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32/198)



〈 32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던전 지하, 왠 처음 보는 신종 몬스터…. 인척한 유진이 휩쓸고 지나간 곳.

"....방심했군. 까마귀 같은 생김새에 재빠른 움직임을 봐서 속도형 몬스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힘이 강해질 줄이야."

"죄송합니다. 황녀님. 저희가 반응이 느려 그런 추태를 겪게 해드렸으니 명목이 없습니다!"

수많은 강자가 금발의 미녀에게 무릎 꿇었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녀가 몬스터한테 당했다는 전무후무한 일이 있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라. 이것도 전부 나의 수양 부족이니."

그 말에도 주변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 전원이 황금 길드의 간부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금발 미녀의 정체를 안다면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플라비스 황가의 현 황제인 루이 플라비스와 황비인 메리디안 플라비스의 장녀이자 역대 황족 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천재, 루진 플라비스다.

'귀찮군. 대체 왜 저리 과민반응 하는 건지.'

늙은 몸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건 좋다. 하지만 슬슬 짜증 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려 하니 루진 플라비스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려 했다.

이에 간부들은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진 플라비스는 천재성에 온화하고 정의로운 성품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함을 고루 갖춘 인물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재능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노력하고 예를 갖추어 황제와 황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근데 그런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만을 토해낸다? 아마 황금 길드의 단장인 황제의 여동생, 리린 플라비스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것이란 걸 간부들은 잘 알고 있다.

'상상만 해도 전신이 떨리는군.'

'이 나이에 그분의 잔소리를 들을 순 없지!'

그들은 일치단결한 상황. 최대한 루진 플라비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고분고분하게 행동했다. 그 기가 막힌 비위 맞추기에 루진 플라비스도 인상을 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간다! 다들 채비하도록!"

황녀의 엄숙한 명령에 간부들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루진 플라비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 자신과 몬스터가 싸운 전장을 보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까마귀 같은 놈은 가까이에 있던 루진 플라비스를 공격했고, 루진 플라비스는 반격했다.

처음 루진 플라비스는 적의 움직임에 암살자가 아닌가 의심했다. 날렵한 몸놀림에 단검을 다루고, 투척하기도 했으니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덩치와 매집이 달라지면서 그런 생각을 바꿨다. 그 어떤 인간도 갑자기 육체를 변화시키며 상처를 순식간에 재생시킬 수 없다. 그것은 명백히 몬스터의 능력이다.

그렇기에 루진 플라비스는 그 까마귀를 몬스터로 규정 지으면서도 자꾸만 망설였다.

"몬스터는 본능만을 지닌 괴물. 하지만 그놈은 내 움직임에 반응하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루진 플라비스는 전투 중에 목을 잡혔고, 이를 임기응변으로 풀었기에 그때 그놈이 지능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을 보면 죽이려고 무작정 달려드는 몬스터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의심을 무럭무럭 자라나 정작 그걸 증명할 증거가 없었다.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그놈처럼 복장을 갖춘 몬스터가 없는 것도 아니기에 사람이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쯧, 일단은 올라가면서 조사를 해야겠군."

그놈이 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달려든 걸 봐서는 다른 모험자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제국의 던전. 루진 플라비스는 제국의 던전을 어지럽히는 자를 용서치 않으리라 다짐했다.





워프로 이동된 곳은 아리스의 방이었다. 아리스는 까마귀 복장을 의자에 걸어뒀는데 망토 부근에서 갑자기 내가 나타나니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신경 쓸 상태가 아니었다.

"커헉!"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워프로 이동할 때 그 금발녀를 놨는데 그사이에 그놈들이 내 전신을 난도질했다.

덕분에 팔은 거의 잘린 상태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다.

"이번에는 초반부터 죽을 뻔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아마 사지가 잘려 나갔으리라. 그런 오싹한 생각을 하며 초재생 능력으로 착실하게 상처를 재생시켰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고, 거의 잘린 팔도 다시 잘 붙어 아물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몸 상태를 점검하며 일어났다.

"그 녀석들은 대체 뭐야."

그들은 무척이나 강했다. 일반적인 모험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그 금발녀가 의문이다.

실력으로 따지자면 그들 중 가장 약했지만, 그들은 묘하게 금발녀를 중요시했다. 나는 그게 자꾸 걸렸다.

"뭐, 됐나. 어차피 나중에 다시 엮일 일은 없으니깐."

일단 초기 목적은 달성했다.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서 죽은 모험가의 시신이 내일까지 알려진다면 계획을 수정한다.

하지만 내일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거리낄 것 없어진다. 그때는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거다.

그리 생각하며 씻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리스가 내 팔을 붙잡았다.

"음?"

"유진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줄래?"

아리스는 내 팔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눈은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서 추궁하는 여자친구 같은 모습이다.

"분명 나랑 무리하다가 다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니? 근데 왜 이 상태야? 누나가 한 말을 무시한 거야?"

"다치지 않았어."

"다치지 않긴! 팔이 대롱대롱 거리던걸 내가 봤는데!"

"지금은 다 나았으니 문제없어. 내 재생 능력은 개쩔거든."

뇌만 박살 나지 않으면 목이 잘리더라도 살 수 있는 게 내 초재생 능력이다. 물론 재생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놈들이랑 싸웠다면 목과 함께 뇌도 동강 났을 것 같아서 튀었지만.

하여튼 내 상처는 진작에 전부 재생됐다. 후유증도 기껏해야 밤에 악몽을 꾸는 것 뿐이다. 아마 오늘 밤은 빌런 아니면 괴물 꿈을 꾸겠지.

"유진아! 아무리 상처가 빨리 났더라도 그렇게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되지!"

"뭐 어때. 어차피 죽지도 않는데."

아리스는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는 내 몸을 별로 아끼지 않는다. 이건 초재생 능력을 떠나 완벽하게 죽지 않기에 굳어버린 내 삶의 방식.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어도 다른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니깐. 그렇기에 현재의 내 몸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활동에 지장 없게 키우고 사용할 뿐이다.

하지만 아리스는 내 말에 납득할 수 없었는지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 가슴에 파묻히고, 가슴이 축축해진다.

갑자기 왜 우는 거지? 의아하지만 왠지 슬퍼 보이는 분위기에 말없이 가만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유진아…. 미안해. 누나가 미안해..."

갑작스러운 사과.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인지 나에게 사과를 건넸다. 왜 저러지?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흐윽. 유진이가 이렇게 변하는 걸 몰랐잖아. 얼마나 고생했으면 자기 몸에 그렇게 관심이 없겠어. 누나가 좀 더 신경 써줘야 했어! 바람이나 피우는 녀석을 신경 쓸 게 아니라!"

"아니. 그건...."

확실히 그녀가 에반만 신경 쓰긴 했다. 하지만 그건 에반이 남자친구니 당연한 거고. 아리스가 유진을 신경 쓸 필요는 친구인 거 외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그녀의 행동은 쾌락에 타락한 게 아니라 그냥 내 여자친구 같은 행동이다.

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누나. 누나랑 나는 어떤 사이?"

"응? 그야 사귀는 사이잖아."

불길함이 적중했다.

"사, 사귀는 사이…."

"에반이 바람 필때 유진이가 나한테 고백하면서 그런 짓 했잖아. 그리고 나중에 내가 그걸 받아들였고. 잊은 거야?"

아무래도 그녀는 쾌락에 타락한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나한테로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나는 절로 식은땀이 날 것 같은걸 참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아리스 누나. 난 강하고 죽지 않아. 어떤 상처든 눈 깜짝할 사이에 낫고, 힘도 마력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어. 근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난 멀쩡해. 그저 능력을 잘 사용하는 것 뿐이지."

나는 근본적으로 죽지 않는다. 초재생을 얻고 나서는 더욱 죽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몸을 제물로, 미끼로 써왔다.

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가 죽는 대신 적을 죽일 수 있다면, 내 팔이 잘리는 대신 상대의 살을 취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득이니깐.

하지만 그런 내 말을 들은 아리스는 나를 더욱 껴안으며 아예 오열했다. 앞으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외치며 그런 생각 따윈 하지 못하게 해주겠다 외쳤다.

솔직히 그 말은 고마웠다. 나도 처음에는 나와 연을 맺은 자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고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방법은 없을 거다.

'아리스라면 동행해도 좋은 것 같은데. 아쉽네.'

그때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유진(현재)]
[나이:16(???)]
[ 직업:차원 여행자]
[보유 능력:창세신의 축복(액티브), 마력친화(패시브), 번개의 권능(패시브), 물의 권능(패시브), 육체강화(패시브), 항마력(패시브), 인벤토리(패시브), 헤파이스토스의 손재주(액티브), 악마 사냥(액티브), 초재생(패시브), 황금률(패시브)]
[현재 동행자 수:0]
[현재 등록 가능한 수:1]
[창세신님의 전생 한 줄 평:그러게 왜 내 축복을 안 쓰고 뻐기다가 한방에 뒤지니.]
[창세신님의 현생 한 줄 평:방법 있다. 내가 괜히 동행자 시스템을 넣었겠니]

"! 아리스 잠시만!"

나는 그녀를 옆으로 치우고 상태창의 동행자칸을 눌렀다. 동행자. 분명 상태창에 있었지만, 반응이 없어 관심을 껐던 건데 이제 와서 반응하다니!

[동행자]
상호 합의 하에 마음이 맞을 시 자동 등록된다.
등록된 자는 늙지 않게 되며 죽어도 시간이 지나 부활할 수 있다.

[등록 가능한 자:아리스]

심장이 뛴다. 동행 같은 건 이미 포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샌가 다시 옆구리에 붙어있는 아리스를 쳐다보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걸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세계를 건너가며 점점 정상과 멀어져 끝내 쾌락과 본능에 삼켜진 날 이해해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원래라면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할 텐데 이것도 저 상태창의 영향인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도 나를 바라봤다. 서로의 시선이 맞닿고 시간이 지나갔다. 그때 이후로 정과 인연 따윈 포기했는데. 괜한 희망을 품은 게 아닐까?

[창세신님의 현생 한 줄 평:어리석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려고 이 세계로 널 보낸 거니깐.]

"...하."

결국 모든 게 창세신의 뜻대로라는 의미인가. 나는 창세신을 증오한다. 그렇기에 그와 관련되어 엮이지 않으려 했었다. 그건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대화가 가능해져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나랑은 안 어울리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아리스. 너는 창세신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어?"

"창세신님? 세계를 창조했다. 정도만 알고 있어."

그녀는 눈물을 훌쩍이면서도 내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난 말이야 창세신에게 한가지 축복을 받았어…"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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