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마녀를 만나다. 마족과 싸우다.
"존나 예술이구만!"
주변에 널브러진 무수히 많은 마석들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하나같이 보기 드문 희귀한 마석들.
전부 든든하게 챙기면서 몇 개는 집어먹었다. 몸에 짜릿하게 채워지는 마력.
"이거, 이거..신성 강림 안 쓰고도 S랭크 되는거 금방이겠어."
품질 좋은 마석은 돈이자 내 힘. 그러니 최대한 마석을 수집한다!
콰앙-! 콰아앙!!!
번개를 흩날려 몬스터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마석을 채취하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때마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와 나를 가로막았으나 지금의 날 막기엔 역부족이기에 금방 처리했다.
그렇게 몬스터를 처치하길 반복하다 보니 이상한 공간을 찾을수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몬스터도 하나 없으며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특수한 공간이 보인다.
그 안에는 많은 붉은 수정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내 머리만 한 크기의 수정은 영롱하게 붉은빛을 뿜어댔다.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은 영롱함에 무심코 손이 가려는 걸 억누르며 수정이 놓인 안쪽. 비밀스러운 방에 다가갔다.
"어라? 이건."
안쪽에는 거대한 흔적이 있었다. 수십 개의 촉수 같은 것들이 무언가가 놓여 있던 걸로 추정되는 거대한 흔적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촉수에서는 붉은색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피, 인가? 다가가서 촉수를 콕콕 찔러봤다. 촉수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을 뻗어 붉은 액체를 문질러봤다. 촉감은 끈적하고 달라붙는 듯한 감각이다.
이리 보면 단순히 기분 나쁠 뿐인 액체이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액체에 깃든 생명 에너지를.
"허어~ 갑자기 불안해지네."
혹시 모르니 액체를 병에 가득 담아놓는다. 다음 옆에 있는 흔적을 조사했다.
뭐가 있었던 건지 초월적인 마력의 잔재가 느껴졌다. 동시에 강대한 생명력도 느껴졌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어딘가 익숙하군."
잘기억 나지는 않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마력이다. 내가 어디서 이런 마력을 느꼈지?
'분명 누군가가 지니고 있었는데...'
이곳의 마력과 매우 흡사하며 동시에 이질적이었던 마력이다. 번쩍,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느낌과 함께 기억이 났다.
"에반! 에반이 지녔던 그 이상한 마력!"
저번에 에반이 자랑하던 본인의 것이 아니던 괴상한 마력이다. 그 마력이 이곳의 마력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으나 결론은 하나로 이어졌다.
"에반은 모종의 수단으로 여기에 우연히 떨어지게 되었고 이곳에서 마력을 획득했다."
아마 에반에게 마력을 준 게 여기 있던 무언가겠지.
던전 깊은 곳에서 어디서 공급된 것인지 모를 생명 에너지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을 무언가를 생각하니 오싹하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마족과 에반이 함께 있던 그 로브를 입은 신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에반을 끌어들였다."
마왕 교단의 힘과 능력을 생각하면 에반을 꾀는 건 쉬웠을 테지. 예쁜 여자나 약을 먹이면 에반은 저항조차 못할 테니까.
"이거 느긋하게 마석이나 모을 때가 아니었어."
마석은 충분히 얻었고 몬스터도 이제 없었기에 바로 돌아가고자 레티시아 에게 받은 통신 마도구를 꺼냈다.
"여기는 유진. 31층에 도착하고 수색 결과 많은 정보를 찾아냈다. 인제 그만 귀환하겠다."
"잘했어. 30층에 올라오면 텔레포트 시켜줄게. 위로 올라오도록."
"당장 올라가지."
간단한 통신 후 마도구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일주일 동안 팠던 일이 끝나고 길드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뚜벅- 뚜벅- 작은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마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마족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어~ 정확히 일주일 만이네, 용사."
찰랑거리는 흑발에 인간이 아닌 인외의 육체. 등에 달린 날개가 펄럭거리며 마족의 눈이 황금빛으로 밝게 빛났다.
그녀는 전에 던전에서 마주친 서열 9위의 마족이었다.
"쯧."
탕! 타타타탕!!!
"후훗! 저번에 쓴 그 거슬리는 무기냐!"
단번에 리볼버를 난사했지만 마족는 마기의 촉수를 일으켜 역시나 쉽게 막았다. 더블 배럴을 꺼내 마족에게 겨누고 발사.
탕-! 탕-!
쏘자마자 재장전하고 총 두 자루다 인벤토리에 넣었다.
"격한 인사네. 너도 나랑 다시 만나서 기쁜 것이구나! 나도 그래!"
마족은 더블 배럴 샷건을 맞고도 그다지 피해는 없었다. 대충 간보기로 쐈다지만 저리 멀쩡하다니. 아까부터 느껴지는 마기도 그렇고 마력도 그렇고...
저 마족년 저번에 만났을 때 보다 강해졌다. 아니 서열 9위치고 그때 힘이 약했던 거니 힘을 되찾았다 표현해야 하려나.
마족은 힘을 어느 정도 되찾아서 그런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하수를 바라보는 고수 같은 모습.
"솔직히 조금 놀랐어. 아무리 용사라지만 단 6일 만에 설마 여기까지 도달할 줄이야. 너의 그 힘과 지혜와 결단력에는 찬사를 보내지."
짝- 짝-
그녀가 박수를 쳤다. 조금도 신이 나지 않았다.
"하나만 묻자."
"질문이라. 좋아, 여기까지 왔으니 상으로 질문 정도는 들어주지."
"줄곧 궁금했어. 아무리 죽어도 계속 되살아는 몬스터와 무한에 가까운 마석을 배출하는 던전의 근본적인 시스템이. 아마 여기에 있었던 거, 그리고 마왕과 관련된 거 맞지?"
"........"
마족은 침묵했다. 정적이 온 듯 딱딱해진 그 표정을 바라보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분이다.
"추측 하나 해볼까. 아주 먼 옛날 마왕과 용사가 있었어. 용사는 마왕에게 맞섰으나 결국 패배했지."
용사. 이 세계에도 용사는 존재하고 수많은 전설과 이야깃거리로 아직도 전해져 내려온다. 기록에 따르면 용사가 마왕을 죽였다고 하며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리 믿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나는 이세계에 마족과 마왕에 관한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었다.
마왕 교단을 처음 마주하고 리린 플라비스와 대면 했을때 마왕 교단에 대한 것을 듣지 않은 것도 그녀가 알고 있는 게 흔히 알려진 왜곡된 진실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 용사가 승리한게 아니었다면 어째서 마왕이 졌다고 전해졌을까. 그 이유는 간단해. 이 던전을 만들어낸 장본인. 창세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권능으로 마왕을 봉인한 거야."
이세계의 마족은 마족인 동시에 악마다. 그렇다면 마족들의 왕인 마왕이 과연 평범하게 악마의 힘을 지닌 존재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창세신이 직접 나선 것만 보더라도 마왕은 최상급 악마. 흔히 루시퍼니 사탄이니 하는 놈들과 비슷한 급이리라.
슬쩍 마족년을 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눈을 꾸욱 감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경계하며 이어서 말했다.
"마왕이 봉인된 마족은 몰락 할 수밖에 없었어. 그렇다고 멸망하지도 않았지. 마족 토벌에 앞장서야 할 용사가 죽었으니까. 그렇기에 약화에서 그친 마족 세력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한 가지 장점을 내세워 그들에게 기생했지."
수명. 마족은 하나같이 수명이 길다. 기본 수명이 500살에 고위 마족은 그보다 더 살 수 있으니 마족에 관한 것이 잊힐 때 까지 존버 타다가 숨어드는 건 간단한 일이다.
그렇게 숨어든 마족들은 뭘 했을까.
역사왜곡을 했겠지. 어째선지 용사에 관한 이야기는 대중적이나 마왕 교단과 마왕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윗대가리의 판단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마왕 교단의 왜곡에 있다.
"그러면 마왕 교단의 목표는 뭐다? 첫 번째, 생명 에너지를 모은다. 둘째 이를 통해 마왕을 부활시킨다. 그리고 에반이 여기에서 얻은 무언가가 마왕과 관련된 물건이거나, 마왕의 심장 같은 거겠지."
그런게 아니면 에반을 마족이 데리고 다닐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덧붙이며 내 추측을 끝냈다.
흠칫.
그녀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황금빛의 눈동자 속에는 짙은 희열과 욕망이 끈적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래, 저런 시선 많이 봤다. 프레이야랑 오딘이 나를 자신들의 전사로 삼겠다고 지랄발광 했을 때 마주친 시선이 저랬다.
"흐, 으하하!!! 너 정말 대단하잖아! 맞아, 그 말대로야! 내 성격이랑은 조금도 맞지 않지만 우리는 마왕님의 부활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인간들에게 숨어들었지!"
"그 말은, 내 추측이 맞다는 건가?"
"정답이야. 설마 이렇게 빨리 간파될 줄이야. 역시 너는 진정한 전사야. 힘, 기술, 지혜까지 고루 갖추다니. 마왕님이 부활하신다면 우리의 가장 큰 숙적은 너겠지."
"그런 찬사를 받다니 기쁘네."
마족은 호전적이며 전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솔직하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마족의 말뜻을 이해하다니. 나도 참 특이해. 그래서 더 먹는 맛이 있을 것 같아."
츄릅, 마족이 입에서 군침이 흘렀다. 마족 중에서도 식인을 하거나...정기를 탐하는 분류인가.
곧 마족이 폭주하듯 날뛴다.
"아아, 역시 못 참겠어! 먹고 싶어! 먹고 싶다고! 꺄하하핫!!!"
마족의 한쪽 눈이 타오르듯 붉게 물들었다. 마족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마기와 탐욕을 들어냈다.
"내 이름은 파이로스! 서열 9위의 마족이다!"
"난데없는 자기소개인가. 뭐, 너의 네이밍 센스에 맞춰보자면...내 이름은 유진! 창세신에게 선택받은 최고의 영웅이자 최강의 용사다!"
그녀에게 맞추어 나 또한 기세를 가다듬었다. 대화는 끝났다. 남은 건 폭력의 시간뿐.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편안하데 대화를 한 이유는!
"지금의 나는 질 수가 없거든."
신성 강림 상태이기 때문이지!
콰앙-!
단숨에 파이로스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파이로스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파이로스는 옆구리를 잡고 경악 섞인 목소리로 나를 바라봤다.
"뭐, 뭐야! 저번에 만났을 때랑 완전 딴판!"
마족이 내 급격한 힘의 성장에 놀란 것 같다. 꼬우시면 너도 세계 돌아다니며 영혼의 격을 올리던가!
"흐읍!"
한호흡을 다지며 전신에 힘을 실어 찌르기, 마족은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제대로 반응했다.
"으읏!"
파캉!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마기를 둘러 만들어낸 마족의 건틀릿이 창과의 충돌로 박살 났고 나는 마족의 뿔을 잡았다.
"이게 차원 이동자 퀄리티다."
신성 마법, 성스러운 신의 정화.
화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성스러운 신의 빛이 터져 나오며 마족의 몸을 좀 먹는다. 마족과 악마의 극카운터인 신성 마법에 마족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힘을 줘 마족을 들어 올리고! 땅에 내리친다! 다시 들어 올리고! 내리친다! 들어 올리고! 내리친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마족의 몸이 쉴 새 없이 허공을 날다가 벽과 부딪쳤다. 잡기 기술은 원해 반격당하기 쉽지만 이런 식으로 빠르게 휘둘러 버리면 압력 탓에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마족에게는 마기가 있지.
촤르륵!
뿔을 휘감는 마기에 급히 마족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역시 마기는 사기라니까. 마력과 달리 컨트롤도 쉬우면서 물질화도 가능하고 전신에 갑옷처럼 두를 수도 있고."
"대, 신에 힘의 소모가 엄청나지. 쿨럭!"
"뭐야, 왜 일어났어? 그냥 누워있지."
지금 파이로스의 상태는 매우 나쁘다. 뼈는 대부분 박살 났고 마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상대와 타이밍이 나빴다. 신성 강림 상태의 나는 어지간한 S급 조차 이길 수 없을 거다.
여기서 의문문인 이유는 아직 S랭크의 전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자하니 S랭크 내에서도 위랑 아래의 실력 차이가 극명한 모양이고.
하여튼 그렇게나 강해진 나를 덜 회복된 상태에서 싸운다? 미친 짓이지.
"크윽, 몸에 힘이 들어가진 않는군."
"그렇겠지 전신에 기분 좋은 신의 빛을 쬐게 했으니까."
파이로스에게 다가가며 신성 마법 마족 살해의 축복을 창에 걸었다. 창에 은빛의 빛이 서려졌다.
"흐, 흐하하하하!"
파이로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냐. 미친 거냐?"
"그럴 리가."
뚝. 파이로스의 웃음이 멈추었다. 그녀는 익숙한 촉수 수십 개를 손으로 들러 올렸다. 붉은 액체가 흐르는 그 촉수.
"이런 씹!"
"이미 늦었어! 너한테 패배할 걸 직감 했을 때부터 내 도주로로 삼은 게 여기니까!"
마족의 마기에 반응한 듯 촉수기 꿈틀거린다. 촉수는 그대로 파이로스의 전신에 생살을 뚫고 박혔다.
꿀렁, 꿀렁. 붉은 액체가 그녀의 몸 안에 흘러들어 간다.
"본래라면 전부 마왕님의 부활에 사용될 에너지였지만. 이미 기생 되신 이상 쓸모가 없지. 그러니 내가 대신 받아간다!"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검은 폭풍을 일으키며 마기가 날뛰었고 그녀의 몸이 변하는 게 보였다.
이윽고 검은 폭풍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파이로스의 모습은 변화되어 있었다.
더 커다랗고 윤기 있게 변한 뿔과 전체적으로 커진 덩치. 그리고 목에 새겨진 붉은 문양까지. 그녀는 완벽한 마족이자 악마가 되었다.
"다시 한번 내 소개를 하도록 할까. 나는 파이로스, 마족 서열 9위이며 곧 부활하실 위대한 마왕님을 따르는 충실한 신하니! 이 자리에서 마족의 전통에 따라 용사인 네놈에게 도전하겠다!"
승산이 있다고 여긴걸까. 그녀가 정식으로 나에게 도전했다.
"하. 건방지기는! 내 이름은 유진 플라비스! 파이로스 네놈에게 도전하겠다!"
그 말을 신호탄으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력과 마기를 터트렸다.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