너지가 증폭한 단검이 빠르게 날아가 늑대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초입부 몬스터라 그런지 매우 약하다.
"그래도 마석은 나오겠지."
나는 그대로 천장에 발을 디디고 땅을 향해 쇄도했다. 날 알아차린 늑대가 입을 쩌억 벌리려고 했지만, 그전에 주둥아리 부분에 단검이 박혀 주둥아리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그대로 몸을 숙여 주둥아리의 단검을 뽑아 목을 빠르게 두 번 찌르고 근처에 있던 늑대의 발을 잘랐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늑대 한 명의 턱에 단검을 박아 죽여버렸다.
몬스터도 기본적으로 생물체라 몇몇 특수한 몬스터를 빼면 급소는 목과 머리, 심장으로 동일. 하지만 몬스터의 심장은 마석이니 목과 머리만을 노린다.
크아아아!
울부짖으며 늑대들이 달려든다. 짐승 수준의 지능은 있는지 나를 에워싸고 동시에 여러 군데를 노렸다.
하지만 느리다. 단검을 4자루 꺼내 투척하여 돌진을 견제하다 주춤거렸고, 그때를 노려 단검으로 전부 머리를 찔렀다.
이런 식의 단체 전투는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리고 이렇게 벽이 있는 내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음? 벌써 다 죽었나?"
몬스터가 두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몬스터는 이미 죽어 자빠져 있었다.
"초입부라 약하긴 약하네. 그래도 도움은 되겠지."
크아아아!
아직도 나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며 달려드는 늑대 두 마리. 나는 그들의 목을 잡아채 아리스에게 던져버렸다.
두 마리의 늑대가 바닥을 구르며 자신의 앞에 떨어지자 아리스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쯧."
반응이 느리다. 늑대가 바닥을 구르던 때는 목이든 배든 어디 한군데 찌를 기회였는데 그걸 놓쳤다. 덕분에 늑대는 온전한 상태로 일어나 뒤에 있던 아리스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꺄, 꺄아아!"
주둥아리를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늑대. 그녀는 소리치면서 배운 대로 움직여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기본기는 잘 갖춘 건지 자세가 좋았다.
촤악!
아리스는 힘도 강했기에 늑대의 목은 순식간에 베여나갔다. 하지만 죽어버린 늑대 뒤에서 달려드는 늑대에게는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꺄앗!"
늑대와 세게 부딪히고 아리스는 뒤로 넘어졌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니 늑대가 그 위에 올라타 목을 물려고 했다. 위험한 상황이나 우리가 입은 옷은 저런 거로 뚫리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지켜봤다.
크아아아아!
"으, 으아아아!"
그녀는 늑대의 주둥아리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도 저도 못하고 무작정 옆으로 밀쳐버렸다. 나였다면 목을 꺾어버리거나 눈을 찔렀을 텐데, 역시 아직은 대응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초반에 저 정도면 잘하는 거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제때 반응했고, 대응력이 부족하나 결국 대응하긴 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꺄아아악! 거리면서 주저앉는 보통의 여자들과 비교하면 아주 잘한 거다.
"됐어. 여기까지."
나는 단검을 던져. 옆으로 밀쳐진 늑대를 죽였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는 아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했어. 첫 전투에서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해."
"하아…. 하아…. 그, 그런가?"
그녀의 손을 잡이 일으켰다. 그리고 장갑이 묻은 피를 바라보았다.
"...끈적거리네."
죽인 게 몬스터라 그런지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첫 살생을 함 감각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배려해줄 시간은 없다.
"우선 마석부터 빼자."
늑대에게 박혀있던 단검을 회수하며 늑대의 가슴을 갈라 마석을 채취한다. 몇 번 시범을 보여준 뒤 아리스에게 내 단검을 나눠줬다.
"너도 해봐. 혼자만 소수로 다닐 때는 마석 채취는 개인의 몫이니깐 익숙해져야지."
"알았어, 해볼게!"
아리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늑대의 시신을 갈랐다. 열심히 가르기는 한다. 하지만 실력이 서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