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시험 시작! (65/198)



〈 65화 〉시험 시작!

드디어 보석이 나왔다. 그 사실에 기뻐서 유벨을 끌어안았다. 역시 인생은 운빨 좆망겜이야! 될 놈은 되는구나!

유벨은 나를 밀쳤다. 근력이 딸려서 밀려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기에 순순히 떨어져 줬다.

그후 시체 처리를 하느라 조금 힘들었으나 금방 끝냈다. 이걸로 남은 건 마지막 임무뿐이다. 20층으로 내려가 발파루스를 사냥하는 것.

시체를 한곳에 모아 불태운 뒤 마석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에리스가 앞장서고 우리는 다시 아래를 향해 움직였다. 피로 가득 찬 공동을 나와 1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 내려갔다.

그후는 비슷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족족 피하거나 두들겨 팼다. 우리가 있는 10층에서 20층까지 싸우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족히 하루는 걸린다.

그래서 내려가던 도중 19층 부근에서 숙박의 터로 이동했다. 숙박의 터는 모험자들이 안전하게 머물기 위해 제작한 일종의 시설로 모험자를 직원으로 뽑아 관리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원이 교체되며 몬스터들이 다가올수록 없도록 해주는 특수한 마도구가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요. 여기가 19층의 숙박의 터에요!"

에리스가 발랄하게 외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묘한 마력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느껴진다. 대상이 몬스터에 한정되는지 우리에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터의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니 넓은 공동과 많은 목조 주택이 보였다. 더 가관인 건 동물들을 사육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던전에서!

아리스나 유벨도 신기한 모양인지 동물 우리를 잠깐 바라봤다. 에리스는 한 목조 건물 앞에서 문에 톡톡 노크했다. 곧, 문이 열리고 한 모험자가 나왔다.

"하아암~ 누구야."

그녀는 에리스처럼 엘프였다. 특이한 점은 엘프 특유의 새하얀 우유 같은 피부 대신 초콜릿처럼 달콤할 것 같은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리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거유는 덤이고 외모도 에리스처럼 훌륭한 편이어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뒤엉켜있고 귀찮다는 듯 하품하는 모습도 꼴렸다.

"에리넬! 오랜만이야!"

"뭐야, 에리스 너였어. 여긴 무슨 일로 왔어."

둘이 아는 사이인지 에리스가 반갑게 인사하자 에리넬이라는 이름의 다크 엘프가 귀찮다는 듯이 반문하며 문에 몸을 기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식은땀을 흘렸다. 강하다, 힘을 억누르는 게 보이나 내 눈에는 그녀가 강하다는 게 잘 보인다.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애매하게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존나 쎄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이번에 임무 때문에 던전에 왔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잖아. 그래서 여기서 하루 숙박하려고!"

"마음대로 해. 숙박비는...황금 길드 소속이니 필요 없겠고, 뒤에 4명은?"

에리넬이 우리를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이 다른 애들을 가리킬 때는 지금처럼 무미건조했는데 나를 지나칠 땐 조금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눈동자에 조금 빛이 들어온 게 보인다.

"뒤에 4명은 나랑 같이 온 사람들이야! 여기 아리스랑 유벨, 유진은 우리랑 같은 황금 길드 소속이고 여기 이분은 성기사 분이셔!"

"만나서 반갑네. 숙박비는 얼마면 되나?"

"숙박과 식사 포함 은화 한 개. 숙박만 할 거면 동화 50개."

"숙박과 식사까지 부탁하지. 여기 은화일세."

에리넬 은화를 자신의 주머니에 쓰윽~ 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황금 길드는 모험자 연합에 가장 많은 지원금을 주는 길드지. 그래서 이런류의 시설은 공짜야. 들어오도록 해."

우리는 에리넬을 따라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우선 의자가 100명분 정도는 설치되어 있었고 주방과 상하수도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던전에 지어놓은 숙박업소가 밖의 어지간한 숙박업소 보다 더 질이 높다니, 역시 던전에 올인한 세계관답다.

"이건 이 숙박소의 방키야.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에리넬이 카운터에서 열쇠를 꺼내 건네주었다.

성기사가 100번, 에리스가 1번, 아리스는 30번, 유벨은 25번, 나는 69번 방을 배정받았다.

에리스가 내 열쇠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성기사와 함께 익숙하다는 듯이 위로 올라갔다. 저 위에 방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방보다는 열쇠에 생각이 쏠렸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나는 혹시 몰라 우리 외에 다른 사람도 있는지 살펴봤다. 마력을 뿌려 주변 일대를 흩어봤지만, 생명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떨어지도록 열쇠를 준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에리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거 열쇠가 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죠? 저는 유진이 옆방 열쇠로 주세요!"

근데 아리스가 나보다 먼저 나섰다. 그녀는 30번의 열쇠를 반환하고 68번 열쇠를 탐냈다. 하지만 에리넬이 철통 같은 방어를 펼쳤다.

"손님, 미안하지만 지금 대부분 방이 박살 나서 고치는 중이야. 여기가 던전이다 보니 모험자 놈들이 자주 싸우거든. 특히 일행이 있을 때에는 집단전으로 커질 우려가 있어서 이렇게 따로따로 떨어트린 거야."

"그게 무슨! 지금은 우리 외에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올 수도 있지. 그리고 너네 19층까지 왔으면 A급 모험자거나 B급, 아니면 최소 C급일 거 아니야. 너희가 사고 쳐서 여기가 부서지면 내가 곤란하다고."

아리스는 자신들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에리넬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둘의 싸움은 몇 분간 이어지다 에리넬의 마지막 한마디에 그녀에게 승기가 넘어갔다.

"무엇보다 우리 숙박소는 방음이 안돼거든. 앙앙거리는 소리는 다른 손님들한테 방해야."

영락없는 색드립에 아리스가 얼굴을 붉혔다. 근데 나랑 섹스할 생각이긴 했는지 찔린다는 표정이다.

'그나저나 방음이 안된 다라. 섹스는 못하겠군.'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던전에서는 섹스를 못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숙박 업소가 있길래 조금은 기대했는데.

"이제 됐지.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이제 올라가! 그동안 식사 준비할 테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아리스는 분하다는 얼굴로 물러났다.

"으으...방음이 안된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어, 언니. 일단 좀 진정해. 그 세, 세...크흠! 아무튼, 그런 행위는 나중에 밖으로 나가서 하면 되잖아!"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옆에 있던 유벨이 쩔쩔매며 그녀를 말렸다.

에리스와 성기사는 이미 진작에 올라갔고 나도 슬슬 그녀들을 따라 숙소가 있는 위로 올라가려는데 에리넬일 나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같은 표정이다. 다만 악의가 없는 걸 봐서는 나쁜 의미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하려는 것 같다.

'나쁜 의도가 보이진 않지만 조심해야겠어.'

"복도가 길다. 언니, 언니 방이 어디라고 했지?"

"...30번."

계단을 올라갔다. 유벨과 아리스가 자신들의 방을 찾아가고 있다. 어디 보자 내 방은 69번 방이라고 했지.

나는 복도 끝 부분에 있는 69번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은 평범했다.

조금 커 보이는 침대 하나랑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인 마법 자물쇠 하나, 나무 보관함 하나가 갖춰져 있었다.

나는 침대에 한번 누워봤다. 푹신하다. 고급 정도는 아니지만, 꽤 좋은 침대다.

이번에는 나무 보관함을 열어봤다. 그곳에는 주황색의 고무가 있었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외형의 고무가.

"콘...돔?"

이게 왜 여기서 나와?

?
?
?

잠깐의 휴식 후 아래 식당에서 다시 모였다. 당연하지만 콘돔은 나무 보관함 깊숙이 처박아놓았다. 어떤 미친놈이 방음도 안 되는 방에다가 저런 걸 배치해 놨는지 모르겠다.

"왔다, 왔어! 유진아. 여기야!"

아리스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른다. 나는 아리스의 옆에 앉았다. 아리스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 웃었다.

성기사도 숙소 안이라 그런지 입고 있던 답답해 보이던 전신 갑옷의 투구 부분을 벗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드러난 성기사의 외모...는 평범했다.

그냥 숙박해 보이는 청년 같다고 할까. 메이스를 휘둘러 몬스터의 머리를 부수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 음식 나왔다. 맛있게 먹던지 말든지 알아서 하도록 해."

에리넬이 우리의 탁자 위에 음식을 올렸다. 토끼 고기로 추정되는 구이와 감자와 여러 채소가 드러난 스프가 눈에 띈다. 호화스럽진 않지만 던전에서 이 정도면 엄청나게 잘 먹는 거다.

"뭐해요, 얼른 먹죠."

에리스가 토끼의 다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뜯어갔다. 그리고 입 안에 넣고 맛있게 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고기 노린내를 잘 잡았는지 꽤 깔끔한 맛이다. 스프를 한 숟가락 들어보니 따뜻하고 달콤한 맛이 느껴진다. 던전이라 사용 가능한 재료는 한정 되었을 텐데 훌륭한 솜씨다.

"으읏...이런 요리 솜씨라니. 분하다!"

뭐가 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리스도 음식이 괜찮은 모양이다. 그렇게 고요하게 식사하는 동안 나는 조금 전에 봤던 신기한 광경에 대해 물어봤다.

"에리스 씨, 제가 알기에는 엘프는 채식주의자인데 당신은 고기를 먹는군요."

"아! 맞아, 맞아! 분명 엘프는 새벽의 이슬과 채소만 먹는다고 들었어!"

아니 아리스, 그건 뇌절 아니니? 아무리 엘프라도 그렇게 먹고는 못 버텨.

우리의 다소 무례하게 비칠 수도 있는 질문에 에리스가 웃으며 답했다.

"네? 그야 당연히 먹죠. 엘프가 채식주의자 였던 건 100년도 더 전에 일이죠. 던전이 나타나고 사람들의 관심이 던전과 몬스터같은 괴생명체 에게 돌아가면서 저희도 많이 개방됐어요."

"인간들 입장에서 던전이 생겼고 던전으로 더 큰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위험하게 엘프 노예를 만들 이유가 사라진 거야."

에르넬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좀 더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설명을 했다.

"던전의 원활한 관리와 공략을 위해 제국과 엘프 왕국이 협력을 체결하면서 불법 엘프 노예도 전부 풀려났어. 그러니 엘프 들도 더는 꽁꽁 숨어지낼 필요가 없어졌지."

과연, 그래서 개방하게 된 건가. 아무래도 이곳의 엘프는 좀 더 복잡한 역사를 가진 모양이다.

에리넬은 그 말 이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외에도 나는 엘프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이 엘프의 존재 여부, 세계 수란 게 정확히 무엇인가, 엘프 중의 엘프 우월주의자가 있는가.

당연히 직설적으로 묻지 않고 꼬아서 돌려 말했다. 에리스는 대부분 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에리넬은 이를 잘만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얻은 대답은 하이 엘프는 존재한다. 세계수란 거대하고 막강한 에너지를 담은 나무일 뿐이다. 엘프 우월주의자는 존재하나 그 정도가 약하다. 끽해야 엘프가 던전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다고 뻐기는 수준이라고...

여러모로 다른 판타지 세계의 엘프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특히, 세계수의 정체가 뭐든 간에 무조건 신성시하던 엘프가 세계수를 거대하고 조금 특별한 나무 취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가 문제야. 세계수라고 해봤자 그냥 하이 엘프 놈들이 절하고 기도하는 게 전부잖아. 우리 같은 젊은 엘프는 그런 거에 관심 없어. 안 그래 에리스?"

"맞아, 맞아. 엘프 국가의 어르신들은 너무 인간들을 경계하고 세계수를 경외하며 신성시해. 그래서 젊은 엘프 들은 자유와 모험을 떠나 밖으로 나오는 거지."

아무래도 둘은 엘프들 중에서도 젊은 엘프인 모양이다.

"그러면 엘프에 관한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저기, 알렉 씨?"

"음? 왜 그러는가?"

알렉은 토끼 고기를 통째로 들고 씹다가 내가 부르자 나를 바라보았다. 순박한 인상의 사내가 고기를 들고선 쩝쩝거리는 모습이란 괴리감이 상당했다.

이를 누르고 알렉에게 질문했다.

"알렉 씨, 알렉 씨는 뭘 위해 던전에 들어오신 건가요?"

이건 줄곧 궁금했다. 성기사라면 교회에 있어야 할 그가 던전에 들어왔고 이를 위해 팀까지 구했으니까.

"으음...이건 기밀 자료인데. 그래도 황금 길드니 괜찮으려나?"

알렉은 조금 고민하다 메이스를 꺼냈다.

"궁금하다면 말해줄 수 있네. 대신 이야기를 듣는 전원이 창세의 신께 비밀을 꼭 지킬 것을 약속해야 하네."

"우웩, 맹세라니...나는 빠질거야 그런 건 너희나 해."

에리넬이 퇴장했다. 남은 건 나, 아리스, 유벨, 에리스. 에리스는 빠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알렉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이스를 아래로 쿵! 내리쳤다.

메이스를 중심으로 환한 빛이 퍼져 나가며 우리의 몸에 스며든다. 이게 비밀 엄수의 맹세인가.

"그러면 이제 내가 왜 던전에 왔는지 알려주겠네. 사실 나는 교회의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되었네."

"특별한...임무?"

이건 흥미가 간다. 교회에서 내려온 임무라니 분명 악마나 마왕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최근 던전 20계층에서 붉은 몬스터가 출현한다는 극비를 입수했네. 그 몬스터의 심장에는 마석 대신 붉은 수정구가 있다더군."

"그리고 그 수정구는 마왕 교단의 물건이죠."

"...자네 잘 아는군."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전에 루진 플라비스님과 함께 할 때 마왕 교단에 습격을 당한 적이 있어서 아는 거니까."

알렉은 이해했는지 턱을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저 친구 말대로 마왕 교단과 관련된 물건이지. 나는 이걸 회수하는 임무를 맡았네."

그의 설명이 끝났다. 그리고 유벨이 입을 열었다.

"마왕 교단이 뭔데요."

그렇다, 일반인은 마왕 교단의 존재를 몰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