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황녀와의 이야기
산적들의 본거지인 동굴 쪽으로 달려와 보니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문이라도 당하는 건지 괴로움을 토해내는 역겨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무언가 사달이 났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내가 두 놈을 따라가고 몇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들어가야 하나..."
그리 고민하고 있으니 동굴에서 들리던 비명 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스산한 한기가 느껴지듯 동굴에서부터 무형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이 힘은 익숙하디익숙하다. 악마라 불리우는 존재들이 내뿜는 그러한 힘. 거기에 악마의 힘만이 아니라 마족의 힘인 마기까지 섞여 있다.
"이세계는 악마와 마족이 동일시 되는 세계인가 보네."
귀찮게 됬다. 악마에 관한건 세계마다 다른데 악마가 마족과 별개의 존재인 세계가 있는 반면에 악마가 마족과 동일시 되는 세계도 있다.
이세계가 그런 경우고 이럴땐 마족이 또는 악마가 악마와 마족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쩝, 이걸 좋다고 해야하나."
내가 주로 다툰 적은 악마와 마족이다. 근데 간혹가다 악마들이 답도없이 강할때는 마족들과 연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때 마족들은 든든한 동료다. 이세계에선 아니겠지만, 어쨋든 이 붉은 파편과 저 안에 있는 것도 악마와 관련된 물건이다.
중요한 건 그거다.
"이거 위험하겠어."
악마는 강하다, 악마 본인은 아니어도 악마의 힘과 관련된 모든 것이 강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십중팔구 저 안에 있는 것도 흑산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험하겠지.
"제길, 그 산적 놈한테 의뢰인이 누군지 물어봤어야 했어!"
이제서야 후회가 된다. 감히 황녀를 살해하고자 했으며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들고, 악마의 힘을 키워온 자는 반드시 찾아내 제거해야 하거늘.
무엇보다 악마와 관련됐다는 것이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자고로 악마란 혼돈과 파괴만을 추구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신들에게 있어서도 불구 대척의 원수이자 숙적이다.
그런 악마와 손을 잡은 존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멸해야만 한다.
'일단 루진을 부른다. 나 혼자서 가는 건 위험한 모험이야.'
최소한 그녀가 있다면 위험시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터.
나는 챙겨놓은 붉은 파편을 인벤토리에 넣고 미리 받아놓은 연락용 마도구로 그녀를 호출했다.
반짝거리는 빛과 함께 눈 부신 섬광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잠깐만. 이거 통신기기 아니었어!?"
원통 형태라 통신형 마도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금방 루진이 당도했다.
그녀는 급하게 뛰어온 건지 몸 곳곳에 잎사귀가 묻어 있었는데 나처럼 동굴 입구를 보자마자 이상함을 알아채고 꺼림칙해 했다.
"저건 대체 뭐지? 뭐길래 저런 불길함이!"
"악마, 혹은 그와 관련된 무언가. 듣자 하니 너 죽이라고 의뢰하며 줬다더라."
딱히 숨길 일은 아니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경악이 실렸다.
"아, 악마라니! 도대체 누가 악마의 힘을!"
그녀는 곧바로 대검을 꺼냈다.
"유진! 나는 황녀로서 안으로 들어가 놈들을 토벌하겠다! 너도 같이 가겠나!"
이 세계에서도 악마는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다. 이들은 던전이 나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의 세계에 나타났으며 여러 가지 특수한 힘으로 인간들을 괴롭혀왔다.
그러니 악마라는 말에 저리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겠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네가 가면 나도 가는 거지. 자, 가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몇 개의 마도구를 꺼내 동굴 입구에 던졌다. 이건 보험이다.
"반응이 없는 걸 봐서는 입구 쪽은 안전해 보인다."
루진은 대검을 든 채 먼저 발을 떼어 동굴로 들어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횃불이 타오르며 안을 비추고 있었다. 동시에 역겨울 정도로 비릿한 피 냄새가 내 폐를 깊숙하게 찌른다.
일렁이는 횃불 아래에는 사람이었을 고기 조각이 이리저리 조각난 채 흩어져 있었고, 천장과 벽을 가리지 않고 대량의 피가 튀어 있었다.
우리는 이 광경을 보고 말이 없어졌다. 결코, 무서운 건 아니다. 역겨움을 느낄지언정 이런 현장에 공포심을 느끼기엔 나나 그녀나 심지가 단단했다.
그저 악마 놈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더욱 깊숙이 들어갈 뿐이다.
찰박- 찰박-
대량의 피 탓에 마치 물기 가득한 곳을 걷는 기분이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대검을 꽈악 쥐고선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녀의 뒤에 착 붙었다.
그리고 눈대중으로 동굴 전체를 쓰윽 훑어보며 죽은 사람의 수를 헤아렸다.
"총 48명. 전부 죽었어."
시체의 수와 별개로 시체의 상황은 심각했다. 사지 절단은 기본이요, 눈알이 파내져 있거나 심장이 있어야 할 곳이 열린 채 심장 대신 돌멩이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그녀는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지만 다서 충격이 큰듯하다.
나는 몸을 숙여 바닥을 살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붉은 파편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이것들을 회수하며 작은 건 따로 빼두고 조금 큰 건 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런 간 미리미리 챙겨야지.
그렇게 때아닌 파밍을 하고 있으니 충격에서 벗어난 건지 루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놀람도, 즐거움도 아닌 분노의 떨림이었다.
"...잔혹하군. 매우 잔혹해. 아무리 죄인이고 살인자였다지만 어찌 이런 짓을!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않은가!"
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정도로 그녀는 분노한 것이다.
"확실히 이건 심하네.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면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이겠지."
"그래, 그럴 거다. 그리고 그자는 분명 악마와 깊고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흥분해서 그런지 예전의 딱딱한 황족 말투다. 하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그녀가 공허하게 외쳤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굴의 깊은 곳으로 매우 넓은 홀. 그곳에 보인 것은 한쪽 안구에 붉고 동그란 파편을 박은 더러운 남성, 아마도 이곳에 똬리를 튼 산적의 두목이겠지.
그리고 남성의 뒤에서 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전개한 거대한 수정구였다.
"으, 으아아!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산적 두목은 우리를 보자마자 애원했다.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려대며 애원하는 모습은 더러웠으나 그렇기에 간절함이 엿보였다.
"죽기 싫어! 죽을 수 없어! 어떻게 이 힘을 얻었는데!! 살려줘! 살려줘! 제기랄! 그딴 의뢰를 받는 게 아니었어! 그놈, 그놈한테 가서!!"
푸욱! 푹, 푹!
두목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우리가 그를 구원하기로, 혹은 방관하기로 정하기도 전에 뒤에 있던 수정구의 마력 날개가 두목을 휘감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탁, 타닥.
데구르르-
진득한 피와 살점들이 우리 앞에 떨어졌다. 안구의 파편도 내 앞 발치까지 굴러들었다.
나는 이것을 조심스럽게 주워들었다. 그리고 수정구를 가리키며 루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아무래도 저게 원흉 같은데 어떻게 할래? 도망칠까? 아니면 상대?"
저 수정구,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걸 빼도 느껴지는 마력량이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이 먹어 치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산적들을 먹어서 그런 건진 모르지만 느껴지는 마력량은 명백히 나와 그녀 이상. 황금 길드에서 본 A 랭크 모험자라는 양반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량이나 마력의 운용량에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그 언저리겠지. 그렇다면 버티는 건 가능해도 이길 수는 없다.
거기에 저 수정구. 마력 운용이 사람을 뛰어넘었다. 마력으로 날개를 만들어 몸을 띄운 것은 물론이여 그걸로 재빠르게 적을 찢어버리는 신속함과 깔끔함은 인간을 넘어섰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대로 물러나는 걸 추천할게. 저거 우리들로는 답 없어."
"물러나자고? 저 위험한 걸 두고!"
웬일로 그녀가 격양된 듯 나에게 거칠게 말했다. 그 후 아차 한 듯 당황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저거니깐.
Ě̴̡̖͔̂̿̑͂̕n҉̢͇̦̞̭͗̀̏̍͊͡ȩ̴̳͈̠̎͒͠ͅͅm҈̢̝̣̝̌̎͊̾͝ͅẙ̶̧̗̦́͝ v̵͔̳̜̝͂̅͛̕͜e҉͇͇̝̑́̈́̿̕͜r̸̢̫͉̽́͡i҉̡̝̘͙҇͒̓͒f̸̨͙̬͔͈҇̿̌̒͛̾i̷̢̱̙͕͑̊͠ç̸̳͇̙̜҇̀̾͂͂́a҈̢̳̤̌͑̀̉̕̚t҈̨̬͎̐͒͠i̵̢͙͔̓͊͡ǫ̷͈̬̥҇̐̅̓̐n҉̙̝̫͐͑͌͛̇͜͠ T̶̢͔̗̟̅͌͠ḩ̷̛͇͇̪͔͙͆̂è̴̠̭̭͎͑̃̓̇͢͝ͅ e҈̙̙͓́̾̏͒͢͝ņ̸̩̙̿̀̏̒͞ẻ̴̢̛̫̫̮͙̪̎̏͒͗m҉̨͙͔͙̲̖́͑́͑͞y̴͇͔͇̣͋̃̆̿͜͡'̸̡̛̖̗̀̓̄s̵͚̝̍͋̅͜͡ ĺ̷̦̘̗̣̌͐͑͜͝ȩ̷̰̪͇̈͌̾͂̕v̴̡̝̭̈͗͒̔͐͝e҉̨̛̤͓̜̾̓͒l̸̨̮̬͈҇̂̅̉ i̸̩͕̰̬̓́̈́̍̋̕͜š̷̨͇̩̖͍̾͌̕ͅ n҈̧̣̞͈̫́̿͝o҉̩̪̮̤͚̉̂͜͡n̷͉̦̝̠̉̐͢͡-҉͖͕҇͋̂͒͢p̷̨̝̬̝҇̀͛ř̷̨̦̩̎͊͋̓͝e̵̱̖҇͛̚͢d̴̡̞͍̿͋͐̀͡i̶̡̥͎̝̮̞̐̆̐͂͠ţ̸̙̥̣͇̄͛́̎̓͠a҉̧͙̰̣̩͋̂̽̓̊͠b̴̡̰̙͋̃̽͊͝ͅl̵̲̦̓̈͢͠ę̶͖̳͖̉͛̉̊͞ͅ,҈̤̳̄͛́͜͝ s҈̧̞̦̜̞̓̒͠o̸̝͔̠̠̔͊̐̂̕͢ į̶̙͎̃̕̚ͅt̴̨̟̝͉̾̆̋͌̄͠ ş̸̞̱̝͑̍̈̕ẃ̸̪͔͂̈́̋̐͢͝i̸̢̪̩̊̏̀̒͞ţ̴̯͖͚͉̮̃̇̇̈͠ć̵̡̘͆̓̎͝ͅḥ̶̮͖̯҇̿̏̃̇͜e҈̨̛͓̙̤̣̏̄̋s҉̧͔̗҇̀͋̈́̊̚ t҈̧̥̯̾̉͛̎̃͝ỏ̵̧̞̞̙̭̰̽͛̕ i҈̧̛͙̦́̐n̴̢͖̥̉͆͗͝ͅt̵̨͔͕͚͈͔̓͐̃̈́͠e̴̡̫͚̞͒͌̂̆͡r̷̢̖̤̜͌͌̒͡c̸̦̟͗͊̿̕͢e̴̡̛̥̜͑̇̋p̵̲̘̠̩̳̑͌̿͑͢͝t̸̢̙͇͋̍̌͌͝ f̴̡̭̮͉̩͖̔͂̉͞o҈̧̖͎̩̩̝͐̉̄͛͝r҉̨̛̪̭͕̓̋͊m̴̨̝̲̤̭͛̇̅͝.̶̧͔̞̖̓̂͒͝
"으읏!"
루진이 머리를 붙잡고 고통에 신음했다. 마치 영혼을 울리는 듯 차갑고 어두운 목소리다.
"훌리쉿 저거 언어까지 내뱉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를 내뱉은 수정구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라라락!
수십 개의 붉은 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대지에 스며들었다. 익숙한 움직임이다. 이거 위험하겠어!
"빨리 뒤로 물러나!"
나는 루진을 뒤로 밀치며 물러났다.
쩍! 쩌적, 쩍!
동굴의 바닥이, 천장이 갈라지며 무수한 돌덩이가 떨어진다. 그리고 돌덩이들은 붉은 줄에 감겨 수정구에게 끌려갔다.
마치 로봇을 조립하듯 돌이 특정 위치에 딱딱 달라붙으며 마치 자신을 감싸듯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이루기 시작했다.
쿵! 쿠궁!
자리에서 일어난 수정구, 아니 3M는 될법한 거대한, 붉은색의 골렘. 골렘은 우리를 보며 울었다.
R̷̰̤̯͖̥͙͆̾̀̽̂̉͌̓͢͡e̸͍͖͖͚̔͊̕͢m̷̢̱̗̱̗̞͈̪҇̔̎̇̓͗̐͗̇o̸͔̘͕̩̘̘̗͕̐͊͢͝v̷̜̰́̀̒̇̀́̕̚͢e҉̧̝̭͕̯͐͆͆̋̓̇͞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의미는 알겠네. 저건 우릴 죽일 생각이다.
나는 미리 챙겨둔 붉은 수정구 중 하나를 꿀꺽 삼켰다. 꾸드득! 체내에 수정구의 막대한 에너지가 퍼져나간다.
순간적인 힘의 흡수에 육체가 비명을 질렀지만 마력을 온전하게 흡수하는데 집중했다.
푸득! 푸드득! 푸득!
"후우...."
역시 악마의 물건이라 이건가. 육체가 한층 더 강해졌다. 마력은 더욱 상승했다.
이정도면 저놈을 상대하기에 충분해.
"루진! 빨리 움직여!"
나는 그녀를 닦달했다. 곧, 골렘은 육중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