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축제를 즐기자
* * *
다음 날아침.
깨끗하게 씻고선 밖으로 나왔다. 내 옆에는 당연히루리와루진이달라붙어 서로 경쟁하듯 내 팔에 가슴을 비벼댔다.
당연하지만둘 다마법으로 정체를 가린 상태. 하지만 빛나는 외모와 끝내주는몸매 탓에사람들의 시선이끌리는 건어쩔 수없었다.
그녀들은 내 팔에 매달린 상태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하는 게어지간히도 내 정실 자리를원하나 보다.
'이걸 어떻게 할까...'
여자 관계에서 나는 갑이자 절대적인 기둥이다. 그리고 기둥으로서 내 곁에 서서 다른 여자들을 관리할 정실이필요한 것도맞다.
루진과루리. 둘 중한명을꼭 골라야 한다면루진을고르겠지만 그래서야루리가납득할리가없었다.루리가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걷다 보니딱좋아 보이는게시판을 발견했다.
"너희 이리로와봐."
나는 둘을 데리고 게시판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게시판에 붙어있는 용지를 떼어내 둘에게 보여줬다. 용지에는 사냥 대회에관한 것이적혀 있었다.
"이건..."
"아버님이직접 개최하시는 고대 사냥 대회로군.축제 때마다황제 폐하가 직접 주최하는뜻깊고역사 깊은 축제의메인 이벤트지. 그런데 넌 그것도몰라?"
"이익!모를 수도있지!"
"하아~ 저건던전이생겨나고 각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서로를죽이는 전쟁이 아닌 사냥을 통해, 누가 더 사냥을 잘했나에 따라 승패를 겨루는 싸움이다. 의미가 의미인 만큼 각국에서 전문 대표팀이 나서지."
"오호라~"
처음에는 대충 누가 더 사냥 잘하는지 내기해서정실을 정하려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이벤트 같았다.
"이거 참가 신청은어떻게 해?"
"참가 신청? 할필요 없다. 이이벤트에참가할 수있는 건사전에 미리 신청한 사람과 그동료뿐. 참고로 나 또한 황족으로서 이 이벤트에 참가한다.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오도록!"
"오오! 역시루진이야. 든든하구만!"
"당연하지. 내가 누구인데! 그나저나 이 이벤트에 참가할 거라면룰은미리 숙지해 두도록."
"걱정 마. 이거가져올 때미리 확인했어."
룰은총 4개. 첫째, 사냥꾼 간의 무력 투쟁은 금지한다. 둘째, 활과 화살을 제외한 어떠한이능및 도구를 챙기는 것을 금지한다. 셋째, 마력의 사용을 금지한다. 마지막 넷째, 잡은 사냥감은 스스로 정해진 구역에 옮겨야 사냥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외에 세세한 규정, 예를 들어 언제 시작하는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언제까지 진행되는지 등등이 있었지만 그다지중요한 건아니다.
가장중요한 건보상. 3등은100 골드, 2등은1000골드, 1등은 황가의 보물 하나라는기가 막힌보상이 적혀있었다.
"이야~ 이거 원래 보상이 이렇게기가 막혀?"
"맞아. 내 용돈도 겨우 50골드인데 보상이 뭐가 이렇게후한 거야! 게다가 황가의 보물이라니! 내가 전에 마법 거울 달라고했을 땐혼내놓고 여기에 보상으로 내걸다니!"
'? 그건당연한 거아닌가?'
루리가황제한테 얼마나사랑받았는지는대충 알겠다. 저런 소리를 했는데도예뻐했다니...황제 그는 보살인가! 아무래도 그녀는 고생 좀 하면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근데 보상이 좀..너무 후하기는 하다. 매년 이런 보상을 줘?"
그러면개꿀일 것같은데. 황가의 보물이라면 뛰어난 물건이 가득할 것이 분명하기에 절로 군침이 흘렀다.매년와서받아갈 수있다는 거니까.
루진은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돈이야 상관없지만 매년 열리는축제 때마다황가의 보물을줄 수는없잖아. 이번에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창세신님께서용사가 강림했다는 신탁을 주셔서 용사의 강림을 축하하는 행사이기도 해. 그래서 평소보다 보상이푸짐한 거야."
과연, 이해했다.창세신에대한 신앙이 주인 이곳에서창세신의신탁과창세신의대리인인 용사의 강림은 분명 축하할 일이겠지. 특히 용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제국이라면 더더욱.
한 마디로 말해 이것도 일종의 팽팽한 기 싸움이다. 타국에 제국의 힘을 과시하고 용사라는 존재는 제국의 것이다...라고 광고하는 것.
아직 타국에는 용사에 관한 정보가 적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용사인 내가 루진,루리랑이러고 있으니 뭐라할 말이없었다.
"유진! 이왕참가하는 거...1등을 노려보도록 하자!"
활활!
루진의눈동자에 뜨거운열기가타오르기 시작했다. 승부, 대결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열혈로 변모했다.
"우웩. 쓸데없이 열정적이야. 그런 열정 따위 없어도유진이라면가뿐하게 일들먹을 게분명하잖아."
"그야말로 얼간이 같은 생각이네."
"뭐라고!?"
루진의말에루리가발끈하든 말든루진은말을 이어나갔다.
"이 이벤트에는 각 명문 귀족 가문의 사람부터 시작해서 타국의 사람들도 많이 참가해.그중에는엘프 들도많지."
"엘프, 엘프인가…"
엘프, 자연의 친구이자 대부분이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비건이며세간에서는 깐프라불리는종족으로 활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이골이 난나르시시스트들이다.
아마 엘프 중에서도 최정예가나올 것이분명하다. 아무리 나라도 궁술로는밀릴 수밖에없다.
"하지만 상관없지."
이건 사냥을하는 거지궁술을보는 게아니니까.
"아쫌! 연습은 뭔 연습이야! 난 안나갈 거라고!"
"이년이! 너도유진의여자라면유진을위해서 짐이라도 옮기란 말이다!"
한편루진과루리는으르렁 거라며다투고 있었지만 원래 여자는 다투면서 친해지는(?) 법이니 일단 방관했다.
그나저나...아까부터 우리를 몰래 바라보는 시선이 거슬린다. 뭐, 적의는 없으니 그냥 놔두도록 할까.
나를 지켜보는 시선에서 신경을 껐다.
사냥 대회까지 하루는 남았다. 그동안 우리는 데이트를 즐겼다. 축제가 한창인 황도를 여유롭게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노점상의 음식도사 먹었다.
곳곳에서 여러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연극, 인형극,칼싸움승부,기타 등등. 축제답게 뜨거운열기가가득했다.
"유진아, 우리 저거 해보자!"
그러던 중루리가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활쏘기?"
루리가가리킨 곳에는 활쏘기 시합이 열리고 있었다. 다른 이벤트와 달리 꽤 규모가 컸고 1등 보상도 엘프가 직접 제작한 마력나무 활로 꽤 좋았다.
내가 쓸 일은없겠지만, 적당히팔면 돈 좀벌릴 것같은 물건이다.
"저거, 저거 해보자!"
"흐음~ 나도 나쁘진 않다고 봐. 유진이 너라면 활도 잘다룰 테니까!"
어느새루진도끼어들어 내가활쏘기를하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 요망한 년들 같으니. 나는 내 여자들이원하는 대로활 쏘기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 활에도꽤나일가견이 있다. 그렇기에 쉽게 상대를 압도하며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승부 방식은 토너먼트 형태였기에 결승에올라가는 건빨랐다.
'이걸로 2등 확정인가.'
2등의 보상은 마법 처리가 되어 얼음 화살이 생성되는화살 통이다. 그다지 좋은 보상은아니지만, 이것도팔면 그럭저럭이 돈이될 것같다.
1등 보상이 더 좋아서 그걸얻을 거지만.
"힘내라! 힘내라! 나는믿고 있어유진아!"
"너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
루진과루리가소리친다. 이 대회는 규모가 큰 만큼 대회 경기장도 넓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나를 응원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호응해주며 내 상대를 기다렸다.몇 분정도 지나자 로브로 전신을푸욱눌러 쓴 자가 천천히걸어왔다.
'로브라니,매우 수상해!'
나도 모르게 손이 꿈틀거렸다. 로브에서 삐죽 튀어나온 엘프 특유의 기다란 귀가 아니었으면 이단이다! 를 외치며 뚝배기를깨버릴 뻔했다.
엘프라 하더라도 로브를뒤집어쓴걸 보니수상한 건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개수작을 부리진 않나 경계하며 그가 자리에 경기용 활을잡을 때까지시선을 떼지 않았다.
수상하긴 하지만 당장 무슨 일을벌릴 것같지는 않다. 여기서는 지켜보기로 하자.
"그러면 이제부터 대망의~ 결승전! 활 쏘기 대회의 마지막 승부를시작하겠습니다!"
이때 진행자가 나와 화려하게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룰은저번까지의 경기와같습니다! 선수들에게 허용되는 화살은 총 10발! 이 화살로 가장 많은, 높은 가치의표적을 맞히는자가 승리합니다! 다만 마력을 비롯하여 특수 능력의 사용은허락하지 않습니다!"
마력을 탐지하는 마력탐지기를우리 앞에 놓고 우리에게 10발의 화살이 제공되었다. 나와 상대는 동시에 활에 화살을 얹으며 시위를 당겼다.
허공에 10, 1, 5, 0 같이 여러 숫자가 적힌 팻말이 떠올라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스읍 숨을 참으며 몸의 떨림을가라앉혔다. 그 상태에서 한발.
피슝!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10점 팻말이박살 났다. 상대도 10점 팻말을박살 냈다. 나이스샷. 주변은 사수를 배려하여조용했지만, 첫발부터10점 팻말을 맞춘 만큼 분위기가 후끈후끈하다.
'오랜만에 재밌는데.'
나는 한발 더 얹어 시위를 당겼다. 상대도나와똑같은 시간대에다음 발을준비했다. 사격, 날아간 화살이 이번에도 10점 팻말을박살 냈다.
우리는 슬쩍서로를한번 보고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거의 동시라고해야 할속도와 정확도로 날아간 화살은 족족 10점을 맞췄고 우리들의 점수는 70점으로 동등해졌다.
우린 서로의 실력을 이해했다. 내가 활만수백 년은다뤘는데나와호각일 줄이야. 훌륭한 활 솜씨, 역시 엘프다웠다.
"이야~ 이거 치열한 접전이계속되는군요!이럴 때는역시 경기에 변화를 줘야겠죠!"
사회자의 말과 함께 경기장에 변화가 생겼다. 지진이라도난 듯땅이 흔들렸고환술인지팻말이 흐릿하게 보였다.
"하. 재미없는 수작이군."
여태껏말이 없던엘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운 미성으로 말하며 그는 귀찮다는 듯이 시위를 뒤로 당겼다. 그 행동은 거침없었다.
'이건 상황이 참 재미있네, 진짜 재미있어.'
나도 시위를 당겼다. 땅이 흔들린다? 허공에서 날아다니며 저격해보기도 한 나다.이 정도사태에 균형을 잃을 일은 없다.
환술? 나는 마법의스페셜리스트다. 이미환술을꿰뚫어 봤다.
"샷."
피슝! 피슝!
동시에 2발의 화살이 날아갔다.둘 다10점 팻말을 맞췄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둘 다뛰어난 실력으로 10점만 맞춘다면 결국 이 승부는 누가 더 빨리끝내느냐에따라 승패가갈릴 테니까.
"샷."
9번째 화살. 곧바로다음화살을 쏜 내가 약간 빨랐다. 이 기세를 살려 다음을 준비.고민 없이쐈다. 이에 이어 엘프의 화살도 날아갔다.
둘 다10점에 명중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그리하여 승패가 갈렸다.
"이번 활 쏘기 대회의 승자가 나왔습니다!축하합니다!"
나는 앞으로 나와 사회자가 건네주는 활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열광하며손뼉을 짝짝 쳤다. 이에 보상으로 받은 활을 저 높이 치켜드니 환호 소리가 더 커졌다.
"대단하군."
"워메 씨발!"
인기척도 없이 내 뒤에 다가온 엘프가 어깨에 손을 올려서 나도 모르게 뚝배기를후려칠 뻔했다. 간발의 차로 주먹이나가는 걸 막으며엘프를 바라보니 그는 미미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이런 이국의 땅에서 그것도 인간 중에서이 정도솜씨의 숙적을 만날 줄이야...훌륭한 솜씨였다."
"아, 당신도 훌륭한 솜씨였어. 역시 엘프의 활 솜씨는 대단해."
우리는 대충 악수하며서로를칭찬했다. 이 엘프는 깐프가 아닌지 인간한테 먼저 살을 내주었다. 이 엘프는 적어도 깐프는 아니다.
"이번 승부에선 내가 졌지만...사냥 대회는 호락호락하지않을 거다. 그러니 그때다시 보지용사."
엘프는 로브를 흩날리며 보상도받지 않고밖으로 나갔다. 잠깐만, 쟤 지금 나보고 용사라고!
이미 타국에 내가 알려진 건기? 복잡한 얼굴로 엘프가 떠나는걸확인하고나도 밖으로 나왔다.
"유진아! 오늘 진짜 멋졌어!쐈다 하면최고 점수! 그야말로 백발백중이야!"
"맞아, 그 정도의 활 솜씨는 엘프외에는 본 적이없어!"
"과장이 심하구나. 내 활 솜씨가 훌륭하긴 하지만 엘프 중에서도 진짜 잘 쏘는 애들이랑 비교하면 부족해."
방금이야마력 없이쏴서 먼저 쏜 내가이긴 거지. 마력을쓸 수있었다면 사정은달라졌을 거다.
그나저나 보상이 참 좋다. 자연에 집착하는 엘프, 그중 꽤 이름있는 엘프가 제작한 활인지 활의 품질은 내 예상보다 더 뛰어났다.이 정도면 10골드는 무난하데 받을 정도다.
"일단 이거 처분은 나중에 하고."
활은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밥부터먹으러가자."
대회 내내 집중해서 그런지 아까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리고 있다.루진과루리는내 말에 귀엽게 웃더니 양쪽에서 나를 어딘가로 끌어당겼다.
"가자, 우리 황족이 먹는 식사를 보여줄게."
"초일류 중에서도 가리고 가려서 받아들인 최고의 요리사가 모인 황궁의 주방을 기대하라고."
그녀들의 말에 고개를 기대를 품고 황궁 주방에 도착했고 그 말대로 훌륭한 식사가 나왔다.
미미!!!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 뒤 우리는루진의방으로 올라가 잠들었다. 대회도 있었고 내일은 사냥 대회에컨디션조절을 위해 섹스는 하지 않았다.
·
·
·
"드, 들키진 않았겠지..?"
구석진 골목. 한 엘프가 로브를 벗었다. 로브 안에 있던건 찰랑 녹색 머릿결의 미녀.
미녀는 용사와 악수한 손을 볼에 비비며 행복하게 웃었다.
엘프는 수명이 매우 길며 그만큼 중요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특수한 마법으로 계승한다.
그리고 이 엘프는 용사의 기억을 계승 받은적이 있는, 용사를 덕질하는 용사 덕후였기에 유진과의 만남에 헤실헤실 웃었다.
"후후후...이 손은 평생 씻지 않겠어!"
그리하여 용사 유진은 자기도 모르는 팬클럽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