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마녀를 만나다. 숨겨진 층을 알게되다.
골목의 수상쩍은 자들을 달려 드려는 찰나 대검으로 한 합에 전부 베어버렸다.
'몸이 가벼워...'
전과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지금 자신의 몸은 가벼웠다. 적당히 힘을 주고 대검을 휘둘렀는데도 적은 피하지도 못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을 줄이야. 대단해."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때 뒤에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레티시아가 나를 뒤에서 껴안고 있었다.
꾸욱, 가슴을 내 등에 누르며 레티시아가 말했다.
"훌륭해. 설마 이리도 강할 줄이야. 역시 널 선택한 내 선택은 옳았어!"
그녀는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몇 분 동안 호쾌하다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골목 안쪽을 마법으로 비추었다.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지. 여태까지는 쓸만한 칼잡이가 없어서 놈들의 내부까지 파고들진 못했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그나저나 놈들의 정체는 뭐냐?"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다. 던전 도시에 숨어들어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자들. 대충 짐작 가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마녀는 내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생포하기만 하면 마법으로 만들어진 극독으로 자살해 버리고 아지트로 쳐들어가서 정보를 모으자니 마법으로 놈들을 처리하는 동안 아지트와 정보에도 손상이 가서 말이야."
"확실히 너 정도의 마법사면, 인정한다."
마녀는 강한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에 절대적인 재능을 갖추고 마법 사용을 위한 특수한 장기를 지니고 있다.
다만 재능이 너무 출중해서 약한 하급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마법을 만능 도구처럼 써먹어 왔으니 힘 조절이 가능할 리가 없지.'
마법에서 힘 조절은 단순히 마력량을 줄이는 게 아닌 아예 술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문제는 술식이라는게 한번 버릇에 되면 자기도 모르게 쓰던 걸 쓴다는 거.
몇백년을 살면서 같은 술식만 썼을 레티시아는 유독 심하겠지. 그렇기에 이해는 했으니 아직도 의문은 남았다.
"그런데 칼잡이라면 에리넬이 있잖아. 걔는 왜 안써?"
"그녀는 나를 위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 애를 이런 일에 투입하면 돈이 부족해진다."
"그러면 황금 길드에 부탁해서 돈 받으면 되잖아."
레티시아는 자기 입으로 본인이 황제한테 빚는 씌운 게 있다고 했다. 근데 왜 황금 길드에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 거지?
내 물음에 레티시아가 저 멀리 허공으로 얼굴을 돌렸다.
"마녀로서 금전을 요구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아, 앗! 자존심. 마녀가 그런 것도 챙겼구나!"
"채, 챙긴다! 오히려 마녀기에 더욱 챙기지! 우리는 인간과 달리 품위를 알고 약속과 규칙을 준수하는 격식 있는 마녀니까!"
"결계에서는 내 자지를 게걸스러운데 먹어놓고? 품위~? 격식~? 혹시 당신이 말하는 품위와 격식이 내가 아는 품위, 격식들과는 다른 건가~?"
"크으읏!"
내 조리돌림에 마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래도 자기도 양심은 있는지 공격하거나 덤비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선 흥, 하고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아름다워서 그런 모습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긴 한데.
"애도 아니고, 그러는 거 진짜 극혐이거든?"
다 큰 성인 여자가 그러면 귀엽기보다는 질색이다.
"하아~ 이 몸의 매력을 전부 알아주지 못하다니 슬프군."
"너야말로 네 매력이 그딴 게 아니라는걸 알잖아. 너는 성숙하고 음란한 요부가 어울린다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풍만한 가슴을 주물렀다. 마녀는 내 행동에 좋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나한테서 살짝 떨어졌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돼. 손님이 왔거든."
"흐음, 그러네. 꽤 많은 손님이 왔어."
기척이 느껴진다. 숫자는 다섯 정도인가. 대검을 꺼내 들었다. 놈들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은 누구.."
"시끄러워 새꺄."
파편으로 얻은 능력을 발동했다. 폭발적인 힘과 함께 머리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를 이용해 놈들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최악!
잘린 머리가 허공에 솟아오르고 붉은 피가 바닥을 더럽혔다.
"후딱 끝내고 돌아가자고. 얼른 안으로 가보자고!"
"훗, 알았다. 가도록 하지."
레티시아가 앞장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인기척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문득 여기가 어디쯤인지 궁금해져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어디 골목이냐?"
"여기 말인가? 여기는 가게가 많이 모여있는 상가의 구석진 곳이다. 초창기 던전 도시는 대도시가 아니라 던전의 몬스터를 막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남아있는 대피소나 몬스터를 막기 위한 시설의 잔재가 남아있지."
"그러면 놈들은 그곳에 숨어있겠네."
"그렇지. 저기다. 저기가 놈들의 아지트다."
레티시아는 허름한 목조 건물을 가리켰다. 현재 내가 발동한 능력의 지속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그전에 전부 끝낸다.
그런 생각으로 대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쿠구구구궁!!!
주변 일대가 마력에 울리고 내 전신에서는 황금빛의 스파크가 파바밧! 하고 튀었다. 대검에는 어느새 마력의 폭풍이 일어나 검날을 감싸고 있었다.
"지하에 있다고 했으니 위쪽 건물은 필요 없겠죠!"
레티시아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대검을 휘둘렀다. 콰앙, 거대한 힘의 격류에 휘말려 목조 건물과 뒤의 성벽이 날아갔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쭉~ 쭉~ 나아가 성문 밖에까지 화려하게 날려버렸다.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런지 조절이 조금 미숙했던 모양이다.
"반성."
"뭘 반성한다는 거냐. 깔끔한 게 보기 좋구만."
레티시아가 나를 위로했다.
"근데 뒤에 성벽까지 날아가 버렸잖아."
"사람이 살면서 기운이 너무 넘쳐 실수 할 때도 있는 법이지. 괜찮다. 그리고 아직 놈들의 아지트는 많이 남았거든."
"아, 그래? 그거 잘됐네!"
"후후후, 약 일주일 동안 실컷 부려 먹을 테니 각오 단단히 하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때아닌 도시 탐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검은 괴한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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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도시에 있는 또 다른 비밀스러운 공간.
"젠, 장! 하필이면 여기에 발령이냐!"
교단의 하급 신자인 알푸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마왕 교단은 그 세가 넓고 힘이 막강하여 여러 곳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있다.
그들이 힘을 펼치지 못하는 곳은 단 두 군데 황가와 창세신 교단 분이다.
그런데 최근 던전 도시에서 영향력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름 모를 검은 괴한이 마왕 교단의 아지트를 들쑤시면서 황금 길드가 대대적으로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거다.
덕분에 신참 대다수가 죽었다. 그리고 그 수만큼 새로운 신도가 파견되었다.
알푸스도 이번에 파견된 신참 중 한 명이다.
"으으으, 역시 그때 오른쪽 걸 뽑아야 했는데!"
알푸스는 근무지 갓챠때 오른쪽 종이를 뽑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실시간으로 신도들이 도륙되는 곳에 파견된 입장에서 이렇게라도 안 하면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조용해야 할 아지트의 문을 누군가가 쾅쾅 두드렸다. 흠칫, 아지트에 있던 모두가 몸을 떨며 무기를 꺼내려 했다.
"FBI! 문 열어 개새끼들아!"
콰앙!
문이 박살 나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타앙-! 타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알푸스의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곤죽이 되어 날아갔다. 알푸스는 검을 꺼낼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 사이 학살이 이어졌다.
"끄아악! 내 팔! 팔이!"
타앙! 탕! 타탕!
기묘한 폭음과 함께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알푸스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제발 자신을 지나치길 신께 빌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우리는 선택 받은 신의 사도들!"
빠악!
"끄악! 네놈의 영혼은 훗날 지옥에 처박혀!"
빠악! 빠악!
"그만! 그만하란 말!"
빡! 빠각! 빠악!
"너가 하는 말은 전부 맞는 말이야. 처맞는 말."
잠시동안 끔찍한 폭력의 소리가 이어지고 고요해졌다.
폭음도 가라앉았다. 신음과 공포의 비명으로 가득 찼던 곳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알푸스는 몸을 달달 떨면서 슬쩍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까마귀 괴물과 눈이 마주쳤다.
"이런 생존자인가."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까마귀 괴물은 이상한 도구에 이상한 금속 조각을 넣고 있었다. 알푸스는 알수 있었다. 저게 자신의 동료를 죽인 무기임을 느끼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뭐든지 한다라. 그러면 네가 누군지 말해봐."
괴물의 말에 알푸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희망을 가지게 된 알푸스는 최대한 정성껏 자신에 관한 것을 나불거렸다.
이에 까마귀 괴물은 알푸스의 어깨를 잡았다.
"네놈 내 말을 이해 못 했나? 정보! 정보를 불란 말이다!"
찰싹!
알푸스의 얼굴이 돌아갔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알푸스는 갑작스러운 폭력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대신 빌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말단이라 아는 게 없습니다! 정말 입니가!"
"알아."
"...예?"
"너가 말단이라 아는 게 없다는 거 안다고."
철컥!
까마귀 괴물이 알푸스에게 조금 전의 무기를 겨누었다. 알푸스는 그제야 자신이 가지고 놀아졌음을 인지했다.
"이, 이 좆가!"
타앙-!
알푸스의 말은 끊겼다. 까마귀 괴물은 무기를 빙그르르 돌리며 멋들어지게 허리춤의 버클에 매달았다. 그리고 수정구를 꺼내 말했다.
"그래. 내기 보낸 중간 관리자는 잘 받았니?"
그는 요새 소문 자자한 검은 괴한 소문의 주인공. 동시에 선량한 사람들과 악당을 죽이는 전설 속의 영웅인 용사, 유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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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보낸 중간 관리자는 잘 받았니?"
"잘 받았다. 그리고 정보도 뽑아냈다."
"그거 잘됐네."
6일. 엿새 동안 놈들의 아지트를 구석구석까지 뒤졌다.
그동안 잡은 놈들은 죄다 낮은 지위에 있던 놈들이라 아는 게 없었는데. 드디어 과실을 얻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놈들은 마왕 교단의 신도들이다. 다만 이곳에 기어들어온 이유는 별거 아니더군."
"뭔데. 나는 무려 엿새 동안 이 도시를 쑤셨어. 얘네가 왜 기어들어 왔는지 알아야겠어."
"별건 아니고 어떤 귀족을 이용해 어떤 왕국과 마석을 밀무역하고 있다더군."
그거 존나 큰일인데?
감히 제국의 마석을. 그것도 던전 도시에 기어들어와서 몰래 얻은 마석을 다른 왕국에 넘기는 귀족이 있다?
"씨발. 그 귀족 새끼 누구야!"
현재 마석이란 국력의 척도다. 마석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게 가능하고 더 많은 병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던전이 있는 3국은 거대한 도시를 운영하며 마석의 이용에 관해 정보를 공유하는 거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석으로 무기를 개발해 깽판을 치지 않겠다는 맹세다.
"어쩐지 쳐죽여도 계속 침투한다 했더니 밀무역 때문이었나!"
까득! 이가 갈린다. 딱히 제국에 충성심을 가진 건 아니지만 좋든 싫든 제국은 내 고향이고 난 이미 용사라는 이름으로 제국과 관련되어 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유진. 마지막으로 던전은 30층이 끝이 아니라는군. 30층 이하. 31층이 존재한다고 한다."
"가지가지 하네. 당장 나를 30층으로 보내줘. 내가 직접 31층에 가봐야겠어."
이렇게 된 이상 현장답사다.
"훗! 그래야 용사지. 당장 보내주마!"
레티시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곧 마력의 격류가 일어나고 시야가 격변한다.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던전의 벽?
"도착했군."
던전 30층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막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내 존재를 인지한 건가. 주변 곳곳에서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괴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강하다.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최소 A랭크다. 간혹 A랭크 중에서도 상위 수준은 되어 보이는 괴물들도 있었다.
이런 괴물들이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향해 달려든다. 그 사냥감이 나다.
"굳이 놈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지."
창을 꺼내 바닥에 박았다.
"커져라."
콰앙!
창이 커지며 지반이 박살 났고 나는 아래로 떨어졌다. 정보대로 던전 지하에는 또 다른 층이 있었고 괴물이 가득했다.
나는 능력을 발동했다.
머리카락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변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 같은 황금빛 눈동자로 몬스터를 바라보며 무기를 꺼냈다.
내 몸을 시작으로 황금빛 전류가 피어올랐다.
덤으로 신성 강림. 그리 이름 붙인 상태에 돌입하니 시야가 일변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볼듯한 눈. 이는 신에게 주어지는 시야다.
지금은 완벽하게 힘을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조금 멀리, 그리고 정확히 보이는 게 전부지만.
"그러면 시작해 볼까."
몸에서 힘이 넘쳐 흐른다. 손을 휘젓자 내 주변에 무수히 많은 번개의 창이 생겨났다.
주변에 시퍼런 뇌전을 튀기며 빛나는 창의 개수는 합계 500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발사했다.
콰앙-! 콰아앙! 콰광!
번개의 창이 대지에 떨어지고 폭발, 폭발, 폭발한다. 그때마다 주변을 쓸어버리는 전류의 폭풍에 주변 몬스터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좋아, 다음. 내리쳐라."
허공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콰르르릉!!!
천둥 소리와 함께 던전의 일부분에 박살 났다.
"다음."
내 주변에 무수히 많은 물이 압축되어 날아가 몬스터를 베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에 의한 살육이다.
무엇보다 나는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능력만을 움직여 몬스터를 죽이고 또 죽였다. 어느덧 내 주변에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창을 휘적시며 이곳을 조사하려 했다. 몬스터들의 사체가 사라지며 나타난 엄청나게 질이 좋은 마석만 아니었어도.
"........"
자낳과 모드 ON!!!
이제 여기 있는 마석 전부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