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복수에 끼어든 자들을 죽이자. (93/198)



〈 93화 〉복수에 끼어든 자들을 죽이자.

죽이긴 왜 죽여. 아깝게시리.

"그보다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네."

자칭 나의 어미. 자칭 나의 어머니, 자칭 나의 엄마. 말은 번지르르했으나 실상 그 역할은 무엇하나도 해내지 못한 쓰레기 같은 년.

"자아~ 널 어떻게 해야 유진이 만족할까."

"히익!"

"워워, 겁 먹지 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대신 뒤에 저 두 놈처럼은 만들어 줄게."

뒤에 엉망진창이 돼서 쓰러진 에바리스를 가리켰다. 엄마라는 년의 떨림이 더 강해졌다.

그러나 이 여자의 눈에도 다른 여자들처럼 일말의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멍할 걸레 년 같으니.

혀를 차며 유진의 기억을 샅샅이 뒤진다. 정확히는 유진이라는 인간이 저년한테 품었던 기억과 감정들을 되짚어 보았다.

"쯧!"

유진의 기억 속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온 뒤 바로 혀를 찼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녀는 더러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유진이 품은 감정 중 역시 가장 큰 감정은 분노다. 그리고 그다음 감정은 성욕과 애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요, 그 누구한테도 진정한 애정을 못 받고 자란 유진은 적어도 엄마한테 만큼은 진실한 정을 갈구했다.

더더욱 이년이 싫어졌다. 그녀의 몸은 아름다우나 속은 너무나도 더러웠다.

"그래도 이런 년한테 사랑을 품었던 유진이 대단하군."

이 몸이 유진의 몸이기에 그의 집념 혹은 본능이 남아있기라도 한 걸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고요했지만 자지는 흥분으로 껄떡거렸다.

방금 두 여자는 그 나이의 소녀가 할법한 일이고 괴롭힘의 강도도 내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기에 범하는데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

훗날 내 명예를 위해 죽이긴 했지만.

그러나 이 여자는 다르다. 거부감이 너무 강하다.

"어떻게 한담. 음?"

얼굴을 찌푸리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마을 근처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그때 던전에서 만났던 그 기묘한 신성력이다.

"그놈들 벌써 왔나."

예상했던 일이다.

마왕 교단에 있어 에반은 중요 인물이다. 그가 여기에 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바로 달려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에반이 가지고 있던 금화. 그건 분명 교단의 것이었겠지, 지금은 내 것이지만.

"나이스 타이밍이군."

그렇지 않아도 이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던 차였다. 특히 유진의 기억을 읽을 때는 기분 더럽고 저 두 놈을 범해서 풀렸던 스트레스가 다시 쌓였다.

이새끼들을 족치면서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다.

"너희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대답도 듣지 않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내 손에는 어느새 창이 들렸고 머리카락은 금색으로 물들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역시 무쌍이 최고지."

혹시 몰라 집에 간단한 결계를 치고 마력을 일으킨다.

밖으로 나오니 사방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 보이고, 마을 사방에는 사람들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그들은 메이스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공격했고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몇몇은 나를 보고 뭐가 외쳤다. 도와달라는 것 같은데 깔끔하게 무시했다.

"닥치는 대로 학살 중인가. 내가 할 일이 줄었네."

원래부터 이 마을은 실컷 즐기고 난 뒤 사람들과 함께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용사가 동향의 범죄자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좋지만 남의 아내와 딸을 범했다는 이야기는 좋지 않잖아.

그러니 즐긴 뒤 없애야지. 근데 얘네가 이렇게 내 할 일을 대신해주니 내 위용담이 하나 더 늘겠어.

마을을 구한 용사 이야기, 적당하잖아.

대충 근처에 있던 사제 중 한 명에게 다가간다.

"네, 놈! 그 힘과 금발...이단자의 용사구나! 위대하고 유일한 신의 이름에 따라 너를 처단..커헉!"

"지랄은 자제다 병신아."

창을 찔러넣어 목을 꿰뚫었다.

사제는 약했다. 느리고, 동작도 너무 컸다. 사람을 상대해 본적이 없다는 게 확 눈에 띄었다.

"누구한테 이단이라는 건지. 자기들이야 말로 이단이면서."

창세신 교단이 이단이면 이 세계도 이단의 세계다. 저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다른 신을 광신하다니.

창세신의 노예 겸 장난감인 나로서는 기가 차는 일이다.

[노예라고 생각 안 했다. 장난감이라고도 생각 안 했고. 너는 나의 훌륭한!]

"유희거리겠지."

이제는 창세신이 이렇게 말 거는 것도 익숙하다.

[에잇, 재미없기는!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질색이라니까.]

"눈치 빠른 꼬맹이는 개뿔. 지랄하지 말고 꺼져. 이 새끼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것도 아니잖아!"

진짜 창세신이 꺼졌다. 씨발, 그렇게 정보 주기가 싫었니...

"아, 생각해 보니까 꼴 받네."

요새 교단 새끼들이랑 몇 번 얽혔지. 분명 비밀 조직일 터인 놈들이 뭔 틈만 나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데!

내가 주인공도 아니고! 아...나 주인공 맞지?

이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주 엮이는 건가?

"이단이다! 이단자를 죽여라!"

"우리들의 신을 위하여! 이곳에서 목숨을 걸어라!"

어느덧 주변 사제들이 나에게 몰려든다. 나는 스스로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메이스를 들고서 떼로 덤벼든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후웅-

창이 허공을 난다. 그리고 황금빛의 궤적을 그리며 독수리가 먹이를 노리듯 재빠르게 쏘아졌다.

그때마다 한 명의 사제가 바닥에 쓰러졌다. 쉽다, 너무나도 쉽다.

푸슉! 촤악!

찌르고, 베고, 부순다.

바닥에는 시체만이 남았다.

"자자, 이새끼들 얼굴 좀 보자."

자고로 광신도라면 대가리에 문신이나 문양 정도는 세고 있겠지.

"응? 이게 뭐야!"

로브를 벗겼으나 기대하던 문양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민얼굴이다. 혹시 몰라 옷을 벗겨봤으나 역시 그대로였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자고로 광신도는 몸에 신의 현상이랍시고 이상한걸 세기는 게 국룰이거늘! 어찌 이러고선 광신도에 사이비라 칭할 수 있단 말인가!

"저기, 저기입니다! 저기 이단자의 용사가 있습니다!"

"전부 물러나라 저 용사는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내가 심판 하겠다!"

이때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는 전신에 묵직한 갑옷을 걸쳤고 거대한 메이스를 든 대장 격 인물로 보였다.

"이단자여 내가 왔!"

"닥쳐 이 사이비 새끼들아! 너희는 이름조차 아깝다. 그냥 죽어!"

입도 열지 말고, 말도 꺼내지 말고 그저 죽어라!!!





"하아~"

유벨은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걱정해주며 다가왔지만 유벨은 그 손길을 거부하고 침대에 틀어박혔다.

"하아~!"

이번이 몇 번째 인지 모를 한숨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유벨은 에반을 떠올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당하고 쾌활하며 선을 지키던 에반은 더는 없었다. 그녀가 오늘 마주한 에반은 망가져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상한 마력을 휘두르며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질러댔다.

일단 상처를 응급처치하려 하니 아리스 언니한테 창녀니 부끄러운 줄 알라니 같이 험한 말을 쏟아냈다.

확실히 아리스 언니는 에반 오빠를 버렸다. 이는 유벨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삼자라면 모를까 에반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됐다.

아리스가 에반한떼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 그리고 에반이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만나 왔는지 유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에반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에반은 아리스 언니를 비난했고 아리스 언니는 쿨하게 무시했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유벨은 아직도 생생한 에반의 폭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리스가 본인의 폭언에 별 반응이 없자 에반은 목적지를 유벨로 틀었다.

처음에는 정에 호소하며 자신을 구해달라 말하던 에반은 유벨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아리스때 처럼 폭언을 쏟아내며 꺼지라 소리쳤다.

유진한테 온갖 굳은 일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에반을 향한 사랑을 지켜오던 유벨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타가 된 것은 유벨의 변화였다. 전이었다면 에반을 멋진 귀공자처럼 바라보며 우물쭈물했을 유벨의 눈에 에반은 더는 왕자도 귀공자도 아니었다.

그저 추레하고 좀 잘생긴 남자에 불과했다. 유벨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으나 유진한테 안기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점 유진에 익숙해졌다.

유진은 거듭 강해지는 힘과 마력 탓에 황금률이 활발히 발동, 외모는 에반을 진작에 뛰어넘었고 덩치는 물론이요 남자로서의 매력에서 전부 에반을 앞서 갔다.

그런 유진한테 실컷 안기다가 에반을 보게 됐으니 그럼 인식의 변화는 당연했다.

"하아..."

유벨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를 쿵쿵 두들겼다. 솔직히 말해 더는 에반을 향한 연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에 황제 폐하의 기사에게 끌려가면서 자신을 구하라고, 그러면 다 용서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유벨의 사랑을 산산이 깨트려 버렸다.

공백이 된 마음에는 빠르게 누군가가 들어찼다. 유진! 유벨은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은 아직 초급 마법사다. 빠르게 실력이 늘고 있으나 이건 전적으로 유진 덕분이며 유진은 무기를 잘 다루는 전사면서도 자신을 능가하는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녔다.

거기에 용사라는 직위를 지녔고, 무려 황가의 일원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어? 오히려 유진이 더 좋은 거 아닌가? 에반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되잖아."

유진도 에반처럼 여러 여자를 만나지만 에반과는 달리 유진은 선을 지켰다. 아무 여자나 막 만나지 않았고 한번 안은 여자는 자신의 것이라 말하며 사랑해 주었다.

"나한테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키스해 줬었지."

유벨은 문득 유진과의 진한 키스가 생각나 입술을 쓰다듬었다. 자신을 꼬옥 껴안은 채 입맞춤하며 안에다가 뜨거운 액체를 내는 유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래가 젖을 것 같았다.

"으읏..."

참을수 없다. 유벨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축축해진 보지를 쓰다듬었다. 유진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달아오른다.

"이건 너무 사기잖아..."

이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건지 모르겠다. 그래, 유진은 사기적인 인물이다. 지위도 재능도 힘도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아마 원한다면 나 같은 여자는 몇 명이고 만날 수 있겠지. 유벨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자그마한 가슴을 주물렀다.

또래에 비해 덩치가 작은데다 아리스와 비교해 너무나도 빈약한 가슴은 언제나 유벨의 콤플렉스였다.

이런 몸이기에 에반이 자신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본인을 유진은 마음껏 범하고 사랑해줬다.

그렇구나.

유벨은 깨달았다.

"사실 유진은 나를 진짜로 좋아했던 거구나!"

유벨의 얼굴이 붉어지고 기쁨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 어릴 때 유진한테 고백받은 전적이 있던 유벨이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물롬 유진이 유벨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다만 그 감정은 대부분 원래 몸의 주인인 유진이 품은 감정을 해결해 주자는 생각을 기반으로 했다.

이를 알 리가 없는 유벨은 그저 유진이 자신을 사랑하는 거로 생각해 버렸다.

"헤헤헤, 그러면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 잘해줄까..."

유벨은 눈치가 꽤 빠른 편이다. 생각도 못 한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해대는 유진의 사고를 예측하는 건 못할 일이지만 적어도 그가 본인의 투덜대는 점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렇다면 적절히 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지.

유벨, 그녀는 이성적인 마법사로 에반을 마음속에서 쫓아내고 새로운 주인이 들어서자 자신의 이성적인 사고로 츤츤데레로 갈지 츤데레데레로 갈지 고만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리고 그 망상은 갑자기 울린 커다란 굉음에 멈췄다.

콰앙! 콰과광!

연달아 울리는 폭음. 이 소리는 한 명이 싸우는 소리가 아니다. 집단 대 집단의 싸움으로 발생하는 소리다.

유벨은 침착하게 그리 상황을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가족들한테 절대 나오지 말라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벨~!!!"

"앗, 아리스 언니!"

저 멀리 아리스가 보인다. 아리스는 메이스를 든 이상한 갑옷을 걸친 사내와 싸우고 있었다.

쿠웅!

커다란 메이스가 바닥을 칠 때마다 바닥이 폭삭 내려앉는다. 다른 곳을 살펴보니 메이스를 든 자들과 유진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황금빛의 번개가 내리치며 굉음을 냈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유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났지만 그런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곧 마법진이 빛나며 검은 화염이 나타났다.

틈나는 대로 유진한테 배운 마법 중 하나인 혼돈의 화염구가 아리스를 공격하는 불한당을 덮쳤다.

"언니! 나도 가세할게!"

우선 이곳의 개판부터 정리하자. 그런 생각으로 유벨의 지팡이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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