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본처를 정하는 이야기
원래 의뢰 해결 후 모험자 연합에 직접 가서 해결 처리를 해야 하나 이번 일이 워낙에 큰 만큼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일단 이번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진 길드에서 머물러야 하겠지? 그동안 대비 좀 해야겠다.
특히 내일 올 광물들과 장치를 생각하면 이곳에 통용될 수준의 화기와 전용 갑옷을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들 물건들은 내 모든 능력과 인챈트를 비롯한 마법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유진."
루진이 날 부른다. 그녀는 내 팔을 꼬옥 껴안고 연인 같은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었기에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행복하다는 듯이 웃으며 가슴을 내 팔에 꾸욱꾸욱 눌러댔다. 묘한 성적 어필이다. 나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도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귀엽네.
"그래서…. 우리 루진이는 날 왜 불렀을까?"
"으읏…. 그으게. 우리 마왕 교단에 관해 묻는 거 잊지 않았어?"
"아, 확실히 나중에 말해준다고 하셨는데 대충 대화가 끊겼었지."
조금 전에 본 리린 플라비스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그리고 루진과는 다른 의미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루진이 순수한 면과 황녀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양면성을 지녔다면 그 양반은 카리스마 넘치는 진지한 모습과 뭔 어린애 같은 모습이 보인단 말이지.'
특히 나랑 루진이 꽁냥거리자 우리를 불태울 것 같은, 박력 넘치던 시선은 아직도 기억난다.
"일단 마왕 교단이 뭔지는 대~충 감이 오거든. 아마 악마라는 놈들과 엮여있겠지."
아마 그 악마라는 놈들도 순수 악마는 아닐 거다. 본래 순수한 악마는 인간의 악감정을 원하는 만큼 강한 악마일수록 작은 스케일로 놀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하게 날뛰어 전쟁을 일으키거나 최소한 대학살 정도는 일으키겠지.
"우선 그놈들에 관한 건 조심하면서 네가 한번 알아봐."
"내가?"
"나는 평민이잖아. 정보 수색은 고사하고 중요 정보에 접근할 권한도 없을걸."
"끄응, 알겠어. 그러면 내가 직접 찾아볼게."
"좋아, 그러면 이 문제는 좀 더 정보를 모은 뒤 이어서 얘기하기로 하자."
그렇게 마왕 교단에 대한 대화를 끝냈다. 우리는 운동장으로 갔다.
원래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 쉬려고 했는데 아리스와 유벨이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리스야 기껏 내 마력까지 퍼줬으니 잘하고 있겠지, 아니 잘해야지.
"맞다. 루진아 내 친구들 좀 소개시켜 줄게."
보아하니 그녀는 동성 친구도 없어 보였으니 아리스, 유벨과 좋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네, 아리스와 루진의 3P. 생각만 해도 기대된다.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몸이 떨린다. 그 사이 운동장에 도착하고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열심히 훈련 중인 아리스가 보였다. 유벨은 마법사라 다른 곳에서 단련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정신 집중! 다시 100번 휘두르기, 시작!"
"예!"
아리스는 간부인 라피드에게 직접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검술을 단련하고 있었다.
횡베기, 종베기, 방어, 회피 등등. 그냥 깡스펙으로 밀어붙이던 저번하고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잘하고 있었네."
왜 라피드한테 훈련받는지는 모르지만, 검술 부문은 내가 가르치지 애매했다. 소양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긴급 상황에 대처하거나 내 정체를 숨기고자 암살 및 기습용을 자주 배웠기 때문이다.
반면 아리스가 배우는 검술은 기본에 충실하여 매우 탄탄한 게 보인다. 루진은 저 검술이 뭔지 아는지 아리스를 유심히 보았다.
"저건 황실 기사단의 제식 검술이군. 보통 자기단련용으로 배우는 최하급 검술이지."
그녀는 왠지 새침하게 말하며 아리스를 뭐라 말하기 애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이에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리스는 단련 받느라 바빠 보이네. 어쩔 수 없지, 친구들은 나중에 소개해줄게."
나는 그대로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창세신의 장난인지 검을 휘두르던 아리스와 내 눈이 팍! 하고 마주쳤다.
그녀는 마치 놀라운 사람을 만난 것 마냥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한동안 나를 담았다.
곧, 그녀는 움직였다. 그녀의 몸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유진아!!!"
철컹, 철컹. 무거워 보이는 갑옷째로 그녀는 나에게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나는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폭하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묵직한 갑옷 너머로 그녀가 방긋 웃는 게 보였다.
"드디어 다시 만났다! 여태까지 어디 있었던 거야!"
내가 의뢰 해결하러 간 건 공표되지 않은 건가. 나는 진심으로 그리웠다는 듯이 반응하는 아리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잠깐 의뢰 좀 해결하고 왔어."
나는 그리 말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저 멀리서 라피드와 눈이 마주쳤다. 라피드는 가르치던 학생이 무단으로 이탈했는데도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시청자처럼 웃으며 나에게 따봉을 날렸다.
저건 또 뭔 의미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아리스가 입고 있던 갑옷을 가리켰다.
"근데 이건 웬 갑옷이야?"
전신을 꼼꼼히 가리고 있는 무거운 갑옷은 결코 전투용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딴걸 입고 싸운다는 건 몸에 철근을 매달고 싸우는 거랑 비슷할 거다.
"이거 라피드 간부님이 주신 훈련용 갑옷이야. 나 이번에 한 야외 훈련에서 훌륭한 성적 거뒀다고 간부님께 직접 가르침 받는 중이다! 이대로 잘만하면 졸업시험도 볼수있데!"
"오, 그거 대단하네."
확실히 내 마력을 꽁으로 처먹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근데 그러면 유벨은?"
"유벨도 나처럼 간부님께 교육받는 중. 뭐라더라? 학자형 마법사와 전투형 마법사가 있는데 그중 전투형 마법사를 하겠다고 하니까 어떤 마법사들이 데려갔어. 일단 저녁에 만나기는 하는데 많이 피곤해 보이더라."
"그러냐? 어쨋든 둘 다 별 이상은 없어 보이네."
"길드 내에서 별일이 있겠어."
아리스는 갑옷을 벗으며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길드 내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후, 이제야 몸이 가볍네."
아리스는 갑옷을 전부 벗은 뒤 나를 더욱 껴안았다. 지금까지 쌓인 걸 해소할 생각인지 가슴을 비벼대며 몸을 끈적하게 붙이는데 내 허벅지로 그녀의 보지가 축축하게 젖는 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엄청난 섹스어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그녀는 순수한 처녀처럼 울먹이듯 말했다.
"보고 싶었어, 유진아..."
나는 그런 그녀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나름 그녀에게 애착을 지녔고, 그녀는 동행자이니 챙겨줄 필요가 있다.
"돌아왔어 아리스..."
나는 이 한마디만 했다. 때로는 장문의 말보다 짧고 굵은 한마디의 말이 더 잘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기에.
그리고 내 말이 충분했는지 아리스는 내 손에 깍지끼려 했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방해가 들어왔다.
"유진이여? 저 소녀가 그대의 '친구'인가?"
내 뒤에서 불퉁하면서도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나를 찌른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더더욱 커져가는 가운데 나는 슬며시 몸을 돌려 루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덕에 황녀로서의 카리스마가 물씬 풍겨진다.
아차, 그러고보니 서로 소개해 주는 걸 깜빡했네. 나는 아리스의 포옹을 풀고는 루진과 대면시켰다.
"루진님, 이쪽은 제 친구인 아리스입니다."
나는 혹시 몰라 존댓말을 썼다. 그러자 루진이 웃으며 나를 보았다.
"유진, 굳이 존댓말을 쓸 필요 없어. 너와 나 사이잖아."
그 말에 아리스의 표정이 구겨지려 한다.
"아리스, 이분은 루진 플라비스님이야. 황녀이시자 황금 길드 단장님의 조카분."
나는 아리스에게 루진을 소개했다. 아리스는 루진이 누구인지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루진과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잔뜩 구겼다. 그 후 시간이 얼어붙은 것 마냥 기나긴 침묵이 이곳을 지배했다.
나는 이 둘이 왜 이러는지 안다. 아마 서로가 연적임을 알아본 거겠지. 둘 다 나에 대한 애정이 강했기에 어느 정도는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 두 미인이 신경전을 하고 있는걸 보니까 재미있다. 대부분의 세계에서 나는 제대로 된 연인 관계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않았다.
협박을 비롯한 온갖 수단으로 침대에 눕힌 뒤 존나게 박아서 내 섹프로 삼아왔다.
그렇기에 이렇게 순수한 호의와 애정으로 인한 싸움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다.
'이거 의외로 재미지네.'
미인들이 나를 두고 싸운다는 게 기분 좋기도 하고. 몇 명 주인공들은 여자들끼리 싸우면 중재하느라 힘들어하던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스하고 합니다. 유진과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자 가장 가까운 사이죠."
먼저 아리스가 공격에 나섰다. 내 팔을 껴안으며 거슬릴만한 말을 뱉어낸 그녀의 말에 침묵이 깨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더욱더 싸늘해졌다. 어느샌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이 분위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물러났다.
아직 남아있던 사람들도 라피드가 전부 쫓아냈다. 그러고는 자리 잡아 앉는 걸 보니 진심으로 이 일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렇군, 친구인가."
루진은 아리스를 가볍게 흩었다. 그리고 스산하게 웃었다.
불안하다. 대체 뭘하려고!
"나는 루진 플라비스. 유진이 말한 대로 황녀이며…. 유진과는 미래가 약속된 사이다."
쿨럭! 아리스가 크게 기침했다. 그정도로 루진의 공격은 강력했다. 나도 하마터면 포커페이스가 깨질뻔했다.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결혼에 관한걸 얘기할 줄이야...예상보다 더 루진은 단호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뭐,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죠...?"
아리스는 당황하며 루진에게 따지고 들었다. 루진은 아리스를 대놓고 비웃었다.
"유진과 나는 미래가 약속된 사이라고 했다만? 평민이여."
루진의 공격이 이어진다. 이번에 날린 공격은 신분!
루진은 알다시피 황녀다. 그것도 황제에게 총애 받으며 제국에서 인기절정인 황녀.
비록 위에 나이 많은 오빠들이 있고 리린 플라비스도 있어서 권력과는 별 접전이 없으나 권력을 가진 형제, 자매들은 루진을 아주 좋아하니 문제되지 않는다.
반면에 아리스는 아름답긴 하지만 평민 출신. 그리고 사귀기 시작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리스는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 눈망울에선 애처롭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뭐냐. 벌써 항복하는 거냐? 유진과 다르게 한심한 여자구나."
콰광!
그녀가 대형 폭탄을 터트릴 때마다 아리스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하, 하하하. 미래가 약속된 사이라니...황녀라니..."
아리스의 얼굴에서 슬픔과 눈물이 사라졌다.
대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빡침이 보인다. 그리고 검의 손잡이를 만지는 것이 조금만 더 나가면 검이라도 뽑을 것 같았다.
"호오~ 무력인가. 재미있군."
까드득!
아리스가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칼부림 날듯.
둘이 싸우는 게 재밌긴 했지만, 칼부림까지 가는 건 에바다. 나는 둘을 동시에 껴안았다.
"일단 둘 다 진정 좀 해봐. 싸우지 말고."
"하, 하지만! 저 여자가 내 연인을 가로채려 하는걸!"
"우리는 운명으로 묶인 사이다! 그러니 가로채려는 건 네놈이지!"
"둘 다 조용."
나는 둘을 꼬옥 껴안으며 강제로 싸움을 멈추게 했다.
"일단 내 방으로 가자. 거기서 마저 이야기를 나누자고."
나는 둘을 데리고 일단 숙소로 갔다. 둘은 뾰로통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내 말에 따랐다.
내 숙소에 도착한 뒤 나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둘은 찌릿한 눈빛으로 서로를 째려보며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내 연인이 네가 여기 황녀님이랑 엮인 건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우리는 운명으로 엮여진 사이다. 근데 왜 저런 여자가 끼어든 거지?"
"뭐라고요!? 황녀 주제에 남의 연인이나 뺏으려고 하고…. 창피 하지도 않아요!!"
"유진은 내 운명의 상대라고 말했을 텐데! 오히려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네놈이다!"
서로 언성을 높인 둘은 검을 뽑아 들 기세다.
이 세계에서도 능력 넘치는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 둘이 저렇게 격하게 싸울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승부로 우열을 가리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