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휴식의 시간 (77/198)



〈 77화 〉휴식의 시간

황금 길드로 돌아왔다. 특별한 환영식 같은 건 없었고 리린 플라비스랑 잠깐 대면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된 주제는 역시나 마왕 교단에 관한 것.

"날이 갈수록 그놈들은 더 뻔뻔해지는군. 설마하니 제국의 던전에서 마석을 캐내 그것으로 밀무역을 할 줄이야."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행위. 이건 제국의 권위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린 플라비스는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커피가 담긴 컵이 힘을 줌에 따라 천천히 깨지기 시작했다.

"일단 정신 차리시죠. 그보다 마족 애들은 어쩔 겁니까. 일단 한 놈은 죽이긴 했는데."

던전 31계층에서 나랑 붙이쳤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 파이로스. 그녀 외에도 마족들은 많으며 각자 흩어져 온갖 음흉한 일을 꾸미고 있다.

정확히 마족 수가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내버려두면 꽤 큰 피해가 올 거다. 리린 플라비스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으나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지금 황실은 여유병력이 없어서 제국을 샅샅이 뒤지는 게 불가능해. 그리고 다른 왕국과 그놈들이 밀무역했다면 아예 다른 왕국에 숨었을 가능성도 있어서 선뜻 나설 수 없어."

"그렇다면 당분간은..."

"당분간은 현 상태 유지야. 대신 너한테 특별한 임무를 줄게."

리린 플라비스의 얼굴이 곱게 휘었다. 무언가 위험한 걸 떠올린 악동 같은 모습에 절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뭐지? 뭘 하려는 거지?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S라 적힌 황금색 뱃지다.

"어? 이건."

"너도 알겠지만, 우리 황금 길드가 네가 S랭크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도구다. 이제부터 너는 황금 길드의 최연소 S랭크 모험자이자 용사다!"

"허? 갑자기 왜 이렇게 진행되는 건데요!"

나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며 따졌다. 내 실력이 인정 받은 건 기쁘나 리린 플라비스가 나를 보는 눈은 굴리기 딱 좋은 부품을 바라보는 차가운 사장의 눈이었다.

분명 나를 존나게 굴려댈 생각이 분명하기에 최대한 저항하려 애썼다.

"아직 증명도 안된 사람한테 다짜고짜 S랭크 수여라니! 게다가 전 공적도 없잖아요!"

S랭크가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합당한 실력과 누구나 인정할 법한 공로. 이렇게 두 가지다.

공로같은 경우에는 철저히 연합에서 평가하나 황제나 왕, 귀족의 추천서 같은 게 있으면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 추천서 자체가 하나의 공로 취급이라서.

근데 나는 추천서도 없고 공로는 있으나 그걸 직접 말하지 않았다. S랭크 달성이 불가능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리린 플라비스가 꺼낸 물건에 내 입은 자연히 다물어졌다. 신성 강림 상태로 파이로스와 싸우는 내 모습이 기록된 영상형 마도구.

나는 뻘뻘 식은땀을 흘리며 리린 플라비스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찬란하나 동시에 잔혹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하니 이런 단기간에 S랭크 수준의 실력을 쌓고 단독으로 31층 주파에 마족 섬멸, 던전 도시 내의 교단 끄나풀까지 처치하다니. 훌륭한 공적이야!"

나는 침묵했다. 레티시아가 나를 팔아넘겼다는 확신이 들었으나 혹시 몰라 물어봤다.

"그걸 찍어서 넘긴 게 누굽니까?"

"레티시아가 참 잘 찍었지."

허, 허허허. 처음부터 날 속인 건가? 왠지 파이로스랑 싸울 때 조용하다 싶었는데 이것들을 찍고 있었다 이건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아 아주 얼얼하다.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내 앞으로 내밀어 진 황금 뱃지를 보았다.

S랭크. 매우 탐나는 지위지만 아직은 실력으로나 명성으로나 부담되기만 하는 자리다.

"받아들이는 게 어때? 너한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텐데."

"확실히 저한테 피해는 없겠죠. 혜택도 많을 테고요."

S랭크 모험자는 그 이름값만으로 전쟁이나 분쟁에서 큰 위용을 발휘한다. 모험자 중 정점에 다다른 초인이기에 이들의 숫자는 곧 국가의 국력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비록 모든 S랭크 모험자가 초월적인 실력일 겸비하진 않았고 국가의 부름에도 따르지 않는 때도 있으나 대다수의 S랭크는 소속 된 국가의 비장의 수단 같은 걸로 취급받는다.

이에 따라 혜택이 많은 건 당연한 일.

우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살인 같은 큰 범죄가 아니라면(굳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필요도 없지만) 처벌받지 않는다.

그리고 모험자 사후 무려 연금이 나오기까지 한다. 이외에도 각종 다양한 혜택들이 있다.

"대신 일이 존나게 많아지죠."

S랭크 모험자는 비장의 수단.

근데 비장의 수단이 필요없는, 지금처럼 몇백 년 동안 소규모 충돌만 일고 전쟁은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경우 S랭크 모험자는 만능 일꾼이 된다.

무언가 묘하고 위험해 보이는 일이나 사건이 터졌다? 가서 해결하고 와! 하면서 보내지는 게 S랭크다.

마왕 교단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이 다른 나라라 해도 일단 몇 명은 반드시 보낸다.

오죽하면 길드의 간부들도 행정이나 모험자들의 스승 역할을 하는 몇명 빼고는 자주 길드를 비운다.

나는 아직 그렇게 바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반품하죠."

뱃지를 리린에게로 밀었다. 리린은 별 표정변화 없이 뱃지를 다시 나에게 내밀었다.

"반품 따윈 불가능하니 그냥 받아."

"싫습니다. 용사 칭호만 해도 엄청나게 부담되는데 여기에 S랭크까지 되면 저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영웅이란 원래 한계를 돌파 하는 법! 이참에 너도 한계를 뛰어넘으면 되!"

이년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건가. 아는 황금 뱃지를 힘을 주어 밀어내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면 A랭크 정도로 합의 봅시다. 솔직히 당신도 알잖아요. 제가 곧바로 S랭크로 올라가면 반발할 사람이 많다는 거."

아마 던전을 보유한 엘프 측이나 수인 측에서 항의가 많이 오겠지. S랭크의 이름값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그 정도로 S랭크의 임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리린 플라비스도 이 부분에서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작게 혀를 찼으나 이내 다시 웃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고. 너의 여태까지의 공적은 황제 폐하의 귀에 잘 들어 갔거든. 몇 번만 더 지금처럼 공적을 쌓으면 황제 폐하와 대면할 기회가 생길 거야."

"...압박하시는 겁니까?"

"응. 그것도 맞긴 한데 공적을 떠나서 너는 한 번쯤은 황제 폐하를 만나긴 해야 해. 작위를 수여 받아야 하니까."

"작위, 라고요!?"

어째 갈수록 더 큰 게 나온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최대한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명예직이지만 아마 후작 정도는 되지 않을까? 덤으로 네가 작위를 수여 받을 때 공식적으로 용사 임명도 할 거야. 그래야 루진과 결혼하기에 합당한 상대가 되겠지."

"아아, 결론은 결국 그겁니까."

루진과의 결혼.

"지금 루진은 황궁에서 수련과 함께 신부 수업을 받고 있어. 굳이 황궁에 박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직 뭣도 아닌 너랑 꽁냥대는걸 들켰다가 추문이라도 터지면 큰일이거든. 무엇보다 결혼 전 아이는 인정 못 해."

찌릿.

그녀가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찔리는 게 조금, 아니 아주 많기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앞으로 공적을 쌓아야 한다는 것만 알아두라고. 그러니 내일부터 열심히 의뢰를 수행하도록!"

리린은 그렇게 말하고 황금 뱃지를 걷어갔다. 대신 A라고 적힌 은으로 만든 뱃지를 주었다.

"이제부터 너는 최연소 A랭크 모험자다. 노력해서 최연소 S랭크가 되길 빌지. 유진 플라비스."

그녀가 아름답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S랭크가 되긴 할 거다.

그게 지금은 아닐 뿐.

"아, 참고로 너한테 주어지는 특별한 의뢰는 아리스랑 유벨이랑 같이 의뢰를 해결하는 거다. 그 둘은 좋은 경험이 될 테고 너는 공적을 빠르게 쌓을 수 있지. 덤으로 원정에서도 빼줄게."

"오, 정말요!"

원정에서 빠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고로 원정이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나 개인이 얻는 건 극히 적은 일이거든.

빠질 수 있다면 빠지는 게 현명한 일이지.

"원정 자체는 30층에 도달했으니 이제 큰 의미가 없어. 그냥 길드 자금을 모을 겸 다 같이 훈련도 하고 긴장도 유지할 겸 하는 월마다 치르는 의식이자 행사 같은 느낌이라 몇명 빼도 문제없어."

"이 부분에 한해서는 감사드립니다. 리린 플라비스님!"

"이 부분에 한정한다는 말이 거슬리지만, 지금까지 일하고 온 녀석을 계속 잡아둘 수는 없겠지. 가봐도 되."

리린 플라비스가 휙- 휙- 손을 저었다.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아리스랑 유벨 만나러 가야지!





쿵!

닫힌 문. 리린 플라비스는 유진과 대화할 때의 생기 넘치던 표정 대신 극도의 무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품에서 마족과 싸우는 유진이 녹음된 마도구를 꺼내 거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치지직-

마도구의 화면이 흔들리더니 이내 검게 암전되었다. 그리고 곧 다시 화면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유진과 떡을 치니 레티시아가 있었다. 레티시아는 유진한테 푸욱~ 빠졌는지 몇십 년을 알고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내보이지 않은 꼴불견의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리린 플라비스는 혀를 찼다.

"나이도 훨씬 많으면서 주책이나 부리기는!"

레티시아는 유진에게 아양 떨며 더 많은 정액을 갈구했다. 그 모습은 리린이 보기에 꼴불견이며 더러운 욕심이었다.

특히 마녀로서 오래 살아온 주제에 이제 와서 어린 소년의. 그것도 루진과 결혼할 관계인 유진을 탐하고 이렇게 당당하게 영상까지 보내다니 기가 찬다.

아마 겉으로는 매우 뛰어난 미색과 마법 솜씨로 유진을 꾀어낸 거겠지.

"후우."

리린의 머리가 영상을 볼수록 복잡해졌다.

마녀가 이런 짓까지 했다는 것은 유진이 매우매우매우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녀는 자신이 원하는 걸 반드시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종족.

아직은 집착같은 게 보이지 않지만 이건 그 욕망이 터지기 전의 사전 증세다.

리린은 마녀가 남자를 눈독 들여 데려올 때마다 그 남자들의 끝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마녀의 매력과 몸에 빠져 모든 걸 쏟아내나 마녀는 곧 그 남자한테 질려 내다 버리는 잔혹함을 기억하고 있다.

유진은 레티시아가 집착해도 커다란 대물로 굴복시켜 잘 다룰 수 있으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루진은 레티시아같이 더러운 여자가 용사에게 들이댄다고 생각했다.

그런 주제에 유진과 몸을 섞는다 생각하니 역겹기 그지없었다.

"마녀 그년이랑 유진이 만나는걸 막아야 해!"

리린은 다짐하며 한 마도구를 켰다.

마도구에서 빛이 나오며 영상 하나가 출력되었다. 영상에서는 유진이 아리스와 유벨과 떡을 치고 있었다.

[흐읏, 하응♥ 그만. 제발 그만해줘!]

[정말? 정말로 그만할까 유벨? 대신 아리스 한테 콘돔 없이 질내사정 할건데도?]

[히이잇♥ 그, 그러면 콘돔이라도 끼고!]

[싫어.]

유진이 유벨을 꼬옥 껴안고 힘차게 움직였다. 쿵, 쿵, 쿵. 커다란 대물이 유벨의 안을 두들기니 유벨은 입으로 거부와 거절을 말하나 몸은 솔직하게 그를 갈구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리린은 괜히 심통이 났다.

"레티시아 하고 그렇게 섹스를 하고도 정력이 남아돈다는 건가. 저렇게 험하게 범하다니!"

이것이 과거의 영상임을 알고 있는데도 리린은 그렇게 외치지 않을수 없었다.

화난다는 듯이 말했으나 리린은 자신의 아랫배가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곧 유진이 유벨에게 진득한 키스를 해주며 몸을 떨었다. 새하얀 액체가 유벨의 안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리린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리린의 아래가 축축해 지기 시작했다.

꿀꺽. 리린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며 유진이 빼낸 대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대체 저게 얼마나 좋길래 다들 그러는 거지...'

레티시아도 그렇고 유벨도 그렇고 아리스도 그렇다. 저 물건이 한번 푹푹 박히기 시작하면 신음을 터트리며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경험이 없는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섹스에서 중요한 건 마음이라 생각하는 리린이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리린의 아랫배는 어느새 무표정하던 리린의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으읏..."

리린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손을 아래로 내려 팬티를 문질렀다. 질척한 액체가 손가락을 따라 쭈욱 이어졌다.

리린 플라비스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빨갛게 물들었다.

"내, 내가! 고귀한 황가의 일원인 내가 대체 뭐하는 짓이야!"

와장창!

그녀가 세차게 일어나며 마도구를 던져버렸다. 마도구는 박살나 버렸고 영상은 끊어졌다.

리린 플라비스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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